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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미흡하고 치기 어린 꿈의 여행기
① 챈들러의 필립 말로처럼, 시대를 찾아 명동을 떠돈 박인환 ② 박인환과 GREY 구락부, 영화 이야기는 투 비 컨티뉴드 ③ 망우리 박인환 묘역에 갈 때는 카멜과 조니 워커를 ④ 마유미와 망각의 술을 마셔야 한다 ⑤ 입 맞추는 신사와 창부, 조준은 젖가슴 ⑥ 박인환이 마지막으로 본 파리, 아니 명동 ⑦ 당신에게 필요한 건 오직 시와 영화에 대한 사랑뿐 ⑧ 전후의 침울한 상념을 영화로 위로받다 ⑨ 박인환의 1930년대, 그가 피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마주해야만 했던 것 ⑩ 시인 박인환은 왜 이승만 다큐를 옹호했을까 ⑪ 박인환의 죽음, 그의 상상은 과잉했다 ⑫ 박인환, ‘제3의 사나이’를 꿈꿨을까? ⑬ 남해호 미국행의 박인환, 그가 쓴 시 그리고 영화 ⑭ 그리하여 박인환은 늘, 혼자 울었다 ⑮ 박인환이 차라리 연극배우가 됐었다면 (16) 박인환은 이상의 제1의 아해였을까 (17) 1953년 정전협정 후의 세밑 극장가 〈종착역〉, 박인환의 불안 ⑮ 김수영의 박인환 비판이 갖는 본색에 대하여 (19) 영화는 계속된다 그리하여 삶은 계속된다 (20) 박인환의 생애에 흘렀던 시간들, 그 흔적과 기록들 (21) 다큐멘터리 〈경성〉 속 모던 보이 박인환을 찾아라 (22) 한 잔은 과거를 위해 또 한 잔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를 위해 (23) 박인환은 엘리아 카잔을 옹호했을까, 부인했을까 에필로그: 박인환이 로렌 바콜에게 쓴 편지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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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환을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나뿐이 아니었다. 누구나 그랬다. 그러나 정작 박인환을 제대로 아는 사람도 없었다. 박인환의 시 두어 편을 아는 것 외에 그의 생애를 잘 정리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런 것이다. 우리는 상대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상대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 시인 박인환이 불현듯 내 일상을 치고 들어온 것은 역시 영화 때문이다.
--- 본문 「프롤로그」에서 무엇보다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 외에 사람들은 관심을 그 어느 것에도 두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그런데 그 와중에 영화를 봤다는 것에 관심이 집중됐다. 좋다. 박인환이 영화를 봤다는 것은 그렇다치자. 그렇다면 그때도 극장을 열었고 극장에 사람들이 갔었다는 얘기인가. 자. 또, 그렇다면 〈젊은이의 양지〉 같은 할리우드 영화를 누가 어떤 경로로 한국에 들여왔을까? 그때의 영화 수입 선은 어떻게 이어졌을까. 수입 가격은 얼마였고, 극장 티켓은 얼마여서, 영화수입사들은 전쟁 직후에 돈을 벌었을까, 망했을까. 과연 그때의 극장가 풍경은 어떠했을까. 질문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갔다. ---p.12 박인환을 추적하는 이 글은, 그리고 그 맥락은, 그의 59편에 이르는 영화평론을 중심으로 들고나기를 반복할 것이다. 박인환은 놀랍게도 영화평론을 썼다. 그건 뒤늦은 발견 같은 것이며, 결국 이 책 『명동백작들의 영화 이야기』를 쓰게 되는 출발점이 됐다. 여기서 시작하고 여기를 벗어나지 말며 여기서 끝내자, 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공연히 시작을 창대하게 하지 말고 영화평론에 국한하는 미미한 시작으로 발을 떼자고 생각했다. ---p.25-26 박인환의 절박은 예술적 절박이었으며 실존적 절박이었다. 그는 전후 사회를 보면서, 천박한 반공주의와 궁핍, 무고한 죽음들을 유희로써, 유려한 시어로써 극복하려 했다. 그의 시 뒤에는 영화가 있었고 영화가 주는 현란한 욕망이 있었다. ---p.52 박인환은 1950년대에 있어 가장 냉철하고 분석적인 평론가였다. 그가 더 오래 살았다면 한국의 영화계는 좀더 빠르게 성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나간 시간을 두고 가정법을 쓰는 것은 허망한 짓이다. 박인환이 타계하기 전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위안 삼아야 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파리를 봤을까? 그가 마지막으로 본 명동의 풍경은 과연 어떠한 것이었을까. ---p.69 흔히들 1950년대를 우울한 낭만의 시대로 여기는데다 박인환의 시구가 가지는 허무주의의 정서가 그에게 과도한 술의 이미지를 덧붙인 것일 수 있다. 여기에 정하연의 극본이 기름을 부었을 것이다. 박인환이 전당포에 코트를 맡기고 손에 쥔 돈으로 이상의 주기 파티를 준비했다고 하는 묘사도 다시 들여다볼 대목이다. 박인환은 그 정도로 궁핍한 계층의 남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지적들 역시 어쩌면 하나의 가설에 불과할 수 있겠다. ---p.151 박인환을 추구하고 그의 삶의 행적을 뒤지는 일은 마치, 그가 좋아했던 험프리 보가트의 캐릭터 필립 말로의 임무 같은 것이다. 말로는 단 한 번도 총을 지니지 않고 다니며 때리기보다는 맞으면서 온몸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이다. 그는 비상한 관찰력과 촌철살인의 언변을 지닌 인물이다. 박인환과 박인환의 시대를 지금 세상에서 의미 있게 재현해내기 위해서는 실로 그 두 가지가 필요할 것이다. 관찰력과 글솜씨. 과연 그 두 가지를 이 우둔하고 미숙한 프리랜서 글쟁이 따위가 제대로 구사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다만 후대의 모자란 글솜씨를 가진 자로서 그저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갈 뿐이다. --- 본문 「에필로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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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환 탄생 100주년 기념
“그의 시 뒤에는 영화가 있었고 영화가 주는 현란한 욕망이 있었다” 박인환 하면 모두 전후 시인이나 모더니스트 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가 영화평론을 썼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목마와 숙녀」의 절절한 상심과 「세월이 가면」의 나지막한 노래로 우리 가슴속에 박제된 청춘의 시인 박인환. 그러나 피비린내 나는 포성이 멎은 1950년대 명동의 황량한 골목길에서, 그는 누구보다 차가운 이성으로 은막(銀幕)의 세계를 탐미하던 격정의 비평가이기도 했다. 시인 박인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출간된 신간 『명동백작들의 영화 이야기』는 그간 낭만주의와 감상주의의 빛바랜 표류 속에 봉인되어 있던 그의 또다른 지적·예술적 영토를 영화라는 매개로 온전히 일깨워내는 정갈한 문화비평서이자 산문집이다. 이 책은 당대의 어두운 분위기를 반영하듯, 박인환의 〈검은 신이여〉라는 시로 책의 문을 연다. 영화평론가 오동진은 박인환이 서른의 나이로 불꽃같은 생을 거두기 전 2년여 동안 남긴 59편의 영화평론을 징검다리 삼는다. 그리고 1950년대 명동의 은성주점과 동방싸롱, 시공관, 수도극장과 국도극장을 누비던 전후 지식인들의 술에 비친 절망, 그리고 사멸해 가던 시대정신을 문학적 향취가 짙게 배어나는 필치로 추적해 낸다. “무엇보다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 외에 사람들은 관심을 그 어느 것에도 두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그런데 그 와중에 영화를 봤다는 것에 관심이 집중됐다. 좋다. 박인환이 영화를 봤다는 것은 그렇다치자. 그렇다면 그때도 극장을 열었고 극장에 사람들이 갔었다는 얘기인가. 자. 또, 그렇다면 〈젊은이의 양지〉 같은 할리우드 영화를 누가 어떤 경로로 한국에 들여왔을까? 그때의 영화 수입 선은 어떻게 이어졌을까. 수입 가격은 얼마였고, 극장 티켓은 얼마여서, 영화수입사들은 전쟁 직후에 돈을 벌었을까, 망했을까. 과연 그때의 극장가 풍경은 어떠했을까. 질문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갔다.” (12쪽) 낭만의 허울에 갇혔던 모더니스트, 그 냉철한 비평적 영혼의 재발견 반공 이데올로기와 궁핍이 지배하던 1950년대의 남한 사회는 박인환에게서 사회 참여적 면모를 체념하게 만드는 대신, 오직 ‘낭만적 댄디보이’라는 허울만을 허용했다. 그러나 저자는 박인환이 1954-1955년 유수의 매체에 기고했던 깊이 있고 진지한 영화평론들을 정밀하게 복원해낸다. 오슨 웰스의 〈제3의 사나이〉, 조지 스티븐스의 〈젊은이의 양지〉, 르네 클레망의 〈저주받은 자들〉, 비토리오 데 시카의 〈종착역〉을 관통하는 박인환의 시선은 시대의 상흔을 직시하는 냉철함 그 자체였다. 책은 시인의 우울한 시어 뒤편에 똬리를 틀고 있던 영화적 열망과 시대적 비판의식을 일깨우며, 그를 한국 비평사의 당당한 주역으로 재조명한다. “박인환은 오슨 웰스 주연의 〈제3의 사나이〉를 좋아했다. 비교적 높은 평점을 줬다. 오스트리아 빈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상한 살인극과 배신극이다. 주인공은 결국 친구를 살해한다. 아마도 박인환이 끌렸던 부분은 자아가 살해당하는 상황과 배신의 필연성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전향서에 서명하던 박인환의 모습이 자꾸 떠올려진다. 박인환은 ‘제3의 사나이’가 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 시대의 역설이다. 시인은 이상하게 탄생된다.” (121쪽) 잿더미 속에서 피어난 1950년대 한국 영화사와 극장 문화의 입체적 서사 살 곳과 먹을 것조차 참혹하게 부족하던 전쟁 직후, 사람들은 왜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극장의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는가? 할리우드의 화려한 환영과 유럽 네오리얼리즘의 침울한 작품들은 어떤 수입 경로를 통해 황폐한 도심에 도달하였는가? 남루했던 사회에서 영화와 문학은 한 줄기 빛이었을까? 이 책은 단순한 시적 탐구를 넘어 당시 수입사들의 메커니즘과 이승만 정권하의 영화 정책, 안양촬영소의 파란만장한 잔혹사, 그리고 당대 영화계를 이끌던 거두들의 숨가쁜 알력에 이르기까지, 전후 한국 영화 산업의 막전막후를 문학적 혜안과 촘촘한 사료로 아우른다. “1953년의 박인환이 오늘날 한국의 영화평론가(들)에게 환생하는 느낌이다. 실존이 불안하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진배없다. 우리는, 인류는 늘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 글은 기획에 가장 충실한, 박인환의 영화평론 글로 돌아간 글이었다. 1940~50년대 영화 〈종착역〉과 〈밀회〉를 기억들 하시길 바란다.” (168쪽) 김수영, 이상, 최인훈, 이봉구… 명동의 밤을 지키던 영혼들의 비장한 초상 이 책은 박인환이라는 외로운 섬에 그치지 않고, 명동의 거리에서 함께 시대를 통탄하던 명동백작들의 지적 성채로 지평을 넓힌다. 모더니즘의 노선을 둘러싸고 대립했던 김수영과의 비장한 갈등(분노형 김수영 vs 염세형 박인환)부터, 박인환이 자아의 롤모델로 삼았던 이상과의 서늘한 영적 교유, 소설가 이봉구와의 깊은 우정, 최인훈의 데뷔작 「GREY 구락부 전말기」에 깃든 전후 지식인들의 실존적 니힐리즘까지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김수영은 박인환이 나약하게 굴었다고 생각했을지언정 그가 지닌 감정의 동인은 충분히 알고 또 이해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수영을 보면 박인환이 보인다. 1950년대란 우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지금 2020년대의 길이 보이는 것과 같다. 모든 것은 다 연결돼 있다.” (176쪽) 시와 영화, 과거와 현재가 자아내는 그윽한 문학적 메타 비평 “이 책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저자인 오동진 평론가는 강원도 인제 산자락의 박인환문학관과 망우리 공동묘지의 적막한 묘역, 도봉산 기슭의 김수영문학관을 고요히 거닐며 박인환의 비평을 오늘날의 삶으로 다정하게 끌어당긴다. 6·25전쟁 직후 시인이 감내해야 했던 지독한 피로와 비루함을 1946년 패전 도쿄를 살아간 다자이 오사무의 염세와 겹쳐 놓고, 다시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실존적 불안과 연결 짓는 저자의 필치는 한 편의 그윽한 인문학적 에세이처럼 깊은 여운을 남긴 채 완성되지 않은 채 멈춰 선다. 박인환의 삶이 그러했듯.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2020)는 감독 오키타 슈이치가 만든 일본 영화다. 시인 박인환이 살아 있었다면 이 영화를 좋아했을 것이다. 하늘에서 그를 만나면 영화를 같이 볼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을까. 누가 알겠는가. 박인환에 대해서는 이 책 『명동백작들의 영화 이야기』 분량만큼 후편이 또 계속될 것이다. 욕심이지만 기대해볼 뿐이다.” _「에필로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