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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_
범례 / 9 명유학안 권10, 요강학안 明儒學案 卷十, 姚江學案 ·한정길 문성 양명 왕수인 선생文成王陽明先生守仁 19 반규 허장 선생許半圭先生璋 28 황여 왕문원 선생王黃轝先生文轅 31 명유학안 권11, 절중왕문학안 1 明儒學案 卷十一, 浙中王門學案一 ·한정길 낭중 횡산 서애 선생郎中徐橫山先生愛 166 독학 아재 채종연 선생·어사 백포 주절 선생督學蔡我齋先生宗兗·御史朱白浦先生節 177 원외 서산 전덕홍 선생員外錢緒山先生德洪 181 명유학안 권12, 절중왕문학안 2 明儒學案 卷十二, 浙中王門學案二 ·윤상수 낭중 용계 왕기 선생郞中王龍溪先生畿 227 인명·개념어·서명/편명 색인_ 3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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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학문은 처음에는 사장詞章을 섭렵하고, 이어서 주자의 글을 두루 읽고 순서에 따라 사물의 이치를 궁구했어도 도리어 물리物理와 내 마음[吾心]이 끝내 둘로 갈라져서 들어갈 수 있는 데가 없었다. 이에 오랫동안 불교와 도교에 드나들었다. 급기야 오랑캐 땅에 살면서 곤경에 처하여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격을 강인하게 함에 이르러서야 성인이 이런 상황에 처하신다면 달리 무슨 방법이 있을까를 생각하였다. 홀연히 격물치지의 취지를 깨달았으니, 성인의 도는 내 본성으로 충분하기에 밖에서 구할 필요가 없었다. 선생의 학문은 무릇 세 번 변해서야 비로소 그 도에 들어가는 문을 얻었던 것이다.
이 뒤로는 지엽을 다 버리고 한결같이 본원에 뜻을 두어 묵좌하여 마음을 맑게 하는 것[黙坐澄心]을 배움의 요체로 삼았다. --- p.22 정명도는 말했다. “내 학문은 비록 전수받은 바가 있지만, 천리 두 글자는 도리어 내가 체인體認해 낸 것이다.” 양지가 바로 천리요, 체인이란 실제로 자기에게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 p.80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강구하지 않겠는가? 다만 하나의 요령이 있으니, 오직 이 마음이 인욕을 제거하고 천리를 보존하는 데 나아가 강구할 뿐이다. 예를 들어 겨울에 따뜻하게 해 드릴 것을 강구하는 경우에도 단지 이 마음의 효도를 다하고 조금의 인욕이라도 끼어들어 뒤섞일까 두려워해야 하며, 여름에 시원하게 해 드릴 것을 강구하는 경우에도 단지 이 마음의 효도를 다하고 조금의 인욕이라도 끼어들어 뒤섞일까 두려워해야 한다. 단지 이 마음을 강구할 수 있을 뿐이다. 이 마음이 만약 인욕이 없는 순수한 천리라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데 성실한 마음이라면, 겨울에는 자연히 부모의 추위를 생각하여 저절로 따뜻하게 해 드릴 도리를 구하고자 할 것이며, 여름에는 자연히 부모의 더위를 생각하여 저절로 시원하게 해 드릴 도리를 구하고자 할 것이다. 나무에 비유하면 진실로 효성스러운 이 마음은 뿌리이고 수많은 조목들은 가지나 잎이다. 반드시 먼저 뿌리가 있은 뒤에 가지나 잎이 있는 것이지, 먼저 가지나 잎을 찾은 뒤에 뿌리를 심는 것이 아니다. --- p.87 선생[丈]께서는 “지금 마음을 논하는 사람들은 용龍을 가지고 논해야지 거울[境]을 가지고 논해서는 안 된다. 물도 역시 마찬가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각건대, 물과 거울로 (마음을) 비유하는 것이 다 틀린 것은 아닙니다. (물과 거울은) 감정을 개입하지 않고 비추니 그것은 외물에 따라서 그 모습을 드러내 주고, 반응하면 모두 실하고, 지나가면 (흔적을) 남겨두지 않습니다. (외물이) 스스로 아름답고 스스로 추하며, 스스로 가고 스스로 오지만 물과 거울은 거기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대개 자연이 하는 바에는 언제나 욕심이 없습니다. --- p.3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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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희는 명말청초의 혼란한 시기를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살았던 실천적 사상가이자 사상사가思想史家이다. ‘경세를 위한 경사지학經史之學’을 지향했던 그는 망국의 한을 학문 탐구로 승화시켰다. 미래의 정치사상을 담은 『명이대방록』을 저술함과 아울러 과거 명대의 학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작업을 했다. 그 작업의 성과물이 바로 『명유학안』이다. 그것은 중국 최초의 학술사이자, 명대 유학 연구의 필독서로 평가받고 있다.
명대 유학의 주요 특징은 ‘내 마음[吾心]’에서의 ‘자득自得’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내 마음’의 공부이기 때문에 문호에 기대거나 남을 모방하지 않고 자기의 고유한 형체와 정신을 발휘한다. 학문을 통해 일가一家를 이룬 이들이 자신이 터득한 공부법을 간명하게 요약한 것이 ‘종지宗旨’이다. 종지는 그의 공부가 힘을 얻은 득력처得力處이자, 후학을 학문의 세계로 이끄는 입문처入門處이기도 하다. 유학자들은 공자와 같은 성인이 되고자 한다. 명대 유학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인의 마음을 본래 지니고 있다고 여긴다. 그것이 바로 ‘본심本心’이다. 본심대로 살려고 몸과 마음을 다해 애쓰는 것이 ‘공부’이고, 공부를 통해 도달한 지평이 바로 ‘경지’이다. 그런데 공부를 통해 도달한 경지는 다름 아니라 본심이 실현된 것이다. 황종희는 이것을 가리켜 “마음에 본체가 없고, 공부가 도달한 곳이 바로 그 본체이다[心無本體, 功夫所至, 卽其本體.(明儒學案原序)]”라고 말한다. 공부법과 그 경로는 달라도 도달한 궁극적 지평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명대 유학을 바라보는 황종희의 기본적인 관점이다. 명대 유자들마다 그 학문 ‘종지’는 다르지만, 그들이 도달한 지평은 동일하다. 이런 시각에서 황종희는 명유들이 각자 힘을 써서 터득한 학문 종지를 밝히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그리고 ‘종지’를 기준으로 문파를 구분하고, 동일 문파에서 그 근원과 지류를 구별하여 동일한 ‘종지’가 다양하게 전개되는 양상을 드러낸다. 또 각 학자들의 사상이 담긴 주요 자료들을 뽑아 수록함으로써 독자들이 그 사상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했다. 황종희가 한 것은 여기까지다. 황종희는 『명유학안』을 사통팔달의 대로에 놓인 술동이에 비유한다. 그 안에 담긴 술을 맛보고 음미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명유들이 제시한 가르침을 음미하고 참조하여 자신에게 적절한 공부법을 찾아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은 우리 각자가 해야 할 일이다. 착실하게 자기를 가꾸는 공부를 하다 보면 자사自私와 물욕物欲이 탈각된 지점에서 자기 마음의 본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_간행사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