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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고 묻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공화국 시민의 삶과 분별에 관하여
김경집
북인어박스 202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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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며_ ‘반공화주의 시대’를 슬기롭게 건너는 힘 4

I부 역사와 기억

“국사(國史)는 곧 국혼(國魂)이다.” - 박은식, 『한국통사』

역사의 유산, 기억의 책임
_ 금속활자의 나라, 그러나 인쇄혁명은 없었다
권력의 조건, 역사에 되묻다
_ 정통성이 취약한 권력은 어떻게 스스로 무너지나
국보(國寶)가 남긴 흔적들
_ ‘제1호’라는 이름에 남은 식민의 그림자
불망비를 ‘불망(不忘)’하라
_ 망각 위에 세운 비석, 누구를 위한 불망인가
‘엘 클라시코’는 내전을 기억하고 있다
_ 경기장 너머, 스페인 내전의 긴 그림자

II부 정의와 불의

“침묵은 동의를 의미한다 (Qui tacet, consentire videtur)” - 로마 법언

차별은 ‘익숙함’ 아래 숨겨져 있다
_ 관행의 이름으로 강제된 성차별의 서사
집단적 광기, 변주는 계속된다
_ 매카시즘에서 계엄령까지, 반복되는 마녀사냥의 역사
‘보이지 않는 손’에 관한 오독
_ 애덤 스미스를 오해하는 사람들과 자본주의를 둘러싼 착시
그날, 시상대에 선 사람들
_ 피터 노먼에서 쉰들러까지, 연대를 선택한 이들
동성애, 침묵 속의 존재들
_ 튜링의 비극, 우리가 외면한 권리
진실은 어떻게 처벌되는가
_ 드레퓌스 사건과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
차별을 수치로 여기는 사회
_ 로드니 킹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III부 문화와 권력

“감시자는 누가 감시하는가?(Quis custodiet ipsos custodes?)” - 유베날리스

‘한 도시 한 책’, 책이 도시를 바꾼다
_ 도서관, 시민, 그리고 독서 운동의 재구성
고전은 왜,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_ 시카고대에서 시작된 질문
‘먹는 것’에도 가치가 필요하다
_ 닭고기 수프를 약속한 앙리 4세와 ‘먹방’의 전성시대
우리는 지구라는 한 마을에 산다
_ 혁명과 라키 화산, 그리고 우리가 외면한 경고
폭력의 언어로는 평화를 설계할 수 없다
_ ‘반국가’와 ‘종북’의 낙인 정치를 넘어

저자 소개 1

전 가톨릭대학교 교수

대학에서 영문학과 신학을, 대학원에서 예술철학과 사회철학을 공부했다. 가톨릭대학교 인간학교육원 교수로 재직했으며, 인문학자로 많은 책과 강연, 방송 등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호흡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오랫동안 대학에서 가르치고 배우며 청년들과 호흡해온 바탕 위에서, 청년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발판을 마련하고자 ‘김경집어른연구소’를 만들었다. 청년 세대와의 소통뿐 아니라, 어른 세대의 인식 전환을 통해 시대정신을 포착하고 미래 의제를 도출하는 데 디딤돌이 되는 활동에도 힘을 쏟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인문 공동체 ‘책고집’이 주관하는, 재소자와 재활인 등 소외된 이들을
대학에서 영문학과 신학을, 대학원에서 예술철학과 사회철학을 공부했다. 가톨릭대학교 인간학교육원 교수로 재직했으며, 인문학자로 많은 책과 강연, 방송 등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호흡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오랫동안 대학에서 가르치고 배우며 청년들과 호흡해온 바탕 위에서, 청년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발판을 마련하고자 ‘김경집어른연구소’를 만들었다. 청년 세대와의 소통뿐 아니라, 어른 세대의 인식 전환을 통해 시대정신을 포착하고 미래 의제를 도출하는 데 디딤돌이 되는 활동에도 힘을 쏟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인문 공동체 ‘책고집’이 주관하는, 재소자와 재활인 등 소외된 이들을 위한 한국형 클레멘트 코스 디딤돌 인문학 강연 모임인 ‘곁과 볕’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인문 교양과 더불어 청소년, 고전, 종교, 시대정신 등에 관한 다양한 책을 써왔으며 공저를 포함해 48권의 저서를 냈고, 『어린 왕자, 두 번째 이야기』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책탐』으로 2010년 한국출판평론상을 받았고 2016년 『엄마 인문학』이 여러 도시에서 ‘한 도시 한 책’으로 선정되었으며 2018년에는 『앞으로 10년 대한민국 골든타임』이 ‘전라남도 올해의 책’으로, 『김경집의 통찰력 강의』가 ‘고양시가 뽑은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저서로 『인문학은 밥이다』 『인문학자 김경집의 6I 사고 혁명』 『생각의 융합』 『진격의 10년, 1960년대』 『어른의 말글 감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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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3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332쪽 | 566g | 145*220*20mm
ISBN13
9791199778900

책 속으로

수많은 혁명은 으레 반혁명과 직면했고 때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왕정복고가 반복되었다. 혁명 이후의 혼란은 대개 혁명의 본질이 아닌 부스러기 이익을 좇은 데서 비롯되었다. 그 정신에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혁명 주변에 어슬렁거리던 자들까지 가세하여 전리품을 찢어 가려는 이전투구에 대한 환멸도 한몫했다. 그러나 핵심은 시민 다수의 각성과 현실 인식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어설픈 계몽의 단계에서 혁명이 먼저 도래했다면, 그 간극은 이성적 판단으로 메워졌어야 했다. 하지만 모두의 시선이 권력의 향배에만 쏠리면서 그 공백은 방치되었고, 그 결과가 역풍으로 되돌아왔다. 거의 모든 혁명은 그렇게 혹은 유사하게 반복된다. 그래도 다행히 인간의 지성은 진보의 길을 택했고, 그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그게 지금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과정이다.
--- 「들어가며」 중에서

역설적이게도 책을 숭상하는 문화가 강했음에도 출판이 대중을 향한 지식의 확산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은 조선 출판문화의 구조적 한계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러한 통제가 우리의 출판문화 전반에 미친 영향은 생각보다 깊었다. 근대 후기까지 조선에 서점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출판의 통제와 제한은 단순한 제도적 문제를 넘어 새로운 지식의 생산과 수용을 가로막았고, 대중의 지적 능력 향상을 제약함으로써 결국 출판문화가 훨씬 더 발달한 일본에 뒤처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주권 상실이라는 참혹한 현실로 이어졌다. 우리가 여전히 ‘금속활자의 주조’라는 기술적 성취의 최초성에만 자부심을 갖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역사의 유산, 기억의 책임」 중에서

정통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유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된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정통성은 한 번의 선거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국민과의 소통, 실리 있는 정책 판단, 위기 앞에서의 절제된 대응을 통해 유지되고 확장되는 것이다. 정통성을 외형적 명분에 고착시키거나 극단적 정파성으로 대체하려 할 때, 정권은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위기를 자초하게 된다. 선조, 광해군, 인조의 시대가 그러했듯이, 오늘날도 예외는 아니다. 선조, 광해군, 인조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정통성의 취약함을 드러냈다. 시대는 달리했지만, 정통성의 기반이 약할 때 외교는 경직되고 민심은 멀어진다는 점은 같다. 이를 소홀히 한 정권은 어떤 명분이나 진영도 끝내 자신을 구원하지 못한다.
--- 「권력의 조건, 역사에 되묻다」 중에서

광복 이후에도 포석정지가 사적 ‘제1호’로 유지되었다는 사실은 명칭만 ‘고적’에서 ‘사적’으로 바뀌었을 뿐 문화재를 바라보는 인식의 틀이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포석정지가 일제에 의해 조선 최초의 사적으로 지정된 배경에는 이 공간을 ‘패망한 왕조의 향락 장소’로 규정하려는 식민사학의 시선이 온전히 작동하고 있었다. 그 결과로 국왕으로서 경애왕의 정치적 행위는 삭제되었고, ‘무희와의 연회’라는 자극적인 서사만이 부각되었다. 식민지 시기에 형성된 역사 인식이 해방 이후에도 관성처럼 반복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이 해석의 틀을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답습했던 것일까.
--- 「국보(國寶)가 남긴 흔적들」 중에서

이러한 역사관을 가진 자들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국가 요직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참담한 현실이다. 박중양은 3·1운동과 광복을 냉소했으며, 독립운동가를 모욕했고, 끝까지 사죄하지 않은 채 죽었다. 그런 그가 아무 처벌도 받지 않은 채 부귀영화를 누린 사실은 대한민국의 불행 중 불행이다. 광복 이후 친일 세력은 제대로 청산되지 못했다. 국가 차원의 처벌은 번번이 실패했고, 그들은 오히려 권력과 부를 대물림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민간에서 친일 청산을 시도한 것이 임종국의 『친일문학론』(1966)이었고, 1991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창립으로 이어졌다. 이를 이어받은 『친일인명사전』 편찬은 1994년 시작됐지만 숱한 방해 끝에 2009년에야 겨우 출간됐다. 21세기까지 미뤄졌다는 점에서 이 작업은 친일 청산 실패의 부끄러운 증거다.
--- 「불망비를 ‘불망(不忘)’하라」 중에서

프랑코 정권의 진짜 민낯은 사상 통제 너머 일상적 삶에 깊이 파고든 억압에 있었다. 특히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은 그 본질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냈다. 정권은 극단적인 가부장제와 남성 우월주의를 제도적으로 강화하며, 여성의 삶을 철저히 통제했다. 내전 이전 제2공화국에서 보장되었던 여성 참정권, 시민 혼인, 이혼 합법화 등을 철저히 폐기했고, 여성을 다시 가정의 틀 안으로 가두었다. 여성의 간통은 강하게 처벌하면서도, 남성에게는 ‘정부(情婦)와의 동거’처럼 특정한 경우에만 간통죄가 성립하도록 범위를 제한했다. 심지어 1970년대까지 여성은 아버지나 남편의 서명 없이는 은행 계좌조차 개설할 수 없었을 정도로 법적 주체성을 상실한 상태였다.
--- 「‘엘 클라시코’는 내전을 기억하고 있다」 중에서

왜 마녀사냥이 오랜 세월 유럽 전역에서 이어졌을까. 단순히 ‘이단자 처벌’이라는 명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십자군 전쟁의 도덕적 파산과 그에 따른 교회의 권위 약화, 뒤이은 종교개혁의 격동 속에서 교회와 세속 권력은 불안한 민심을 다스릴 필요가 있었다. 이때 ‘마녀’라는 외부의 적이 통제력을 회복하기 위한 유용한 수단이 되었을 것이다. 종교재판은 때로 로마 시대의 검투사 경기처럼 대중의 오락거리로 소비되었다. 광장에서 벌어진 화형과 교수형은 공포와 경각심을 주기 위한 처벌이라기보다 민중의 분노가 권력자를 향하지 않도록 차단하는 장치였다. 그 탓에 기근, 전쟁, 감염병 같은 위기 때마다 민심의 불안과 분노는 마녀사냥이라는 배출구로 쏠렸다.
--- 「집단적 광기, 변주는 계속된다」 중에서

애덤 스미스는 경제가 발전하려면 단순히 금이나 은 같은 제한된 자산의 축적이 아니라 생산적 노동이 실질적으로 투입되어 그 가치가 증대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노동생산성의 향상이다. 『국부론』에 등장하는 유명한 핀 공장의 사례는 이 맥락에서 등장한다.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분업’이다. 분업은 작업의 숙련도를 높이고 시간을 단축시키며 전체 생산 체계를 보다 효율적으로 만든다. 그 결과로 시장은 단순한 물물교환의 공간을 넘어 대량 생산된 재화 가운데 필요한 것을 ‘더 낮은 가격’에 선택할 수 있는 구조로 발전하게 된다. 이때 가격은 더 이상 국가나 영주 등 외부 권력이 개입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에서 스스로 결정된다. 이 지점에서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다.
--- 「‘보이지 않는 손’에 관한 오독」 중에서

튜링 개인의 비극이 단지 한 과학자의 불운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곧 오랜 세월 누적된 구조적 억압의 단면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동성애는 오랜 세월 금기시되어왔다. 비단 특정 종교나 문화의 도덕률 때문만은 아니었다. 더 깊은 차원에서 보자면, 동성애에 대한 억압은 사회질서의 유지 논리와 맞닿아 있었다. 대부분의 인류 사회는 오랜 시간 가부장제와 혈통 중심의 계승 구조 위에 세워져왔다. 그런 구조에서 생식과 무관한 사랑은 ‘불필요한 것’이나 ‘체제에 이롭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고, 따라서 제도적으로 배제되거나 도덕적으로 비난받았다. 종교는 이를 신의 뜻으로 해석했고, 국가는 이를 법으로 규정했으며, 교육은 이를 혐오로 배제했다. 동성애는 그렇게 오랫동안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지워진 정체성’으로 취급되어왔다.
--- 「동성애, 침묵 속의 존재들」 중에서

유서대필 조작 사건이 벌어지던 시기, 강경대 군 사망을 규탄하고 노태우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광주에서는 전남대생 박승희 양이 5·18 광장에서 분신해 숨졌고, 서울에서는 성균관대생 김귀정 양이 경찰의 강제 해산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 일로 수많은 학생과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정권은 중대한 위기에 몰려 있었고, 노태우는 공안검사 출신 김기춘을 법무부 장관으로 앉히며 국면 전환을 꾀했다. 그에게 맡겨진 임무가 바로 유서대필 사건의 총괄 지휘였다. 검찰이 사건의 실체를 몰랐을 리 없다. 실상은 정권에 충성하고 자신들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작한 것이었다. 범인은 강기훈이 아니라 검찰이었으며, 법원은 그들의 조력자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거짓은 20여 년이 지난 뒤에서야 드러났으나, 국민의 기억 속에서는 이미 희미해진 이후였다.
--- 「진실은 어떻게 처벌되는가」 중에서

매리언에서의 린치 사건은 소설보다 훨씬 참혹했다. 백인 폭도들에게 법적 절차는 없었다. 처음부터 진실 여부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흑인에 대한 분노만이 폭력을 정당화하는 힘이었다. 미국의 공권력조차도 흑인에게 일방적으로 적대적이었다. 비슷한 사건은 이곳 말고도 정도만 달리했을 뿐 미국 내에서 흔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린치 현장에 몰려든 백인들은 환호하며 나무에 매달린 두 청년의 시신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장면을 기록한 이는 매리언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던 로렌스 베이틀러(Lawrence H. Beitler)였다. 실제로 그가 찍은 사진은 장당 50센트에 팔려 수만 장이 판매되었다고 전해진다. 베이틀러는 밀려드는 주문 때문에 열흘 가까이 밤낮으로 인화를 멈출 수 없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 「차별을 수치로 여기는 사회」 중에서

열린 결말, 비일상적 구성, 결단의 순간, 신뢰할 수 없는 시선(unreliable narrator) 등은 모두 한 권의 책이 독자의 감각을 흔들고 공동체에 파문을 일으키도록 설계된 장치다. 정답이 분명한 소설은 사유의 여지를 단절시킨다. 스쳐 지나가듯 남의 삶을 엿보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독자의 내면 어딘가를 건드려야 오래 곱씹고 토론할 수 있다. 구조가 평범하면 쉽게 진부해지고, 화자가 너무 드러나면 해석의 틈이 좁아진다. 참가자들은 그러한 기준 아래 함께 읽고, 함께 토론하며 읽을 책을 스스로 결정했다.
--- 「‘한 도시 한 책’, 책이 도시를 바꾼다」 중에서

고전은 단순한 과거의 도서 목록이 아니다. 현재와 꾸준히 소통하는 과정 속에서 영감과 통찰을 길어 올릴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 시카고 플랜이 지향했던 방향도 바로 그 지점에 있었다. 플라톤의 『국가론』을 읽는 일은 단순히 고대 철학자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2,500여 년 전 플라톤은 이상적인 국가를 어떻게 만들고 유지하며 그것이 시민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지 깊이 고민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떤 국가를 꿈꾸고,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구현할 수 있을지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한다. 고전의 권위에 맹목적으로 기대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오늘의 삶과 연결하는 능력과 태도를 함께 갖출 때, 고전 읽기는 비로소 의미 있는 작업이 된다.
--- 「고전은 왜,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중에서

먹는다는 것은 결코 사적인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무엇을 통해, 누구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느냐에 따라 한 사회의 윤리 수준과 공동체의 구조가 드러난다. 앙리 4세가 ‘닭고기 수프’를 통치의 상징으로 제시한 까닭도 먹는 문제를 개인의 욕망만이 아니라 공동체 회복의 과제로 보았기 때문이다. 음식이 사회적 조건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의 시대와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 치킨은 언제든 배달로 소비되는 일상식이 되었고, 그 배경에는 공장식 사육과 대기업 중심의 유통 구조가 자리한다. 한때 잔칫상에 오르던 귀한 음식이 가장 손쉬운 소비재가 된 이 변화는 우리의 삶이 개선되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효율과 가격의 논리에 깊이 포획되어 있는지도 드러낸다.
--- 「‘먹는 것’에도 가치가 필요하다」 중에서

통일을 막연한 감상이나 낭만의 문제로 다룰 것이 아니라, 장기적 국가 전략의 관점에서 검토해야 한다. 통일은 단순한 지출이 아닌 인구 구조와 산업 기반, 지정학적 조건까지 재편하는 사건이다. 총인구 8,000만 명 이상의 국가로 전환된다는 점만 보더라도 그 파급력은 결코 작지 않다. 북한 주민들의 교육 수준과 학습 역량을 고려한다면, 체계적인 제도 설계와 충분한 시간, 그리고 안정적 지원이 전제될 경우 새로운 노동력과 생산 기반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는 정체 국면에 놓인 대한민국 경제에 긍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장기적으로 군사적 긴장이 완화됨으로써 과도하게 투입되고 있는 국방비를 합리화해 보다 생산적인 결실을 이끌어낼 연료로 활용할 수 있다.

--- 「폭력의 언어로는 평화를 설계할 수 없다」 중에서

출판사 리뷰

질문은 ‘타인의 언어’에 휘둘리지 않는
시민의 최소한의 힘이다

공화정은 단순한 정치 체제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의 정당성을 시민의 판단 아래 두고, 공적 문제를 함께 숙고하려는 오래된 약속이다. 고대 공화정에서 근대 시민혁명에 이르기까지, 공화국은 언제나 질문하는 시민에 의해 유지되었다. 그 바탕에서 권력은 위임되었고, 끊임없는 의심과 검증 속에서 정당성을 확보했다.

그러나 오늘날 굳게 믿어왔던 그 토대가 눈에 띄게 약해지고 있다. 넘쳐나는 정보는 사유를 깊게 하기보다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고, 판단은 점점 단순해진다. 언어는 설득의 도구가 아니라 선동의 수단으로 전락되고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 질문하기보다 이미 주어진 해석에 기대어 현실을 받아들인다. 질문이 사라진 자리에는 맹신이 자리 잡고, 분별이 멈춘 자리에는 권력이 언어를 대신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균열을 역사적·사상적 맥락 속에서 다시 짚는다. 공화정이 어떻게 작동해왔는지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시대의 사건과 사상을 교차시키며 인문학적으로 재해석한다. 아울러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스스로 판단하는 힘이 어떻게 형성되고 흔들려왔는지 차분하게 따라간다. 역사적으로 공화정은 반복해서 위기에 놓였고, 그때마다 흔들린 것은 제도가 아니라 그것을 지탱하던 사고와 태도였다. 이 책은 그 균열을 따라가며, 우리 안에 자리 잡은 반공화주의적인 사고를 돌아보게 한다.

권력은 언제나 언어로 자신을 정당화한다
그리고 그 언어는 반복된다

이 책이 다루는 것은 단순히 공화정 체제 그 자체가 아니다. 우리가 이미 공화국에 살고 있다고 믿는 순간에도 반복되는, 익숙하지만 불편한 장면들을 다룬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능력이 의심받고, 동성애는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논쟁거리로 소비된다. 특정 집단에는 범죄와 위험이 덧씌워지고, 사실이 확인되기도 전에 이름과 얼굴이 먼저 유통된다. 맥락이 제거된 헤드라인과 이미지가 여론을 만들고, 분노는 순식간에 정당한 판단처럼 작동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타인은 동등한 시민이 아니라 판단의 대상이 된다.

이 장면들은 결코 새로운 것들이 아니다. 중세의 마녀사냥에서부터 근대의 인종주의와 배제의 논리, 전쟁과 위기의 순간마다 반복되어온 선동의 언어에 이르기까지, 권력은 언제나 유사한 방식으로 자신을 정당화해왔다. 대상은 달라졌지만, 낙인을 찍고 공포를 조직하며 동의를 끌어내는 구조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책은 이러한 현상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재해석한다. 개별 사건을 고립된 예외로 보지 않고, 공화국이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왜 동일한 메커니즘이 되살아나는지 그 조건과 경로를 탐색한다. 질문이 멈춘 자리에서 편견이 먼저 작동하고, 분별력이 약해진 순간에 광기가 정당성을 획득하는 과정이 어떻게 축적되어왔는지 깨닫게 한다.

진정한 민주 공화정은 제도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타인을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는 감각 위에서만 유지된다. 그 감각이 흔들리는 순간 공화국은 스스로의 원리를 배반해왔다. 과거의 장면들은 낯선 사례에 머물지 않고,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자리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음을 차분하게 비춘다.

익숙한 해석에 머무르지 않는 태도,
스스로 기준을 만들어내는 힘

역사와 사건을 하나의 교훈으로 정리해 건네는 책은 많다. 그러나 이 책은 사건을 반듯하게 나열하지 않는다. 금속활자와 인쇄문화, 조선 왕권의 정통성 문제, 국보 제1호의 기원, 스페인 내전과 엘 클라시코, 차별과 마녀사냥, 앨런 튜링과 드레퓌스에 이르는 서로 다른 장면들이 한 권 안에서 맞물린다. 독자는 익숙하다고 여겼던 역사와 현실을 다른 각도에서 다시 보게 된다.

각 꼭지는 서로 다른 시대와 주제를 다루지만, 읽다 보면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이어진다. 한 꼭지를 읽으면 익숙한 상식이 흔들리고, 다음 꼭지에서는 그 질문이 다른 장면으로 옮겨간다. 그래서 이 책은 단지 ‘옳은 말을 하는 책’으로 머물지 않는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생각이 번져가는 책, 이것저것 읽는 재미가 살아 있는 책으로 남는다.

물론 그 재미는 가볍지 않다. 각각의 이야기는 흥미에 머물지 않고 현재의 문제로 이어진다. 독자는 읽는 과정에서 자신의 해석과 기준을 다시 점검하게 된다. 『왜냐고 묻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하나의 답을 제시하기보다, 흩어져 있던 역사적 장면들을 통해 스스로 생각의 기준을 세우게 만드는 책이다. 읽는 재미와 사유의 밀도를 함께 끌어올리는 보기 드문 인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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