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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머쿠슬낭에 흰 꽃이 하올하올
고망 갯것이 귀창 그듸 꿩코 낭 내낭 내창 담상꾼 동골레기 두리다 말장시 모살 몸국 물마중 물ㅁㆍ르 물애기 멩글다 2부 우정은 귤과 복숭아를 서로 주고받는 일 버렝이 번구름 볼레낭 부름씨 베릿내 벨 벨롱벨롱 사름 산남 산물 1 산물 2 산전 산탈 살레 서툰바치 셋하르방 속다 수눌음 숭털다 신사라 3부 새는 구름을 종가 날아간다 아이모른눈 언치냑 우영팟 예점 웨방 일흠 저슬 조촘앉다 종그다 죽어지는 세 ㅈㆍㄴ셈 재열 질 4부 시간의 조난자들은 서귀포 바당에 천지벡갈 천리 청 치메깍 칭원ㅎㆍ다 켄 쿰다 ㅋㆍㄹㅋㆍㄹㅎㆍ다 툴ㅎㆍ다 튼나다 팡돌 헤치 ㅎㆍ민 부록 제주어 활용 문장 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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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때 문학부에 가입했다. 문학부 이름은 ‘창(窓)’. 수요일마다 한 교실에 모였다. 수요일 오후에 진행된 특활 시간이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한 걸음 물러서 있고 학생들이 주도해 토론을 벌이곤 했다. 책에 대한 얘기도 나누고, 문집 준비도 하였다. 억압적인 학교생활 속에서 그나마 수요일 오후의 특별 활동 시간에는 자율이 어느 정도 보장되었다.
나는 선배를 따라 어영부영하는 후배였으나 속으로는 문학적 자세를 취하는 선배들을 흠모하고 있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데, 그때는 졸업생이 그 시간에 맞춰 교실에 찾아오기도 했다. 대학생이 된 선배 몇 명이 교실에 들어왔다.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었다. 우수에 찬 얼굴의 한 선배는 야상을 입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치기스러운 행동과 말인데, 그때는 멋있어 보였다. 선배는 자기소개를 짧게 하더니 칠판에 이렇게 적었다. “있다. 글을 써라.” 그 말은 어떤 선언 같았고, 그 시대에 필요한 아포리즘 같았고, 선험적이기까지 했다. 그 말을 쓴 채 더는 말이 없었다. 또 다른 남자 선배는 우리에게 영화 한 편을 권했다. 그 영화의 제목은 [죽은 시인의 사회](피터 위어, 1990)였다. 우리가 읽는 시의 시인들은 모두 죽었다며 침 튀기며 영화와 문학에 대해서 말했다. 여자 선배는 우리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굳이 노래 한 곡을 하겠다며 나섰다. 그 노래는 변진섭의 노래 [너에게로 또다시] 다. “너에게로 또다시 돌아오기까지가 왜 이리 힘들었을까 이제 나는 알았어 내가 죽는 날까지 널 떠날 수 없다는 걸” 주먹을 불끈 쥐고 열창했다. 나는 그늘이 가득한 얼굴로 창밖을 보던 선배도 아니고, 영화 얘기를 하면서 우리에게 감수성을 말하던 선배도 아니고, 목에 핏줄을 세우던 선배의 노래가 마음으로 들어왔다.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돌아오기까지 힘들었다는 그 노래는 졸업생의 마음으로 다가왔고, 나의 미래를 보는 듯했다. 언젠가는 그리워할 그 시간을. --- pp.21-22 「귀창」 중에서 나는 동네 형들과 여우동산 부근 풀숲에 꿩코를 놓았다. 낚싯 줄이나 철사를 동글게 말고 그 안으로 또 다른 한쪽을 집어넣어 둥글게 만든다. 꿩이 다니는 길목에 놓아 두면 꿩이 지나가다 목이 걸린다. 화들짝 놀란 꿩은 대가리를 주억거리고, 그러면 줄이 꿩의 목을 조른다. 꿩코를 세는 단위는 호라고 하는데, 많게는 백 호 넘게 놓는다. 다른 사람의 꿩코를 훔치는 사람도 있었다. 형과 나는 꿩코를 놓고 며칠 뒤 그 자리에 가 봤지만 늘 허탕이었다. 고등학생 동네 형들이 꿩을 잡았다는 말을 듣고, 내심 기대했으나 뱀이라도 안 마주치면 다행이었다. 내가 굴룬걸음(헛걸음)이라고 붕당붕당(혼자서 투덜대는 모양) 입바위(입술)를 비죽이면 형이 어느새 졸겡이(으름)를 따 내게 내밀었다. 우리는 그 하얗고 부드러운 졸겡이를 바나나라 부르며 좋아했다. (중략) 제주의 중산간 마을 인근 길을 가다 보면 먼 곳에서 타운 하우스들을 쉬이 마주치게 된다. 그래도 여전히 봄이면 산벚나무꽃 사이를 날아오르는 꿩을 볼 수 있다. 어릴 적 우리가 만든 꿩코에 꿩은 걸리지 않고 햇빛만 걸린 적이 많았다. 우리는 그 햇빛 속에서 자랐다. --- pp.28-29 「꿩코」 중에서 제주의 작가들은 자신의 고향 마을이나 사는 마을과 가까운 4·3 유적지를 더 자세히 찾아보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장소의 의미를 상기하면서 재발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안나 시인은 자신의 집 근처에 있는 박성내를 노래했고, 가시리에 사는 조부·조모를 잃은 오광석 시인은 가시리를 노래했다. 내 고향 마을에서 가까운 바다가 곤을동이고, 나는 그 잃어버린 마을을 노래했다. 제주 시인들의 4·3 시에 나오는 장소를 꼽아 보면 4·3 지도가 완성될 것이다. 내창 주위로 마을이 형성 되고 건천에는 이야기가 흐른다. --- p.42 「내창」 중에서 나는 말을 잘 못하는데, 의외로 지역 라디오 방송에 패널로 여러 번 참여했다. 한번은 내가 그 라디오 PD에게 물었다. 말몰레기인 나를 패널로 쓰는 까닭이 무엇인지.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시인이잖아요.” 시인이 되면 좋은 점이 있다. 옷을 좀 지저분하거나 남루하게 입어도 시인이니까, 하며 봐준다. 지각을 하거나 계산을 잘 못해도 시인이니까 그런 거라 여긴다. 말장시는 말을 잘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만, 제주에서는 이 말을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로 말한다. 말은 잘 못해도 오몽헌(몸을 움직여 일하는) 사름(사람)을 더 높이 산다. --- pp.50-51 「말장시」 중에서 장애인주간활동센터에서 시 수업을 한 적 있다. 수강생들은 모두 휠체어가 있어야 이동이 가능한 뇌병변 장애인들이다. 시를 모아 책을 냈고, 소극장을 빌려 출판 기념회를 열었다. 싸락눈 내린 날이었다. 막이 오르자 빛이 호흡 따라 흔들리는 것 같았다. (중략) 그 시 수업이 속한 프로그램 제목에 ‘서툰바치’라는 말이 들어 있었다. ‘바치’나 ‘와치’는 앞말에 붙어 ‘그러한 특성을 가진 사람’ 혹은 ‘그러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사농바치는 사냥하는 사람이고, 동냥바치는 구걸하는 사람이다. 노래와치는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고, 바농질와치는 바느질을 잘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서툰바치이지만 그래서 가능성이 풍부한 사람들이다. 출판 기념회에서 소감을 말하면서 나는 시 모음집에 참여한 사람들을 가리켜 이제 경쟁자가 더 늘었다고 했다. 사람들이 비지그랑이(방긋) 웃었다. --- pp.130-131 「서툰바치」 중에서 아이모른눈이 내린 다음에 내딛는 첫 발자국. 그것은 달에 첫 발을 내딛었다는 닐 암스트롱의 마음과 비슷하리라. 마당이 곧 미지의 달이 된다. 제주도에서 아이를 지칭할 때는 이렇게 부른다. 그 아이는 가이, 저 아이는 자이, 이 아이는 야이. 그래서 “저 아이 좀 보렴.”을 제주에서는 “자이 보라.”라고 말하는데, 이 말에는 “저 아이 저렇게 당당하게 잘하고 있다”는 뜻도 들어 있다. 아이라고 해서 약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이처럼 꿋꿋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 pp.150-151 「아이모른눈」 중에서 제주어 ‘깍’은 ‘끄트머리’를 뜻하는 말이다. 서귀포시 효돈천 하류와 바다가 만나는 지점을 ‘쇠소깍’이라 한다. ‘쇠’는 ‘효돈마을’, ‘소’는 ‘못’, ‘깍’은 접미사로 ‘끝(끄트머리)’을 의미한다. ‘치맛자락’을 ‘치메깍’이라는 말하는 것은 절묘하다. 치마의 끝이 치맛자락이기 때문이다. ‘눈초리’는 ‘눈깍’이다. 몹시 고단하여 눈이 퀭한 것을 ‘눈깍 돌라지다’라고 말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ㅂㆍ름머리’이고, ‘바람이 불어 나아가는 쪽’은 ‘ㅂㆍ름깍’이다. 바람이 잘 부는 곳을 ‘ㅂㆍ름코지’라 하는데, ‘코지’는 ‘도드라져 튀어나온 곳’을 뜻한다. 내가 두린 때(나이가 어리고 생각이 모자란 시기) 나는 너무 몰명져(미련하여 야무지게 제 할 일을 하지 못해) 엄마 치메깍 뒤에 숨곤 했다. 친척들이 집에 오면 부치럼(부끄러움) 많은 지집아이(계집아이)추룩(처럼) 굴었다. --- p.193 「치메깍」 중에서 ‘켄’은 가능성이 있을 때 쓰는 말이다. 할 수 있다는 뜻이라 영어의 ‘Can’과 발음이 비슷해 흥미롭다. 물론 우연이겠지. “경ㅎㆍ켄”은 “그렇게 하겠다고”, “가켄”은 “가겠다고”, “골으켄”은 “말하겠다고”이다. 제주어 중에는 이국적인 느낌이 나는 말이 많이 있다. “반하크라”는 러시아어 같은데 “반하겠네”라는 뜻이고, “목마르카브덴”은 프랑스어 같은데 “목마를까 봐서”라는 뜻이다. ‘켄’과 ‘Can’은 발음만이 아니라 뜻도 같다. ‘켄’이라는 말에는 의지가 들어 있어서 좋다. --- p.199 「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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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제주어 마음사전1』이 나온 지 7년 만에 두 번째로 마음사전을 다시 묶는다. 솔직히 많이 망설였다. 큰 인기를 끈 책도 아닌데, 후속편이 나와도 될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1을 읽지 않은 사람이 2를 읽을까. 차라리 마음사전이라는 제목 대신 다른 책 제목으로 해야 맞지 않을까. 그런데 1에 실은 제주어 낱말이 예순 개 남짓이다. 제주어는 아주 많으니까 이왕에 사전 형식을 취했으니 많은 독자가 없더라도 2, 3, 4, 5……. 꾸준히 내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이 책 덕분에 나는 과분한 대접을 받았다. 제주대학교에서 제주어 사전 관련 전시회를 한 적 있는데, 이 책이 목록에 있었다. 어느 도서관에는 이 책이 문학이 아니라 사전류 코너에 비치되어 있다. 그리고 초등학교에서 제주어 동시 교실 강사로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제주도가 고향이면서 제주어를 잘 모르는 게 부치로와(부끄러워) 시작한 창작 노트였는데, 여기까지 왔다. 제주어 사전을 펼쳐 낱말을 보다 보면 기억이 떠오른다. 또 아주 생소한 낱말을 만나면 그 낱말이 담긴 의미를 종그는(좇아가는) 과정이 행복하다. 시인은 언어 탐구자이기에 내 몸, 내 마음 어느 한 부분에 전해 오는 제주의 옛이야기를 할 때야 말로 언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나의 아내 김신숙 시인은 귀신보다 글자가 무서운 것이라며, 글자의 효험을 강조했다. 여덟 살 새록은 내게 언어의 신비로움을 선사해 준다. 이 책을 준비하는 막바지에 봉아름작은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제주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나의 제주어 선생님 김세홍 시인과 나의 문장 선생님 김지희 소설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특히 이 책 이곳저곳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다. 부족한 글을 묶어 책으로 빚어 준 걷는사람은 복 받을 것이다. 못난 글을 그림으로 윤색해 준 박들 화가와 삼달 센트럴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싶다. 신숙아, 고치 글라(같이 가자). 새록아, 몽케지 말앙(뭉그적거리지 말고) 재기 가게(얼른 가자). 앞으로도 먼물질을 나가는 마음으로 제주 바당에서 제주어를 캘 작정이다. 2025년 제주시 에이바우트 중앙여고점에서 현택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