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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유길준·주시경
조선의 근대를 개척하다
창비 2024.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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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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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
서문
삼인행三人行

핵심저작

【김옥균】

1장 치도약론
2장 갑신일록
3장 마지막 상소

부록
소설 『청년 김옥균』에 부친 박영효의 증언
청산묘비문

【유길준】

1장 과문폐론
2장 언사소
3장 중립론
4장 서유견문
5장 흥사단 취지서
6장 소학교육에 대한 의견
7장 노동야학 독본 제일
8장 『대한문전』 자서
9장 『20세기지대참극 제국주의』의 서

부록
선친약사

【주시경】

1장 국문론
2장 국문
3장 국어와 국문의 필요
4장 한나라말
5장 큼과 어렵음

부록
『독립신문』 창간사

김옥균 연보
유길준 연보
주시경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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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4

조선 후기의 정치인이자 혁명가로,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고 개화당을 조직하여 개화사상을 확산시키며 활동했다. 1884년 갑신정변을 주도하여 개화파 정권을 수립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일본으로 망명한 뒤 중국 상해에서 자객에게 암살당했다. 저서로 『기화근사』 『치도약론』 『갑신일록』 등이 있다.

周時經

1876~1914. 황해도 봉산 출생. 국어학자. 초명은 상호相鎬, 일명 한힌샘, 백천白泉.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다가 1894년 9월 배재학당에 입학. 도중에 탁지부 관비생으로 선발되어 인천부 관립이운학교 속성과 관비생으로 선발되어 졸업. 1896년 4월 다시 배재학당 보통과에 입학. 1896년 4월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에게 발탁되어 독립신문사 회계사무 겸 교보원이 됨. 순한글 신문제작에 종사하게 되자, 그 표기 통일을 해결하기 위한 국문동식회를 조직하여 그 연구에 진력함. 동시에 서재필이 주도하는 배재학당협성회, 독립협회에 참여하였다가 영국 선교사 스크랜턴의 한어교사,
1876~1914. 황해도 봉산 출생. 국어학자. 초명은 상호相鎬, 일명 한힌샘, 백천白泉.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다가 1894년 9월 배재학당에 입학. 도중에 탁지부 관비생으로 선발되어 인천부 관립이운학교 속성과 관비생으로 선발되어 졸업. 1896년 4월 다시 배재학당 보통과에 입학. 1896년 4월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에게 발탁되어 독립신문사 회계사무 겸 교보원이 됨. 순한글 신문제작에 종사하게 되자, 그 표기 통일을 해결하기 위한 국문동식회를 조직하여 그 연구에 진력함. 동시에 서재필이 주도하는 배재학당협성회, 독립협회에 참여하였다가 영국 선교사 스크랜턴의 한어교사, 상동청년학원 강사를 지내면서 1900년 6월에 배재학당 보통과를 졸업. 신학문에 대한 지식 열정으로 야간에 흥화학교 양지과를 마치고, 정리사에서는 수물학을 3년간 하여 34세가 되도록 공부함. 명신학교, 숙명여자고등학교 등의 강사 활동과 배재학당협성회 전적과 찬술원, 독립협회 위원, 서우학회 협찬원, 대한협회 교육부원, 보중친목회 제술원 등을 통한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함.
국어운동 활동으로 한어개인교사, 상동사립학숙 국어문법과 병설, 상동청년학원 교사 및 국어야학과 설치, 국어강습소 및 조선어강습원 개설 등에서 심혈을 기울임. 경술국치 후에는 숙명여자고등학교를 비롯하여 9개교에서 가르치는 한편, 일요일에는 조선어강습원에서 수많은 후진을 깨우치기에 ‘주보따리’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동분서주하며 정열을 불태웠음. 국문동식회를 비롯한 의학교내 국어연구회 연구원 및 제술원, 학부 국문연구소 주임위원, 국어강습소 졸업생과 설립한 국어연구학회, 조선광문회 사전편찬 등의 활동을 통하여 깊어졌음. 새 받침에 의한 표의주의적 철자법, 한자폐지와 한자어의 순화, 한글의 풀어쓰기 등 어문혁명을 일으킴.
1914년 7월 27일 별세. 1980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함. 1991년 10월 문화부 주관 이달의 문화 인물로 선정됨.
저서로 필사본 『국문문법』(1905), 유인본 『대한국어문법』(1906), 국문연구소 유인본 「국문연구안」(1907∼1908), 『국어문전음학』(1908), 필사본 『말』(1908년 경), 국문연구소 필사본 『국문연구』(1909), 유인본 『고등국어문전』(1909년 경)등과, 『국어문법』(1910), 『소리갈』(1913), 『말의 소리』(1914)과 『월남망국사』(1907)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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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저유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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兪吉濬

개화사상가, 계몽운동가. 갑오개혁을 주도한 정치관료. 근대한국 최초의 일본, 미국 유학생. 한성 계동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성무(聖武), 호는 구당(矩堂). 유년기에 유학교육을 받았고 1870년대 박규수의 사랑방을 드나들면서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김윤식 등과 교유하면서 개혁사상을 접했다. 1881년 조사시찰단 어윤중을 수행하여 일본을 견문하였고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게이오의숙에서 수학하면서 문명개화론을 접했다. 귀국 후 『한성순보』 발간에 간여하였다. 1883년 7월 보빙사 민영익의 미국행을 수행하였고 미국에 남아 매사추세츠 주 샐럼 시 인근의
개화사상가, 계몽운동가. 갑오개혁을 주도한 정치관료. 근대한국 최초의 일본, 미국 유학생. 한성 계동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성무(聖武), 호는 구당(矩堂). 유년기에 유학교육을 받았고 1870년대 박규수의 사랑방을 드나들면서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김윤식 등과 교유하면서 개혁사상을 접했다. 1881년 조사시찰단 어윤중을 수행하여 일본을 견문하였고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게이오의숙에서 수학하면서 문명개화론을 접했다. 귀국 후 『한성순보』 발간에 간여하였다. 1883년 7월 보빙사 민영익의 미국행을 수행하였고 미국에 남아 매사추세츠 주 샐럼 시 인근의 덤머아카데미(Governor Dummer Academy)에서 수학하였다. 갑신정변이 발발하자 1885년 귀국하지만 개화당 세력으로 몰려 포도대장 한규설의 자택에서 6년간 연금생활을 보냈다. 1894년 내부협판, 내부대신이 되어 갑오개혁을 주도했지만 1896년 아관파천으로 김홍집 내각이 붕괴하면서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1907년 고종 퇴위 후 사면을 받아 귀국한 이후에는 흥사단, 한성부민회, 노동야학회 등 사회활동과 교육사업에 전념하였다. 『서유견문』(1895)은 연금생활 중에 집필한 대표작이다. 초기 저작으로 과거제 폐지를 주장한 「과문폐론」(1877)이 있고, 일본 유학 후에 「언사소(言事疏)」(1883), 「경쟁론」(1883),「세계대세론」(1883)을 집필하였고, 연금 중에는 「중립론」(1885), 「국권」(1888), 「지제의(地制議)」(1891), 「세제의(稅制議)」(1891)를 저술하였다. 만년에는 「평화극복책」(1907), 『노동야학독본』(1908), 『대한문전』(1909) 등을 출간하였다. 『정치학』(라트겐), 『폴란드쇠망사』, 『프러시아 프리드리히 대왕 7년전쟁사』, 『크리미아 전쟁사』, 『이탈리아 독립전쟁사』 등을 번역하기도 했다. 한시집으로 김윤식이 엮은 『구당시초(矩堂詩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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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최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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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I, WON-SHIK,崔元植, 호 : 송현(松絃)

1949년 인천에서 태어나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으로 등단했다.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주간,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을 역임하고 현재 인하대 명예교수이다. 평론집 『민족문학의 논리』 『생산적 대화를 위하여』 『문학의 귀환』 『제국 이후의 동아시아』 『소수자의 옹호』 『문학과 진보』, 연구서 『한국 근대소설사론』 『한국 근대문학을 찾아서』 『한국계몽주 의문학사론』 『문학』 『이순신을 찾아서』 『기억의 연금술』 등이 있다. 대산문학상, 임화문학예술상, 용재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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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7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96쪽 | 526g | 155*225*18mm
ISBN13
9788936480363

출판사 리뷰

구한말 조선의 대표적 지성 3인의 엇갈린 삶

‘갑신정변의 혁명가, 고균 김옥균.’ 세간의 평가는 그의 섣부르며 성급했던 결정, 부득불일지언정 한반도에 일본을 끌어들여 그 영향력을 키워준 오판 등을 주로 언급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갑신정변이 단순히 김옥균 무리의 독자적인 쿠데타가 아니라 동아시아 전반을 뒤흔든 대격동의 출발점이었다고 못 박는다. 편저자는 갑신정변의 출발점으로, 멀리 베트남에서 일어난 청불전쟁(1884~85)을 꼽는다. 청이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어수선한 틈을 타 김옥균이 대사를 감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알듯 김옥균의 시도는 실패로 끝이 나고, 그 뒤 청이 프랑스에 패하면서 청나라의 권력이 양무파에서 변법파로 넘어간다. 일본 역시 기존에 내걸었던 ‘아시아 연대’의 깃발을 내리고 ‘아시아에서 벗어나 서구사회를 지향한다’는 기조의 탈아입구를 선언하며 본격적인 침략의 길을 걷는다. 한마디로 갑신정변이 향후 동아시아 갈등과 분쟁의 씨앗이 된 셈이다.

김옥균 사상의 열쇳말 중 첫번째는 ‘조선프랑스론’이라 할 수 있다. 김옥균은 당시 영국과 프랑스가 각각 입헌군주제와 공화제를 따르는 것을 면밀히 비교했고, 특히 일본이 영국을 따라 입헌군주제를 선호한다는 것을 참고했다. 조선을 ‘아세아의 불란서’로 만들자고 했던 김옥균의 꿈은 곧 그가 “일본과 대결할 다른 조선”(16면)을 꿈꾸었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두번째 열쇳말은 ‘삼화론(三和論)’이다. 여기서 삼(三)은 조선·청·일본을 가리킨다. 갑신정변 이전까지 김옥균은 반청(反淸)을 분명히 했지만 그 뒤로는 삼화론을 통해 조선을 중립국으로 만들 것을 꿈꿨다. 즉 김옥균의 꿈은 “그 간신한 독립을 견지하면서 궁극에는 일본에도 청에도 당당한 프랑스 같은 강국을 세우는 꿈”(18면)이었다.

그 어수선했던 시기에 김옥균이 이처럼 폭넓고도 날카로운 입론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실학 덕택이었다. 서울 재동의 그 유명한 환재 박규수의 사랑방이 김옥균과 그 동료들의 회의 장소였고, 그들은 그곳에서 자연스레 연암 박지원과 환재의 실학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이 관점에서 보면, 갑신정변은 김옥균과 그의 친구들이 박규수를 통해 전수받은 연암학파의 실학으로 넓혀나간 지식과 시야를 토대로 조선의 안팎에서 벌인 사투라고 정의할 수 있다. 김옥균 편의 핵심저작 첫번째 글은 「치도약론」으로, 이 글은 김옥균이 실학을 어떻게 계승하고자 했는지가 또렷이 드러난다. 이어지는 『갑신일록』은 갑신정변 당시의 긴박감이 생생히 담겨 있는 글로, 편저자가 원문의 열악한 상태를 감수하고 최대한 정본을 만들고자 애를 쓴 작품이다. 「마지막 상소」는 세계열강의 형편을 날카롭게 진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조선의 진로를 밝힌 논설로, 김옥균 “최후의, 그러나 최고의 논설”(24면)로 꼽힌다.

“고균이 난세의 혁명가라면 구당은 치세의 능신(能臣)이다.”(24면) 구당 유길준을 설명한 이 한마디 말처럼 유길준은 어지러운 정국 아래에서 다재다능함을 뽐내면서, 대작 『서유견문』을 비롯해 여러 애국계몽 관련 논설을 펼쳐 ‘국민주의’ 사상가로서 큰 역할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에 나라를 뺏긴 것을 평생 자책하며 여생을 산 불행한 애국자라고도 할 수 있다. 앞서 김옥균이 ‘프랑스 공화국’에 기울었다면 유길준은 ‘영국 입헌군주제’에 매료되었고 이 같은 토대 위에서 ‘양절체제(복합체제)’를 더욱 벼렸다. 그는 당시의 조선이 청나라에 조공을 바쳤기에 하나의 속국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독립국임을, 즉 복합체제하에 놓였으니 청을 잘 달래서 독립을 얻어야 한다고 보았다. 좀더 정확하게 쓰자면 “청일전쟁 전에는 청을 달래고, 후에는 일본을 설득하는 현실주의를 구사한”(26면) 소국주의자였다.

다른 한편, 김옥균이 당시로선 급진적인 평등파였다면 유길준은 ‘국민개사론자’ 즉 ‘누구나 선비가 될 수 있다’는 기조하에서 특히 농업, 상업, 공업의 장인들이 도약해야 한다는 실용적 사고를 펼쳤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십세기적 대참극 제국주의』에 부친 서」라는 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 글에서 “국민주의도 제국주의도 바로 통일의 도구로 되는 데 불과”(32면)하다며 자신의 실용주의자적 면모를 선보이는데, 유길준의 이 같은 현실주의와 세계정부론이라는 이상이 연결되는 지점을 이 책의 백미로 꼽을 수 있다. 그밖에 과거제 폐지를 주장하는 「과문폐론」, 러시아 문제를 언급한 「언사소」, 이미 널리 알려진 「중립론」, 그리고 『서유견문』 등 유길준이 써낸 여러 다채로운 글을 담았다.

한힌샘 주시경의 별명은 ‘주보따리’였다고 한다. 언제나 분주한 몸짓으로 강의용 책을 큰 보자기에 싸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그의 모습에서 붙은 이름이다. 비단 이와 같은 예를 들지 않더라도, 주시경이 과학적 연구에 바탕을 두어 국어를 정립하고 보급하는 데 열정을 보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의 업적을 꼽자면, 국어를 문법적으로 분석해 품사론의 기틀을 세운 점, ‘모든 종성은 다시 초성을 쓴다’라는 훈민정음의 원칙을 되살린 점, ‘가로풀어쓰기’를 도입한 점 등으로, 나열하기에도 벅찰 정도다. 이뿐 아니라 ‘국어연구학회’부터 ‘배달말글몯음’ ‘한글모’에 이르는 연구조직들을 만들어냄으로써 현대 국어학의 산실을 조성한 것 또한 그의 탁월한 면모 중 하나다. 국어 연구자를 양성하고자 한 그의 노력이 이후 분단체제하에서도 남과 북의 성실한 국어학자들을 꾸준히 배출해내는 토대가 되었다는 점은 따로 기록해둘 만하다.

주시경은 국어학자를 넘어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그의 독립협회 활동은 그 자체로 혁혁했거니와, 그가 기독교에서 대종교로 개종하는 등 당대의 개벽사상 등에도 회통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 책에서는 『주시경전집』에서 네편을 추려내 소개했는데, 그 첫번째 글이 『독립신문』에 발표한 그의 첫 논문 「국문론」이다. 22세의 어린 나이에 쓴 글임에도 무척 과감하면서도 그 요지가 잘 정돈되어 있다. 그밖에 「국문」 「국어와 국문의 필요」 「한나라말」 「큼과 어렵음」 등을 실었다.

문명전환의 과제에서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의 도전적 기획


지구기후와 자본주의가 불가분의 위기를 맞닥뜨리고 각종 갈등이 팽배한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떠맡은 과제는 결코 가볍거나 단순하지 않다.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을 필두로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위원회는 이 모든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수행해야 할 과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환’이라는 강력하게 실천적인 과제는 우리 모두에게 다른 삶의 전망과 지침이 필요하며, 전망과 지침으로 살아 작동할 사상이 절실함을 뜻한다. 그런 사상을 향한 다급하고 간절한 요청에 공명하려는 기획으로서, 창비 한국사상선은 한국사상이라는 분야를 요령 있게 소개하거나 새롭게 정비하는 평시적 작업을 넘어 어떤 비상한 대책이기를 열망하며 구상되었다.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에서)

서구사상은 오랜 시간 세계 지성계에서 압도적 발언권을 유지하는 한편 오늘날의 위기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대응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그 강력한 위상의 이면에 강고한 배타성과 편견이 작동하고 있음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다. 사상적인 면에서도 서구가 가진 위상은 돌이킬 수 없이 상대화되었고 보편의 자리는 진실로 대안에 값하는 사상들의 분투에 열려 있다. 이 시점이야말로 유·불·선의 회통이라는 특유의 사상적 기획이나 최제우, 박중빈의 개벽사상 등으로 한국사상이 전지구적 과제를 향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보태기에 더없이 적절한 때일 것이다. 김옥균, 유길준, 주시경을 포함하는 창비 한국사상선 사상가들의 사유에는 역사와 현실을 탐문하며 새로운 삶의 보편적 전망을 구현하려 한 강인한 실천성, 그리고 사회를 변혁하는 일과 개개인의 마음을 닦는 일이 진리를 향한 단일한 도정에 있다는 깨달음이 깊이 새겨져 있다. 한반도의 경험과 지혜가 응축된 사상적 활력을 드러내는 창비 한국사상선이 문명전환의 개벽적인 사유와 실천의 지평을 열어가는 데 의미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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