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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지당·이사주당·강정일당
조선의 여성 유학자들
이숙인 편저
창비 202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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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

서문
세 여성의 성리학: 이론·교육·실천

핵심저작
[ 임윤지당 ]
1장 두편의 여성 전기
2장 삶의 지침과 역사 인식
3장 성리학의 제 개념을 논하다
4장 수양과 실천

[ 이사주당 ]
1장 『태교신기

[ 강정일당 ]
1장 시
2장 편지
3장 척독
4장 별지부록·기문·제발
5장 묘지명·행장
6장 명문·잡저
6장 명문·잡저

임윤지당 연보
이사주당 연보
강정일당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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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

편저이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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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가족과 여성의 연구 시각으로 조선시대 사상사를 읽고 쓰는 중이다.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유교경전의 여성사상 연구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아시아 학술원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연구교수를 지냈고, 여러 대학에서 동양철학 및 한국철학을 강의해 왔다. 지은 책으로 『유교와 여성, 근대를 만나다』, 『또 하나의 조선』, 『신사임당』, 『정절의 역사』, 『동아시아 고대의 여성사상』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열녀전』, 『여사서』, 『오륜행실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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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153*224*16mm
ISBN13
9788936481735

출판사 리뷰

조선조 최초의 여성 성리학자, 임윤지당

임윤지당은 1721년(경종 1)에 태어나 9세 때 둘째 오빠인 임성주(후에 조선 6대 성리학자라고 불림)로부터 한학을 배우고 17세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세에 결혼했지만 27세에 남편이 죽고 그 뒤로 홀로 원주의 시댁과 공주의 친정을 오가며 글공부를 이어갔다. 임윤지당이 세상을 떠난 뒤에 시동생 신광유가 그의 유고를 엮으며 적은 글에 따르면, 그는 “그윽하고 여유로워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모습”으로 “오래 덕을 쌓은 큰 선비”(16면)와도 같았다고 한다. 조선시대 여성 중에서 이와 같은 풍모를 갖춘 이가 과연 몇이나 되었을까.

18세기 조선은 농업이 발달하고 화폐경제가 활성화되었고 학문 분야에서는 주자학을 대체할 새로운 사유가 지속적으로 제출되고 있었다. 기존 유학의 지배 질서에 균열이 생기면서 여성들 삶의 모습도 분화된다. 남성의 지식 영역인 성리학에서 여성 학자들이 하나둘 나타난 것도 이즈음이다. 성리학에서 기존에는 도덕적 삶을 실천하는 예시로만 등장했던 여성이 깊이있는 학문 이론을 스스로 궁구하는 학자로 직접 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윤지당은 어떤 경로로 성리학에 발을 디디게 되었을까. “나는 어려서 성리의 학문이 있음을 알았고 조금 자라서는 더 좋아하게 되었는데, 고기 맛이 입을 즐겁게 하는 것과 같아 그만두려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15면) 혼인한 지 8년 만에 남편과 사별하고 이후 55년간 시가에서 살아야 했던 신산스러운 삶을 떠올려보자면, 공부에 대한 이 같은 열정은 어쩌면 그의 삶을 지탱한 첫번째 이유였을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임윤지당에게는 임성주라는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유학자가 둘째 오빠라는 배경이 있기도 하다. 어려서는 직접 그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결혼 후 집을 떠난 이후에는 서신을 통해 공부를 이어갔다. 가풍을 통해서는 기호학파의 전통 학설을 배웠지만, 자신의 글을 저술할 때에는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풀어 쓰며 독자적인 개성을 선보이기도 했다.

임윤지당이 17세에 썼다는 두 여성의 일대기는 작가 자신의 존재 인식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일독을 요한다. 한 남성이 살해되자 그의 아내와 딸이 원수를 갚은 「최홍이녀」, 남편의 견해에 적절한 조언을 건넴으로써 남편이 더욱 학문에 매진하도록 독려한 아내의 이야기인 「송씨부」가 그것이다. 임윤지당은 이 같은 글쓰기를 통해서 비록 자신이 여성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에 대해 이 책의 편저자 이숙인은 “윤지당의 지식 세계는 일상적 의미의 여성성과 학문 주체로서의 남성성이 갈등하면서 구성된 것”(23면)이라고 일갈한다.
임윤지당은 생애 내내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비평을 썼는데, 워낙 그의 독서량이 많다 보니 기존 남성 학자들이 간과한 부분들을 섬세하고 풍부하게 재해석해낸 부분들이 적지 않다. 또한 임윤지당은 기존의 퇴계 이황 중심의 이기론이 사회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점을 조심스럽게 비판하며, 이(理)와 기(氣)가 서로 보완함으로써 서로에게 의미를 가진다고 보았다. 비록 당시 조선의 고착화된 신분질서를 비판하는 데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남녀와 귀천 등의 대립적 조건들을 상호적이고 상보적인 관계로 파악한 점은 높이 살 만하다.

살림과 돌봄의 사상가, 이사주당

이사주당은 1739년(영조 15)에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15세 무렵에 글솜씨로 회자되고 부친상 이후로는 부친에 대한 덕행으로 이름을 높였다. 25세에 혼인했는데 그의 남편 유한규가 아내 이사주당의 학문에 대한 열정을 적극 지지해주었다. 유한규는 이사주당의 첫 책인 『가어(家語)』에 서문을 써주는 등 평생 아내의 학문적 동지로서 함께했다.

이사주당은 자신의 딸들을 가르치기 위해 유교 경전에서 주요 문구를 뽑아 직접 책을 제작하기도 했다. 생계를 꾸리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딸들에게 아궁이 때는 일을 시키지 않았을 정도로 강한 교육열을 갖고 있었다. 이렇게 열렬히 뒷바라지를 하면서 이사주당이 자녀들에게 바란 바는 인간으로서 성품을 갖추고 인간답게 사는 것이었다. 출세와 집권 등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학문이 아닌 자신을 위하고 자신에게 충실한 학문을 강조한 이사주당의 신조는 그가 62세에 펴낸 『태교신기』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태교신기』는 기존 유학이 태교를 덕성과 인성 함양을 위주로 계획했던 것과 다르게, 위생과 건강 등 과학 담론으로 확장했다. 태교를 어머니의 임무로만 여기던 데에서 가족 전체의 일로서 그 범위를 넓힌 것 또한 특장점 중 하나다. 이 책의 편저자 이숙인은, 이사주당이 임신의 의미를 ‘대를 잇는 것’에서 ‘아기 낳는 것’으로 전환한 데에서는 자녀를 혈통의 영속성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생명으로 본 것에 주목하자고 말한다. 『태교신기』는 이처럼 주제를 확장한 면에서나 독자 대상을 넓히고 한층 진일보한 인식을 제안했다는 측면에서, 기존 조선의 교육서를 뛰어넘는 혁신을 담은 책이라 볼 수 있다.

반려이면서 스승이었던 학자, 강정일당

강정일당은 1772년(영조 48)에 충북 제천에서 쇠락한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가르침을 통해 글공부를 익혔고 20세에 결혼한 뒤에는 남편인 윤광연의 도움을 받아 본격적으로 한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강정일당은 주자학을 이론적으로 탐구하기보다 이를 자신의 일상에서 구현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이처럼 앎과 행동을 동시에 닦는 것이 유학의 궁극적 목표라고 본 것이다.

강정일당은 여러 가사를 병행하는 와중에도 『논어』 『맹자』 『대학』 등 중국 고전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여유로운 시간에는 문을 닫고 정자세로 앉아 잡념을 떨치고 명상을 했다. 그가 쓴 글은 시, 편지, 척독, 제사의 발문, 묘지명 등 다양한데, 그 내용들은 모두 유학의 덕목들을 담고 있다. 그중에서도 강정일당의 개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은 척독(尺牘)이다. 척독은 ‘쪽지 편지’라고 옮길 수 있는데,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형식을 갖추지 않고 편히 쓴 글을 가리킨다. 강정일당은 남편 윤광연에게 척독을 보내 남편의 행동 중에 어떤 것이 예에 해당하고 어떤 것이 그렇지 않은지를 논하거나 두 사람이 함께 공유한 즐거움을 떠올리는 식으로 일상의 모든 영역에 걸쳐 감상을 나누었다. 즉 강정일당의 삶 전반이 유학을 공부하고 이를 되새기는 공부의 영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임윤지당, 이사주당, 강정일당, 이 세 사람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여성 학자라는 공통점을 가지면서도, 임윤지당이 성리학적 사유를 깊이 있게 연구하고 이사주당은 성리학 교육 이론을 풍부화했으며 강정일당이 자기 삶에서 성리학 이론을 구현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각자의 개성을 선보였다. 현대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보수적으로 느껴지는 면이 있지만, 그들의 학문적 성취는 중세와 근대 여성들이 처한 구조적 한계를 뛰어넘은 결실이었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빛을 발한다.

문명전환의 과제에서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의 도전적 기획

지구기후와 자본주의가 불가분의 위기를 맞닥뜨리고 각종 갈등이 팽배한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떠맡은 과제는 결코 가볍거나 단순하지 않다.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을 필두로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위원회는 이 모든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수행해야 할 과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환’이라는 강력하게 실천적인 과제는 우리 모두에게 다른 삶의 전망과 지침이 필요하며, 전망과 지침으로 살아 작동할 사상이 절실함을 뜻한다. 그런 사상을 향한 다급하고 간절한 요청에 공명하려는 기획으로서, 창비 한국사상선은 한국사상이라는 분야를 요령 있게 소개하거나 새롭게 정비하는 평시적 작업을 넘어 어떤 비상한 대책이기를 열망하며 구상되었다.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에서)

서구사상은 오랜 시간 세계 지성계에서 압도적 발언권을 유지하는 한편 오늘날의 위기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대응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그 강력한 위상의 이면에 강고한 배타성과 편견이 작동하고 있음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다. 사상적인 면에서도 서구가 가진 위상은 돌이킬 수 없이 상대화되었고 보편의 자리는 진실로 대안에 값하는 사상들의 분투에 열려 있다. 이 시점이야말로 유·불·선의 회통이나 개벽사상 등 한국사상 특유의 사상적 기획이 한국사상이 전지구적 과제를 향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보태기에 더없이 적절한 때일 것이다.

창비 한국사상선 사상가들의 사유에는 역사와 현실을 탐문하며 새로운 삶의 보편적 전망을 구현하려 한 강인한 실천성, 그리고 사회를 변혁하는 일과 개개인의 마음을 닦는 일이 진리를 향한 단일한 도정에 있다는 깨달음이 깊이 새겨져 있다. 한반도의 경험과 지혜가 응축된 사상적 활력을 드러내는 창비 한국사상선이 문명전환의 개벽적인 사유와 실천의 지평을 열어가는 데 의미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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