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시인의 말
1부 양림동·15 밤·17 나무깎이 인형·18 고구마·20 닭전머리·22 치약팩·24 종만이 아저씨·26 율정점(栗亭店)·28 잠사연가(蠶絲戀歌)·30 대인시장·32 2부 삭금 전어 갈치 떡전어 군평선이 숭어 인형 울음이 지나간 자리 간이역전 공중전화 me-too 닫힌 공간의 悲歌 3부 안장 도둑 대박복권가게 앞 풍경 암각(岩刻) 늦은 고백 파란 눈동자 포켓몬Go 키덜트(Kidult) 바닥에 대하여 9월 21일 어느 사내의 벽화 독(毒) 4부 못다 끓인 라면-파주 장애 남매 화재 사건 알란 쿠르디(Alan Kurdi) 발렌타인-뤼순 감옥으로부터의 편지 에밀레-용광로 청년에 대하여 위르겐 힌츠페터(Jurgen Hinzpeter)-푸른 눈의 목격자 슬픈 생일-김소형 氏 葬猫 8 비로소 봄 춘설 푸아그라 5부 리스컷트 증후군 패스워드 증후군 드레이크 방정식 어떤 모자에 관한 폼페이 석이(石耳) 죽은 시의 사회 퍼즐 고독사 펭귄마을 파도소주방 해설 | 이성혁(문학평론가) 비극의 기호와 ‘시-의지’ |
오성인의 다른 상품
|
비극으로 더욱 옹골찬 비극을 빚다
그가 토해 내는 첫울음 같은 시어들은 짙은 어둠을 가르는 유성처럼 반짝이며 슬픔을 위무한다. 슬픔을 더듬는 그의 내면에는 ‘죽음’의 기억들이 맺혀 있다. “출사표” 격으로 시집 첫머리를 장식한 「양림동」은 가족사, 나아가서는 현대사에 묻힌 옛 기억을 호출한 시다. 어떤 부연도, 묘사도 없지만 이 시에서는 비릿한 피 냄새가 난다. (……) 동족을 향해 차마 총을 겨눌 수 없어 피보다 더 빨간 낙인이 찍혀 개명한 할아버지와 영문도 모른 채 군대에서 방망이를 깎아야 했던 아버지, 불순한 지역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유로 유명을 달리한 외삼촌 말하지 않아도 양림산 은단풍나무는 내막을 안다 (……) ―「양림동」 부분 “최초로 울음을 터뜨린 길”을 걸으며 시인은 생명과 죽음이 교차했던 어느 시절을 떠올린다. “죽음과 씨름”했던 그였기에 “비극보다 더 단단한 비극이 되어 세상 모든 비극들을 품으”라는 할머니의 유언을 따라 시인은 “단단하고 둥근 비극을 꿈”꿀 수 있다. 그가 꿈꾸는 단단하고 둥근 비극은 이 시집에 담긴 시 곳곳에서 얼굴을 내민다. 그는 “현대 세계의 비극성을 자기 몸으로 앓”(해설, 「비극의 기호와 시?의지」)아 내며 비극의 맨얼굴을 생생히 드러낸다. 특히 4부에 실린 시들은 ‘사회적 타살’로 인한 비극을 다룬다. 오성인 시인이 포착하는 죽음들은 구체적인 것이다. 이 죽음들이 만든 구멍 바로 위에 세상의 가장 슬픈 바닥이 형성된다. 배고픈 동생을 위해 라면을 끓이다가 불이 나서 장애 남매가 모두 숨진 ‘파주 장애 남매 화재 사건’, 시리아 내전을 피하기 위해 지중해를 건너오다가 배가 난파되어 터키 해변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어린 시리아 난민 ‘알란 쿠르디’, 용광로에서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용광로에 빠져 생을 다한 청년, 광주민주화운동 유족인 김소형 씨, 사형을 앞두고 있는 뤼순 감옥의 안중근, 나아가 차에 치여 죽은 어미 고양이와 맛을 위해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거위(푸아그라)까지, 시인이 시적 조명을 드리우고 있는 이들은 죽거나 죽을 예정이거나 친족이 죽음을 당한 존재자들이다. 이 존재자들을 둘러싸고 있는 죽음들은 모두 사회적 역사적 원인을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슬픔과 설움, 분노를 불러일으킨다(해설, 「비극의 기호와 시-의지」). 이 시집의 제목 ‘푸른 눈의 목격자’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카메라에 담아내어 전 세계에 알린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를 상징한다. 어쩌면 절망의 벼랑 끝에 매달린 이들의 몸부림과 아우성을 목격한 시인 자신을 상징하는지도 모른다. 오성인 시인의 시선은 이처럼 낮고 어두운 곳에 닿아 있다. 그에게 ‘시’는 더 낮은 곳으로 파고들어 비극으로써 또 다른 비극을 옹골차게 빚어내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그의 ‘시?의지’는 다음의 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 낮춘다는 것은 삶과 죽음의 무게를 동시에 겪어 내는 일, 혼신을 다해 희로애락애오욕을 지탱해 내는 일 (……) ―「바닥에 대하여」 부분 표류하기 위해 절망을 멈추지 않는 시인 비극보다 더 옹골찬 비극을 빚어낸 그는 이제 비극 너머의 세계를 표류한다. 비극적 소외의식으로 세상을 떠다니던 그가 능동적인 표류에의 의지를 발현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는 “일방적으로 씌워지는/ 모자들을 거부”(「어떤 모자에 관한」)하고 ‘바람’처럼 떠돌아다니기를 소망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어둡고 낮은 곳을 향한 시선을 거두어들이고 절망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더욱 절망하겠다고 선언한다. (……) 한자리에 연연하며 머리 위의 하늘이 진실의 전부라고 여기는 모자 안의 맹목적인 나무들보다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는 뜨내기 바람을 신뢰합니다 일방적으로 씌워지는 모자들을 거부합니다 사라진 머리를 폐허로 규정하거나 함부로 절망을 내려놓을 자격이 나는 없습니다 ―「어떤 모자에 관한」 부분 “함부로 절망을 내려놓을/자격이 나는 없”다는 그의 말은 곧 절망해야만 표류할 수 있는 자신의 정체성을 역설하는 것이기도 하다. 절망의 끝에 닿아 본 사람만이 한자리에 연연하는 ‘매임’과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시인은 이미 잘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표류하기 위해 절망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절망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더 깊고 짙은 어둠과 죽음에 가 닿아 더 웅숭깊은 슬픈 언어들을 길어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바람처럼 떠돌아다니면서 세상의 죽음을 포착하고 증언하여야 하는 사람이기에, 표류를 위해서 계속 절망할 수 있어야 한다. 절망을 내려놓을 때, “한자리에 연연”하여 종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해설, 「비극의 기호와 시-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