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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슬픔의 족보 환멸 개명 두물머리 폐허의 봄 천변에서 보낸 유년 통일동산 오줌보 축구공 폐소공포증 오랜 친구, 태화 속박된 삶 원하지 않은 길 레닌의 언덕 해방구 솔트와 그리세 그늘의 배후 연좌제 낙하 앙코르, 앙코르 난파선 나무깎이 인형의 늦은 고백 나무깎이 인형 어용 교수 그리운 정석구 에필로그 |
오성인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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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장례를 마친 날, 음복할 때 큰고모가 “꼭꼭 씹어라. 할아버지 살과 뼈 안까지 골고루 씹는다 생각하고….”라며 생밤 하나를 권했다. 음복이라기보다 슬픔의 진원지를 파악하는 일이라고 하는 것이 옳았다. 내 안의 슬픈 세포들을 하나씩 깨우던 날이었다.
--- p.29 「개명」중에서 군 복무 중에 당했던 가혹행위 후유증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큰외삼촌은 배우자인 외숙모와 아직 어린 사촌 자매들을 남겨 둔 채 제초제를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임종이 가까워진 큰외삼촌의 손을 나와 동생이 번갈아 잡아 드렸다고, 의식이 희미한 와중에도 큰외삼촌은 그런 우리 형제를 반겼다고 한다. 외삼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사 년 뒤에는 외할아버지마저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을 받다가 돌아가셨으며, 어머니가 미대에 진학하는 데 결정적으로 도움을 줬던 작은이모도 몇 해 전 암 투병 끝에 운명했다. 두물머리라던가. 북한강과 남한강, 두 물길이 만나는 합류점. 사람에게도 두물머리가 있다. --- pp.37~38 「두물머리」중에서 “아빠는 요, 요 피리가 시상 가장 좋아야. 등이며 배며 얼마나 고와 브냐. 화려하지도 않고, 성질은 또 을매나 온순헌디. 붕어는 말이시, 지 승질 못 이겨서 가끔 지가 난 알을 갖다가 먹어 치워 버리는디 야는 안 그래. 그라믄서 생명력도 끈질기고잉.” --- p.46 「천변에서 보낸 유년」중에서 솔트와 그리세에서의 창작 활동은 엄격하고 보수적인 가풍으로 인해 그동안 마음껏 펼칠 수 없었던 아버지의 예술 감각이 발현되는 계기였다. 더불어, 암울했던 시대와 그 속의 그늘진 삶들을 묘사함으로써 아버지는 저항의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독재정권이 쉴 새 없이 뱉어대는 입김과 서슬 퍼런 칼날은 그러한 아버지의 꿈마저 철저히 짓밟고 산산이 조각내 버렸다. --- pp.104~105 「솔트와 그리세」중에서 “용문아, 나는 사실… 의대도, 상대도 오고 싶지 않었다. 나가 정말 하고 싶었던 건 바로 그림이었는디 아무도 나를 알어주지 않었고, 생각을 표현할 기회조차 주지 않드라. 난파선과 다를 바 읎는 나를 믿고, 밀어 준 너에게 그래서 이 그림을 주고 싶었던 거여. 고맙다.” --- p.134 「난파선」중에서 “소대장님, 목적지가 거시기… 여기 바로 근처에 있는 그 산입니까?” “그래, 대대장님 지시다. 산에 가서 벌목을 해야 한다.” “아무 나무나 베어 오믄 됩니까?” “아니야. 단단한 나무다. 박달나무만 베어야 돼. 이 일대가 박달나무 자생지다.” 시키는 대로 해야만 하는 곳이 군대였으므로 아버지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부대원들을 승차시킨 뒤 인근 산에서 박달나무를 베어다가 날랐다. 몇 날 며칠간 산을 오간 끝에 베어 온 박달나무가 어느 정도 모이자 이번에는 그것들을 방망이 모양으로 깎고 다듬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 pp.140~141 「나무깎이 인형」중에서 “학생으로 보이기만 하믄 냅다 총을 쏘고 검으로 찌르고… 크고 검은 방망이를 인정사정없이 휘둘러 때리싸야… 나가 총알 날아올까 무서워 갖구 이불로 창문 가리고 느이 동생덜 시내 나간다는 거 못 나가게 말렸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아버지는 차마 믿을 수 없었다. 군인이 시민을 때리고 죽였다니…. 그러다가 복학을 위해 학교를 찾은 아버지는 다시금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에 휩싸인다. 군 복무 당시 자신이 만든 방망이가 계엄군의 진압봉으로 쓰인 ‘충정봉’이었으며, 이들이 휘두른 충정봉에 의해 아버지의 경영학과 선후배 대다수가 희생되었다는 것이다. --- pp.144~145 「나무깎이 인형」중에서 “도청 앞에서 전두환 물러나라고, 계엄군 광주에서 나가라고 외치다가 애국가 나와서 국민의례 하고 있는데 아, 계엄군이 느닷없이 사격을 하드라고요. 앞줄에 있던 분들 피 흘리면서 쓰러지니께 냅다 달려와서는 최루탄 던지고, 진압봉으로 두드려 패대고…… 생각도 하기 싫구만이라. 생지옥이었당께요 슨배님….” --- p.145 「나무깎이 인형」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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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은 사람이어야! 뭐더러 자꾸 이야기를 꺼내냐. 애비는 이미 죽어 자빠진 지 오래잉께 다시는 지난 이야기 같은 거 묻지 말어라, 알었냐?”
(중략) 왜 아버지는 ‘죽어 자빠진’ 삶을 살아야 했을까. 마음이 맞는 극소수를 제외하고 일절 사람을 만나려 하거나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 아버지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는 소위 벽이나 다름이 없었다. 말을 걸고 손을 잡으려 해도 무뚝뚝하고 차갑기만 한, 일체의 반응이 없는 벽. 나는 매번 그 앞에서 서성이다가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하고, 진실도 알지 못하고 걸음을 돌리기 일쑤였다. 그게 마음에 걸렸는지 아버지는 가끔 마지못해 문을 열어 주기는 하였으나 벽을 허문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애(愛)에서 증(憎)으로, 증(憎)에서 애(愛)로 옮기기를 거듭했다. 그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은 아버지의 치아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근래부터다. 아버지는 어째서 당신이 지금까지 마음을 잠그고 숨어야만 했는지 지난날에 대해서 조금씩 이야기를 꺼냈다. (중략) 이 책은 아버지의 그러한 고백을 담았다. 첫 시집 『푸른 눈의 목격자』에서 두 번째 시집 『이 차는 어디로 갑니까』로 건너가는 과정에서 채 드러내지 못한 여백을 여기에서 밝힌다. 소시민의 일상이 어떻게 역사의 흐름에 편입될 수 있는지 귀 기울여 들어 주시길 바란다. 2024년 봄 오성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