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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_
범례 / 10 명유학안 권5, 백사학안상 明儒學案 卷五, 白沙學案上 ·강경현 문공 백사 진헌장 선생文恭陳白沙先生獻章 15 거인 대애 이승기 선생舉人李大厓先生承箕 68 명유학안 권6, 백사학안하 明儒學案 卷六, 白沙學案下 ·강경현 통정 동소 장후 선생通政張東所先生詡 75 급사 의려 하흠 선생給事賀醫閭先生欽 90 이목 입재 추지 선생吏目鄒立齋先生智 100 어사 시주 진무열 선생御史陳時周先生茂烈 107 장사 집희 임광 선생長史林緝熙先生光 111 주동 병상 진용 선생州同陳秉常先生庸 116 포의 포진 이공수 선생布衣李抱眞先生孔修 118 천석 사우 선생謝天錫先生祐 121 문학 시진 하정구 선생文學何時振先生廷矩 122 운사 성당 사계방 선생運使史惺堂先生桂芳 124 명유학안 권7, 하동학안상 明儒學案 卷七, 河東學案上 ·이해임 문청 경헌 설선 선생文淸薛敬軒先生瑄 133 어사 자여 염우석 선생禦史閻子與先生禹錫 177 시랑 자재 장정 선생侍郎張自在先生鼎 179 군수 용사 단견 선생郡守段容思先生堅 180 광문 묵재 장걸 선생廣文張默齋先生傑 183 문장 응재 왕홍유 선생文莊王凝齋先生鴻儒 185 포의 소천 주혜 선생布衣周小泉先生蕙 198 동지 사암 설경지 선생同知薛思菴先生敬之 201 군승 개암 이금 선생郡丞李介菴先生錦 213 명유학안 권8, 하동학안하 明儒學案 卷八, 河東學案下 ·이해임 문간 경야 여남 선생文簡呂涇野先生柟 217 사무 괴헌 여잠 선생司務呂愧軒先生潛 268 석곡 장절 선생張石谷先生節 270 정립 이정 선생李正立先生挺 271 군수 몽천 곽부 선생郡守郭蒙泉先生郛 272 거인 천유 양응조 선생擧人楊天游先生應詔 274 명유학안 권9, 삼원학안 明儒學案 卷九, 三原學案 ·이봉규 단의 석거 왕서 선생端毅王石渠先生恕 286 강희 평천 왕승유 선생康僖王平川先生承裕 307 광록 계전 마리 선생光祿馬谿田先生理 309 공간 완락 한방기 선생恭簡韓苑洛先生邦奇 313 충개 곡산 양작 선생忠介楊斛山先生爵 318 징군 주관 왕지사 선생徵君王秦關先生之士 351 인명·개념어·서명/편명 색인_ 3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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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봉羅一峰이 “백사는 하늘과 사람의 은미함을 보았고 성현의 심오한 뜻을 궁구했다. 도道를 채운 것을 부유함이라 여기고 덕德을 높인 것을 귀함이라 여겨, 천하 만물이 아낄 만하고 추구할 만하더라도 무심히 그 마음에 동요가 없었다.”라고 하였는데, 참으로 이 말과 같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문하에서 배출된 사람들은 대부분 청빈함으로 자립하여 부귀에 뜻을 두지 않았다. 백사의 고상한 기풍이 격동시킨 바가 크다.
--- p.14 선생은 비록 곤궁한 필부匹夫였지만, (그의) 도덕道德의 기풍은 천하에 울려 퍼져 천하 사람들의 마음이 조용히 변화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초목에 비유하자면, 한번 비가 내리면 싹이 튼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은데 초목은 대개 (그 공을) 알지 못합니다. 선생이 세상에 베푼 공이 어찌 홍수를 막고 맹수를 몰아낸 것보다 못하겠습니까! 이와 같은 것은 하늘의 뜻이지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 p.88 선생이 이 일로 인해서 시를 지어서 말했다. “어찌 역役에 종사하는 자가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웅산촌은 요임금의 시절과 같다네.” 조선에서 선생의 명성을 듣고서 상주하여 선생의 문장을 나라의 모범으로 삼고자 한다고 청하였다. 선생의 학문은 격물을 궁리(窮理: 이치를 궁구하는 것)라고 여겼고, 선지후행을 주장했으니, 이는 모두 유생들이 배우고 익혔던 것이다. --- p.220 일찍이 시를 지어 “도학은 경을 의지하여 경계할 때 온전해지니, 잠시라도 경을 떠나서는 도를 찾기 어렵다. 늘상 외나무다리 가장자리를 따라 지나니, 오직 바라는 건 이때의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이네.” 또 말하길, “명예를 가까이하면 끝내 자기를 잃게 되고, 사욕이 없으면 절로 신명에 통하네. 지식은 건곤에 의지하니 활달하고, 마음은 의견을 비우니 새로워지네. 문을 닫고 정좌하는 사이 저절로 풍진이 사라지네.” --- p.2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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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희는 명말청초의 혼란한 시기를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살았던 실천적 사상가이자 사상사가思想史家이다. ‘경세를 위한 경사지학經史之學’을 지향했던 그는 망국의 한을 학문 탐구로 승화시켰다. 미래의 정치사상을 담은 『명이대방록』을 저술함과 아울러 과거 명대의 학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작업을 했다. 그 작업의 성과물이 바로 『명유학안』이다. 그것은 중국 최초의 학술사이자, 명대 유학 연구의 필독서로 평가받고 있다.
명대 유학의 주요 특징은 ‘내 마음[吾心]’에서의 ‘자득自得’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내 마음’의 공부이기 때문에 문호에 기대거나 남을 모방하지 않고 자기의 고유한 형체와 정신을 발휘한다. 학문을 통해 일가一家를 이룬 이들이 자신이 터득한 공부법을 간명하게 요약한 것이 ‘종지宗旨’이다. 종지는 그의 공부가 힘을 얻은 득력처得力處이자, 후학을 학문의 세계로 이끄는 입문처入門處이기도 하다. 유학자들은 공자와 같은 성인이 되고자 한다. 명대 유학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인의 마음을 본래 지니고 있다고 여긴다. 그것이 바로 ‘본심本心’이다. 본심대로 살려고 몸과 마음을 다해 애쓰는 것이 ‘공부’이고, 공부를 통해 도달한 지평이 바로 ‘경지’이다. 그런데 공부를 통해 도달한 경지는 다름 아니라 본심이 실현된 것이다. 황종희는 이것을 가리켜 “마음에 본체가 없고, 공부가 도달한 곳이 바로 그 본체이다[心無本體, 功夫所至, 卽其本體.(明儒學案原序)]”라고 말한다. 공부법과 그 경로는 달라도 도달한 궁극적 지평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명대 유학을 바라보는 황종희의 기본적인 관점이다. 명대 유자들마다 그 학문 ‘종지’는 다르지만, 그들이 도달한 지평은 동일하다. 이런 시각에서 황종희는 명유들이 각자 힘을 써서 터득한 학문 종지를 밝히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그리고 ‘종지’를 기준으로 문파를 구분하고, 동일 문파에서 그 근원과 지류를 구별하여 동일한 ‘종지’가 다양하게 전개되는 양상을 드러낸다. 또 각 학자들의 사상이 담긴 주요 자료들을 뽑아 수록함으로써 독자들이 그 사상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했다. 황종희가 한 것은 여기까지다. 황종희는 『명유학안』을 사통팔달의 대로에 놓인 술동이에 비유한다. 그 안에 담긴 술을 맛보고 음미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명유들이 제시한 가르침을 음미하고 참조하여 자신에게 적절한 공부법을 찾아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은 우리 각자가 해야 할 일이다. 착실하게 자기를 가꾸는 공부를 하다 보면 자사自私와 물욕物欲이 탈각된 지점에서 자기 마음의 본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_간행사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