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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두·이충익·심대윤
참된 마음의 공부길
창비 2026.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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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

서문
정제두·이충익·심대윤의 ‘실기實己’ 사상

핵심저작

[ 정제두 ]

1장 주자학인가 양명학인가
2장 생리(生理)가 학문의 대상이다
3장 격물치지와 사단칠정 재론
4장 신 학문의 기획과 조선학의 창시

[ 이충익 ]

1장 가짜 학문, 가짜 군자가 혐오스럽다
2장 세간법世間法과 출세법出世法은 두 길이 아니다
3장 기초학문에서 다시 시작하자
4장 우리는 슬픔을 함께한다

[ 심대윤 ]

1장 노동과 연대, 그리고 공부
2장 선악과 시비의 교조적 분할에 반대한다
3장 공공의 복리를 위하여
4장 자기 일에 힘쓰는 것이 인간의 도리

참고문헌
강화학파 인맥
정제두 연보
이충익 연보
심대윤 연보
찾아보기

저자 소개 4

鄭齊斗

조선 후기의 학자로, 주자학 중심의 학문 풍토를 비판하고 양명학을 적극 수용·연구해 강화학파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했다. 지행합일과 실천을 중시한 사유로 후대에 영향을 미쳤다. 주요 저술로 『학변』 『존언』 『중용설』 『논어설』 『맹자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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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忠翊

조선 후기의 학자로, 강화학파 양명학을 계승·발전시키며 유학·노장·불교 사상을 두루 이해하고 회통하려 했다. 참과 거짓을 엄격히 구별하며 당시의 폭력정치를 비판했다. 주요 저술로 『초원유고』 『초원담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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沈大允, 진경, 백운·석교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진경(晉卿), 호는 백운(白雲)·석교(石橋)이다.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준소의 영수 심수현의 고손자이고, 강화학파의 중심 인물 소론 산림 대사헌 심육의 동생인 이조참판 심악의 증손자이다. 그의 정치·경제적인 처지때문에 교유폭운 매우 좁았으나, 이희영(李曦榮), 강혜백(姜惠伯), 유영건(柳榮健), 정치형(鄭稚亨) 등과 교유하였다. 심대윤의 집안은 증조부 심악(沈?)이 나주괘서사건(羅州掛書事件)에 이어 일어난 1755년(영조 31)의 을해옥사(乙亥獄事)에 연루되면서 일거에 몰락하고 말았다. 이 사건의 후유증으로 그는 벼슬길이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진경(晉卿), 호는 백운(白雲)·석교(石橋)이다.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준소의 영수 심수현의 고손자이고, 강화학파의 중심 인물 소론 산림 대사헌 심육의 동생인 이조참판 심악의 증손자이다. 그의 정치·경제적인 처지때문에 교유폭운 매우 좁았으나, 이희영(李曦榮), 강혜백(姜惠伯), 유영건(柳榮健), 정치형(鄭稚亨) 등과 교유하였다.

심대윤의 집안은 증조부 심악(沈?)이 나주괘서사건(羅州掛書事件)에 이어 일어난 1755년(영조 31)의 을해옥사(乙亥獄事)에 연루되면서 일거에 몰락하고 말았다. 이 사건의 후유증으로 그는 벼슬길이 막히고 겨우 양반의 명맥만 유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처지는 그가 학문 연구에 몰두하게 된 원인이 된다. 그는 한양(漢陽)에서 경주이씨(慶州李氏)와 혼인을 하였는데, 그의 처가에 대한 구체적인 사정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는 혼인 후 오랫동안 자식이 없어 넷째 동생인 심의돈(沈宜敦)의 아들인 심명택(沈命澤)을 양자로 들였다. 그는 39세 때에 한양을 떠날 정도로 경제적 처지가 매우 곤란하여 노모와 두 동생과 함께 안성(安城)의 가곡(佳谷)으로 이주를 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경제적인 곤궁을 해결하기 위해 목반(木槃)을 만드는 천한 일에 종사하면서도 학문적인 노력에는 변함이 없었다. 심대윤은 저술에 몰두하다가 1872년(고종 9) 7월 25일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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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심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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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1955년 충북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일본 교토(京都)대학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한문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한자한문연구소장을 역임하고, 현재 동아한학연구 편집위원장, 애산학회 이사 및 편집위원장, 율곡국학원 이사로 있다. 저서로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단독 및 공저 1-4), 『조선시대 한문학과 시경론』, 『한학입문』, 『한국한문기초학사』 1-3, 『다산과 춘천』, 『여행과 동아시아 고전문학』, 『김시습평전』, 『안평 : 몽유도원도와 영혼의 빛』, 『한국한시의 이해』, 『한시의 세
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1955년 충북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일본 교토(京都)대학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한문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한자한문연구소장을 역임하고, 현재 동아한학연구 편집위원장, 애산학회 이사 및 편집위원장, 율곡국학원 이사로 있다. 저서로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단독 및 공저 1-4), 『조선시대 한문학과 시경론』, 『한학입문』, 『한국한문기초학사』 1-3, 『다산과 춘천』, 『여행과 동아시아 고전문학』, 『김시습평전』, 『안평 : 몽유도원도와 영혼의 빛』, 『한국한시의 이해』, 『한시의 세계』, 『한시의 서정과 시인의 마음』, 『한시의 성좌』, 『김삿갓 한시』, 『(증보)한문산문미학』, 『간찰』, 『참요』, 『내면기행』, 『산문기행』, 『국왕의 선물』 1-2, 『옛 그림과 시문』, 『한국의 석비문과 비지문』, 『호, 주인옹의 이름』, 『한국의 과문(科文)의 양식과 시제(試題)』, 『응제(應製)와 제술(製述)』, 『서울 고전만유』, 『성호사설의 변정·상론·제안』 등 40여 종이 있다. 역서로 『주역철학사』, 『불교와 유교』, 『금오신화』, 『역주 원중랑집』(공역), 『한자 백가지 이야기』, 『선생, 세상의 그물을 조심하시오』, 『증보역주 지천선생집』(공역), 『서포만필』 1-2, 『삼봉집』, 『기계문헌』 1-6, 『심경호 교수의 동양고전강의 : 논어』 1-3, 『육선공주의』 1-2(공역), 『동아시아 한문학 연구의 방법과 실천』, 『도성행락(圖成行樂) : 명청문인의 화상 제영』, 『여유당전서(시)』(네이버 지식백과), 『춘향전·춘향가』, 『을병조천록』, 『신편신역 청련집』, 『강화학파 정제두·이충익·심대윤』(한국사상선), 『신편신역 김시습전집』 등 40여 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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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68쪽 | 548g | 153*224*22mm
ISBN13
9788936481131

출판사 리뷰

마음을 실하게 하는 공부, 이를 위한 새로운 모색

강화학파의 성립을 이끈 정제두(1649~1736)는 정몽주의 11대손으로 1649년 서울에서 태어나 청년기에 박세채와 윤증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32세 때 벼슬이 내려졌지만 정계에 진출하지 않은 채로 국왕에게 상소를 올리며 정국 운영에 영향력을 미쳤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여 율곡 이이 등을 문묘에서 출향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경기도 안산으로 낙향했다. 박세채와 윤증 등 당대의 유학자들이 정제두를 가리켜 주자학에 충실하지 못함을 책망하자, 양명학적 입장을 들어 주자학을 비판하기도 했다. 78세이던 1726년에는 양명학을 주장한다는 이유로 탄핵의 계를 받았다.

정제두의 사상에 대해서 이 책의 편자 심경호는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정리했다. “사물의 이치인 물리(物理)를 논의의 중심에 두지 않고 역동적인 이치인 생리(生理)를 사유의 중심에 두어, 사고의 궁극적 대상을 인간에 두었다.”(26면) 즉 정제두는 이(理)를 물리(物理)와 생리(生理)로 나누면서, 물리는 공허하고 죽은 생각인 반면에 생리는 정신생기(精神生氣)를 가진 인간의 참다운 성(性)을 뜻한다고 보았다. 또한 생리의 선한 부분을 진리(眞理)로 보면서 진리가 모든 사물을 능동적으로 통섭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주장은 정제두를 ‘양명학자’로 보는 시선을 더욱 강화했지만, 실제로 정제두는 양명학으로는 세상을 구할 수 없고 백성의 일상에 적절한 대응책을 주지 못한다는 의구심을 평생 품었다고 전한다. 정제두가 제기한 물리와 생리의 문제는 강화학파의 이후 세대들이 인간 특히 ‘몸’에 대해 사유하고 인간 개개인의 생활을 탐구하는 단서를 제공했다.

그 후속 세대의 주요 인물인 이충익(1744~1816)은 12세가 된 1755년 생부 이광현이 귀양을 가자 강화학파 덕천군파의 계보에서 중요한 인물인 이광명의 양자로 들어가게 됐다. 이로써 강화학파 중기의 학맥은 이광명 이후 이충익, 이면백 등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충익은 생부와 양부가 귀양 가 있는 경상도 기장과 함경도 갑산을 오가면서 그들을 모셨다. 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강화 초피봉 아래에 집을 짓고 살며 내내 곤궁하게 살다가 73세에 눈을 감았다. 이충익을 비롯한 강화도 덕천군파는 주자학의 격물치지론을 재해석하거나 불교와 도교 사상을 실기(實己)와 접목하고자 했다. 특히 이충익은 불교에 심취하여 마니산 아래 암자를 짓기도 했다. 이를 타박하는 재종형제 이영익에게 이충익이 보낸 시구의 일부가 인상적이다. “인연 따라 인도하여 설할 일이지, 어찌 자취를 따지랴 / 문을 닫고 문을 여는 것도 다만 이 한 몸의 일.”(170면) 이충익은 양명학도 불교도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이고 진리 그 자체는 아니라고 보았다. 오로지 “이 한 몸”의 주재하에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심대윤(1806~72)은 정제두의 제자 심육의 후손으로,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정제두의 학문 가운데 양명학적인 면을 추종하지 않았고, 몸의 사상과 백성들의 자발적 실천윤리론을 세우고자 했다. 이처럼 그는 강화학파의 이론을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스스로를 ‘초야의 기인’이라고 부르며 자신만의 사유를 구축하는 데 열의를 보였다. 선대의 인물들이 대거 옥사당하면서 심대윤은 생애 내내 극심한 곤궁에 시달렸지만, 그는 목공방과 약방을 열어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특히 목공방에서 몸으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신체를 움직이는 것이 인간의 본연을 들여다볼 수 있는 주요 통로라는 사실을 체득했다. 유교 본연의 물질에 대한 철학을 한층 더 본질적으로 탐구하고자 한 것이다. “하늘이 내려준 직분을 게을리하고 자기의 삶을 포기해버리면, 살아 있는 형체는 해골 같아지고 영명한 본성은 식은 재처럼 적막하게 되어, 죽지 않았으나 죽은 것이 되고 사라지지 않았으나 사라진 것이 된다.”(38면) 이는 강화학파 특유의 ‘몸의 사유’를 계승하고자 한 심대윤의 의지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주체의 철학으로 강화학파 사상을 재발견하다

강화학파의 초기와 중기를 대표하는 인물인 정제두·이충익·심대윤은 조선 유학이라는 고정적 틀에 연연하지 않은 글쓰기를 펼쳤던 터라 그들의 글은 유려한 수사 없이 그저 소박하다. 또한 강화학파는 사상적으로 탄압을 받으며 내내 소외받았던 탓에 이들의 주요 저술 중에 간행된 경우는 없다시피 했고, 그렇다보니 그들의 사상은 근대에 들어 우리 사상사에서 거의 언급되지 못했다. 그리하여 현대에 이들 강화학파의 주요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하지만 이 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제두·이충익·심대윤이 보여준 사유는 인간 양심의 순수 동기에 주목하여 ‘실기(實己)’를 그 중심에 두었다는 점에서 특출나다. “그들은 시문에서 늘 자기를 속이지 않았고 열패한 선비나 참혹한 처지의 농민, 여성, 노비에 대해 진성으로 슬퍼했다.”(44면) 그리고 강화학파 학자들이 보여준 혁신적인 기세는 한반도를 살아온 평범한 이들의 구체적인 일상과 현실 정치의 모순을 날카롭게 드러내면서 한국사상사에서 무척 의미있는 ‘주체의 철학’을 수립해냈다고 평할 수 있다.

문명전환의 과제에서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의 도전적 기획

지구기후와 자본주의가 불가분의 위기를 맞닥뜨리고 각종 갈등이 팽배한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떠맡은 과제는 결코 가볍거나 단순하지 않다.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을 필두로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위원회는 이 모든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수행해야 할 과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환’이라는 강력하게 실천적인 과제는 우리 모두에게 다른 삶의 전망과 지침이 필요하며, 전망과 지침으로 살아 작동할 사상이 절실함을 뜻한다. 그런 사상을 향한 다급하고 간절한 요청에 공명하려는 기획으로서, 창비 한국사상선은 한국사상이라는 분야를 요령 있게 소개하거나 새롭게 정비하는 평시적 작업을 넘어 어떤 비상한 대책이기를 열망하며 구상되었다.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에서)

서구사상은 오랜 시간 세계 지성계에서 압도적 발언권을 유지하는 한편 오늘날의 위기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대응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그 강력한 위상의 이면에 강고한 배타성과 편견이 작동하고 있음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다. 사상적인 면에서도 서구가 가진 위상은 돌이킬 수 없이 상대화되었고 보편의 자리는 진실로 대안에 값하는 사상들의 분투에 열려 있다. 이 시점이야말로 유·불·선의 회통이나 개벽사상 등 한국사상 특유의 사상적 기획이 한국사상이 전지구적 과제를 향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보태기에 더없이 적절한 때일 것이다.

창비 한국사상선 사상가들의 사유에는 역사와 현실을 탐문하며 새로운 삶의 보편적 전망을 구현하려 한 강인한 실천성, 그리고 사회를 변혁하는 일과 개개인의 마음을 닦는 일이 진리를 향한 단일한 도정에 있다는 깨달음이 깊이 새겨져 있다. 한반도의 경험과 지혜가 응축된 사상적 활력을 드러내는 창비 한국사상선이 문명전환의 개벽적인 사유와 실천의 지평을 열어가는 데 의미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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