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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일기 자존심 세계의 중심 A는 B다 오래된 가옥 역사의 미로 밑번들 눈물겨운 봄 관(官)을 관(觀)하다 8대 죄악 비대면의 세계 2부 봄의 용도 그나저나 배린 인생 혁명이 필요할 때 우리는 혁명을 겪지 못했어―『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를 기억하며 한 시절 잘 살았다 내 삶의 서재는 내일 다시 쓰겠습니다 빚에 물들다 동거인 인생이라는 뻘밭 사람값 다만 친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3부 희망의 의무 소강국면 나무야 나무야 빈손의 빈손 눈부신 폐허 있지 없지 희한한 셈법 종신형 대한민국 헌법 1조 블랙리스트 노인들을 위한 국가는 없다―세계 노인의 날을 맞아 지금 내리실 역은 이태원역입니다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 시인 노트 시인 에세이 해설_눈물과 상처가 있는 세계의 중심(고명철) 송경동에 대하여 |
宋竟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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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건
영광이 아닌 비참 뜻 세웠던 곳보다 마음 무너졌던 그곳이 세계의 중심 누군가의 눈물과 상처가 있는 곳 그곳이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힘이 새로 돋는 곳 ---「세계의 중심」중에서 믿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이번에는 정말’이라는 말 정치인과 지식인과 전문가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열뜬 복음주의자 영웅주의자들이 잘 쓰는 말이다 ---「밑번들」중에서 진실과 오랫동안 비대면해 온 인간 스스로이다 우리가 끝내 우리의 유한한 삶과 무한한 세계에 대한 영원한 무지에 대해 인정하고 한없이 소박해지지 않는 한 도미노처럼 쓰러져가는 세계의 재난은 끊이지 않을 것이며 파국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비대면의 세계」중에서 선생께서 전화를 주셨다. 참혹한 일이라며 현장 상황을 물으셨다. 말미에 ‘경동이가 그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라는데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렇게 참담한 밤을 기억하며 연락을 해오는 한 명의 ‘동지’가 있다는 것이, 놀란 사슴처럼 나약해진 내 마음을 쓰다듬어주는 한 명의 ‘벗’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혁명이 필요할 때 우리는 혁명을 겪지 못했어―『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를 기억하며」중에서 밑줄 그을 문장보다 부둥켜안아야 할 일이 많았고 미문과 은유는 쓸 틈 없이 직설의 분노만 새기며 살아왔던 내 삶의 서재는 ---「내 삶의 서재는」중에서 얼마나 먹어야 그 배가 다 찰까 …불빛 환한 이 지옥 이 눈부신 폐허 ---「눈부신 폐허」중에서 녹취가 될 수도 있으니 법망에 걸리지 않을 말을 골라야 했다 통화 중에도 구체적인 사람 이름은 피하고 메일은 최대한 무미건조하게 쓴다 가난한 살림이지만 때때로 컴퓨터 하드를 통째 갈아야 한다. 올해는 몇 번쯤 통신기록 조회가 됐을까 궁금하고, 신용카드 한 번 쓸 때마다 이건 어떤 혐의나 증거가 될까 망설이게 되었다 ---「블랙리스트」중에서 2022년 10월 29일 오후 6시 34분 이후 주도면밀하게 이 죽임의 축제를 주최한 자는 대한민국 정부지 11번의 긴급구조 신고를 받고도 156명의 숨이 멎어갈 동안 있지 않았던 정부는 있을 필요가 없는 정부지 그 책임을 거부한 정부는 정부가 아니지 아무도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있는 정부는 정부가 아니지 ---「지금 내리실 역은 이태원역입니다」중에서 내 시가 그럴듯한 명분들에 기대지 말길 바라며, 이미 지나버린 과거의 나로 현재의 나를 가리거나 치장하지 않길 바랍니다. 분노하는 일이 관습이나 체면치레처럼 굳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사랑한다는 일들에 대한 언급이 조금은 더 깊어지기를 기다리며 적어지기를 바랍니다. ---「시인 에세이」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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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눈물과 상처가 있는 곳/그곳이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힘이 새로 돋는 곳”
k포엣 시리즈 37권 송경동 시인의 『내일 다시 쓰겠습니다』 송경동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내일 다시 쓰겠습니다』가 K-포엣 시리즈 37권으로 출간되었다. 송경동 시인은 폭력적인 사회 구조와 맞서 싸우며 울분을 토해내는 이들 곁에 있다. 그 곁을 지키며 그들의 울음을 듣고 또 함께 울면서 이를 다시 언어로 옮겨 적는다. 시인이 스스로 밝힌 것처럼 “미문과 은유는 쓸 틈 없이/직설의 분노만 새기며 살아왔던” 그의 시는 말하는 바와 향하는 바가 뚜렷하다.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주의자들, 불합리한 사회 구조의 유지 보수에만 힘쓰는 권력자들의 민낯을 드러내고 그들을 향해 분노를 쏟아낸다. 그 분노는 이 세계와 사람들을 사랑하는 만큼 더욱 열렬해진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겪는 슬픔을 허투루 보아 넘기지 못하고, 먼 데 있는 자의 고통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그곳으로 내달리게 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곳의 거리에 섰을 때 우리에게 닥친 절망이 결국 어디에서 연유하는지를 알게 된다. 그것은 대체로 뻔히 드러나 있다. 모른 척 지나쳐버리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시인은 뜨거운 사랑을 품은 채 피 맺힌 절규를 또박또박 써 내려간다. “명료하면서 쓸모 있고, 정직하며, 고귀한 시”_진은영 시인 “송경동이라는 고유한 역정의 장르를 만들어낸 사람.”_문동만 시인 “죽은 자들을 위해 조시를 쓰는 시인 송경동.”_이설야 시인 선생께서 전화를 주셨다. 참혹한 일이라며 현장 상황을 물으셨다. 말미에 ‘경동이가 그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라는데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렇게 참담한 밤을 기억하며 연락을 해오는 한 명의 ‘동지’가 있다는 것이, 놀란 사슴처럼 나약해진 내 마음을 쓰다듬어주는 한 명의 ‘벗’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_「혁명이 필요할 때 우리는 혁명을 겪지 못했어―『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를 기억하며」 중에서 “누군가의 눈물과 상처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시인에게 큰 힘이 되는 것은 그가 서 있는 자리를 짐작하고 말을 걸어주는 일이다. “경동이가 그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라는 안부 전화에 왈칵 눈물을 쏟는 시인의 모습에서 그에게도 목소리를 내는 일은 매우 큰 용기와 힘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송경동 시인은 현장에서 목소리를 높일 때와 마찬가지로 그 목소리를 시로 옮겨 적으며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말을 걸고 있다. 이번 시집을 읽는 일은 그의 목소리를 잘 듣고 있다는 응답인 동시에 다시 한번 그에게 말을 걸어주는 일이 될 것이다.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과 〈K-픽션〉 시리즈를 잇는 해외진출 세계문학 시리즈, 〈K-포엣〉 아시아 출판사는 2012년에 기획부터 출간까지 7년이 넘는 시간을 들인 근현대 대표 작가 총망라한 최초의 한영대역선집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과 2014년에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K-픽션〉 시리즈를 출간하며 한국 문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안도현, 백석, 허수경을 시작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의 시편을 모아 영문으로도 번역하여 출간하고 있다. 영문 시집은 해외 온라인 서점 등에서도 판매되며 한국시에 관심을 갖는 해외 독자들의 마음도 사로잡을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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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관되게 편향과 편파의 시인이다. 사는 내내 변할 것 같지 않은 체제의 부적응자이거나 A급 블랙리스트다. ‘영광이 아닌 비참’ 쪽에 마음을 두는 사람. 김남조인 줄 알고 찾아갔으나 김남주를 만나 인생이 제대로 꼬인 사람. 그리하여 송경동이라는 고유한 역정의 장르를 만들어낸 사람. 우리가 아직도 ‘용산참사역’도 ‘이태원참사역’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시인의 심장을 떼어 내다 버린 악령들과 한 하늘을 지고 살고 있다고. 외로이 파수를 서며 외치는 사람. 진실로 떼어 버려야 할 것들이란 ‘이 눈부신 폐허’라고 외치는 사람. 나는 그 속내 깊은 직설이 강 건너에서 던지는 친구의 물수제비 같아서 사위를 둘러보게 되는데, 연이어 차돌 같으나 평평하고 뜨끔하나 따뜻한 파문이, 또 밀려오는 것이었다. - 문동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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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를 읽으면 프랑스 화가 조르주-앙리 루오의 연작 〈미제레레(Miserere)〉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기분이 든다. 루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고통이나 비참함 앞에서 달아나지 마라. 덧없는 이익들, 특권들, 일시적인 명예들 때문에 네 자신 안에 네가 그리도 잘 느끼고 있는 것의 가장 작은 조각도 양보하지 마라.’ 송경동의 모든 시에서는 이 원칙이 윤리적 명령처럼 깊게 울려 나온다.
그런데 이 시집에서 정말 놀라운 것은 고통 곁에 머무는 시인의 목소리가 너무나 명료하다는 점이다. 고통과 비통함에 관한 한 최고의 대가였던 프리모 레비의 성찰에서 나는 그 명료함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레비는 세계의 비참 속에서 홀로 죽어가는 이들, 절망 속에서 자포자기에 이르는 이들의 목소리는 불분명하고 모호해서 마치 동물의 울음소리와 같다고 했다.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울음의 곁에서 고통을 전하려는 사람의 목소리는 명료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는 덧붙였다. 명료하면서 쓸모없을 수 있고, 명료하면서 부정직할 수 있으며, 명료하면서 천박할 수도 있지만, 명료하지 않으면 메시지는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에 다시 덧붙여 레비의 귀에 속삭여 주고 싶다. 여기 명료하면서 쓸모 있고, 정직하며, 고귀한 시들이 있다고. - 진은영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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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낮고 비루하고 보잘것없는 삶의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 곁에서 시를 쓴다. 그래서 그가 시를 궁리하는 서재는 어엿한 집필 공간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도처에서 생겨나고 있는 폭압과 착취와 죽음이 엄습하는 삶의 현장 속이다. - 고명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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