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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큰 바위 얼굴 | 김도연 외로울 때면 책을 읽었다 | 고영직 I ‘can’ live with or without you | 유이월 내 인생에서 책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 강명효 12월의 어느 우중충한 아침에 책의 증식에 대한 단상 | 류동현 보들레르의 『악의 꽃』 | 윤혜준 나의 동반서, 『한어대사전』 | 김영문 『옥루몽』에 얽힌 사연 | 김풍기 “나는 책 덕후로소이다” | 권성욱 레이먼드 챈들러와 나 | 김효정 전집과 박스 세트를 소유하라. 인생이 달라질 것이다. | 오동진 나는 왜 그토록 책에 매혹되었을까? | 장석주 우아한 판타스틱 북월드 | 강창래 빌린 책의 흔적들 | 이라영 2부 책을 지키는 사람 | 강건모 책과 함께, 보통의 날들 | 주순진 단팥빵 | 현택훈 책을 만들던 모든 순간이 골든에이지 | 김경민 책을 읽는 사람들 | 조한욱 따끔거림, 또는 우리가 서로에게 전해야 할 진실에 관하여 | 홍정인 편집자와 번역자 | 정영목 세상에 남긴 단 한 권의 책 | 이홍 책이 만든 어떤 운명의 표정 | 권성우 우리 누가 먼저 내나 내기합시다 | 박지혜 여기 없는 사람 | 오경철 사전 먹는 사람에서 머리 없는 사람으로 | 故 고원효 3부 읽기 위해 살다 | 장은수 기록 매체의 변천사로 본 책의 역사 | 서미석 책과 국기에 대한 단상 | 한성윤 책 읽기는 김매기다 | 황규관 최초의 조선 여성, 향란을 담다(1886) | 이상엽 책, 시간 속으로 흩어질 것을 거두어들이는 힘 | 송기호 책, 도(道), 똥, 사변적 감응 | 박준영 당신은 무엇을 읽습니까 | 곽경훈 시니어 독서에 주목하라 | 김경집 나의 책,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 유성호 탐서와 열독 그리고 루쉰과 만유 | 노승현 나의 서(書) 읽기 | 윤성훈 책의 무게 | 박찬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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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 지도는 고향집 뒤편 부모님의 밭 사진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아직 파종하기 전인 가지런한 밭고랑은 누가 보아도 거대한 원고지였다. 그러니까 부모님은 그 원고지 위에 매년 새로운 이야기를 심고 가꾸셨던 것이다. 거의 평생 동안.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문학 공부를 했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는 걸 깨닫자 비로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당신들이 바로 나의 큰 바위 얼굴이었다.
--- p.14 몸으로 느리게 작업하는 일을 하게 되면서 책이 내게 무엇이었는지가 명확해졌다. 급하게 속도를 낸 독서는, 아니 독서가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급하게 속도를 냈던 것은 내 것이 되지 못한 채 연기처럼 내 손에서 빠져 날아가버렸다. 그건 그저 탐닉이었을 뿐, 사랑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또 이내 깨닫는다. 사랑에 이끌려 잡았던 손을 수십 년 놓지 않을 수 있게 해준 힘이 책에서 나왔다는 것을. 사랑하는 이와 길 끝까지 손을 놓지 않고 함께 걸어갈 힘을 책 읽기에서 얻었다는 것을 말이다. --- pp.32~33 다시 인천으로 돌아오는 날, 포로처럼 묶인 『한어대사전』을 카트에 싣고 세관을 나오는데 직원이 수상쩍은 눈초리로 훑어보다가 물었다. “이게 뭡니까?” “책인데요.” “똑같은 책을 왜 이렇게 많이 샀어요?” “네? 똑같다니요?” “제목이 다 똑같잖아요? 장사하시는 거예요?” 이런 제길~ “거참! 자세히 보세요. 사전인데 한 질이 열세 권이잖아요!” 하긴 뭐 당시 인천항 국제여객선터미널엔 99%가 보따리장수였으니 세관 직원들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책 보따리장수는 첨 봤으니 이상하기도 했겠다! --- pp.50~51 세창서관에 찾아가서 샀던 그 『옥루몽』은 지금도 내 서가에 꽂혀 있다. 이 책에는 어릴 적 연필로 낙서한 흔적이며, 내가 세창서관에서 샀다고 메모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이후에도 헌책방에서 귀한 책을 구했던 감격스러운 순간을 수차례 맞이했지만, 역시 『옥루몽』을 구했던 세창서관 안 어둑한 공간에서의 감격은 어제처럼 생생하다. 그 책은 여전히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만 그때의 어린 학생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옥루몽』을 가슴에 품은 초로의 연구자가 그 책을 바라보고 있다. --- pp.59~60 이해하기 어려운 암호 같은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다. 이 이상한 메모들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책장을 넘길수록 암호 같은 낙서가 사라지고 그의 밑줄도 점점 사라졌다. 뒤로 갈수록 그가 책을 읽은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이 책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문득 궁금해진다. 15년 전 내게 『제2의 성』을 빌려 읽었던 친구는 내가 책의 본문 앞에 길게 적어놓은 글을 읽었을까. 약 10년의 시차를 두고 두 차례에 걸쳐 적은 글이 있다. 지금 다시 그 글을 보면 내 생각이 다소 변했다는 걸 알 수 있다. 20대, 30대 그리고 40대의 내 생각은 꾸준히 변해왔다. 친구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발 안 읽었길 바랄 뿐이다. --- p.109 따지고 보면 책은 B의 이야기다. 세상에 대한 따뜻한 마음 없이 어떻게 글을 쓰겠는가. 따뜻한 책이다. 그래서 교유당의 신정민 대표는 책을 빵이라고 하나보다. 따뜻한 빵이 오늘도 출판사에서 맛있게 구워진다. 그러면 나는 단팥빵 같은 달고 든든한 책을 내기 위해 오늘도 적당히 부풀어오를 것이다. --- p.133 우리에게는 진실에 대한 감각이 있고, 이 감각은 당연히 우리가 글을 읽을 때도 그것을 다른 언어로 떠올려볼 때도 변함없이 작동한다. 우리가 글을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관련 자료를 찾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진실에 대한 감각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어긋남도 이 감각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어긋남은 마주침 속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애초에 우리를 그 마주침으로 밀어넣는 것은 진실에 대한 감각이니 말이다. --- pp.148~149 돌이켜보니 2015년 도쿄경제대학 방문학자 시절이야말로 그 이후 『화산도』와의 뜨거운 만남을 가능케 한 원체험이지 싶다. 그 이후 지금에 이르는 10년 가까운 세월은 무엇보다 『화산도』를 이해하고 탐구하기 위한 도정이었다. 한마디로 나는 『화산도』에 푹 빠져 지냈다. 내가 사랑하는 작품에 대한 자발적인 공부야말로 어떤 놀이 이상의 행복한 체험이 아닌가.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 계속 『화산도』에 대해 공부하고 『화산도』에 대한 글을 매만지고 싶다. 이야말로 한 권의 책(작품)이 만든 운명이 아니겠는가. --- p.169 나는 걸음을 멈추고 동생에게 물었다. “그런데 조르주 페렉은 어떤 사람이야?” 동생은 소리 내 웃었다. “여기 없는 사람.” 페렉은 파리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죽었다. 바로 이곳. “그럼 페렉은 어디 있어?” 동생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페르 라셰즈.” --- p.183 옛날 옛적 사람들은 사전을 먹기도 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내 눈으로 직접 그런 부류를 목격한 적은 없지만, 아버지의 증언에 따르면 그렇다. 그분께선 오래전 나이 어린 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 영어 공부 열심히 해라. 예전에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콘사이스 사전』을 하루에 한 장씩 통째로 다 암기하고 그걸 뜯어서 자근자근 씹어 삼키는 친구도 있었다. 영어는 아주 잘했다.” 나는 아주 당황했다. 이게 무슨 소린가. 무슨 허기가 졌기에 사전을 먹어? 그것도 하루에 한 장씩? 어떻게 사전을 모조리 외우고 그걸 꼴딱 삼키기까지 한단 말인가. 이 무슨 해괴한 짓인가. --- p.185 편집자에서 물러나 삶을 다시 쓰기로 한 이후, 지금까지 난 하루도 책을 읽지 않은 적이 없다. 덕분에 삶의 행복도가 올라갔다. 물론, 때로 책을 만들고 자주 글도 쓴다. 그러나 주로 읽어서, 읽으려고, 읽는 일을 한 차례 더 하려고 그 일을 한다. 이렇게 죽는 날까지 읽으면서 살고 싶다. 그러면 벌레들에게 던져질 인생 위 묘비명에 “읽기 위해 살다” 한 줄이 새겨지지 않을까. --- p.206 결국 우리는 모든 텍스트가 역사적인 산물이며, 그만큼 텍스트의 속살과 맥락과 구성까지 면밀히 들여다봐야 할 이유를 알게 된다. 윤동주만이 누리고 있는 기억 전승의 특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집 또한 역사적 변형을 많이 치른 텍스트임을 강조하고자 할 따름이다. 그 역사성의 한복판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세 권이 험난한 역사를 증언하면서 가파르게 놓여 있다. --- p.274 2003년 겨울을 잊지 못한다. 그때 나는 매일같이 『맹자』를 마주하고 있었다. 한문을 배우기 위해 들어간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는 1학년 과정의 마무리로 『맹자』의 배송(背誦, 책을 보지 않고 소리 내어 외어 읽음)을 요구했다. 책을 다 외기 위해선 꼼짝없이 방에 틀어박혀 하루에도 몇 번이고 반복하여 읽어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시험을 통과하기에 급급했던 당시는 한 문장 한 문장 따라가기 바빠 정작 맹자가 한 말의 속뜻을 새겨볼 여유 따윈 없었다. 하지만 그 덕에 『맹자』가 내 생각의 힘줄과 근육 속 깊은 곳에 자리잡게 되었음은 틀림없다. 번역이건 글쓰기건 연구건 이후에 조금이라도 긴 호흡이 필요한 작업을 위해 발휘했던 내 지적 지구력의 한 자락엔 오래전 전국시대를 살다 간 저 위대한 사상가의 말들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있다. --- pp.284~2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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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밑줄을 긋는 마음으로
읽고 쓰고 옮기다 어린 시절에 읽거나 힘든 시기에 읽어 중요한, 지금 서가를 가득 채운, 어쩌면 훗날 어딘가에서 읽을지도 모르는 책. 책과 관련한 상념과 이야기가 『판타스틱 북월드』에 담겼다. 빌린 책에 남겨진 흔적을 이야기하는 사람, 그토록 원하던 책을 해외에서 발견한 사람, 문화와 역사가 전혀 다른 누군가의 글을 옮기며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 책을 읽다가 문득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궤적을 되돌아보는 사람이 있다. 이 책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책 만드는 일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상품인 책을 만들기 이전에 그들은 모두 독자다. 이 책은 독서를 즐겨온 사람으로서 책을 만든 사람들의 산문을 실었다. 자연스레 그 글에는 사랑이 담겨 있다. 묽고 진한 정도는 각자 다르지만 그 사랑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글에서 배어나온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책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거나 앞으로 달라질 수도 있지만 책을 읽는 기억은 어떤 형태로든 그들에게 남았다. 하루에도 수시로 뒤바뀌는 마음을 반영하는 표정처럼 그 기억은 기쁨이면서 슬픔이다. 그들은 그 기억을 간직하며 글을 읽고 쓰고 옮기고 있다. 책으로 지어진 세상에서 서로를 읽는 사람들 이 책에 담긴 산문들은 각자의 기억을 이야기하기에 내밀하고, 타인이 말할 수 없는 것을 직접 말하기에 고유하다. 특별하고 중요한 경험과 생각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자전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순서대로 읽든 무작위로 읽든 결국 머릿속에서 독특한 세상이 만들어진다. 짧은 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건 삶의 편린이지만 그 조각들이 모인다면 하나의 세계가 될 수 있다. 그 세상은 책으로 만들어졌다. 독서는 고립되거나 자기 내면세계에 몰두하는 행위일 수 있다. 그것은 단점이 아니며 독서의 성격일 뿐이다. 하지만 혼자만의 독서가 때로는 소통 통로가 되기도 한다. 그 길을 누군가는 앞날에 대한 걱정이나 기대감으로 채우고, 누군가는 타인에 대한 기억으로 메우고, 누군가는 순전한 즐거움으로 장식한다. 이 책은 그 알록달록한 소통에 관여하는, 책으로 서로를 읽는 사람들에 주목한다. ※ 교유서가는 2014년 3월 문학동네출판그룹의 임프린트로 시작하였습니다. 거리의 역사학자 故 이이화 선생께서 조선 중기의 학자 허균의 호 교산(蛟山)에서 ‘蛟’를,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의 당호 여유당(與猶堂)에서 ‘猶’를 집자하여 브랜드명을 지어주셨습니다. 교유서가는 〈마스터스 오브 로마〉, 〈교유서가 첫단추〉, 〈교유서가 어제의책〉, 〈교유서가 다시, 소설〉 시리즈 등과 문사철(文史哲) 분야의 인문교양도서를 꾸준히 펴내고 있습니다. 2019년 6월에 ‘서로 사귀어 놀며 오가는 집’이라는 뜻의 교유당(交遊堂)이라는 법인으로 전환하였으며, 에세이 및 환경·종교 분야의 ‘싱긋’, 영유아 분야의 ‘꼬마싱긋’, 경영과 자기계발 분야의 ‘아템포’라는 출판브랜드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