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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도둑, 사랑
한지산
아시아 202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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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et 시리즈

책소개

목차

유령과 함께 춤을
입주청소
동전이 하는 일
죽음 일지
멍을 가리키며
혼자 하는 추모
새장과 벽장
고시원
천적
두부, 사과, 순대
8x8
유리창 너머
만다라
파문
Below Zero
경합
가름끈에 대해
초대
아무튼 음모론
마음을 다하여
주공아파트
마셀린
사물함
춘래불사춘

균형

아프고 싶은 날은 양말만 신어도 아프다
호모 비아토르
신1, 인간2, 컵0, 펭귄?
Magic Chair
내가 기계를 잘 알아서가 아니라
견디는 힘
아광속
재능
필연
무신론자
자생식물
이토록 좋은 날씨에 넌
재배고도
실패한 이야기
Palimpsest
시선처리
상생
단 하나의 오렌지
작은 대회
서술하기
황무지에 껍질을
이주노동자의 비극
환자
다발
고백
식사
( )에게

시인 노트
시인 에세이
발문│미지의 조각들이 가리키는 끝으로_허희
한지산에 대하여

저자 소개 1

2021년 문학사상신인상에 「혼자 하는 추모」가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심훈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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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115*188*12mm
ISBN13
9791156627234

책 속으로

내 주머니에는 하나의 손만 입장이 가능해서
혼자 조용히 들어갔다.
검은 하늘이 검은 화면처럼 보일 때까지
손을 푹 찔렀다.
---「동전이 하는 일」 중에서

가만히 있으면
누군가 벨을 누를 것 같아서
그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연고 없는 사람에게 한 번쯤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죽음 일지」 중에서

나도 몸에 깊이란 걸 만들어보려고 모종삽을 샀다
첫 삽을 뜰 때 멀리서 축하 박수가 들렸다
멀지 않은 곳에 다들 있었다니
물이 고여 있구나

잘린 다리가 흔적을 지우기 편한 것처럼
꽃을 그리는 사람이 언제부턴가 화병에 물만 그렸다
죽음을 투명하게 보려고
다들 유리병을 사가는 건가

누가 돌아오지 않았다길래
똑바로 걸었는데 그 앞은 녹았다는 말

그것은 존재하는 걸까
그것은 발견되는 걸까
---「혼자 하는 추모」 중에서

이자를 갚는 중이라고 했다
네가 대학생 때 처음으로 대출을 받은 돈에 대한
이자를 갚는 건 내리는 눈을 끝없이 치우는 것 같기도
투명한 얼음을 한번 만들어보겠다며 팔팔 끓는 물을 냉동실에 넣는
고문 같기도

그러다 이도 저도 모를 때
날 사랑한 것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같은 것이라고
이자는 그랬다

하루에 할 일을 하루에 끝내지 않는 게 좋았다
오늘로부터 그다음 날 또 다음 날까지 자꾸 영향을 미치니까
그렇다면 나로부터 영영 멀어져 점이 되어버린 시간에도
너의 일부는 계속 유예되고 있겠다 생각했다
---「Below Zero」 중에서

나는 저 유리문 너머에서 왔습니다
평면에서 입체로 나아가려면 나만큼의
내가 필요하다
---「두부, 사과, 순대」 중에서

서로를 더 잘 알기 위해
100가지 질문이 적힌 노트를 들고
마지막 줄을 다 적고 나면 우린 다른 어른이 돼 있을 거야
---「주공아파트」 중에서

최근의 일들은
가장 먼저 썩어 거름이 된다
이야기에 이야기를 덧댄다
숲에 단 하나의 여백도 남기지 않겠다는
귤향
우리가 같은 시간대에 살았다는 증거
---「황무지에 껍질을」 중에서

『유령, 도둑, 사랑』은 하나의 단어를 삼등분한 것이다. 그 단어는 이 시집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 단어를 설명하려고 유령과 도둑과 사랑을 가져왔다. 이 세 단어를 설명하는 것이 그 단어를 외면하는 방법이었다. 말하고자 하는 무언가를 끝끝내 말하지 않으면서 시를 끝냈다. 이 시집은 생활과 흡착되어 있다. 시와 인물, 시와 배경, 시와 사건이 붙어 있지만 결합하지 않는다. 동행하되 만나지 않고 의식하되 초대하지 않았다. 부재가 존재의 증명방식이 될 수 있어서 사람들이 자꾸 하늘을 보고 숲을 보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울고 있는 것처럼.

---「시인 노트」 중에서

출판사 리뷰

k포엣 시리즈 43권 한지산 시인의 『유령, 도둑, 사랑』

“슬프고 가끔 엉뚱하고 간혹 사랑스럽고 아주 드물게 다시 꾸고 싶은 이야기”

2021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한지산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다. 2024년 심훈문학상 당선작 52편을 한 권으로 묶었다. 심훈문학상 심사 당시 “일상의 사물과 어그러진 풍경 속에서 존재의 이면을 탐색하고,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시적 공간을 창출해낸다”(심사위원 김근·안현미 시인, 허희 평론가)는 평과 함께 심사위원들의 고른 지지를 얻었다.

이 커다란 도시에서
우리는 유령처럼 모두 혼자이지만

“우린 꿈속에서도 같은 시대를 살아보자고 깍지를 꼈다.”(「가름끈에 대하여」)

『유령, 도둑, 사랑』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익숙한 도시 공간에 발을 붙이고 서서 쓰인 듯하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곳에서 한 발짝 떨어져 그 모두를 지켜보고 있기만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시 속 인물들은 도시 공간을 자유롭게 부유하지만 그 모든 것에 직접적인 영향력은 행사할 수 없는 유령처럼, 희미하고 외롭게 존재한다. 평범한 생활을, 때로는 절실한 생존을 주체적으로 이어가는 것이 어떤 식으로 가능하고 또 가능하지 않은지를 골똘히 탐구해보는 것 같기도 하다.

“잘못된 건 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시대의 일원으로” 살고자 하지만 “그런 나는 지금 방해만 될 뿐”이라고 느끼기도 한다.(「입주청소」) 오로지 혼자서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 아닌데도 자주 외로운 순간을 발견하게 된다. “깍지를 꼈는데도 혼자”(「유령과 함께 춤을」)이고 가만히 앉아 내 이야기를 들려줄 누군가를 기다리기만 하기도 한다.(「죽음 일지」) 그럼에도 “나는 누구의 것도 아니고/누구도 나의 것이 아니”(「유리창 너머」)라고 느끼는 만큼 고독이나 외로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생활의 자연스러운 일부이다. 자신과 부딪친 사람을 향해 “저기요,/한순간이나마 우린 겹쳐졌어요”(「고시원」)라고 건네는 말은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것을 알아차리는 데에서 무언가가 시작될 수 있을 것도 같다.

가정과, 사회와, 세계와 불화하며 존재하는 현대인들이 나 자신과 불화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그것은 세계의 규칙이 개인에게 옮아온 것이기도 하다. “네가 대학생 때 처음으로 대출을 받은 돈에 대한/이자를 갚는 건 내리는 눈을 끝없이 치우는 것 같기도” 하다고 쓰거나 “생활이 장기연체 중”(「유리창 너머」)이라고 쓸 때, 무언가가 유예되어 있다고 느끼고 “진짜 내가 아니라 나의 껍질”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면서 “껍질한테서 나에게로 점점 가까워지는 질문을”(「Below Zero」) 떠올려볼 때, 주체적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나’와 ‘너’, ‘우리’가 갖는 곤란과 곤경들은 오직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평면에서 입체로 나아가려면 나만큼의
내가 필요하다”

도저히 깨부술 수 없을 것 같은 견고한 규칙을 가지고 있는 세계를 한지산 시인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묘해보면서, 자신만의 입체를 만들어나가는 것 같기도 하다. “영원한 사랑” 같은 게 가능할지는 알 수 없고, 지금은 이루어진 것들이 끝에 가서는 또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지도 짐작할 수 없지만 원하는 결말이 펼쳐질 가능성을 탐색해보면서 시인은 자신이 “아는 만큼만 말하기로”(「 ( )에게」) 한 것 같다. 한지산 시인이 기록하는 “슬프고 가끔/엉뚱하고 간혹 사랑”스러운 이야기들은 같은 시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각자의 생활과 관계를 탐색해보게 한다.

『유령, 도둑, 사랑』의 수록작 중 20편은 서린(Lynn Suh) 번역가의 영역을 통해 영문판 『A Ghost, a Thief, and Love』로도 출간된다.

추천평

결말을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알아야 할 유일한 명제는 결말을 알 수 없다는 것, 얻어야 할 통찰은 삶이 결말을 맞추는 게임일 수 없다는 것이다. 진짜 중요한 가치는 모르는 채 선택하는 매 순간, 거기에서 파생되는 조각들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집중하는 데 있다. 『유령, 도둑, 사랑』이 그렇게 증언한다 - 허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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