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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숫눈 빈집 새 발자국 화석 경첩에 관하여 점자책 알전구 속의 풀밭 견인차에 시계가 매달려 있다 물탱크 청소 식물의 눈동자 해변은 어떻게 태어나는가 비누 피아노 주치의를 위한 시詩 왜가리 폭우 속에서 슬리퍼 한 짝 저녁밥 생각 마라토너 귀 어디든 간다 죽음의 강습소 뿔 위의 모자 중이염 어머니의 틀니 부부夫婦 송이버섯 숯 2부 무덤 박물관 가는 길 문상 숨 쉬는 집 밤 광인 구산동 고분군 가는 길 그대의 유품 지도 무덤 밖의 지도 토우 봄의 환幻 혼자서는 무덤도 두려운 내부다 풀을 베다 새 네트워크는 어디든 있다 바람 궁전 노출 전시관에서 너에게 가는 길 무덤 속으로의 긴 산책에 대하여 수로왕릉 가는 길 월도月刀 파사석탑을 보며 가락국에서 쓰는 편지 3부 얼음 위의 맨발들 우물 허물 마음이라는 표범 한 마리 새의 부족 낯선 평화 모서리를 향해 걸어가는 삶이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 왕따 밤길 봄,봄,봄 죽은 양羊에게 정승골 계곡에서 죽은 양羊을 위한 습작 양羊, 혹은 상실 해설 무덤 속에서 피어난 몸 / 강경희(문학평론가) |
박서영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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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살지 않는 무덤이 점화한다
복제보다 아름다운 기억들이 펑펑 터진다 누가 태초에 봄여름가을겨울의 이름으로 저 제비꽃을 민들레를 엉겅퀴를 개망초를 세상에 꽂기 시작했을까 무덤의 콘센트가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땅의 배꼽이 열린다 - 「무덤 박물관 가는 길」 부분 “아무도 살지 않는 무덤”에 시인은 “플러그”를 “점화”한다. “무덤의 콘센트가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땅의 배꼽”은 화자에게 환한 무덤의 내부를 보여준다. 육체의 죽음은 새로운 재생의 몸으로 환원된다. 즉 폐허의 육체는 죽음을 낳고, 다시금 죽은 육체는 환한 기억으로 재생된다. 죽음을 통해 생성된 기억은 그 어떤 생의 순간보다도 환하게 빛난다. 이는 죽음이 폐쇄되고 고립된 세계가 아니라 환한 ‘열림’의 공간임을 의미한다. (강경희 문학평론가) 오전 여덟 시 상가를 지나친다 동네 입구의 전봇대에는 하얀 종이에 반듯하게 씌어진 상가喪家→가 붙어 있다 이 길로 가면 상가로 갈 수 있다 나는 지금 문상 가는 중이 아니다 그러나 태어나자마자 이 표식을 따라왔다 울면서도 왔고 졸면서도 왔다 사랑하면서도 왔고 아프면서도 왔다 와보니 또 가야 하고 하염없이 가야 하고 문상 가는 줄도 모르고 나는 문상 간다 죽어서도 계속되는 삶이 무덤 속에 누워 꺼억꺼억 운다 - 「죽음의 강습소」 부분 박서영 시인에게 삶은 죽음으로 치닫는 과정으로 인식된다. “문상 가는 줄도 모르고 나는 문상 간다”라는 문장처럼 삶은 가는 줄도 모르는 채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죽음에 이르는 길은 시인의 선택과 무관하지만 순응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 존재이다. 강경희 문학평론가는 해설을 통해 “박서영은 자신의 고통을 내면화하는 방법으로 ‘죽음’의 문제에 몰입한다.”면서 “그런데 때로는 이 죽음이 너무 환하다. 삶보다 밝은 죽음에 경도하는 시인의 눈이 죽음의 빛에 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지만 시인은 너무 일찍 죽음의 빛에 눈이 멀어버린 것 같다. 새롭게 발간되는 고故 박서영 시인의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를 통해 그가 오래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선몽先夢은 나를 두렵게 한다. 먼 길을 떠나기 전, 내 꿈속에 나타나 손을 흔들고 가신 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 함께 하지 못했던 시간들을 한 채의 집으로 지었다. 죽음은 가장 오래 기억해야 할 불멸이다. 김해 고분 박물관을 어슬렁거리며 내가 찾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곳에서 줄곧 아름다운 시간의 복원에 대해 생각했다. 사라지지 않은 죽음. 바람 소리에 문득 깨어나 소스라치게 놀란다. 나는 아직도 살아 있다. --- 박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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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사람들이 만든 역사와 물건들을 무덤 속에 저장한다. 흙 속에 잠든 아주 먼 옛적 것들이 캐어져 박물관의 유리창에서 눈을 뜨고 있지만 정작 속내를 꿰뚫어 보는 일은 시인의 몫일 수밖에 없다. 용케도 박서영 시인이 접신이라도 한 듯 여느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 가야 혹은 서라벌 유물들의 중얼거림을 알아듣고 오늘의 낱말로 적어 내고 있다. 이것은 지나온 시간만큼 앞으로 나아갈 시간으로서의 여행을 위한 지도이기도 하다. 나도 도굴을 꿈꾸며 가끔은 무덤들의 근처를 기웃거리지만 그의 저 술술 풀리는 주문을 만나니 기가 꺾인다. 꽃이거나 새거나 자유자재로 몸을 바꾸며 넘나드는 시의 폼새가 아무래도 큰일을 낼 성싶다. -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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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켜놓고 읽어야 하는 박서영 시집을 읽는다. “후각과 청각과 시각과 미각을 열고서도/마음의 감각까지 동원해야/차가운 너의 몸을 만질 수 있다”고 말하는 그의 시를. “눈꺼풀이 없는 알전구”처럼 나는 끝끝내 읽어 내거나 만지지 못할는지도 모른다. 지난 몇 년간 나누던 통화가 생각난다. 전화를 하면 그는, 어떤 때는 낙동강변이라 하고 또 어떤 때는 어딘지도 모르는데 하여간 꽃 한 아름을 꺾었노라고 즐거워했다. 그는 여리고 가볍다. 그러나 은근히 새서 더러는 감당이 안 될 때도 있다. 그의 시가 그렇다. 안심이 되는 건 “중이염에 걸린 k의 귀”처럼 시를 위한, 시를 향한, 시에 의한 귀머거리가 되기 위하여 “30년간 아름다운 소리에 몰입”할 거라는 믿음뿐. 오랜 친구로서 축하를 하고 첫 시집에 상재한 천이통天耳通의 시편들을 구석구석 만져보고자 한다. 어둠을 켜놓고, 눈꺼풀 없는 눈으로 꼼꼼히 읽어보고자 한다. - 유홍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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