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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서경덕
조선사상의 새 지평
창비 2024.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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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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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

서문
경계와 바깥의 사상

핵심저작

【김시습】

1장 나는 누구인가
유양양에게 진심을 토로해 올린 편지 │ 「이소」를 본떠 짓다 │ 동봉의 여섯 노래 │ 답답한 마음을 서술하다 │ 나의 삶 │ 도서명 │ 남명 │ 북명 │ 곤궁한 삶에 대한 잠 │ 자화상에 붙인 찬

2장 자연철학
태극을 논함 │ 생사를 논함 │ 귀신을 논함 │ 무극음 │ 자연음

3장 정치사상
군주는 어떠해야 하는가 │ 신하의 도리 │ 정치의 근본은 애민이다 │ 나라의 근본 │ 만물을 사랑하는 도리 │ 은거하는 것과 벼슬하는 것 │ 고금의 충신과 의사 │ 정치는 반드시 삼대를 본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 군자와 소인 │ 인재가 없다고? │ 나라의 재물을 늘리는 도리 │ 명분이란 무엇인가 │ 덕행에 대하여 │ 백이?숙제를 찬미하다 │ 백이?숙제 │ 천지편

4장 불교·도교에 대한 관점
『청한잡저 1』 │ 『청한잡저 2』 │ 「남염부주지」 │ 『임천가화』 │ 『잡설』 │ 계인설 │ 이단변

5장 불전 해석
『연경별찬』 │ 『십현담요해』 │ 『대화엄일승법계도주』 │ 『수능엄경』 발문 │ 『법화경』 발문

【서경덕】

1장 사상의 거소
중종대왕에게 올리려던 사직소 │ 부기: 『중종실록』에 나오는 서경덕에 대한 사관의 평 │ 박이정에게 답한 편지 1 │ 박이정에게 답한 편지 2 │ 박이정?박군실에게 답한 편지

2장 자연철학
이기의 본원을 밝힘 │ 이기를 논함 │ 태허를 논함 │ 귀신과 사생을 논함 │ ‘복에서 천지의 마음을 볼 수 있다’고 한 데 대해 논함 │ 온천에 대해 분변하다

3장 상수학
성음을 풀이하다 │ 앞의 「성음을 풀이하다」의 미진한 곳에 대한 보충 │ 『황극경세서』의 수를 풀이하다 │ 〈64괘 방원도〉를 풀이하다

4장 학문론과 수양론
박이정 자설 │ 김사신 자설 │ 부기: 명종 15년 김한걸이 강원도 고성 군수로 있을 때 올린 「진군폐소」 │ 심 교수에게 주는 송서 │ 부기: 심 교수를 보내며 │ 줄 없는 거문고에 새긴 명 │ 거문고에 새긴 명 │ 심 교수가 보내주신 시에 차운하다 │ 다시 심 교수의 시에 차운하다 │ 사람들이 『남화경』을 읽기에 시를 지어 보이다 │ 박슬한 이정과 이별하며 │ 김언순을 보내며

5장 경세론
인종대왕에게 올리려던, 대행대왕의 상제가 옛날의 예에 부합하지 않음을 논한 소

6장 철리시
천기 │ 역을 보다가 읊다 │ 부기: 『하서전집』에 실린 「하서연보」의 ‘삼십오년 병진 선생 사십칠세’ 조 │ 동지를 읊다 │ 역을 보다가 우연히 수미음을 지어 역을 배우는 제현에게 보이다 │ 또 절구 한 수를 읊다 │ 웃으며 장난삼아 짓다 │ 소요부의 「수미음」을 본받아 읊어 천고의 옛사람을 벗하고자 하는 생각을 드러내다 │ 창을 열다 │ 물 │ 우연히 읊다 │ 『참동계』를 읽고 장난삼아 보진암 조경양에게 주다 │ 무제 │ 이끼를 노래하다 │ 어떤 사람을 애도하다

김시습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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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3

金時習, 열경, 매월당/동봉/벽산

조선 전기의 학자. 본관 강릉. 자는 열경. 호는 매월당, 동봉, 벽산 등을 사용하였다. 선덕(宣德) 10년 을묘(乙卯: 세종 17년, 1435)에 서울 성균관 뒤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문자 이해 및 구사에서 특별한 능력을 보여 장안의 화제였다. 태어나서 8개월 만에 글을 알았고, 세 살에 시를 지을 줄 알았다. 다섯 살 적에 세종이 궁궐 안으로 불러들이어 운자(韻字)를 불러 주고 삼각산시(三角山詩)를 짓게 하였다. 5세에 『대학』(大學)에 통달하고 글도 잘 지으니, 신동이라 불렀다. 김시습은 뒷날 어릴 적에 궁궐에 들어가 임금의 사랑을 받은 사실을 시를 통해 회고하곤
조선 전기의 학자. 본관 강릉. 자는 열경. 호는 매월당, 동봉, 벽산 등을 사용하였다. 선덕(宣德) 10년 을묘(乙卯: 세종 17년, 1435)에 서울 성균관 뒤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문자 이해 및 구사에서 특별한 능력을 보여 장안의 화제였다. 태어나서 8개월 만에 글을 알았고, 세 살에 시를 지을 줄 알았다. 다섯 살 적에 세종이 궁궐 안으로 불러들이어 운자(韻字)를 불러 주고 삼각산시(三角山詩)를 짓게 하였다. 5세에 『대학』(大學)에 통달하고 글도 잘 지으니, 신동이라 불렀다.

김시습은 뒷날 어릴 적에 궁궐에 들어가 임금의 사랑을 받은 사실을 시를 통해 회고하곤 했다. 하지만 유년기의 천재성과 이로 인한 주변의 칭찬은 김시습의 삶을 불행한 쪽으로 몰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천재성은 비정상성과 통하고, 유년기의 능력은 나이가 들면서 퇴색하기 십상이며, 그 자질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과 비례하지 않는다. 뒷날 그는 친지와 이웃의 넘치는 칭찬 때문에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21세 때 삼각산 속에서 글을 읽고 있다가 단종이 손위(遜位)하였다는 말을 듣자 문을 닫고서 나오지 아니한 지 3일 만에 크게 통곡하면서 책을 불태워 버리고 미친 듯 더러운 뒷간에 빠졌다가 그곳에서 도망하여 행적을 불문(佛門)에 붙이고 여러 번 그 호를 바꾸었다. 미친 듯 시를 읊으며 마음대로 떠돌아다니며 한 세상을 희롱하였다. 비록 세상을 선문(禪門)에 도피하였다 하여도 불법을 받들지 아니하니 세상에서 미친 중으로 그를 지목하게 되었다.

정치적 격변기를 지나 1458년, 24세에 승려 행색으로 관서 여행을 떠났다. 이후 관동과 호남을 유람하고, 경주와 서울에 안착한 시기도 있지만 방랑자로 긴 세월을 보냈다. “매월이라 당(堂)에다 이름한 것은 금오 매월이란 뜻을 취한 것이다”고 한다. 쉰아홉 되던 해 봄날, 홍산(鴻山) 무량사(無量寺)에서 비 내리는 가운데 한 많은 일생을 마쳤다. 2,200여 편의 시와 함께 정치 견해를 밝힌 산문들이 『매월당집』에 실려 있고, 소설 『만복사의 윷놀이』, 『이생과 최랑』, 『부벽정의 달맞이』, 『꿈에 본 남염부주』, 『용궁의 상량 잔치』가 『금오신화』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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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유학자로, 1489년에 태어나 1546년에 사망했다. 학문적 깊이와 독창적인 사상으로 당대에 널리 명성을 얻었고, 주기론(主氣論)의 선구자가 되어 조선 성리학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생 관직을 멀리하고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전념했다. 대표 저술을 모은 책으로 『화담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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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박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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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Byung, Park,朴熙秉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국문학 연구의 외연을 사상사 연구와 예술사 연구로까지 확장함으로써 통합인문학으로서의 한국학 연구를 꾀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고전인물전연구』, 『한국전기소설의 미학』, 『한국의 생태사상』, 『운화와 근대』, 『연암을 읽는다』, 『21세기 한국학, 어떻게 할 것인가』(공저), 『유교와 한국문학의 장르』, 『저항과 아만』, 『연암과 선귤당의 대화』, 『나는 골목길 부처다-이언진 평전』, 『범애와 평등』,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통합인문학을 위하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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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7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80쪽 | 668g | 155*255*22mm
ISBN13
9788936480325

출판사 리뷰

종횡무진 사상의 경계를 넓혀간 두 사람의 천재, 김시습과 서경덕

김시습이 어린 시절 신동으로 회자된 것은 유명하다. 당시의 국왕 세종이 그 소문을 듣고 승정원 승지를 시켜 김시습의 글쓰기 재능을 시험해봤다. 역시나 세종 또한 그 재능에 탄복해 찬사를 보내는데, 이때의 경험을 통해 김시습은 여생 내내 “세종에 대한 의리”(16면)를 품고 산다.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왕위에서 끌어내리고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가 격렬히 통곡하고 이후 8년간 방랑의 길을 떠난 이유도 그런 세종의 은혜를 되새겼기 때문이다.

8년간의 방랑기 동안 김시습은 백성들의 처참한 현실을 목격한다. 이는 그가 국가와 인민에 대한 정치사상에 관한 글을 쓰고 민본적 철학을 개진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런 민본적 철저성은 세조의 왕위 찬탈 이래의 김시습의 실존에서 기인한다. 김시습은 세조의 왕위 찬탈 이후 체제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체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체제의 안과 밖 사이의 ‘경계’에서 체제를 비판적으로 조망했다. 그 결과 인민과 군주와 국가에 대한 이런 통찰이 나올 수 있었다.”(20면) 또한 김시습은 유교뿐 아니라 불교와 도교에 관해서도 탐독하며 종횡무진 자기 사상의 경계를 넓혀갔다. 그러고는 경주 금오산으로 가서 8년간 지낸 뒤(『금오신화』를 지은 것도 이때의 일이다) 서울 수락산 기슭에서 지내며 『십현담요해』 『화엄석제』 등 불교 관련 책을 짓고 그 뒤로는 관동(강원도 양양 등지)에 가서 남은 생을 보낸다.

김시습이 유교, 불교, 도교를 넘나들었다는 세간의 평에 대해 편저자 박희병은 그보다는 “김시습의 사상 내부에 노장사상이 일부 들어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주 제한적”(25면)이라고 지적한다. 정확하게는 그가 유교와 불교를 적극적으로 회통시키면서도 도교에 대해서는 꽤 부정적이었다고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이 책 전반에서는 김시습이 조선 승려들의 명예욕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수행을 강조하면서 불교에 관한 미신적 사고를 철저히 물리치려 했음을 읽을 수 있다. 한마디로 김시습은 ‘유·불·도 3교 회통’의 대표적 지식인이라기보다는 모든 이론과 철학을 의심하고 자신을 성찰하면서 매번 내면의 갈등을 느낀 경계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1489년 개성에서 태어난 서경덕은 15세 때에 서당에서 『서경(書經)』을 배운다. 그때 그는 자신의 훈장을 비롯하여 조선의 선비들이 『서경』 읽기에 애를 먹는 모습을 보며 “글을 생각으로 깨쳐야 함”(34면)을 인식한다. 이후 서경덕은 자신만의 공부법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곧 자득(自得)이라는 말로 압축된다. 즉 “독서보다는 사색에 의한 깨달음”(35면)을 통해 이치를 알고 그 터득한 이치를 독서를 통해 검증하는 방법이다. 앎은 그저 외부(책)로부터 배우는 것일 뿐 나 자신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는 건 생각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서경덕의 자득은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서경덕은 (…) ‘모든 존재는 소멸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기(氣)가 다시 태허(太虛)로 돌아간다’고 했다. 태허는 곧 일기(一氣)이니, ‘존재의 고향’을 말한다. 이에서 보듯 서경덕은 살아 있을 때는 물론 죽을 때에도 이론과 실천의 완전한 통일을 보여준 사상가였다.”(36~37면)

서경덕은 상수학(수학)에도 능통했는데, 그 사유의 단위가 ‘만조 만억년’ 같은 천문학적 숫자에 달한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무한대를 지향하는 이 같은 시간관념은 서경덕의 자연철학이 지니는, 시공간적으로 무한한 사유와 맞닿는다. 다만 이처럼 학문의 범위가 넓고 다양했다는 사실이 그가 조선의 사회와 현실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의 자연철학은 흔히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오해받곤 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글을 통해 백성들의 고통을 소개하고 준엄한 목소리로 위정자들을 비판했다.

“김시습과 서경덕은 한국사상사에서 독특한 지위를 점한다. 조선시대 사상가 가운데 김시습만큼 도저하게 ‘위민적’ 입장을 견지한 인물은 없을 것이며, 조선시대 사상가 가운데 서경덕만큼 조선 철학자로서의 드높은 자존감을 보여준 인물은 없을 것이다.”(49면) 편저자 박희병의 말처럼 두 사람은 주체적 태도를 견지하면서 자기 개성을 추구한, 조선사상의 미간지를 개척한 철학자이다. 조선왕조 내내 이(理)를 중시하는 성리학이 득세하던 중에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의 비주류 사상을 꾸준히 설파하면서 기(氣)철학의 기틀을 다졌고, 이는 조선 후기의 홍대용과 최한기라는 독창적 실학사상가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문명전환의 과제에서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의 도전적 기획


지구기후와 자본주의가 불가분의 위기를 맞닥뜨리고 각종 갈등이 팽배한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떠맡은 과제는 결코 가볍거나 단순하지 않다.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을 필두로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위원회는 이 모든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수행해야 할 과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환’이라는 강력하게 실천적인 과제는 우리 모두에게 다른 삶의 전망과 지침이 필요하며, 전망과 지침으로 살아 작동할 사상이 절실함을 뜻한다. 그런 사상을 향한 다급하고 간절한 요청에 공명하려는 기획으로서, 창비 한국사상선은 한국사상이라는 분야를 요령 있게 소개하거나 새롭게 정비하는 평시적 작업을 넘어 어떤 비상한 대책이기를 열망하며 구상되었다.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에서)

서구사상은 오랜 시간 세계 지성계에서 압도적 발언권을 유지하는 한편 오늘날의 위기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대응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그 강력한 위상의 이면에 강고한 배타성과 편견이 작동하고 있음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다. 사상적인 면에서도 서구가 가진 위상은 돌이킬 수 없이 상대화되었고 보편의 자리는 진실로 대안에 값하는 사상들의 분투에 열려 있다. 이 시점이야말로 유·불·선의 회통이라는 특유의 사상적 기획이나 최제우, 박중빈의 개벽사상 등으로 한국사상이 전지구적 과제를 향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보태기에 더없이 적절한 때일 것이다. 김시습과 서경덕을 포함하는 창비 한국사상선 사상가들의 사유에는 역사와 현실을 탐문하며 새로운 삶의 보편적 전망을 구현하려 한 강인한 실천성, 그리고 사회를 변혁하는 일과 개개인의 마음을 닦는 일이 진리를 향한 단일한 도정에 있다는 깨달음이 깊이 새겨져 있다. 한반도의 경험과 지혜가 응축된 사상적 활력을 드러내는 창비 한국사상선이 문명전환의 개벽적인 사유와 실천의 지평을 열어가는 데 의미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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