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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여행 : 불투명한 현재 속에서도 서로의 체온을 나누다 윤채의 이야기 지은의 이야기 2. 취미 : 나를 구원하는 건 나야! 얼굴 피자, 인생 피자!! 지은의 이야기 윤채의 이야기 3. 연애와 결혼 : 기울어진 시소를 거부할 권리 윤채의 이야기 지은의 이야기 4. 고향 : 고향은 타향 같고 타향도 먼 우주 같은 우리들 지은의 이야기 윤채의 이야기 5. 여성 :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반기를 들자 윤채의 이야기 지은의 이야기 6. 부모님 세대 : 가족, 어쩌면 나의 가장 친밀한 가해자 지은의 이야기 윤채의 이야기 7. 주거 : 서울을 유랑하는 히치하이커 윤채의 이야기 지은의 이야기 8. 밥벌이 : 글 쓰는 게 꿈인 너, 밥은 먹고 다니냐? 지은의 이야기 윤채의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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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생의 누군가를 만나면 전쟁터에서 만난 동지 같다. 무한 경쟁 시스템만으로도 버거운데 우리는 경쟁자까지 많아서 무엇 하나 쉽지 않았다. 인생 첫 수능은 역대 전무후무한 응시생 수를 기록했고 취업, 국가고시 경쟁률은 높아지기만 했다. 그야말로 바늘구멍에 코끼리 넣기. 겨우 한자리 얻고 나서 보면 위에는 여전히 어른들이 자리를 꿰차고 있는데, 그들의 삶도 썩 안정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pp.9~10 「여행 : 윤채의 이야기」중에서 타인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건 나를 상처투성이로 만드는 일이다. 하지만, 상처를 받아도 다시 또 웃고 행복해지는 것의 연속이다. 상처와 행복이 공존하면서도 연속되는 이 굴레 속에서, 나는 오늘도 T1 덕질을 한다. 페이커 덕후를 자청한다. 그 이유는… 뭐랄까, 지치고 힘든 일상을 달래 주는 나만의 도파민이랄까. 가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다 놓고 싶을 때가 있는데 페이커를 생각하면 그래, 페이커도 그동안 많은 것을 이겨내 왔고 극복했는데 페이커 팬인 내가 이렇게 주저앉으면 안 되지, 라는 결의가 생긴다. 그리고 다시 으쌰, 하고 일어나게 된다. ---pp.42~43 「취미 : 지은의 이야기」중에서 나는 매년 겨울이 되면 불가항력적으로 우울을 느낀다. 이룬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한 해가 저무는 게 믿기지 않아서 그렇다. 분명 나는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데 왜 나는 나로 인해 고통받지? 나는 과거의 나를 곱씹으며 후회하고 미래의 나를 구상하며 공허해한다. 그렇다고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를 위해 태도를 바꾸진 않는다. 그렇게까지 정열적으로 살고 싶진 않나 보다. 생각도 많고, 공상도 깊으면서 사고(思考)는 뻣뻣한 사람이 바로 나. 이런 내가 책을 쓰며 ‘갓생’을 살고 있다. ---p.50 「취미 : 윤채의 이야기」중에서 그 시기 나는 ‘개오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지금도 그렇다). 30시간을 깨어 있다가 딱 하루 쉬고 출근하면서 “개오바”. 돈은 없는데 월급 날까지 한참 남았으면 또 “개오바”. 위염 때문에 병원에 다녀오면서 “개오반데”, 하다가 힘들어서 주변 사람에게 털어놓았다가 버티라는 대답이 돌아오면 “오바임”. 진짜 개오바 같은 포인트는 방송국 생활을 그만둔 지금도 이 개오바 생활이 계속되고 있다는 거다. 다시 문학에 애정을 가지고 돌아온 지금, 나는 뭐라도 닥치는 대로 해야 나중에 밥 먹고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작은 회사에 일자리를 구했고 대학원에 다니면서 논문과 내 작품을 쓰고, 또 밤을 샜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도, 이렇게 가방끈이 긴데도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했다는 허탈함은 왜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걸까. 이제는 이 감정을 동반자처럼 여기면서 살지 않으면 나의 현실과 미래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pp.61~62 「연애와 결혼 : 윤채의 이야기」중에서 단지 연애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왜 관계는 한쪽으로 기울어진 시소 같았을까? 나에게서 문제를 찾는다면… 나는 사람을 너무 좋아하니까, 연애를 할 때면 나는 나보다 연인을 더 사랑했으니까. ‘연인’이라는 딱지가 붙은 인간은 내게 프리 패스였으니. 순위를 매기자면 0순위인 거지. ---p.74 「연애와 결혼 : 지은의 이야기」중에서 나는 술자리에서 정치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정치에 관심 없다”라고 대답하곤 했다. 웃기는 태도였다. 맹목적인 고향 사람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면서, 아빠에겐 단호하게 진보라 말하겠다 대답했으면서, 정작 많은 사람들 앞에선 회색 지대에 숨어 버리곤 했다. (…중략…) 청소년기 내내 뉴스만 틀면 국회에선 싸움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말 그대로, 멱살을 잡고 무력을 행사하는 싸움판이었다. 의사봉을 두드리지 못하게 무리를 지어 회의 진행을 막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목 놓아 울고 있었다. 무서웠다. 탄핵의 뜻을 몰라서 총알과 핵을 일컫는 말인가 싶었다. ---pp.99~100 「고향 : 윤채의 이야기」중에서 현실과 미래를 향해 바라는 게 참 많은데 누구 하나 들어 줄 어른이 없는 것 같다. 여성 혐오 범죄와 사이버불링(cyberbullying)은 끝이 없고, 처벌도 여전히 미약하다. 이 사실을 언급하는 것도 무섭고……. 그렇다고 회피해 버리기엔 공허해. 직접 부딪히기엔 아프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한탄하고 슬퍼하는 수밖에 없어서 인간관계는 좁아져만 가고, 변화를 체념하는 속도는 빨라지기만 한다. 교육받은 대로 가부장적인 삶에 편승하는 건 이제 죽기보다 싫으니, 그냥 망령처럼 떠도는 수밖에. 그렇게라도 내 내면을 지켜야지. ‘원래 그런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 ---p.116 「여성 : 윤채의 이야기」중에서 나는 내 스스로를 검열했다. 화가 나고, 수치스럽고, 공포스럽고, 내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애써 외면하고 묻어 뒀다. 이야기를 꺼내면 공감은커녕 내 탓이라는 이야기가 돌아올까 봐. 나를 더럽다고 생각할까 봐. 스스로 피해자라고 생각하면 위축되니까. 내가 나를 피해자라고 칭하면 사람들이 날 큰일을 당한 사람처럼 취급할까 봐. 검열하고 또 검열했다. ---p.128 「여성 : 지은의 이야기」중에서 나도 부모를, 부모도 나를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상처받았던 게 없던 일이 되지 않는다. 내게 있어 최초의 비수는 부모였다. ---p.136 「부모님 세대 : 지은의 이야기」중에서 2022년, 미친 듯이 금리가 치솟기 시작했다. 한 달에 대출 이자 40만 원을 냈었는데, 금리가 변동되어 60만 원, 80만 원으로 올랐다. 급기야 2023년 5월에는 100만 원을 찍었다. 과장을 보태서 내 월급의 절반이 전세 대출 이자로 나가는 상황이었다. 내 급여는 제자리인데, 금리와 물가가 미친 듯이 치솟으니 한 달 서울살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돈이 순식간에 몇 배로 늘어났다. ---p.168 「주거 : 지은의 이야기」중에서 상처를 재산이라고 할 수 있다면, 나는 부자였다. 내가 가진 재산은 상처뿐이었다. 유년 시절, 성장기에 겪은 일들은 내 안의 슬픔을 키웠다. 겉으로는 명랑한 척, 밝은 척 가면을 썼지만 내 속은 우울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문학을 접하고 난 뒤, 나는 내가 가진 게 상처뿐인 게 좋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쁘고 행복할 땐 글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슬픔으로 가득 찰 때, 과거의 슬픔이 나를 툭툭 건들 때 글이 써졌다. 그렇게 나는 문학에 코가 꿰였다. ---p.180 「밥벌이 : 지은의 이야기」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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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딸을 토닥여 주기는커녕 왜 그런 걸 먹냐고 타박을 일삼던 엄마로 인해 상처 입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어쩌면 엄마도 가부장제의 피해자’였을 거라고 새삼 생각해 보는 지은. 탄핵의 뜻도 몰라서 총알과 핵을 일컫는 말인 줄 알았을 정도로 정치에 대해선 1도 모르던 시절을 지나, ‘혐오’라는 단어를 피부로 맞닥뜨리며 비로소 사회·정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윤채.
이들이 겪은 고민과 상처는 이 시대 청년이라면 한 번쯤 느껴 봤을 법한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읽는 내내 감정 이입을 하게 되고, 함께 분노하고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우린 또 알게 된다. 가장 평범한 얼굴이야말로 얼마나 어메이징한 것인지. 자신과 타인을 더는 혐오하지 않고, ‘나를 구원하는 건 나’임을 인지하며, 세상에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용기를 갖는 그 자체가 얼마나 어메이징한 사건인지를. 이를테면 이 책은 현시대 대한민국 2030세대의 표류기이자 성장담인 셈이다. ‘여행 / 취미 / 연애와 결혼 / 고향 / 여성 / 부모님 세대 / 주거 / 밥벌이’라는 8가지 키워드를 통해 안지은과 전윤채가 주고받는 이야기는, ‘표류하듯’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부여할 뿐 아니라 우리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거울이 되어 줄 것이다. 페터 바이스의 소설 『저항의 미학』에서 지배 계급에 대한 ‘저항’은 연대를 통해 가능한데, 연대는 무엇보다도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토대로 한다고 서술한다. 부모 세대와 청년 세대가 서로 겪어 보지 못한 세대를 상상할 때, 그 상상력은 이해의 토대가 되고 연대의 발판이 될 것이다. 내가 엄마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부모 세대를 이해한 것처럼. - 「부모님 세대 : 지은의 이야기」 중 정치 체념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던 때,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한 건 혐오에 맞서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혐오에 물들지 말자. 혐오에 지지 말자. 혐오를 똑바로 바라보자…. 대선의 결과는 내 뜻대로 되지 않았지만 회색 지대에 묻혔던 나의 다짐은 되찾았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 나를 마지막까지 지탱할 나의 정체성, 나는 여자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약자와 연대한다. 혐오와 마주 서기 위해. 혐오를 부추기는 이들을 가리키기 위해. - 「여성 : 윤채의 이야기」 중 작가의 말 현시대가 바다라면, 내게 밀려오는 무수히 많은 파도들이 있고 이 기록은 그 파도 위를 표류하면서 떠오른 나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이야기들이다 이야기를 풀어 나가면서 나는 표류의 마음보다는 서퍼의 마음에 가까워졌지 우린 어떻게 될까? 같이 배워 보자 2024년 12월 안지은 사는 게 팍팍한 걸 넘어 아득한 친구들, 그런 우리가 어려운 어른들에게? 비상계엄이 이 책을 검열할 뻔했지만 다행히 있는 그대로 나왔다 그러니 나의 꽃밭부터 폐허까지 찬찬히 둘러보시길 2024년 12월 전윤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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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현재를 이어 가고 있는 공간과 시간인 이곳은 폐허가 틀림없다. 소리치고 싶지만 ‘참으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 윤채와 지은이 사는 세계는 여전히 순응적으로 배우길 강요하고 충고하고 있다.
여덟 개의 이야기를 읽으면, 서로에게 쓴 편지를 읽으면, 불안하게 표류하고 있는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가볍고 경쾌하고 발랄하다. 그들처럼. 그들이 가고 싶어 했던 ‘파묵칼레’는 폐허나 다름없지만, 그럼으로써 사람들의 기억에서 떠오르고 있다. 너만 힘들어? 나도 힘들어 식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을 꿈꿈으로써 이름을 되찾고 아픔을 드러냄으로써 곁을 지키고자 한다. 함께 가고 싶지만, 언제가 될지 모르는 먼 그곳의 향기만을 간직한 채 “타인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건 나를 상처투성이로 만드는” 일임을 안다. “혐오와 마주 서기 위해 혐오를 부추기는 이들을 가리키기 위해” 나의 다른 나들과 함께한다. 결국 두 사람이 각자의 한 사람이 될지라도 지구에서 이방인이 되어 폐허 속에서 꽃이 피어나길 바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이제 지금을 씩씩하게 좌절하며 더디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손뼉을 쳐 주자. 그들은 나보다 훨씬 용감하고 우리보다 높고 깊고 명랑하고 긍정적이며 아름답다. 윤채와 지은의 우정은 폐허 속에서 폐허를 찾아내어 모래바람처럼 바스러지게 할 수 있다. 그들의 목소리는 오래도록 멀리 퍼져 나가야 마땅하다. 오래 품고 있던 꽃씨를 윤채와 지은의 손바닥에 하나씩 올려 주고 싶다. - 유현아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