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가풍家風이란 말을 쓰는 사람이 있을까? 이 천방지축 막무가내의 시대에, 아직도 가풍을, 이어받고 지키려는 사람이, 있기는 있을까? 곽향련의 시편들을 일별하고 난 후 곧장 떠올린 단어 ‘가풍!’ 나는 옛 어른들이 밥상머리며 술상 머리에서 두런두런 주고받으시던 말씀들을 떠올렸다. 그 귀감의 말씀들을 동냥질해 들으며 아직 어렸던 우리의 뼈대가 굳고 어깨가 넓어졌던 시절을 떠올렸다. 맞아, 시인의 시들은 한결같이 마음가짐 몸가짐을 추스르고 다잡는 귀결로 이어지고 있어서 부득불 ‘성찰의 시’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문제는 바둑을 즐기셨던 아버지로 인해 나의 눈엔 ‘하얗고 검은 바둑알이 들어앉아’ 있기 때문. 이 흑과 백의 논리, 바름과 그름의 판단 여부는 곽향련의 삶과 시의 기준이다. 그것은 선택이며 배제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일견 평이하고 고루하지만 아서라, 진리는 늘 그런 것이다. ‘이를 악물고 매달린 빨래집게’에서 ‘아흔 해를 아스라이 버텨 온 어머니의 틀니’를 유추해 내거나 ‘파도가 토해 낸 눈물을 온몸으로 마신 몽돌’을 통하여 ‘쉼표’나 ‘마침표’를 연상해 내는 것은 당연한 결과. 곽향련에게 새로움이니 모던이니 하는 기준을 갖다 대서는 안 된다. “누굴 밀어내고 밥 먹은 적 없는” 시인에게 밥은 “소리 나지 않게 먹어”야 하는 것. “너무 가벼워” “내 몸에서도 피가 모자라 나눠 가질 것이 없다고 하는데”도 헌혈을 위해 팔뚝을 내미는 것이 곽향련 시의 성품이다. 시인의 몸속에도 면우 곽종석 같은 이의 피가 흐르는 걸까.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일직一直으로 산다는 것은 오로지 대나무처럼 꼿꼿한 훈육과 판단의 과정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 대물림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쯤에서 나는 곽향련의 시들을 ‘꼿꼿한 대나무의 유전자를 가진 훈육의 시편들’이라 부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