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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권 태백泰伯 ―고대 성현에 대하여 (총21장)
◎ 제9권 자한子罕 ―공자가 말하지 않는 것 (총30장) ◎ 제10권 향당鄕黨 ―공자의 평소 모습 (총18장) ◎ 제11권 선진先進 ―선진을 따르라 (총25장) ◎ 제12권 안연顏淵 ―공자의 맞춤식 교육 (총24장) ◎ 제13권 자로子路 ―통치자의 덕에 대하여 (총30장) |
James Leg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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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은 은(殷)나라를 전복하려고 계획했으나, 태백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게다가 태왕은 훗날 문왕이 되는, 손자인 희창(姬昌)의 성인다운 덕을 알아보고, 왕위를 셋째 아들인 희창의 아버지에게 물려주고 싶어 했다.
--- pp.4~5 그 마을 사람은 공자가 매우 폭넓은 학식을 갖추었다는 점은 알아보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어떤 특별한 기술이나 기예를 아주 잘해야 명성을 얻을 수 있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했다. --- p.66 공자가 규(圭)를 들고 가실 때에는, 마치 그 무게를 견디기 어려운 듯 몸을 굽히고 조심스럽게 드셨다. 규(圭)를 잡은 손의 높이는 절할 때 두 손을 모으는 위치보다 높지 않았으며,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건넬 때보다 낮지 않으셨다. 긴장으로 그의 안색이 변하였으며, 발을 끌듯이 조심스럽게 걸으셨다. --- p.152 소리 내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는 것은 泣[울 읍]이라고 한다. --- p.219 또한 “克己非克去其己, 乃克去己中之私欲也” 즉, “극기(克己)는 자기(self)를 억누르고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이기심’을 억누르고 제거하는 것이다.”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 p.282 先之(선지)의 之는 ‘백성(民)’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즉, 先之(선지)는 率民(솔민) 혹은 道民(도민)의 뜻으로서, ‘백성들보다 앞서서 나아가라’ 또는 ‘백성을 이끌어라’라는 의미가 된다. 이는 결국 그의 개인적 행동이 백성들에게 솔선수범하여 모범을 보이라는 뜻이다. --- p.3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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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게의 『논어 역주』가 오랫동안 영어권에서 표준 번역서로 간주되어 온 것은 이 책이 단지 영어로 출간된 번역서이기 때문이 아니다. 레게는 ‘논어’ 번역과 함께 방대한 주석을 붙이고, 중국에서 『논어』가 전승되고 해석되어 온 과정까지 자세히 정리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번역서이면서 주석서이고, 중국 경학의 흐름을 압축해 보여 주는 연구서이기도 하다.
지면의 구성부터 이러한 성격이 잘 드러난다. 먼저 논어의 원문과 번역뿐만 아니라, 주석을 한 페이지 안에 함께 배치함으로써 독자가 영어 번역을 원문과 곧바로 대조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그의 주석은 글자의 음과 뜻, 문법과 문장 구조, 관련 문헌의 출전, 판본 차이, 역사적 인물과 제도, 서로 다른 주석가들의 견해 등을 두루 다룬다. 때로는 중국 주석서의 내용을 골라 번역하고, 여러 해석을 비교한 뒤 자신의 판단을 덧붙이기도 한다. 이 때문에 레게의 번역은 영어로 쓰인 하나의 ‘주소(註疏)’에 비견되기도 했다. 『프롤레고메나』도 이 책을 일반적인 번역서와 구별해 준다. 레게는 먼저 사서와 오경이 어떻게 주요 고전이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중국 고전의 범위와 권위를 설명하고, 한대 학자들이 『논어』의 본문을 정리한 과정과 편찬 시기, 저자, 구성, 신뢰성, 주요 주석서와 이본의 문제를 검토한다. 이어 공자의 생애와 사상, 후대에 끼친 영향, 주요 제자들을 소개하고, 번역에 참고한 동서양의 주요 문헌을 정리하고 색인을 붙였다. 레게가 이 작업을 시작한 직접적인 목적은, 앞에서 서술한 바처럼, 중국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에게 중국인의 언어와 사상을 이해할 자료를 제공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완성된 책은 선교 현장의 실용적인 안내서를 훨씬 넘어섰다. 레게 이전에도 유가 경전의 서양어 번역과 중국학 연구는 존재했으므로, 그가 학문으로서 중국학의 토대를 처음으로 마련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는 원문, 영어 번역, 비평적 주해, 장문의 서설, 체계적인 색인을 한 저술 안에 결합함으로써 영어권 중국 고전 번역의 학술적 기준을 크게 높였다. 그의 작업은 중국 고전이 비교문화연구와 비교종교학의 논의를 활성화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 점에서 중국 고전, 특히 『논어 역주』는 선교와 학문이 아직 뚜렷하게 갈라지지 않았던 19세기에 나타난 학술 번역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_역자 해제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