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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
컬러 일러스트 수록 완역본
김시습한동훈 그림 김풍기
현대지성 2024.03.14.
원제
金鰲新話
베스트
고전문학 top20 2주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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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지성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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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이미지

책소개

목차

만복사의 저포놀이_만복사저포기
이생이 담 너머 아가씨를 엿보다_이생규장전
술에 취해 부벽정에서 노닌 이야기_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 이야기_남염부주지
용궁 잔치에 다녀온 이야기_용궁부연록

김시습 깊이 읽기
해제
김시습 연보

저자 소개3

金時習, 열경, 매월당/동봉/벽산

조선 전기의 학자. 본관 강릉. 자는 열경. 호는 매월당, 동봉, 벽산 등을 사용하였다. 선덕(宣德) 10년 을묘(乙卯: 세종 17년, 1435)에 서울 성균관 뒤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문자 이해 및 구사에서 특별한 능력을 보여 장안의 화제였다. 태어나서 8개월 만에 글을 알았고, 세 살에 시를 지을 줄 알았다. 다섯 살 적에 세종이 궁궐 안으로 불러들이어 운자(韻字)를 불러 주고 삼각산시(三角山詩)를 짓게 하였다. 5세에 『대학』(大學)에 통달하고 글도 잘 지으니, 신동이라 불렀다. 김시습은 뒷날 어릴 적에 궁궐에 들어가 임금의 사랑을 받은 사실을 시를 통해 회고하곤
조선 전기의 학자. 본관 강릉. 자는 열경. 호는 매월당, 동봉, 벽산 등을 사용하였다. 선덕(宣德) 10년 을묘(乙卯: 세종 17년, 1435)에 서울 성균관 뒤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문자 이해 및 구사에서 특별한 능력을 보여 장안의 화제였다. 태어나서 8개월 만에 글을 알았고, 세 살에 시를 지을 줄 알았다. 다섯 살 적에 세종이 궁궐 안으로 불러들이어 운자(韻字)를 불러 주고 삼각산시(三角山詩)를 짓게 하였다. 5세에 『대학』(大學)에 통달하고 글도 잘 지으니, 신동이라 불렀다.

김시습은 뒷날 어릴 적에 궁궐에 들어가 임금의 사랑을 받은 사실을 시를 통해 회고하곤 했다. 하지만 유년기의 천재성과 이로 인한 주변의 칭찬은 김시습의 삶을 불행한 쪽으로 몰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천재성은 비정상성과 통하고, 유년기의 능력은 나이가 들면서 퇴색하기 십상이며, 그 자질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과 비례하지 않는다. 뒷날 그는 친지와 이웃의 넘치는 칭찬 때문에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21세 때 삼각산 속에서 글을 읽고 있다가 단종이 손위(遜位)하였다는 말을 듣자 문을 닫고서 나오지 아니한 지 3일 만에 크게 통곡하면서 책을 불태워 버리고 미친 듯 더러운 뒷간에 빠졌다가 그곳에서 도망하여 행적을 불문(佛門)에 붙이고 여러 번 그 호를 바꾸었다. 미친 듯 시를 읊으며 마음대로 떠돌아다니며 한 세상을 희롱하였다. 비록 세상을 선문(禪門)에 도피하였다 하여도 불법을 받들지 아니하니 세상에서 미친 중으로 그를 지목하게 되었다.

정치적 격변기를 지나 1458년, 24세에 승려 행색으로 관서 여행을 떠났다. 이후 관동과 호남을 유람하고, 경주와 서울에 안착한 시기도 있지만 방랑자로 긴 세월을 보냈다. “매월이라 당(堂)에다 이름한 것은 금오 매월이란 뜻을 취한 것이다”고 한다. 쉰아홉 되던 해 봄날, 홍산(鴻山) 무량사(無量寺)에서 비 내리는 가운데 한 많은 일생을 마쳤다. 2,200여 편의 시와 함께 정치 견해를 밝힌 산문들이 『매월당집』에 실려 있고, 소설 『만복사의 윷놀이』, 『이생과 최랑』, 『부벽정의 달맞이』, 『꿈에 본 남염부주』, 『용궁의 상량 잔치』가 『금오신화』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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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한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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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하여 교원그룹 교원 C&I개발부 일러스트팀에서 근무하였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 그룹인 ‘다비전’회원이며, 2009년부터 현재까지 일러스트 프리랜서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한 뒤 오랫동안 그림책, 명작 동화, 수학 동화 등에 그림을 그려 왔습니다. 원래 그림 그리는 일을 좋아하지만, 두 딸이 크는 동안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리며 소통할 수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일러스트 그룹 ‘다비전’ 회원으로 활동하였고, 앞으로도 계속 재미와 감동이 가득한 그림으로 어린이 독자들과 만나기를 희망합니다. 그동안 그린 책으로는
경성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하여 교원그룹 교원 C&I개발부 일러스트팀에서 근무하였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 그룹인 ‘다비전’회원이며, 2009년부터 현재까지 일러스트 프리랜서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한 뒤 오랫동안 그림책, 명작 동화, 수학 동화 등에 그림을 그려 왔습니다. 원래 그림 그리는 일을 좋아하지만, 두 딸이 크는 동안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리며 소통할 수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일러스트 그룹 ‘다비전’ 회원으로 활동하였고, 앞으로도 계속 재미와 감동이 가득한 그림으로 어린이 독자들과 만나기를 희망합니다.

그동안 그린 책으로는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 <수호지> <만복사저포기> <그리스신화> <보물섬> <트로이> <거인의 정원> <팥죽할멈> 등과 단행본 <임진록> <치토의 고물비행기> 등이 있습니다. 교과서와 광고 일러스트도 다수 진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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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豊起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강원대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강원대 국어교육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 고전문학과 한시를 통해 다양한 사유를 접했고, 이를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서 소개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 고전 소설의 매혹』, 『선물의 문화사』, 『시힘』, 『김풍기 교수와 함께 읽는 오언당음』, 『어디 장쾌한 일 좀 없을까』, 『한시의 품격』,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 등이 있고, 역서로는 『완역 옥루몽』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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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3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232쪽 | 150*225*20mm
ISBN13
9791139716672

책 속으로

전라도 남원(南原)에 양생(梁生)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부모를 일찍 여읜 그는 여태 혼인도 못 하고 만복사(萬福寺)의 동쪽 방에서 혼자 살았다. 방문 밖에는 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는데, 때마침 봄을 맞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 모습이 꼭 옥으로 만든 나무에 은 덩어리가 달린 것 같았다. 양생은 달이 뜨는 밤이면 어김없이 그 나무 밑을 서성거리면서 낭랑하게 시를 읊었다.

한 그루 배꽃은 외로이 서 있는데 / 가련해라, 달 밝은 밤 져버리다니.
젊은이는 외로운 창가에 홀로 누웠는데 / 어디서 아름다운 이는 퉁소를 부는가.
--- p.13 「만복사의 저포놀이」중에서

“도련님께서는 의심하지 마시고, 황혼 녘에 만나기로 약속하시지요”[將子無疑 昏以爲期].

이생은 쪽지에 적힌 대로 저녁노을이 질 무렵 그곳을 찾아갔는데, 갑자기 복숭아꽃 가지 하나가 담장 밖으로 나와 한들거렸다. 그가 가서 살펴보니 대나무 바구니가 그네 매는 줄에 묶여서 늘어져 있었다. 이생은 그것을 잡고 기어올라 담장을 넘었다.

때마침 동산에 달이 막 떠올라서 꽃 그림자는 땅에 드리워 있었으며, 참으로 맑고도 사랑스러운 향기가 났다. 이생은 마치 신선 세계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속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기뻤지만, 남녀 간의 비밀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터럭이 모두 쭈뼛 서는 듯했다.
--- pp.52-23 「이생이 담 너머 아가씨를 엿보다」중에서

홍생은 계단에서 내려와 담장 틈에 숨어서 그녀의 거동을 지켜보았다. 미인은 남쪽 다락에 기대서서 달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시를 읊조렸는데, 풍류로운 태도에는 엄연한 법도가 배어 있었다. 시녀들이 비단 방석을 펴자 미인은 얼굴빛을 고치고 자리에 앉아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에서 시를 읊던 분은 어디 계신가요? 저는 꽃과 달의 요물도 아니고 연꽃 위를 걷던 여인도 아니랍니다. 다행히 오늘 밤, 만 리나 되는 하늘이 구름 걷혀 드넓고, 달이 높이 뜬 데다 은하수는 맑으며, 계수나무 열매 떨어지고 구슬 같은 백옥루는 차갑습니다. 술 한 잔에 시 한 수 읊으면서 마음속 깊은 정을 펼치고 싶군요. 이처럼 좋은 밤을 어찌 보낼까요?”
--- p.87 「술에 취해 부벽정에서 노닌 이야기」중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폭력으로 백성을 겁박하면 안 됩니다. 백성이 비록 놀라고 두려워하여 따르는 것 같지만 사실은 반역의 마음을 품게 됩니다. (…) 무릇 나라는 백성의 것이며 명령은 하늘이 내리는 법입니다. 천명(天命)이 떠나가면 백성의 마음도 떠나가기 마련이니, 비록 자신의 몸을 보존하고 싶어도 장차 어떻게 할 수 있겠소?”

박생이 이번에는 이단의 도를 숭상하다가 재앙을 만난 역대 제왕들의 이야기를 꺼내자 왕은 곧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백성이 칭송하더라도 수재와 가뭄이 닥치는 것은, 임금이 스스로 경계하고 근신하도록 하기 위한 하늘의 경고입니다. 백성의 원망이 자자한데도 상서로운 일이 나타나는 이유는, 요괴가 임금에게 아첨해서 더욱 교만하고 방종하도록 만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역대 제왕들에게 상서로운 일이 나타나는 때라면 백성은 편안한 시절이겠습니까, 원망의 마음을 부르짖는 시절이겠습니까?”
--- pp.123-124 「남염부주 이야기」 중에서

어느 날 저물 무렵이었다. 한생은 자기 방에서 편안히 앉아 있었다. 그런데 홀연 푸른 적삼을 입고 두건을 쓴 낭관(郎官) 두 사람이 공중에서 내려와 뜰에 엎드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박연에 계신 용왕께서 모셔 오라고 하셨습니다.”
한생이 깜짝 놀라 얼굴빛을 바꾸며 말했다.
“신과 인간은 길이 다른데 어찌 서로 간섭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수부(水府)는 넓고 아득한 곳으로, 물결이 사나우니 어찌 무사히 갈 수 있겠습니까?”
두 사람이 말했다.

“준마(駿馬)를 문밖에 대기시켰습니다. 부디 사양하지 마십시오.”
마침내 그들은 몸을 굽혀 한생의 소매를 잡아끌고 문밖으로 나갔는데, 그곳에는 과연 천리마 한 마리가 있었다.
--- p.130 「용궁 잔치에 다녀온 이야기」중에서

허 정승께서는 무릎을 치면서 감탄하셨다가 이윽고 탄식하며 말씀하셨습니다.
“이 아이가 이른바 신동(神童)이로구나.”
이때부터 선비들이 제 이름을 알고 자주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세종대왕께서도 소문을 들으시고 대언사(代言司)의 지신사(知申事)였던 박이창(朴以昌) 선생에게 명을 내려 소문의 허실(虛實)과 제 실제 능력을 확인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선생께서 저를 무릎에 앉히시고 이름을 부르며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시구절을 지을 줄 아느냐?”
저는 즉시 대답했습니다.

올 때에는 포대기에 싸인 김시습이었습니다[來時襁褓金時習].

또 벽에 걸린 산수화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네가 또 지을 수 있겠느냐?” 하시기에 저는 곧바로 이렇게 응대했습니다.

작은 정자와 배 안에는 어떤 사람 계실까?[小亭舟宅何人在]
--- pp.169-170 「김시습 깊이 읽기」중에서

그동안 『금오신화』 연구자들의 노고로 작품 속 내용이 뜻하는 바가 상당히 밝혀졌다. 김시습은 어렸을 때 경험했던 궁궐 이미지, 세종을 비롯 왕에 대한 애틋한 사모의 정, 세조의 왕위 찬탈에 대한 반감, 시대와의 불화로 인한 울분, 시대를 향한 생각 등을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냈다고 한다.

어떤 작품이든 그 속에는 작가의 삶을 반영한다. 「용궁부연록」에 묘사된 용궁의 모습에는 어린 시절 경험했던 것으로 알려진 조선의 궁궐이 반영되어 있다. 「취유부벽정기」에서 만난 여인이 만들어낸, 쓸쓸하면서도 낭만적인 분위기는 잃어버린 청소년기의 꿈에 대한 일종의 헌사로 읽힌다. 그렇게 본다면, 김시습은 어린 시절의 체험과 생각을 작품 속에 아름다운 문체로 담아냈다고 볼 수 있다.

--- pp.222-223 「해제」중에서

출판사 리뷰

시험 지문으로 접해온 한국 최초의 소설 『금오신화』,
밑줄 긋고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느낄 수 없었던
원작의 재미와 효용, 감동을 오롯이 전한다

“등잔불 돋우며 밤새도록 향 피우고 앉아, 인간 세상에서 본 적 없는 글을 한가롭게 짓노라.” 김시습은 『금오신화』를 쓰고 나서 이렇게 술회했다. 설화, 패관문학, 가전체 등 우리나라 서사문학의 전통을 이어받아 발전시키고 중국 전기소설 『전등신화』의 영향을 더해 창작한 이 작품은 그때까지 “세상[조선]에서 본 적 없는 글”이었다. 자아와 세계의 대결이 날카롭게 드러나고, 정교한 구성과 서정적 묘사가 돋보이며,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벗어나 독창성과 자주성을 보여주는 『금오신화』는 우리나라 소설의 효시로 평가받고 있다.

『금오신화』는 오랫동안 ‘신비의 책’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이 땅에서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당대 최고의 지성으로 꼽히던 송시열조차 이 책을 구하지 못해 안타까워할 정도였다. 이렇듯 조선 후기 지식인들에게 전설로 남아 있던 『금오신화』는, 1927년 최남선이 일본에서 발견한 원문에 해제를 덧붙여 『계명』(啓明) 제19호에 수록함으로써 다시금 우리 품으로 돌아왔다.

많은 연구자의 수고 덕에 의의와 가치를 인정받은 『금오신화』는 학교에서 꼭 가르쳐야 할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은 수능과 국가고시에 출제된 터라 무척 중요하게 다룬다. 그렇다 보니 학생들은 이 작품을 단지 출제 가능성 높은 지문으로 여길 뿐, 제대로 음미하거나 폭넓게 이해하거나 자신의 상황에 적용해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하면 머릿속에 『금오신화』라는 제목만 어렴풋하게 남는다. 입시 위주 교육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동서양의 양서를 보급해온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우리 고전의 진정한 재미와 가치를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 『금오신화』를 선보인다. 번역은 안대회, 심경호, 정민 등과 함께 한국 한문학 연구의 르네상스를 열어가고 있는 김풍기 교수가 맡았다. 오랜 연구와 집필 경험을 토대로 원문을 정확하게 해석하고, 오늘날의 독자들이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도록 쉬운 문장으로 풀어냈다. 독서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279개의 방대한 각주를 달아 역사적·문화적 배경지식을 충실하게 전한다.

세종대왕이 인정한 천재 김시습,
그가 질곡의 세월을 견디며 끝까지 붙들었던
숭고한 이상과 사랑이 담긴 5편의 이야기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스스로 글을 깨쳤고, 세 살에 시를 지었으며, 다섯 살 때는 세종대왕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던 김시습. 순탄할 것 같던 그의 앞길에 먹구름이 낀다. 숙부(수양대군)가 조카(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도리에 어긋난 행위를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윤춘년이 쓴 「매월당선생전」에 따르면, 당시 21세였던 김시습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통곡하며 읽던 책을 죄다 불태우더니, 승려가 되어 방랑길에 올랐다고 한다. 훗날 세조가 법회를 열고 참석을 명했을 때도 그는 미친 체하며 뒷간에 뛰어들었다. 이처럼 김시습은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고, 부귀영화를 탐하지 않으며, 평생을 꿈꾸는 방랑자로 살았다. 하지만 몸은 홀가분해졌어도 정신만은 시대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던 그는, 불교에서 고뇌의 해답을 찾으려고 애쓰는 한편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자기실현의 욕구를 문학으로 풀어냈다. 그 몸부림의 과정에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금오신화』다.

‘금오(金鰲)산에서 지은 새로운(新) 이야기(話)’라는 뜻의 『금오신화』는 단편소설집이며, 본래 수록된 작품 수는 알 수 없으나 현재 전해지는 것은 5편이다. 그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작품으로 꼽히며 독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것은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이다. 두 작품 모두 귀신과 사람 사이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불의의 사고를 당해 귀신이 된 여인은 이승에서 못다 한 인연을 맺기 위해 남자를 찾아가고, 인연이 다하자 저승으로 떠난다. 남자는 여인에 대한 추억을 버리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다. 떠나기 전 여인은 남자에게 속내를 전하는데, 그녀들이 갈망했던 것은 그저 평범한 아낙네의 삶이었다. 하지만 왜구의 침략과 홍건적의 난리 통에, 그들은 소박한 꿈조차 이루지 못한다. 김시습은 이들의 고된 삶을 통해서 현실의 냉혹함과 사랑의 숭고함을 드러내고 있다.

「취유부벽정기」는 유교 국가 건설이라는 명분에 따라 기자조선을 강조하는 조선 전기 지식인들의 역사관을 잘 보여준다. 작품 전체에 흐르는, 쓸쓸하면서도 낭만적인 분위기는 청년 시절의 꿈에 대한 일종의 헌사로 느껴진다. 「남염부주지」에서는 유학자로 출발해 승려 신분으로 살아갔으며, 우리 도교사(道敎史)에도 흥미로운 발자취를 남긴 김시습의 사상적 경향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 두 작품에서 김시습은 주인공의 입을 빌어 세조의 왕위 찬탈을 독자에게 넌지시 환기한다.

「용궁부연록」의 무대인 용궁에는 어린 시절 세종의 후의(厚意)로 구경했던 궁궐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투사되어 있으며, 등장인물들이 지은 글을 통해 김시습의 빼어난 문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율곡 이이의 「김시습전」을 비롯한 필독 문헌 6편,
애틋한 정서를 품격 있게 담아낸 한시 원문,
한 폭의 시화(詩?)처럼 기품 있는 일러스트 수록

어떤 작품이든 그 속에는 작가의 삶이 담겨 있다. 『금오신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하려면 김시습이 어떤 삶을 살았고, 창작 당시의 사회·문화적 배경은 어떠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이 책에서는 “김시습 깊이 읽기”라는 장을 따로 두어서 김시습이 직접 쓴 “양양부사 유자한에게 올리는 글”과 『전등신화』를 읽고 쓴 글, 『금오신화』를 창작하고 소회를 밝힌 글을 비롯해 율곡 이이가 왕명을 받아 지은 「김시습전」, 윤춘년의 「매월당선생전」, 남효온이 약술한 인명록을 수록했다. 이를 통해 작가의 성품과 사상, 창작 의도, 조선 시대 문인들의 평가를 확인할 수 있다.

김시습은 『금오신화』에서 자신의 장기라 할 수 있는 한시 창작 능력을 선보인다. 서사가 이어지다가 극적인 순간에 이르렀을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한시들은 등장인물의 심리와 대화의 뉘앙스를 절묘하면서도 멋들어지게 드러낸다. 또한 직접 언급하지 않은 일들을 넌지시 알리며, 전체 분위기를 서정적이고 낭만적으로 이끌어간다. 이 책에는 작품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한시의 번역문과 원문을 함께 넣었다. 조금 낯설더라도 한시를 음미하며 읽다 보면, 저자가 묘사하려 했던 인물의 심정과 사건의 분위기에 한층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소설을 읽다 보면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가 떠오른다. 오늘날의 작품이라면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모습이겠지만, 과거의 이야기라면 어렴풋한 형상이 그려질 것이다. 책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한동훈 작가의 환상적인 일러스트는 사건이 일어나는 현장으로 독자를 데려갈 뿐만 아니라 텍스트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감흥을 전해준다. 또한 각 단편의 서두마다 관련된 유물과 유적 사진을 수록해서 당대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추천평

김시습의 문장은 물이 솟구치고 바람이 부는 것 같으며, 산이 만물을 갈무리하고 바다가 모든 물을 머금은 듯하다. - 율곡 이이 (성리학자, 조선시대 문신)
김시습의 작품은 품격이 높고 사상이 오묘하여 보통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능히 헤아릴 수 없다. - 윤춘년 (성리학자, 조신서대 문신)
『금오신화』를 잠시 빌려 병든 내 눈 문지르니[책을 읽었다는 뜻], 두통이 시원하게 나았다. - 김인후 (성리학자, 조선시대 문신)
『금오신화』가 등장함으로써 조선의 소설문학은 설화의 경계선을 돌파, 소설의 영역에 돌입했다. 『금오신화』는 조선 소설사상 획기적 작품이다. - 조윤제 (국문학자, 조선어문학회·진단학회 결성 주도, 서울대 교수 역임)
『금오신화』에는 봉건적 속박으로부터 인간성을 해방하려는 의지, 자유연애 제창, 인습 미신 패도정치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 정병욱 (국문학자, 서울대 교수·하버드대 및 콜레주 드 프랑스 초빙교수 역임)
재치 있는 생각은 세속에 얽매이지 않았고, 문장의 기세는 부유하며, 아름다운 구와 단어는 비단처럼 찬란하여 지나침이 있을지언정 부족하지는 않다. - 요다 하쿠센 (메이지 시대 한학자, 위덕서원 교수 및 문부성 관료 역임)
편마다 풍류 넘치는 기이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지금껏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책이다. - 미시마 추슈 (메이지 시대 한학자, 도쿄제국대 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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