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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껌을 씹으면
박선혜박들 그림
쉬는시간 2026.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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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2

낮은 곳에서 바라본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대학에서 글쓰기를 배우고, 졸업 후에는 아이들이 그림책 만드는 작업을 도와주었습니다. 지금은 모든 아이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제10회 브런치북 특별상, 제11회 한낙원 과학소설상 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지은 이야기로 동화 『방구방구 탐정단』, 「언니를 빌리시겠습니까?」, 「요술 떡을 먹은 호랑이」가 있으며, 청소년 소설로는 『아가미에 손을 넣으면』에 「몽유」를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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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꽃 피고 바람 좋은 제주도에 내려와서 멍멍이와 냥냥이와 버렝이와 검질과 함께 지냅니다. 그림과 생태적 삶으로 만든 뫼비우스 띠 안에서 도는 중입니다. 아직 육지 것의 눈으로 보는 제주 풍경을 게으르게 그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린 책으로 『제주어 마음사전』 『열두 살 해녀』 『두점박이사슴벌레 집에 가면』 『제주어 마음사전2』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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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1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92쪽 | 130g | 130*175*6mm
ISBN13
9791199541665

책 속으로

“여기 이야기 좀 줘요.”
마침 이야기 장수는 선우네 집 앞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나긋하게 이야기 장수를 불러 세웠어요.
이야기 장수는 선우 동네의 명물입니다.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파는 장수는 이번 봄에 갑자기 나타나 짧은 기간에 아이들의 스타가 되었습니다.
--- pp.8-9

옹기종기 모인 아이들 앞에서 이야기 장수는 껌을 입 속으로 쏘옥 넣었습니다. 이야기 장수의 단단한 이가 파란색 껌을 으깼어요. 껌에서 달달한 즙이 흘러나왔죠. 장수는 입 안에서 껌을 잘근잘근 씹어 물렁하게 하고선 헛기침을 큼, 큼 했습니다.
드디어,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 pp.11-12

선우의 마음속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어쩐지 다른 사람 앞에 서면 입이 잘 열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느껴지면 아이들의 얼굴이 물속에 잠긴 것처럼 울렁거렸습니다. 어쩌다 입이 열려도 더듬거려 놀림거리가 되고 말았지요. 선우는 학교에서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 p.23

“다음 시간에는 한 명씩 나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우리 모두에게 들려주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
선생님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고 와서 다른 친구들에게 말해 주면 된다고 했습니다. 읽었던 책을 소개해 주거나 가족을 소개해도 되고, 이야기를 지어내도 좋다고 했지요.
선우는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자신이 없었어요.
--- pp.38-39

“아니야. 이중에 선우가 제일 친구들 말 잘 들어 주잖아. 그래서 그런 거 아닐까?”
선우는 깜짝 놀랐습니다. 하영이가 자신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는 줄 몰랐거든요.
사실 선우는 하영이 말처럼 정말로 이야기를 잘 들어 주었습니다. 다만, 대답을 잘 못해서 대화로 이어지지 않을 뿐이었어요. 그래서 선우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듣고 있는지 모를 거라고 생각했죠.
선우는 자신의 장점을 알아준 하영이에게 고마웠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고맙다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웠습니다.
“맞아. 선우라고 했나? 저 애가 이야기를 들을 때 눈빛이 가장 반짝반짝하고 귀가 확 열려 있더라고. 아주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을 것 같았어.”
이야기 장수가 선우를 향해 엄지를 들어 보였습니다. 선우의 볼이 발그레해졌습니다. 선우가 이렇게 좋은 일로 주목을 받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 pp.47-50

“이야기 장수가 이야기 들려주기 전에 껌을 씹는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겠지? 사실 그 껌이 바로 마법의 껌이래. 껌을 씹으면 이야기가 저절로 술술 흘러나온대.”
아이들은 엄청난 비밀에 놀라워했습니다.
--- pp.57-58

“이야기를 해 줄 마음이 생겼니?”
“이, 이야기가 어, 없는데….”
선우는 소파를 물어뜯다 걸린 강아지처럼 눈치를 보았습니다.
“없다니. 그럴 리 없어.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는 법이지.”

--- p.64

출판사 리뷰

이 작품의 주인공 선우는 말수가 적은 아이다. 교실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이야기를 듣는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집중한다. 이 아이에게 이야기는 말로 잘 풀어내는 대상이 아니라, 마음속에 오래 머물며 천천히 자라는 것이다. 작가는 선우의 시선을 따라가며, ‘말을 잘하는 것’과 ‘이야기를 잘 품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드러낸다.

이야기는 판타지적인 설정을 품고 있지만, 다루는 감정은 매우 현실적이다. 발표 시간의 긴장, 친구들 앞에서 말을 꺼내는 두려움, 자신은 늘 뒤에 있는 것 같다는 느낌 등 초등 고학년 아이들이 일상에서 자주 마주하는 마음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그래서 독자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특별한 교훈을 배우기보다,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이야기 껌을 씹으면』은 이야기를 잘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동화가 아니다. 대신, 이야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순간에 주목한다. 이야기는 꼭 크게 말하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들려주지 않아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점을 이야기 속에서 차분히 보여 준다. 또한, 잘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능력인지, 그리고 그 능력이 관계를 어떻게 바꾸는지도 섬세하게 그려 낸다.

이 동화는 아이들에게 묻는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어떻게 듣고 있는지.
『이야기 껌을 씹으면』은 말이 많은 아이에게는 잠시 멈춰 귀 기울이는 시간을, 말이 적은 아이에게는 이미 충분히 괜찮다는 마음을 건네는 작품이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모든 아이들에게, 그리고 아이의 말을 기다리는 어른들에게 조용히 다가가는 동화다.

[ 작가의 말]

지난 6월, 이사를 했어요. 이사를 할 때가 되어서야 새삼 드러나는 것들이 있어요. 손이 닿지 않는 구석의 먼지, 침대 아래 숨어 있던 떨어진 단추, 2년 동안 한 번도 쓰지 않은 물감과 스케치북 그리고 나도 모르게 차곡차곡 쌓여 간 이야기들.

제가 모은 이야기들은 주로 책에 담겨 있어요. 땀을 뻘뻘 흘리며 책을 정리할 때면 얇은 종이가 사실은 무거운 나무였다는 당연한 사실이 실감이 나요. 그럼 저는 ‘당분간 책은 사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죠. 하지만 결국 새집 근처에서 서점을 찾으며 또 다른 이야기를 탐색하고 있답니다.

그 수많은 이야기들이 저를 작가로 이끌었어요. 작가가 되기 전에는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가 대단해 보였는데, 막상 책을 내고 나니 정말 대단한 건 독자였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작가가 만든 하나의 세상 속에서 독자들이 스스로 자기만의 의미를 찾아 나가고, 어느새 이야기는 독자의 수만큼 넓어져 있어요. 언젠가 제 이야기도 여기저기서 커다랗게 부풀고 있을까요?
이 이야기는 제가 처음으로 썼던 동화예요. 한 권의 책으로 나오기까지 기꺼이 독자가 되어 주었던 모든 분들, 그리고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여전히 부끄러운 글이지만, 여러분의 마음속에 알록달록한 단물로 스며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새콤달콤하고 때론 짭짤, 씁쓸하기도 한
이야기 껌을 씹으며
박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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