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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례 / 10
명유학안 권16, 강우왕문학안1 明儒學案 卷十六, 江右王門學案 一 ·전병욱 문장공 동곽 추수익 선생文莊鄒東廓先生守益 14 명유학안 권17, 강우왕문학안2 明儒學案 卷十七, 江右王門學案二 ·전병욱 문장공 남야 구양덕 선생文莊歐陽南野先生德 107 정양공 쌍강 섭표 선생貞襄?雙江先生豹 150 명유학안 권18, 강우왕문학안3 明儒學案 卷十八, 江右王門學案三 ·전병욱 문공 염암 나홍선 선생文恭羅念菴先生洪先 207 명유학안 권19, 강우왕문학안4 明儒學案 卷十九, 江右王門學案四 ·전병욱 처사 양봉 유문민 선생處士劉兩峰先生文敏 355 동지 사천 유방채 선생同知劉師泉先生邦采 379 어사 삼오 유양 선생 [유인산(劉印山)과 왕유천(王柳川)을 붙임] 御史劉三五先生陽 附劉印山, 王柳川 397 현령 매원 유효 선생縣令劉梅源先生曉 412 원외 청천 유괴 선생員外劉晴川先生魁 414 주사 낙촌 황홍강 선생主事黃洛村先生弘綱 417 주사 선산 하정인 선생主事何善山先生廷仁 427 낭중 명수 진구천 선생?中陳明水先生九川 442 태상 수주 위양필 선생太常魏水洲先生良弼 464 해원 사이 위양정 선생解元魏師伊先生良政 468 처사 약호 위양기 선생處士魏藥湖先生良器 469 □ 인명·개념어·서명/편명 색인_ 4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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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문성공(文成公: 王守仁)을 건태虔台에서 뵈었을 때 부친의 묘표墓表를 써 달라고 청하였을 뿐이고 배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문성공은 그저 밤낮으로 학문을 담론하였을 뿐인데 선생이 깨달은 바가 있어서, “예전에 나는 ‘정자程子와 주자朱子가 ??대학大學??의 빠진 부분을 보완해 넣고 격물궁리格物窮理에 대한 내용을 앞에 배치하였는데, ??중용中庸??은 신독愼獨을 맨 처음에 말하고 있어서 (정자와 주자의 방식대로) 그렇게 되면 두 경전이 서로 관련성이 없어지게 된다’라고 의심하였는데 이제야 석연해졌습니다. 격물치지가 곧 신독이었던 것이군요.”라고 말하고는 드디어 제자로 자칭하였다.
--- p.16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라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라고 묻기에, “자네는 양지良知를 믿는가?”라고 되물었다. “양지는 정묘하고 밝으니 정말로 속일 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하기에, “정묘하고 밝다는 것은 형체가 있는가?”라고 물었다. “형체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하기에, “소리가 있는가?”라고 물었다. “소리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하기에, “‘형체와 소리가 없는’ 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것이고 들리지 않는 것’이다. ‘속일 수 없는’ 것이 바로 ‘무엇보다 잘 보이고 무엇보다 잘 드러나는’ 것이다.”라고 말해 주었다. --- p.50 선생은 강학을 일로 삼았다. 이때에 학자들은 모두 ‘치양지致良知’의 학설을 외울 수 있었는데 그중 ‘남야南野의 문인’이라고 일컫는 이가 천하의 절반이었다. 계축년(1553)과 갑인년(1554) 사이 북경의 영제궁靈濟宮 모임에서 선생은 서소호(徐少湖: 徐階, 1503-1583)·섭쌍강(?雙江: ?豹)·정송계(程松溪: 程文德)와 함께 주맹主盟이 되었고 학도가 천 명까지 운집하였다. --- p.110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는 것은 모두 성性을 따르는 것이니 조금의 사의나 기필期必함이 전혀 없는 것이다. 정자는 “이는 ‘생기가 넘침’이니 (맹자의) ‘반드시 일삼는 바가 있고 기필하는 마음을 말고 잊지 말라’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라고 하였다. --- p.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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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희는 명말청초의 혼란한 시기를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살았던 실천적 사상가이자 사상사가思想史家이다. ‘경세를 위한 경사지학經史之學’을 지향했던 그는 망국의 한을 학문 탐구로 승화시켰다. 미래의 정치사상을 담은 『명이대방록』을 저술함과 아울러 과거 명대의 학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작업을 했다. 그 작업의 성과물이 바로 『명유학안』이다. 그것은 중국 최초의 학술사이자, 명대 유학 연구의 필독서로 평가받고 있다.
명대 유학의 주요 특징은 ‘내 마음[吾心]’에서의 ‘자득自得’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내 마음’의 공부이기 때문에 문호에 기대거나 남을 모방하지 않고 자기의 고유한 형체와 정신을 발휘한다. 학문을 통해 일가一家를 이룬 이들이 자신이 터득한 공부법을 간명하게 요약한 것이 ‘종지宗旨’이다. 종지는 그의 공부가 힘을 얻은 득력처得力處이자, 후학을 학문의 세계로 이끄는 입문처入門處이기도 하다. 유학자들은 공자와 같은 성인이 되고자 한다. 명대 유학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인의 마음을 본래 지니고 있다고 여긴다. 그것이 바로 ‘본심本心’이다. 본심대로 살려고 몸과 마음을 다해 애쓰는 것이 ‘공부’이고, 공부를 통해 도달한 지평이 바로 ‘경지’이다. 그런데 공부를 통해 도달한 경지는 다름 아니라 본심이 실현된 것이다. 황종희는 이것을 가리켜 “마음에 본체가 없고, 공부가 도달한 곳이 바로 그 본체이다[心無本體, 功夫所至, 卽其本體.(明儒學案原序)]”라고 말한다. 공부법과 그 경로는 달라도 도달한 궁극적 지평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명대 유학을 바라보는 황종희의 기본적인 관점이다. 명대 유자들마다 그 학문 ‘종지’는 다르지만, 그들이 도달한 지평은 동일하다. 이런 시각에서 황종희는 명유들이 각자 힘을 써서 터득한 학문 종지를 밝히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그리고 ‘종지’를 기준으로 문파를 구분하고, 동일 문파에서 그 근원과 지류를 구별하여 동일한 ‘종지’가 다양하게 전개되는 양상을 드러낸다. 또 각 학자들의 사상이 담긴 주요 자료들을 뽑아 수록함으로써 독자들이 그 사상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했다. 황종희가 한 것은 여기까지다. 황종희는 『명유학안』을 사통팔달의 대로에 놓인 술동이에 비유한다. 그 안에 담긴 술을 맛보고 음미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명유들이 제시한 가르침을 음미하고 참조하여 자신에게 적절한 공부법을 찾아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은 우리 각자가 해야 할 일이다. 착실하게 자기를 가꾸는 공부를 하다 보면 자사自私와 물욕物欲이 탈각된 지점에서 자기 마음의 본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_간행사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