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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
서문 근대세계 접점에서 우주적 일통을 사유한 사상가 핵심저작 1장 유교 경전에 대한 관점: 『통경』을 비롯하여 2장 혜강학의 방법론 선언: 『신기통』과 『추측록』 3장 기학적인 주체의 확립: 『기학』 4장 인간 본위의 정치학: 『인정』 5장 사상가형 학자의 수상록: 『명남루수록』 6장 하늘을 이어받아 업무를 수행한다: 『승순사무』 7장 인간 최한기가 세상을 떠나기 전후의 자료들 최한기 연보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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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전환기에서 우주적 일통을 사유하다
혜강 최한기는 1803년(순조 3)에 개성에서 태어났다. 23세가 되던 1825년에 생원시에 합격하며 공직 진출의 길이 열리긴 했지만, 그는 평생 동안 은거하며 벼슬살이를 하지 않고 그저 유교 경전과 서양 서적을 두루 탐독하며 이를 재해석하고 종합하는 작업을 이어갔다. 그의 저술은 20세기 중반까지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60~70년대에 이르러 남북한 모두에서 재발굴·재조명되었다. 그가 얼마나 글짓기를 즐겨 했는지는 그가 자주 언급한 저술공덕(著述功德)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다. “태양이 바다에서 떠올라 뜨거운 빛이 사해에 비치는 듯, 단비가 때를 알고 내려서 만물을 윤택하게 하여 초목이 무성하듯, 문(文)은 여기서 드러나고 기(氣)가 저기서 화답하며 장(章)은 광채를 발해 그 빛이 멀리 환하다. 그리하여 공이 벌써 만물에 드러나고 덕은 저절로 만민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222면) 즉 최한기에게 글을 짓는 행위는 세상만방을 위해 덕을 쌓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최한기는 종종 정약용과 비교되는데, 실학의 발흥기인 18세기에 활동하며 한국 실학을 집대성한 정약용과, 혼란과 위기의 19세기를 살아가며 유학과 서양학의 융합을 시도한 최한기는 여러모로 대비된다. 일례로 정약용이 실학의 기틀을 세우며 유교 경전에 근거를 둔 것에 비해, 최한기는 자기 학문의 근거를 경학(經學, 경전 연구)이 아닌 기학(氣學, 기 개념을 서구 과학으로 입증)에 두었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이 책의 편저자 임형택은 최근 발견된 『통경』만 살펴보더라도 최한기가 유교 경전의 주제를 하나로 엮을 하나의 관점을 오랫동안 궁구했음을 알 수 있다고 일갈한다. 19세기 조선은 서구 세력이 동아시아에 적극 진출하던 시기로 최한기는 이 같은 혼란의 시대에 “새로운 것으로 옛을 바꾸고 옛을 따라서 지금을 개혁하는”(219면) 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의 말에서 드러나듯 최한기는 당대 유학을 폐기하는 급진적 방식을 따르지 않고 이를 토대로 삼아 혁신을 도모하는 방식을 취했다. 서구의 서적들도 비단 철학서에 머무르지 않고 지리, 천문, 수리, 역학 등 다양한 학문 영역을 거침없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천주교를 비롯한 서양 종교는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이 책의 편저자는 이를 최한기의 실용주의와 계몽주의적 사고로 봐야 하며, 19세기 조선의 수구적 애국주의와는 구별해야 할 최한기 고유의 사유라고 말한다. 최한기의 독특한 개성이 담긴 사유는 계몽주의 이외에도 상업가적 기질에서도 발견된다. 당시 사대부 사회가 여전히 청렴함을 높이 샀던 것에 대해 최한기는 선비들이 부유함을 비웃고 가난함을 즐기는 것이 빈궁한 선비들의 오만함일 뿐이라고 꾸짖으며 “부귀를 중시하고 빈천을 경시하는 것은 (…) 대동의 마음”(228면)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인민이 안전하고 잘 지켜지면 재용도 풍요하고 믿음이 생기며, 인민이 위태롭고 어지러우면 재용이 도리어 도둑의 양식이 되고 사람을 해치는 병기가 된다”(195~96면)라고 강조하는데, 이는 곧 최한기의 천민(天民) 정신과 맞닿는다. 동과 서의 소통을 통한 세계만방의 화합을 외치다 최한기 사상의 핵심 개념은 ‘기학’인데 이는 기존 유교사상이 ‘이(理)’를 중시한 것을 완전히 뒤엎은 철학적 혁명에 가까운 사고였다. 당시 조선 유교의 주류는 주리론(主理論)을 토대로 한 위정척사론이었고 대다수의 유학자들은 기 자체를 완전히 이단으로 분류했다. 이처럼 이학(理學)이 대세인 상황에서 오로지 기학만이 도를 이해하는 기준임을 설파했다는 것은 당대 최한기 사상의 독보적 지위를 일깨운다. 누구나 서양의 침략을 규탄하며 수구적 애국주의로 매진하는 판국에 동양 고전적 사고에 서양 과학을 받아들이고자 했다는 점은 여전히 현대성을 갖는 혁신으로 보이지만, 최한기가 살아생전에 은거하며 저술에만 전념했던 이유를 짐작케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최한기가 초지일관했던 주제인 ‘우주적 일통(一統)’은 무엇을 뜻할까. 『통경』의 앞부분에 단서가 하나 있다. 최한기는 중국 고대 성인과 후세의 성인들이 과거를 계승하고 현재를 개발해서 유학의 대표적 경전 13편을 썼다고 말하는데, 이는 곧 자신이 처한 19세기의 다양한 신문물을 정통 유학의 기준으로 적극 수용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유학의 ‘천·지·인’ 개념을 근대의 우주 관념과 연관 짓고 조선 사대부사회의 일국적 사고를 동아시아를 넘어 인류 전체와 우주적 관점으로 확장하고자 한 것이다. 최한기의 또다른 주요 개념인 ‘인정(人政)’은 백성을 비롯한 우주 만물 전체를 천민(天民)으로 보는 것인데, 그는 마치 세종이 백성 전체를 위해 한글을 창제했듯이 군주라면 사람을 뽑아 쓰는 데서 오직 민심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한기의 천민과 천인(天人) 개념은 차차 확장되어 만국일통(萬國一統)과 우내녕정(宇內寧靖) 등의 개념으로도 이어지는데, 여기서 우내란 ‘우주 안의 안녕’을 뜻한다. 이는 최한기가 서양 문물의 유입을 단순히 침략적 행위로 보지 않고 동서 소통의 기회로 보았음을 가리킨다. 장기적이고 진취적인 관점에서는 지구적인 교류가 늘어나면 결국에는 세계만방이 화합할 수 있으리라 본 것이다. 물론 최한기가 활동한 19세기에서부터 21세기 현대까지 세계평화를 가로막는 사건들은 부지기수로 일어났고 이는 최한기를 필두로 한 평화론자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주었을 테지만, 역으로 당면한 전쟁과 기후변화 위기를 극복할 지혜가 여전히 우리에게 주어져 있음을 역설해준다. 이를 실천하고자 할 때에는 인간의 행위[人政]와 자연의 행위[天政]를 종합적으로 사고해야 함을 뼈저리게 인식해야 할 때다. 이 책에서는 최한기의 저술을 시간 순으로 배열했고(『통경』은 저술 연대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주제의식이 최한기 사상의 초기에 해당한다고 보아서 맨 앞에 배치) 각 장마다 편저자의 해설을 덧붙여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문명전환의 과제에서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의 도전적 기획 지구기후와 자본주의가 불가분의 위기를 맞닥뜨리고 각종 갈등이 팽배한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떠맡은 과제는 결코 가볍거나 단순하지 않다.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을 필두로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위원회는 이 모든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수행해야 할 과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환’이라는 강력하게 실천적인 과제는 우리 모두에게 다른 삶의 전망과 지침이 필요하며, 전망과 지침으로 살아 작동할 사상이 절실함을 뜻한다. 그런 사상을 향한 다급하고 간절한 요청에 공명하려는 기획으로서, 창비 한국사상선은 한국사상이라는 분야를 요령 있게 소개하거나 새롭게 정비하는 평시적 작업을 넘어 어떤 비상한 대책이기를 열망하며 구상되었다.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에서) 서구사상은 오랜 시간 세계 지성계에서 압도적 발언권을 유지하는 한편 오늘날의 위기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대응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그 강력한 위상의 이면에 강고한 배타성과 편견이 작동하고 있음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다. 사상적인 면에서도 서구가 가진 위상은 돌이킬 수 없이 상대화되었고 보편의 자리는 진실로 대안에 값하는 사상들의 분투에 열려 있다. 이 시점이야말로 유·불·선의 회통이나 개벽사상 등 한국사상 특유의 사상적 기획이 한국사상이 전지구적 과제를 향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보태기에 더없이 적절한 때일 것이다. 창비 한국사상선 사상가들의 사유에는 역사와 현실을 탐문하며 새로운 삶의 보편적 전망을 구현하려 한 강인한 실천성, 그리고 사회를 변혁하는 일과 개개인의 마음을 닦는 일이 진리를 향한 단일한 도정에 있다는 깨달음이 깊이 새겨져 있다. 한반도의 경험과 지혜가 응축된 사상적 활력을 드러내는 창비 한국사상선이 문명전환의 개벽적인 사유와 실천의 지평을 열어가는 데 의미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