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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례 / 10
명유학안 권20 강우왕문학안 5 明儒學案 卷二十, 江右王門學案 五·전병욱 태상 당남 왕시괴 선생太常王塘南先生時槐 13 명유학안 권21 강우왕문학안 6 明儒學案 卷二十一, 江右王門學案 六·전병욱 문결 정우 등이찬 선생文潔鄧定宇先生以讚 85 참정 몽산 진가모 선생參政陳蒙山先生嘉謨 98 징군 노소 유원경 선생徵君劉瀘瀟先生元卿 108 독학 사묵 만정언 선생督學萬思默先生廷言 119 명유학안 권22, 강우왕문학안 7 明儒學案 卷二十二, 江右王門學案 七·전병욱 헌사 여산 호직 선생憲使胡廬山先生直 157 명유학안 권23, 강우왕문학안 8 明儒學案 卷二十三, 江右王門學案 八·전병욱 충개 남얼 추원표 선생忠介鄒南?先生元標 229 급간 광호 나대굉 선생給諫羅匡湖先生大紘 276 명유학안 권24, 강우왕문학안 9 明儒學案 卷二十四, 江右王門學案 九·전병욱 중승 망지 송의망 선생中丞宋望之先生儀望 289 징군 잠곡 등원석 선생徵君鄧潛谷先生元錫 327 징군 본청 장황 선생徵君章本淸先生潢 353 첨사 모강 풍응경 선생僉事馮慕岡先生應京 376 □ 인명·개념어·서명/편명 색인_ 3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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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약관에 같은 고을의 유양봉(劉兩峰: 劉文敏)을 스승으로 모시고 각고의 노력으로 학문에 매진하였으며 벼슬길에 오르고서는 사방의 학문하는 이들에게 질정을 구하기를 조금도 태만한 적이 없었지만 끝내 감히 무엇을 터득하였다고는 스스로 자부하지 않았다. 50세에 벼슬을 그만두고는 외적인 일을 전부 끊어 버리고 심신의 수양을 통해 정밀하게 체험하였다. 이와 같이 3년을 공부하고서는 ‘공적空寂의 본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또 10년이 지나 ‘생성하고 생성하는 참된 기틀은 정지되거나 그치지 않아서 의념이나 사려를 따라 일어나거나 없어지지 않음’을 이해하게 되었고 학문은 수렴을 통해서 들어가 은미한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 p.14 ‘시시각각으로 익힌다’라는 말은 시시각각으로 지선至善이 근본이라는 것을 알아서 거기에 그치며 정情을 수렴하여 성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일 뿐이오. ??대학??의 ‘지선에 그친다’라는 말은 ??중용??의 ‘신독愼獨’의 공부인 것이지 두 가지 일이 아니오. 이것을 제외하고 달리 무슨 공부가 있겠소? --- p.38 ‘(세상에) 쓰이게 되면 행한다’라는 말은 그 도道를 크게 행하는 것이고, ‘버려져 있게 되면 감춰 둔다’라는 말은 ‘물러나 내밀한 곳에 감춰 둔다’라는 뜻이다. 공자는 노魯나라에서 한번 기용되자 숱한 큰일들을 해내었다. 안연顔淵은 누항陋巷에 거처하였으니 어찌 그 한 몸을 감춰 두는 데 그쳤겠는가. 일생의 학문을 모두 감춰 두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사람들은 단지 그가 성인인 것만 알지 그의 언어나 문자 등 대략을 구하려고 해도 전혀 찾지 못하니, 어찌 이 속의 깊고 깊은 것을 알 수 있겠는가. 이것이 성인에게 있어 가장 오묘한 지점이다. --- p.89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공부하니 공空에 떨어지지는 않은 듯하였고 일상의 응수가 조금 그 이치를 얻은 듯하였으며, 상하의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도 또한 조금 편안해진 듯하여서, 남야 선생이 논한 ‘인체仁體’의 종지를 깨닫게 되었다. --- p.203 어떤 사람이 나에게 “고금의 학문은 요순으로부터 공맹에 이르기까지 원래 하나이다. 뒷날 학문을 담론하는 이들은 왜 그렇게 분분하게 갈리게 되었는가?”라고 묻기에 내가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이 마음을 같이 가지고 있고, 마음은 이 리를 같이 가지고 있다. 이른바 ‘리’란 밖으로부터 이른 것이 아니다. --- p.2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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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희는 명말청초의 혼란한 시기를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살았던 실천적 사상가이자 사상사가思想史家이다. ‘경세를 위한 경사지학經史之學’을 지향했던 그는 망국의 한을 학문 탐구로 승화시켰다. 미래의 정치사상을 담은 『명이대방록』을 저술함과 아울러 과거 명대의 학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작업을 했다. 그 작업의 성과물이 바로 『명유학안』이다. 그것은 중국 최초의 학술사이자, 명대 유학 연구의 필독서로 평가받고 있다.
명대 유학의 주요 특징은 ‘내 마음[吾心]’에서의 ‘자득自得’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내 마음’의 공부이기 때문에 문호에 기대거나 남을 모방하지 않고 자기의 고유한 형체와 정신을 발휘한다. 학문을 통해 일가一家를 이룬 이들이 자신이 터득한 공부법을 간명하게 요약한 것이 ‘종지宗旨’이다. 종지는 그의 공부가 힘을 얻은 득력처得力處이자, 후학을 학문의 세계로 이끄는 입문처入門處이기도 하다. 유학자들은 공자와 같은 성인이 되고자 한다. 명대 유학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인의 마음을 본래 지니고 있다고 여긴다. 그것이 바로 ‘본심本心’이다. 본심대로 살려고 몸과 마음을 다해 애쓰는 것이 ‘공부’이고, 공부를 통해 도달한 지평이 바로 ‘경지’이다. 그런데 공부를 통해 도달한 경지는 다름 아니라 본심이 실현된 것이다. 황종희는 이것을 가리켜 “마음에 본체가 없고, 공부가 도달한 곳이 바로 그 본체이다[心無本體, 功夫所至, 卽其本體.(明儒學案原序)]”라고 말한다. 공부법과 그 경로는 달라도 도달한 궁극적 지평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명대 유학을 바라보는 황종희의 기본적인 관점이다. 명대 유자들마다 그 학문 ‘종지’는 다르지만, 그들이 도달한 지평은 동일하다. 이런 시각에서 황종희는 명유들이 각자 힘을 써서 터득한 학문 종지를 밝히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그리고 ‘종지’를 기준으로 문파를 구분하고, 동일 문파에서 그 근원과 지류를 구별하여 동일한 ‘종지’가 다양하게 전개되는 양상을 드러낸다. 또 각 학자들의 사상이 담긴 주요 자료들을 뽑아 수록함으로써 독자들이 그 사상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했다. 황종희가 한 것은 여기까지다. 황종희는 『명유학안』을 사통팔달의 대로에 놓인 술동이에 비유한다. 그 안에 담긴 술을 맛보고 음미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명유들이 제시한 가르침을 음미하고 참조하여 자신에게 적절한 공부법을 찾아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은 우리 각자가 해야 할 일이다. 착실하게 자기를 가꾸는 공부를 하다 보면 자사自私와 물욕物欲이 탈각된 지점에서 자기 마음의 본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_간행사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