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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
서문 좌우를 넘어 민족의 진로를 밝히다 핵심저작 [안재홍] 1장 식민지 사회 인식과 민족운동론 2장 세계와 민족이 만나는 조선문화, 조선학 3장 통합 민족국가의 길 [백남운] 1장 과학적 한국사 연구 2장 식민지사회 비평과 학술론 3장 분단과 냉전을 넘어서는 민주국가의 길 안재홍 연보 백남운 연보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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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자주성과 세계의 공존을 모색한 안재홍
민세 안재홍은 1891년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나 한학을 익히고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공부했다. 귀국 후에는 언론과 민족운동의 일선에 나서 일제강점기에 아홉차례나 투옥되면서도 비타협적 항일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조선일보』 주필과 사장으로 활동하며 쓴 논설들은 일제의 통치 방식과 조선인의 생활을 함께 살핀 기록이다. 안재홍편 1장에 수록된 「살기에 싸인 문화정치」는 일제가 내세운 문화정치의 이면에 회유와 억압이 있음을 짚어낸다. 그는 일본 자본이 장악한 식민지 경제에서 조선인은 계층을 막론하고 몰락하고 있다고 보았고,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려면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함께하는 항일전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927년 신간회 창립에 참여하고 그 활동을 이끈 것은 이 같은 현실 인식의 실천이었다. 안재홍의 시선은 한반도 안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세계열강의 경쟁과 약소민족의 처지를 함께 살피면서, 다른 민족을 침략하는 강대국의 국민주의와 그 침략에 저항하는 약소민족의 민족주의를 구별했다. 피억압 민족의 독립 주장은 강대국의 논리와는 달리 세계의 평화와 공존을 향한 과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1930년대 조선학운동으로 이어졌다. 정치활동의 통로가 좁아지고 일제의 정신적 통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일은 민족의 자존을 지키는 중요한 실천이 되었다. 이 책 2장에서는 안재홍의 조선학 구상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조선의 고유성을 찾으면서도 그 연구가 과거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했다. 조선의 현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역사와 전통을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해명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가 조선학운동의 중심에 다산 정약용을 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여유당전서』 간행에 참여한 안재홍은 다산을 민생을 위해 제도를 바꾸려 한 개혁사상가로 읽었다. 특히 다산의 토지개혁론과 국가 구상을 세계사적 변화에 견주어 살피면서, 전통 안에서도 새로운 사회를 구상할 자원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해방 후 안재홍은 이러한 연구를 토대로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를 제창했다. 특정 계급의 이익을 민족 전체의 이익으로 내세우는 태도를 비판하고, 노동자와 농민을 비롯한 대중이 참여하는 통합국가를 구상한 것이다. 그 중심에는 고대사 연구를 통해 길어 올린 ‘다사리’라는 정치철학이 있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뜻을 말하고 함께 살아가며 나라를 다스리는 민주주의를 우리 전통에서 찾으려는 시도였다. 정치적 자유와 참정권을 보장하는 동시에 토지개혁과 주요 산업의 공공적 운영을 통해 경제적 균등을 이루어야 한다는 구상이 여기에 결합되었다. 3장에 실린 건국론은 그가 말한 민족적 통합이 사회경제적 개혁과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세계사의 보편성 속에서 한국사의 주체를 찾은 백남운 백남운은 1894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수원농림학교를 거쳐 일본에서 경제사를 공부했다. 1925년 귀국한 뒤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조선사회경제사』와 『조선봉건사회경제사』를 펴냈다. 당시 일제의 식민사학은 한국사가 스스로 발전할 힘을 갖추지 못한 채 정체되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백남운은 맑스의 사적 유물론을 바탕으로 이러한 주장을 반박하고자 했다. 한국사 역시 사회 내부의 모순과 생산관계의 변화에 따라 발전해왔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학문적으로 무너뜨리려 한 것이다. 백남운편 1장에서는 그가 한국사의 발전 과정을 어떻게 재구성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그는 고대의 노예제와 그 이후의 봉건제를 논증하면서 한국사가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 과정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고 보았다. 동시에 서구의 봉건제와는 다른 한국의 중앙집권적 관료제·토지제도의 특질을 ‘아시아적 봉건제’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그의 역사학에서 주목할 또 하나의 지점은 역사의 중심이 왕조와 지배자의 행적에서 노동하고 생산하는 피지배층의 삶으로 옮겨졌다고 본 것이다. 역사발전의 동력을 탐구하는 일은 곧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발견하는 일이었다. 이 같은 연구는 식민지 사회의 현실을 분석하는 작업과 나란히 이루어졌다. 2장에 수록된 글들에서 백남운은 임금노동자의 증가와 이동, 경제공황과 전쟁의 연관을 살피고, 학문이 당대의 사회적 과제에 응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민족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을 서로 배척하는 것으로 보지 않았으며, 조선의 현실에서는 민족해방을 위한 공동전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일부 맑스주의자들이 조선학운동을 배격할 때에도 그 연구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다산기념사업에 참여한 것은, 민족의 역사와 주체성을 계급논리만으로 지울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해방 직후 조선학술원 창립을 주도한 백남운은 인문·사회과학·자연과학을 아우르는 학술활동으로 새 국가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다. 그러나 미·소의 남북 분할점령과 좌우 대립이 깊어지자 직접 정치에 참여하여 민족통일전선의 결성을 촉구한다. 이 과정에서 제창한 ‘연합성 신민주주의’는 그의 역사 연구와 국가 구상이 만나는 핵심 개념이다. 그는 해방된 조선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고려할 때 특정 계급이 권력을 독점하는 체제는 적절하지 않다고 보았다. 노동자와 농민, 양심적인 민족자본가와 지식인이 함께 참여하는 연합 민주정권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3장에 발췌 수록된 『조선 민족의 진로』의 주요 대목들은 이 구상을 정치뿐 아니라 경제와 문화, 도덕의 영역까지 넓혀 보여준다. 분단과 양극화의 시대에 다시 읽는 통합의 사상 안재홍과 백남운에게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평등은 함께 이루어야 할 과제였다. 두 사람 모두 토지개혁을 비롯한 경제적 개혁 없이는 민족의 통합도 온전한 민주주의도 실현되기 어렵다고 보았다. 이들의 중도적 구상은 대립하는 세력 사이에서 적당한 절충점을 찾는 데 그치지 않았다. 서로 다른 계급과 정파가 공존할 수 있도록 국가의 운영 원리와 경제적 토대를 바꾸려는 적극적인 시도였다. 편저자는 두 사람이 향한 목적지를 “계급을 초월한 전민족적 연대”와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균등이 조화된 새로운 민주주의”(13면)라고 짚는다. 그러나 해방공간에서 이들이 추구한 통합의 길은 냉전과 분단의 압력 속에서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안재홍은 한국전쟁 중 납북되었고, 백남운은 1948년 남북연석회의 참석을 계기로 북에 남았다. 분단은 두 사람의 삶을 갈라놓았을 뿐 아니라 그 사상을 온전히 읽을 기회마저 오랫동안 가로막았다. 이 책은 이들의 글을 함께 읽음으로써 한국 민주주의가 모색해온 또 하나의 길을 드러낸다. 다른 사상과 이념을 대화와 연대의 상대로 인정하는 일, 정치적 권리와 생활의 균등을 함께 보장하는 일은 분단과 양극화가 지속되는 오늘날에도 풀어야 할 과제다. 안재홍과 백남운의 미완의 구상을 돌아보는 독서는 그 과제에 응답할 사상적 자원을 되찾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문명전환의 과제에서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의 도전적 기획 지구기후와 자본주의가 불가분의 위기를 맞닥뜨리고 각종 갈등이 팽배한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떠맡은 과제는 결코 가볍거나 단순하지 않다.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을 필두로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위원회는 이 모든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수행해야 할 과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환’이라는 강력하게 실천적인 과제는 우리 모두에게 다른 삶의 전망과 지침이 필요하며, 전망과 지침으로 살아 작동할 사상이 절실함을 뜻한다. 그런 사상을 향한 다급하고 간절한 요청에 공명하려는 기획으로서, 창비 한국사상선은 한국사상이라는 분야를 요령 있게 소개하거나 새롭게 정비하는 평시적 작업을 넘어 어떤 비상한 대책이기를 열망하며 구상되었다.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에서) 서구사상은 오랜 시간 세계 지성계에서 압도적 발언권을 유지하는 한편 오늘날의 위기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대응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그 강력한 위상의 이면에 강고한 배타성과 편견이 작동하고 있음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다. 사상적인 면에서도 서구가 가진 위상은 돌이킬 수 없이 상대화되었고 보편의 자리는 진실로 대안에 값하는 사상들의 분투에 열려 있다. 이 시점이야말로 유·불·선의 회통이나 개벽사상 등 한국사상 특유의 사상적 기획이 한국사상이 전지구적 과제를 향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보태기에 더없이 적절한 때일 것이다. 창비 한국사상선 사상가들의 사유에는 역사와 현실을 탐문하며 새로운 삶의 보편적 전망을 구현하려 한 강인한 실천성, 그리고 사회를 변혁하는 일과 개개인의 마음을 닦는 일이 진리를 향한 단일한 도정에 있다는 깨달음이 깊이 새겨져 있다. 한반도의 경험과 지혜가 응축된 사상적 활력을 드러내는 창비 한국사상선이 문명전환의 개벽적인 사유와 실천의 지평을 열어가는 데 의미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