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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마당가 돌담에 단단히 서 있었지
크낙한 잎을 따면 하얀 수액 방울방울 흐르고 퍼렇다 못해 어두운 그늘 깊던, 산수유며 해당화 다 피고 지도록 벌나비도 찾지 않아 늘 외로워 보이던, 꽃 없는 과실이 어디 있으리 조금 늦게 피는지 몰라 수술 그득 채우느라 꽃잎이며 꽃받침 밀어 올릴 틈이 없는지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지도 몰라 꽉 찬 살이 터지며 꽃잎을 터트릴 때까지 과육의 껍질이 꽃을 숨기고 있었던 거라구 보아, 십자로 벌어진 네 잎의 꽃을 열린 꽃잎 사이로 반짝이는 수백의 꽃술을 그러니까 기다림이 꽃잎을 틔우는 거야 천천히 보아, 진한 자홍색의 향기를 이화과裡花果의 속살을 ---「무화과는 없다」중에서 다음 생엔 꼭 내 속으로 들어와 열 달 배 속 품어 고이고이 길러 내 배 앓아 엄마를 낳아 줄게 배탈 나면 차조 메조 눈 많은 곡기 끓여 기저귀에 꾹 짜서 한 입 한 입 먹여 줄게 한참 자랄 땐 새벽시장 콩물 받아다 노란 주전자 가득 머리맡에 놓아 줄게 입맛 없을 적엔 산낙지 사다 식초 설탕 간장 넣어 연포탕도 해 주고 석화 넣어 훌훌 넘어가는 매생잇국도 끓여 줄게 한평생 서서 밥상 고이 차려 줄게 늘 앉아서 밥상만 받은 몸이 ---「어머니의 밥상」중에서 살 맞은 짐승의 울음소리가 바로 저럴까 새벽 세 시 어중간한 열린 창 사이로 느닷없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창문가로 가니 옆 건물 식당에서 회를 뜨는, 정자라던가 정순이라던가 늘 소리 없이 웃으며 스끼다시 모양 나게 꾸미던 여자가 분명한데 나가다 안 나가다 노가다 남편 만나 온몸에 퍼런 문신 자국 지워질 틈 없이도 튼실한 아들 둘씩이나 주시어 감사하다던, 울부짖던 그림자 흐느낌으로 바뀌도록 여자 속의 이리는 철창에서 나올 줄 모르고 이리 밖의 여자는 달빛에 흥건히 젖어도 철창에 부딪히는 소리는 멈출 줄 모르고 여자 속의 이리와 교신해 버린 내 안의 짐승은 철창 속을 어슬렁거리고…… ---「아스팔트의 이리」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