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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모·김재준·이이효재
민중과 해방의 현대 사상가들
창비 202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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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

[ 유영모 ]
서문
다석 유영모의 한글철학과 주체적 기독교

핵심저작
1장 허공
2장 바탈
3장 시간
4장 사람
5장 죽음
6장 한글
7장 말씀
8장 생각
9장 기독교
10장 동양 경전
11장 정치 및 문명 비판
12장 귀일과 대동

[ 김재준 ]
서문
장공 김재준의 인권과 자유

핵심저작
1장 예찬의 말씀
2장 한 그리스도인의 선언
3장 성서 비평의 의의와 그 결과
4장 그리스도교의 특징
5장 역사 참여 문제와 우리의 실존
6장 비기독교적 종교에 대한 이해
7장 역사 안에 임한 그리스도
8장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
9장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10장 3·1정신의 어제와 오늘
11장 청년 학생에게 자유를 주라
12장 4·19정신
13장 우리의 길은?

[ 이이효재 ]
서문
평등, 평화통일 그리고 공동체의 꿈

핵심저작
1장 흑인사회학의 대두
2장 분단시대의 사회학
3장 전환기에 선 가족주의
4장 분단시대의 가족 연구
5장 분단시대의 여성 문제
6장 분단시대의 여성운동

유영모 연보
김재준 연보
이이효재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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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3

편저이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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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신학대학교 종교철학과 교수를 퇴임한 후 현재는 같은 학교 명예교수와 현장(顯藏)아카데미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빈탕한데 맞혀놀이』 『유영모의 귀일신학』 『가득소리 가온소리 바닥소리』 등 다석 관련 도서를 쓰거나 엮었다.

이정배의 다른 상품

편저천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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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대학교 기독교학과 구약학 교수.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예일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버클리 연합신학대학원(GTU)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구약 외경의 이해』, 『지혜전승과 지혜문학』(2010년 문체부 우수학술도서), 『신구약중간시대의 성서해석』, 『성경과 과학의 대화』, 『사해사본과 쿰란 공동체』, 『김재준』, 『민중인권실천신학자 김찬국』 등이 있고, 공저서로는 『토라의 신학』, 『창조 신앙, 어떻게 볼 것인가』, 『구약학자들의 잠언 설교』, 『구약학자들의 시편설교』 등이 있으며, 공역서로는 『하나님과
한남대학교 기독교학과 구약학 교수.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예일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버클리 연합신학대학원(GTU)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구약 외경의 이해』, 『지혜전승과 지혜문학』(2010년 문체부 우수학술도서), 『신구약중간시대의 성서해석』, 『성경과 과학의 대화』, 『사해사본과 쿰란 공동체』, 『김재준』, 『민중인권실천신학자 김찬국』 등이 있고, 공저서로는 『토라의 신학』, 『창조 신앙, 어떻게 볼 것인가』, 『구약학자들의 잠언 설교』, 『구약학자들의 시편설교』 등이 있으며, 공역서로는 『하나님과 진화를 동시에 믿을 수 있는가』, 『부끄럽지 않은 수치심』, 『한국 문화 이야기』, 『한국 선교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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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강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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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순은 1954년생으로, 1973년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학 인문사회계열에 입학했다. 당시 1학년 7반 지도 교수였던 이이효재 선생님과 처음 인연을 맺은 후 선생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제자로서 반백 년을 함께했다. 사회학은 ‘분단시대의 사회학’이자 ‘인간 해방의 사회학’이라는 선생님의 학문적 삶과 실천적 삶을 뒤따라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큰 스승님의 가르침에는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선생님의 고향인 경남 진해에서 선생님과 많은 시간을 함께한 행복한 제자다. 경남대학교 사회학과에 부임해 여성학을 개설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학지회 중앙위원, 경남대학교 교수협의회 부회장, 문과대
강인순은 1954년생으로, 1973년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학 인문사회계열에 입학했다. 당시 1학년 7반 지도 교수였던 이이효재 선생님과 처음 인연을 맺은 후 선생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제자로서 반백 년을 함께했다. 사회학은 ‘분단시대의 사회학’이자 ‘인간 해방의 사회학’이라는 선생님의 학문적 삶과 실천적 삶을 뒤따라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큰 스승님의 가르침에는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선생님의 고향인 경남 진해에서 선생님과 많은 시간을 함께한 행복한 제자다. 경남대학교 사회학과에 부임해 여성학을 개설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학지회 중앙위원, 경남대학교 교수협의회 부회장, 문과대학 학장, 교학부총장을 지냈다. 현재는 경남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다. 지역사회와 관련해 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를 지역 노동자와 함께 창립했으며, 마창진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대표를 지냈고, 경남여성사회교육원을 만들어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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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76쪽 | 153*224*22mm
ISBN13
9788936481773

출판사 리뷰

다석 유영모의 한글철학과 주체적 기독교

다석 유영모는 1890년(고종 24) 서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유학 경전을 공부했고, 16세가 된 1905년에는 YWCA에서 기독교를 접하고 일본어를 공부하는 등 다양한 학문을 고루 섭렵했다. 23세 때에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동경물리학교에서 1년을 공부하고 일본의 기독교 선교사이자 무교회주의자인 우찌무라 칸조오(内村鑑三)를 만나 교류했고, 27세에는 상하이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30세에는 오산학교 교장으로 취임했지만 1920년 일제에 의해 학교가 폐교되면서 물러난다. 그즈음 신채호·최남선·이승훈·김교신·함석헌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을 두루 사귀었는데, 그 뒤로는 서울 외곽으로 터를 옮긴 뒤 동서양의 고전 연구와 예수 정신을 바탕으로 한 본인의 신앙관을 세우는 데에 온 힘을 쏟았다.

유영모는 서구 기독교 사상을 오래 천착했으나 그의 사상은 비단 기독교에 기울지 않았다. 동서 회통의 사상가로 평가받는 만큼 동양적 사유의 비중이 적지 않다. 『도덕경』 『천부경』 등을 순한글로 번역했고 『맹자』를 탐독했다. 이 같은 동양 고전 공부는 ‘없음’[無]에 세계에 대한 시야를 넓혀주었고 이는 유영모를 대표하는 ‘없이 계신 하느님’이라는 개념을 만드는 데에 일조했다. 유영모는 맹자의 심성론, 노자의 ‘없음’ 등을 기독교에 접목했고, 『천부경』으로부터는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모색할 단서를 얻어 고유의 ‘다석 사상’을 세웠다. 천·지·인의 3요소를 적극 받아들였고 한글의 음운 변화가 이에 맞닿음을 깨닫고 한글을 통해 본인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성경과 불경이 아무리 뛰어난 말씀이더라도 그것은 ‘남의 소리’에 불과하니 우리의 소리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소리글자(표음문자)인 한글을 뜻글자(표의문자)로 재해석하면서 이를 ‘백성을 하늘로 이끄는 글[天文]’ 혹은 ‘바른 소리[正音]’라고 말했다.

한편 유영모의 ‘없음’ 철학은 이성과 존재자 중심의 서구 철학과는 결을 달리한다. 유영모 편의 엮은이 이정배는 이에 대해 “없음’(허공)을 성스러운 영역으로 본 것은 기후붕괴 시대의 구원을 위한 탁견”(25면)이라고 평가한다. ‘없음’은 곧 현대 자본주의의 욕망을 거스르는 자연을 향한 목소리이자 생태적 각성이라는 뜻이다. 이 없음은 ‘나는 없고 모두가 있는’ 유영모의 대동사상으로 연결된다. 나를 비우고 대동(큰 하나)의 하느님에게 향하면 유영모가 꿈꾼 대동세계가 열린다는 것이다.

유영모의 저술은, 그의 제자들이 그의 강연록을 풀어 엮은 몇권의 책을 제외하고는 1955년부터 1975년까지 그가 쓴 일기를 『다석일지』로 엮은 것이 전부다. 이 책에는 『다석일지』를 일부 발췌하고 『다석일지 공부』(김흥호 지음)에서도 몇편의 한글시를 옮겨와서 유영모 사상의 일부를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장공 김재준의 인권과 자유

김재준은 1901년(고종 38) 함경도 경흥에서 태어나 10세까지 아버지로부터 한학을 배웠다. 10세가 되던 1910년부터는 신식 학교에서 공부했고 15세에는 회령군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고 곧이어 결혼했다. 하지만 배움에 대한 열망이 컸던 김재준은 20세 때 서울로 상경하여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기독교를 접하게 된다. 함경도로 귀향하여 소학교 등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도 신학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던 그는 25세에는 일본 청산학원으로, 27세에는 미국 웨스턴 신학교로 유학을 떠나 신학 석사학위를 받고 31세에 귀국한다. 귀국 후 평양에서 목회 활동을 시작한 그는 곧이어 만주의 독립운동가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여러 다양한 민족주의 활동을 전개했다.

1945년 해방을 맞은 뒤에는 한국사회에 본격적으로 진보적 입장의 신학을 알리기 시작하는데, 김재준은 당시 한국 교회에 팽배했던 근본주의 신학의 풍토를 비판했다. 근본주의는 19세기 한국에 개신교를 전파한 미국 선교사들이 품었던 신앙 기조로, 성경과 전통적 교리의 절대적 권위를 중시하고 이와 다른 의견에 대단히 배타적인 입장을 가진 사조다. 김재준은 이 같은 근본주의 신학의 오류를 고치기 위해 조선신학교(한신대학교 전신)를 주 무대로 ‘성서 비평’의 필요를 역설했고, 이로써 근본주의적 장로교 선교사들과 결별하면서 ‘한국기독교장로회’가 출범하는 계기가 된다.

김재준은 기독교 성경을 풀이하면서 그것이 인간 개개인 내면의 죄의식, 두려움을 떨쳐내게끔 해주는 언어임과 동시에 사회 구조적인 모순, 정치적 억압 등에서 벗어나게끔 해주는 해방의 언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20세기 중반 한반도에 불어닥친 민족상잔의 전쟁과 민주주의 쇠퇴 등에 맞서 기독교인들이 참여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나님이 인간과 세상을 구원하고 있으니 이 같은 구속사적 관점에서 인간 또한 각자에게 주어진 자유를 사용해 이웃에게 봉사할 것을 권했다. 교회는 교회 바깥의 사회에 관심을 가져 억울하게 피해를 당한 시민들을 대변하고, 모든 불의한 세력에 맞서 비폭력으로 항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김재준 본인이 앞장서서 1970년대와 80년대에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벌인 민주화운동은 종교계가 한국 민주주의 수호에 이바지한 대표적 사례로 언급된다.

이이효재의 평등과 평화통일, 공동체라는 꿈

이이효재는 1924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기독교 목사인 아버지와 고아들을 돌보던 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특히 아버지의 교회로 찾아오는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여성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참여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1945년 이화여대 영문학과에 입학하고 1948년 미국으로 유학해 1957년 귀국한 뒤에 곧이어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로 취임했다. 이 같은 유학 생활이 본인에게 주어진 특별한 혜택임을 냉정하게 돌아본 이이효재는 다시금 자신이 여성들과 소외 계층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다짐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1950, 60년대 한국사회의 역동적 변화를 지켜보면서 미국 유학 시절에 접한 구조기능주의가 이 같은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한국 사회학의 과제를 ‘보통의 사람들이 품은 한(恨)’을 푸는 것으로 설정해 한평생 그 과제를 해결하는 길에 매진한다. 하지만 당시 군사독재정권은 경제성장을 이유로 노동자들의 권리를 억압하고 있었다. 이에 맞서 이이효재는 강단에만 머무르지 않고 거리로 나서는 실천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가부장적 사회 구조를 지탱하던 호주제를 폐지하는 운동에 앞장섰고,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국제사회에 폭로했으며, 생활협동조합 운동 등을 통해 여성들의 사회 진출과 생태적 먹거리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이효재는 이 같은 실천활동을 열렬히 벌여감과 동시에 ‘한국 사회학’을 주창하며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그 대안을 마련하고자 분투했다. 다만 당시 선진국의 사회학적 이론 틀로는 한국 고유의 비민주성과 분단 상황을 해석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 같은 이론과 담론의 부족에 대해 이이효재는 분단을 주제로 다양하게 출간되고 있던 한국의 문학작품들에 눈길을 돌린다. 또한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을 설파하는 강만길 교수 등의 분단사학에도 관심을 갖는다. 이 같은 통찰을 거듭하며 한국 사회학을 세우기 위해서는 분단 문제를 반드시 통과해야 함을 깨닫는다.

이이효재는 분단 극복과 평화통일이 한반도 민족 전체의 삶을 개선하는 첫걸음이라고 보았고, 자신의 한국 사회학을 ‘분단시대의 사회학’으로 재명명하면서 본인이 천착할 주제를 좀더 세분화한다. 또한 분단체제하 민족의 고통을 ‘한(恨)’으로 규정하고 한반도의 민중, 특히 여성이 이 한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인간해방의 실현으로 보았다. 그가 주창한 ‘분단시대의 사회학’은 ‘분단시대 여성학’ ‘분단시대 가족사회학’ 등으로 분화하면서 한국 학술계의 독보적이면서 중요한 업적으로 남았다.

문명전환의 과제에서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의 도전적 기획

지구기후와 자본주의가 불가분의 위기를 맞닥뜨리고 각종 갈등이 팽배한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떠맡은 과제는 결코 가볍거나 단순하지 않다.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을 필두로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위원회는 이 모든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수행해야 할 과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환’이라는 강력하게 실천적인 과제는 우리 모두에게 다른 삶의 전망과 지침이 필요하며, 전망과 지침으로 살아 작동할 사상이 절실함을 뜻한다. 그런 사상을 향한 다급하고 간절한 요청에 공명하려는 기획으로서, 창비 한국사상선은 한국사상이라는 분야를 요령 있게 소개하거나 새롭게 정비하는 평시적 작업을 넘어 어떤 비상한 대책이기를 열망하며 구상되었다.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에서)

서구사상은 오랜 시간 세계 지성계에서 압도적 발언권을 유지하는 한편 오늘날의 위기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대응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그 강력한 위상의 이면에 강고한 배타성과 편견이 작동하고 있음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다. 사상적인 면에서도 서구가 가진 위상은 돌이킬 수 없이 상대화되었고 보편의 자리는 진실로 대안에 값하는 사상들의 분투에 열려 있다. 이 시점이야말로 유·불·선의 회통이나 개벽사상 등 한국사상 특유의 사상적 기획이 한국사상이 전지구적 과제를 향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보태기에 더없이 적절한 때일 것이다.

창비 한국사상선 사상가들의 사유에는 역사와 현실을 탐문하며 새로운 삶의 보편적 전망을 구현하려 한 강인한 실천성, 그리고 사회를 변혁하는 일과 개개인의 마음을 닦는 일이 진리를 향한 단일한 도정에 있다는 깨달음이 깊이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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