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이황
조선 유학의 분수령
창비 2024.07.15.
베스트
독서/비평 top100 5주
가격
22,000
10 19,800
YES포인트?
220원 (1%)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신청가능

카드뉴스로 보는 책

카드뉴스0
카드뉴스1
카드뉴스2
카드뉴스3
카드뉴스4
카드뉴스5
카드뉴스6
카드뉴스7
카드뉴스8
카드뉴스9
카드뉴스10
카드뉴스11
카드뉴스12
카드뉴스13

상세 이미지

책소개

관련 동영상

목차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

서문

문치를 향상시킨 이학의 한평생

핵심저작

1장 이학의 전승과 확산

심법의 전승 │ 주자 학문의 본령으로 가는 길 │ 주자 이후의 이학사 │ 심학의 지침

2장 이학 체계의 건축

마음의 구조와 수행의 요령

심성의 지도 │ 체용으로 본 마음 │ 정심의 맥락 │ 인은 안과 밖이 없지만, 내 몸에 가득 찬 어진 마음으로부터 확장하여 만물에 두루 미친다 │ 마음의 미발과 이발 │ 고요한 가운데 전일한 마음을 견지해야 한다 │ 고요함을 근본으로 세우고 경, 전일함으로 동정에 관통한다 │ 경, 전일함을 견지하는 방법 │ 경의 맥락과 견지하는 방법

양명학 비판

본심의 확립을 우선시하는 견해에 대한 비판 │ 정좌의 맥락 │ 인륜과 신체적 욕구의 차이

사칠논변

사단은 선하고 칠정은 선함과 악함이 정해지지 않았다 │ 사단과 칠정이 나오는 곳이 다른 이유

이에 대한 성찰

기는 존재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이는 항상 존재한다 │ ‘물격’과 ‘이자도’의 의미 │ 이는 비어 있기 때문에 상대가 없다 │ 이가 움직이면 기가 따라서 일어나고, 기가 움직이면 이가 발현된다 │ 이에는 자체로 용이 있다 │ 이에 따라 외물에 응대할 때 마음은 비로소 공활하여 순응할 수 있다 │ 이는 지극히 존귀하여 맞설 상대가 없다

3장 출처와 학문 생활의 경계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남의 기준 │ 기개를 가지고 학문으로 단련해야 시세에 흔들리지 않는다 │ 자신을 높게 생각하면 성취가 없고, 『심경부주』는 육구연의 학문이 아니다 │ 이황과 이이의 문답 │ 이의 체회는 일상에서 해야 한다 │ 군자가 학문을 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 진보해가는 과정에서 자신을 재단하여 향상할 줄 알아야 한다 │ 정좌에만 전념하면 안 된다 │ 격물과 성의 공부를 병진해야 한다 │ 이익은 옳은 것 가운데 있다 │ 임금의 현부가 아니라 도를 실행할 수 있는 조건을 보고 진퇴를 결정한다 │ 선을 행하다 받는 비방은 감수해야 하고, 명성에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부 사이의 도리

4장 선현에 대한 평가와 전승

중국과 조선의 이학 전통 │ 조광조 선생은 시대의 사표이다 │ 도학에서 분발한 학문과 덕

5장 문치의 방략

왕정의 외교 │ 왕정을 위한 학문 │ 어린 선조에게 권고한 여섯 조목의 정책

6장 서원과 향약의 선도

백운동서원의 사액과 서원 제도의 확산을 건의하다 │ 조선시대 서원 학규의 전형 │ 예안에 동학들과 우탁을 향사하는 서원을 세우니, 서원은 선비가 소인이 아닌 군자로서 유자가 되는 곳이다 │ 이현보의 유지를 받들어 수립한 예안향약 │ 고법과 시속의 대립 │ 향당에서 자리 서열은 신분이 아닌 연령이 기준이다

7장 군자의 길

도산에 서당을 짓고 산림과 도의로 자신을 온축하다 │ 도산에 은거한 만은의 경계 │ 평소 변변치 않은 식견으로 자네들과 강론했었는데, 이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네 │ 근심하는 가운데 즐거움 있었고, 즐거워하는 가운데 근심 있었으니 │ 도산에 물러나 늦게 은거한 사람 진성 이공의 묘

8장 조선의 에토스

선생은 한 시대 유학의 종사이시다 │ 군자는 세상을 근심한다 │ 이황의 진득처는 우리의 터전이다 │ “이자수어”로 전승되는 이황의 학문과 삶

이황 연보

찾아보기

저자 소개2

퇴계 이황

관심작가 알림신청
 

退溪 李滉 (1501-1570)

등으로 합격, 32세에 문과 초시 2등으로 합격하고 다음 해인 33세(1533)에 반궁(泮宮)에 유학하며 경상도 향시에 합격한다. 34세에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권지부정자와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36세에 선무랑과 성균관전적을 거쳐 9월 호조좌랑에 임명되었다. 37세에 선교랑, 승훈랑, 승의랑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 박씨의 상을 당해 관직에서 물러난다. 39세에 3년 상을 마치고 홍문관부수찬을 거쳐 수찬지제교로 승진해 40세에는 사간원정언, 승문원교검, 경연시독관, 춘추관기주관교리에 임명되었고 42세에는 홍문관부교리, 충청도·강원도어사로 순찰했으나, 43세에 병을 이유로 관직을
등으로 합격, 32세에 문과 초시 2등으로 합격하고 다음 해인 33세(1533)에 반궁(泮宮)에 유학하며 경상도 향시에 합격한다. 34세에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권지부정자와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36세에 선무랑과 성균관전적을 거쳐 9월 호조좌랑에 임명되었다. 37세에 선교랑, 승훈랑, 승의랑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 박씨의 상을 당해 관직에서 물러난다.

39세에 3년 상을 마치고 홍문관부수찬을 거쳐 수찬지제교로 승진해 40세에는 사간원정언, 승문원교검, 경연시독관, 춘추관기주관교리에 임명되었고 42세에는 홍문관부교리, 충청도·강원도어사로 순찰했으나, 43세에 병을 이유로 관직을 사임했다. 이후 종친부전첨, 세자시강원필선, 사간원사간, 성균관사성 등에 여러 차례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44세 10월에 상경한 후 중종이 승하하자 부고와 시장을 집필했다. 47세 7월에 안동부사에 제수되었으나 사임했다. 홍문관응교에 제수되어 상경해 사퇴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48세에 외직을 자청해 단양군수로 취임했다. 10월에 풍기군수로 전임했다. 49세에 소수 서원을 개칭해 사액 서원의 효시가 되었다. 9월에 신병으로 사임해 귀향했다. 그러나 신병을 이유로 세 번이나 사직원을 제출한 후 회답을 기다리지 않고 퇴계로 돌아와 임소를 이탈했다는 죄목으로 직첩을 박탈당했다. 50세에 예안 하명동에 한서암(寒棲庵)을 짓고 학문에 전념한다. 53세 4월에 성균관대사성에 제수되었으나 사퇴한다.

54세에 형조·병조참의, 첨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고 경복궁에 새로 지은 여러 전각의 편액을 썼으나 이듬해 병으로 모든 관직을 사임하고 귀향한다. 56세에 도산에서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를 편찬 완성하고 다음 해인 57세에 도산 서당을 지을 터를 마련하고 『계몽전의(啓蒙傳疑)』를 저술했다. 58세에 대사성에 임명되자 사직을 청했으나 허락받지 못하고 공조참판에 임명되었다. 59세에 휴가를 얻어 귀향한 후 관직을 사임하고 『송계원명리학통록(宋季元明理學通錄)』을 저술했다.

60세에 고봉 기대승(奇大升)과 편지로 사단칠정론(四端七情)을 변론했다. 도산서당(陶山書院)이 완공된다. 61세에 「도산기(陶山記)」를 저술했다. 64세 2월에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의 발문을 썼으며 65세에 『경현록(景賢錄)』, 『역학계몽(易學啓蒙)』, 『명당실어(名堂室語)』 등을 저술했다. 66세에 공조판서와 홍문관·예문관대제학에 제수되었고, 다음 해인 67세에 다시 예조판서, 경연춘추관사로 임명되었으나 사의를 표명하고 8월에 귀향, 역동 서원(易東書院)을 새로 건축했다.

68세에 선조 원년 의정부우찬성과 판중추부사에 제수되자 6월에 소명을 어기지 못해 상경해 양관의 대제학을 겸임했다. 재임 중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저술했다. 69세(1569)에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사의를 표명하고 귀향했다. 70세 7월 역동 서원에 가서 『심경(心經)』을 강의하고, 8월 역동 서원의 낙성식에 참여했다. 11월 격물치지설(格物致知說)을 개정하다 병이 심상치 않자 12월 봉화현감으로 재직 중이던 큰아들을 사직, 귀가하게 해 장례 준비를 갖추도록 했다.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는 명문(銘文)과 자명(自銘)을 몸소 짓고, 임종 직적 매화분에 물을 주라는 말과 함께 한서암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영의정에 추서되었다. 저서로는 『계몽전의』, 『송계원명이학통론』, 『퇴계집』 등이 있다.

퇴계 이황의 다른 상품

편저이봉규

관심작가 알림신청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인하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조선시대 성리학, 예학, 실학이다. 논문으로 「조선시대 유학연구 재독」(2003), 「실학의 유교사적 맥락과 유교 연구 탐색」(2015), 「이황의 『가례』 연구와 전승」(2020), 「발전사의 시야에서 본 이이의 이(理)개념」(2021) 등이 있고, 공저로 『조선시대 충청지역의 예학과 교육』(2001), 『다산 정약용 연구』(2012), 『풍석 서유구 연구 하』(2015), 『서학의 충격과 접변』(2019), 『밀암 이재 문파 연구』(2021) 등이 있다. 역서로 『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인하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조선시대 성리학, 예학, 실학이다. 논문으로 「조선시대 유학연구 재독」(2003), 「실학의 유교사적 맥락과 유교 연구 탐색」(2015), 「이황의 『가례』 연구와 전승」(2020), 「발전사의 시야에서 본 이이의 이(理)개념」(2021) 등이 있고, 공저로 『조선시대 충청지역의 예학과 교육』(2001), 『다산 정약용 연구』(2012), 『풍석 서유구 연구 하』(2015), 『서학의 충격과 접변』(2019), 『밀암 이재 문파 연구』(2021) 등이 있다. 역서로 『정체전중변』(공역)(1995), 『역주시경강의』(공역)(2010), 『의례역주8』(공역)(2015), 『역주예기천견록5』(2021), 『상서고훈』(공역)(2021) 등이 있다.

이봉규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7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00쪽 | 536g | 155*255*18mm
ISBN13
9788936480349

출판사 리뷰

조선 성리학을 이끈 방향타이자 동아시아 주자학의 교과서

이황은 1501년(연산군 7년)에 태어났다. 그다음 해 부친이 세상을 떠나고 숙부 이우의 보살핌과 지도를 받았는데 숙부마저 이황이 17세 때 세상을 떠나면서 그 뒤로는 특정한 스승 없이 혼자서 공부를 이어갔다. 성균관에서 공부했으며 34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1543년 『주자대전』 간행 시에 교정을 맡았으며 그 뒤로 『주자대전』을 새롭게 고증하여 그 주제를 정확히 규명하는 실증적 연구를 이어갔다. 특히 주희의 문집 전체를 통독한 뒤 『주자서절요』를 펴냈는데, 이 『주자서절요』는 당대 동아시아 주자학의 주요 교과서처럼 쓰였고, 이황의 이론은 이후 조선 이학을 이끄는 방향타가 되었다.

벼슬에는 큰 뜻이 없어 명종이 여러차례 불렀을 때에도 얼마간 조정에서 일하다가 다시 귀향하기 일쑤였다. 1567년에는 명나라 사신을 응대하는 제술관에 임명되어 명 사신들에게 한반도를 대표하는 유학 지식인들(우탁, 정몽주에서부터 조광조와 서경덕에 이르기까지)을 소개했다. 뒤이어 선조 대에도 왕의 부름을 받고 조정에서 일하며 당시 조정의 급선무를 정리하여 「무진육조소」를 올렸다. 또한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올려 군주가 사적인 욕망을 자제하기 위해 일상에서 항상 성학(聖學, 성인이 되는 학문)을 갈고닦을 것을 당부했다.

이황이 유학 연구와 실천에 매진했던 때는 중국에서는 양명학이, 일본에서는 불교가 성행하던 때였다. 이황은 당시 유행하는 중국 양명학에 맞서 정통 주자학의 입장에서 인간의 본성을 해명하고 실천했다. 이황 이론의 핵심은 “선학(禪學)처럼 인륜의 마음을 깨닫고 각성하는 것이 아니라, 외물이 오면 응대할 수 있게 인륜의 이치가 온전하게 갖추어져 있는 마음의 상태를 잘 견지하는 것”(18면)에 있었다. 이 내용을 담은 『연평답문』은 특히 일본에서 이학을 전파하는 데에 주요한 근거가 되었다.

1555년 귀향한 뒤로 이황은 본격적으로 주희의 편지 중에서 여러 이론적 쟁점 및 정론이 되는 부분을 선별했다. 이 작업은 단순히 『주자서절요』와 『자성록』이라는 해설서를 펴냈다는 결과를 넘어, 이론을 실천으로 전환해내지 못하는 이황 자신의 내적 간극을 좁히는 노력이었다는 점에서 그에게 큰 의미가 있다. 이처럼 지식을 축적함과 동시에 실천을 통해 인격의 성숙을 꾀하는 시도는 당대 동아시아 유학자들에게 절실히 다가왔고, 자연히 『주자서절요』와 『자성록』은 당대 유학자들의 주요 교과서로 자리매김했다.

이황은 성균관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접한 『심경부주』를 통해 『심경』을 평생 수행의 지침으로 삼기도 했다. 이 또한 조선 유학자들의 또다른 지침이 되어, 이후 조선에서는 『심경』을 공부함으로써 이학의 심법(心法)을 실천하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심경』은 당사자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요순의 마음과 같게 하는 성학(聖學)의 지침이 되고, 임금을 향해서는 요순 같은 성군으로 인도하는 격군(格君)의 지침이 되며, 백성을 위해서는 요순처럼 백성을 친애하는 안민(安民)의 지침이 되었다.”(20면)

이황은 유년 시절부터 이(理)에 대해 깊이 관심을 가졌다. 12세 때 숙부에게 “무릇 사물에서 옳은 것이 이(理)인가요”라고 묻고 자신의 오랜 의문을 해소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뒤이어 공부를 이어가면서 인간의 본성이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으로 발현되는 과정을 이(理)와 기(氣)로 설명하는 문제를 연구했다. 이 같은 성찰은 기대승과의 서신 왕래를 통해 8년에 걸쳐 논변으로 전개되었고, 이것이 바로 이른바 사칠논변, 사단칠정논변이다. 특히 서경덕의 제자인 이구가 체(體)와 용(用)이 어떤 실체가 아니라 추상적 개념이라고 제기했을 때에 이황은 이(理) 자체가 구체적인 실체〔體〕이며 사물에서 발현될 때에 용(用)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사칠논변은 조선 후기 내내 유학자들에게 회자되며 유학 이론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단서가 되었다. 이황의 업적 중에서는 서원의 중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서는 서원과 향약에 관련한 이황의 글 가운데, 그가 백록동서원의 사액을 요청했던 글과 이산서원의 학규, 역동서원의 건립을 기념하여 쓴 글, 향약조례, 그리고 향회에서 나이를 기준으로 자리를 정해야 한다고 밝힌 글 등을 뽑아 수록했다.

시대를 넘어 학파를 넘어, 조선 유학의 에토스가 되다

이황은 자신의 죽음 이후에 자신에 대한 과장된 평가를 막기 위해 직접 본인의 일생을 정리해두었다. 이 책에는 이황이 만년에 적은 「도산기」와 「도산잡영」을 비롯하여 「자명」 「고종기」 「유계」를 수록했는데, 이는 죽음을 맞이하는 대학자의 실제 모습을 생생히 엿볼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현실의 어려움을 감내하면서 학문을 즐기는 ‘지식인의 한 전형’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황을 ‘조선의 에토스’ 그 자체로 평가해도 손색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명전환의 과제에서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의 도전적 기획


지구기후와 자본주의가 불가분의 위기를 맞닥뜨리고 각종 갈등이 팽배한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떠맡은 과제는 결코 가볍거나 단순하지 않다.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을 필두로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위원회는 이 모든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수행해야 할 과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환’이라는 강력하게 실천적인 과제는 우리 모두에게 다른 삶의 전망과 지침이 필요하며, 전망과 지침으로 살아 작동할 사상이 절실함을 뜻한다. 그런 사상을 향한 다급하고 간절한 요청에 공명하려는 기획으로서, 창비 한국사상선은 한국사상이라는 분야를 요령 있게 소개하거나 새롭게 정비하는 평시적 작업을 넘어 어떤 비상한 대책이기를 열망하며 구상되었다.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에서)

서구사상은 오랜 시간 세계 지성계에서 압도적 발언권을 유지하는 한편 오늘날의 위기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대응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그 강력한 위상의 이면에 강고한 배타성과 편견이 작동하고 있음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다. 사상적인 면에서도 서구가 가진 위상은 돌이킬 수 없이 상대화되었고 보편의 자리는 진실로 대안에 값하는 사상들의 분투에 열려 있다. 이 시점이야말로 유·불·선의 회통이라는 특유의 사상적 기획이나 최제우, 박중빈의 개벽사상 등으로 한국사상이 전지구적 과제를 향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보태기에 더없이 적절한 때일 것이다. 이황을 포함하는 창비 한국사상선 사상가들의 사유에는 역사와 현실을 탐문하며 새로운 삶의 보편적 전망을 구현하려 한 강인한 실천성, 그리고 사회를 변혁하는 일과 개개인의 마음을 닦는 일이 진리를 향한 단일한 도정에 있다는 깨달음이 깊이 새겨져 있다. 한반도의 경험과 지혜가 응축된 사상적 활력을 드러내는 창비 한국사상선이 문명전환의 개벽적인 사유와 실천의 지평을 열어가는 데 의미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리뷰/한줄평3

리뷰

10.0 리뷰 총점

한줄평

10.0 한줄평 총점

클린봇이 부적절한 글을 감지 중입니다.

설정
19,800
1 19,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