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에 나선형 집을 지고 있는 달팽이는 두 개의 더듬이 끝에 달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방 한 칸이 전부인 집을 지고 다니며 세상을 살아간다. 안유경의 첫 시집에는 달팽이의 집이나 방과 비슷한 곳에서 더듬이를 치켜든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주 보인다. 저물 무렵 철길 옆에서 제자리뛰기를 하며 아버지를 기다리는 소녀와 안방 윗목의 불어터진 국수 한 그릇, 녹슨 철 대문 안에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엄마, 달팽이처럼 잠을 자는 소녀, 볶은 콩을 깨물며 쥐들이 돌아다니는 골목길의 어둠을 밝히려다가 고추장 항아리만큼 자라기도 하는 소녀, 그 골목길을 빠져나온 소녀는 어느덧 인간의 품위라는 말을 떠올리는 스무 살이 되었고 살아남은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그 슬픔을 등에 짊어진 채 달팽이의 여행은 계속된다. 쪽잠이나 잘 수 있는 동굴 같은 방에 엎드려 누군가의 소리를 듣기 위해 방바닥에 귀를 기울인다. 배낭에 돌을 채우고 냉동실에서 복어 알을 꺼낸다. 있는 힘껏 더듬이를 치켜올린 채 세상의 출구 없는 달팽이 여관에 투숙한 사람들을 바라본다. 2호실 여자의 눈물은 모두 말랐을까, 4호실 남자는 기타를 두드리며 어떤 노래를 불렀을까. 그러다 일순 화면이 바뀌고 202호실 창문 밖으로 다리 잘린 고양이가 집채 같은 몸을 끌고 가는 모습이 보이는 호텔이 떠오른다. 나는 이 호텔을 세상의 고단함을 건너온 이들이 머무는 달팽이 호텔이라 부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