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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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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오언고시

태종황제(太宗皇帝) 1수
가을날-유신체를 본떠(秋日效庾信體)

왕적(王績) 1수
석죽을 읊다(石竹詠)

형상옥(邢象玉) 1수
고의(古意)

최액(崔液) 1수
답가사(踏歌詞)

왕발(王勃) 1수
바람을 읊다(詠風)

설직(薛稷) 1수
가을에 도성으로 돌아가며 섬서 십리에서 지음(秋日還京陜西十里作)

진자앙(陳子昻) 1수
나그네를 보내며(送客)

송지문(宋之問) 3수
처음 애구에 이르러(初至崖口)
밤에 동쪽 정자에서 마시며(夜飮東亭)
숭산에 사신으로 갈 때 구령을 지나며(奉使嵩山途經緱嶺)

장열(張說) 1수
잡시(雜詩)

장구령(張九齡) 7수
감우 4수(感遇 四首)
제1수
제2수
제3수
제4수
연초에 속현을 순시하다 고안의 남루에 올라 감회를 말하다(歲初巡屬縣登高安南樓言懷)
팽려호에서(彭蠡湖上)
여산에 들어가 폭포를 올려다보며(入廬山仰望瀑布水)

왕구(王丘) 1수
영사(詠史)

저광희(儲光羲) 6수
마름 따기(采菱詞)
농가에서 보이는 대로(田家卽事)
왕유의 ‘우연히 짓다’에 화답하며 2수(同王十三維偶然作 二首)
제1수
제2수
조어만(釣魚灣)
종남산에 은거하여 살며 소 시랑께 바치다(終南幽居獻蘇侍郞)

왕유(王維) 4수
위수의 농가(渭川田家)
종남산 별장(終南別業)
서시를 노래함(西施詠)
산관에서 숲과 대밭 쪽 사십오 리 돌길을 굽이 돌아 황우령에 이르러 황화천을 보며(自大散以往深林密竹磴道盤曲四五十里至黃牛嶺見黃花川)

노상(盧象) 1수
영성에서 바람에 배를 띄우며(永城使風)

고적(高適) 2수
송중(宋中)
계문(薊門)

잠삼(岑參) 2수
늦가을 산행(暮秋山行)
구산의 서봉 초당에서 짓다(緱山西峰草堂作)

가지(賈至) 1수
우언(寓言)

최국보(崔國輔) 1수
잡시(雜詩)

최서(崔曙) 2수
산 아래에서 맑게 갠 저녁에(山下晩晴)
아침에 교애산을 떠나 태실산으로 돌아와 지음(早發交崖山還太室作)

이억(李嶷) 3수
숲속 정원에서 가을밤에 짓다(林園秋夜作)
소년의 노래 2수(少年行 二首)
제1수
제2수

이백(李白) 17수
고풍 7수(古風 七首)
제1수
제2수
제3수
제4수
제5수
제6수
제7수
‘서북에 있는 높은 누대’를 본떠 지음(擬古西北有高樓)
자야오가(子夜吳歌)
봄의 그리움(春思)
강동으로 가는 장 사인을 보내며(送張舍人之江東)
소무(蘇武)
종남산을 내려와 곡사 산인의 집에 들러 묵으며, 술자리를 차리고(下終南山過斛斯山人宿置酒)
숭산으로 돌아가는 배도남을 보내며(送裴十八圖南歸嵩山)
삼협을 거슬러 오르며(上三峽)
가을밤 회포를 쓰다(秋夕書懷)
봄날 홀로 술 마시며(春日獨酌)

두보(杜甫) 19수
마음을 달래며 4수(遣興 四首)
제1수
제2수
제3수
제4수
전출새 2수(前出塞 二首)
제1수
제2수
후출새 2수(後出塞 二首)
제1수
제2수
신혼의 이별(新婚別)
노년의 이별(垂老別)
가족 없는 이별(無家別)
석호의 관리(石壕吏)
성도부(成都府)
위팔 처사에게(贈衛八處士)
미피의 서남에 있는 누대(渼陂西南臺)
진구를 지나며(過津口)
만주에서 묵으며(次晩洲)
삼운(三韻)
적곡(赤谷)

원결(元結) 1수
고향을 떠나는 슬픔(去鄕悲)

이화(李華) 1수
운모천에서 진무릉을 그리며(雲母泉懷陳武陵)

유복(劉復) 1수
절에서 살며 맑은 새벽에(寺居淸晨)

오균(吳筠) 1수
여산 오로봉을 유람하며(遊廬山五老峰)

유장경(劉長卿) 1수
회인현 남호에 묵으며, 동해현의 순 처사에게 부침(宿懷仁縣南湖, 寄東海荀處士)

이신(李紳) 1수
서하사 봉우리에 올라 멀리 바라보며(登棲霞寺峰懷望)

위응물(韋應物) 14수
‘걷고 걸어 또 쉬지 않고 걸어가니’를 본떠 지음(擬古行行重行行)
‘추위 속에 한 해가 저무는데’를 본떠 지음(擬凜凜歲云暮)
‘밝은 달은 교교히 비치고’를 본떠 지음(擬古明月何皎皎)
한가히 살며(幽居)
도연명체를 본떠(效陶彭澤體)
정장원을 보내며(送鄭長源)
노숭의 ‘가을밤’을 받고 화답하며(酬盧嵩秋夜見寄)
동덕사에서 비가 내린 후-원 시어와 이 박사에게 부침(同德寺雨後, 寄元侍御李博士)
여름밤에 노숭을 그리며(夏夜憶盧嵩)
남령 정사(藍嶺精舍)
낙양의 친구를 두고 떠나며(留別洛京親友)
서남 언덕에 올라 집터를 잡으려다 비를 만나고, 대숲을 찾다가 뜻밖에 풍수 강가의 빈터에 이르렀는데, 몇 리에 걸쳐 맑은 시내에 나무가 무성하여, 풍광이 감상할 만했다(登西南岡卜居 遇雨, 尋竹浪至灃壖, 縈帶數里, 淸流茂樹, 雲物可賞)
개원 정사에서 놀며(遊開元精舍)
약초를 심으며(種藥)

덕종황제(德宗皇帝) 1수
중양일에 곡강의 정자에서 연회를 베풀며, 여섯 운으로 지은 시에 ‘청’(淸)자 운을 쓰다(重陽日賜宴曲江亭賦六韻詩用淸字)

장휘(張翬) 1수
서하사에서 놀며(遊棲霞寺)

호구귀(虎丘鬼) 2수
호구산 석벽에 적다 2수(題虎丘山石壁二首)
제1수
제2수

조업(曹鄴) 5수
사첨이 쓴 ‘송공을 시종하며 희마대에서 병 때문에 떠나는 공령을 보내다’에 화답하며(和謝豫章從宋公戲馬臺送孔令謝病)
나부를 대신하여 태수를 꾸짖다(代羅敷誚使君)
반악의 ‘금곡원의 연회’에 화답하며(和潘安仁金谷集)
박명한 첩(薄命妾)
사망루(四望樓)

조하(趙嘏) 1수
분수 강가의 술자리에서 이별하며(汾上宴別)

저자 소개 2

왕부지는 1619년 중국 호남성(湖南省) 형양(衡陽)에서 태어나 가학(家學)으로 공부하였으며, 20살에 잠시 장사(長沙)의 악록서원(嶽麓書院)에서 공부하였다. 그의 나이 20대 중반에 명나라가 멸망함으로써 선비로서 의로움[義]을 피워 낼 국가가 없어져 버려, 평생을 명나라의 유로(遺老)로 살면서 학문에 매진한 결과 주희와 함께 중국 전통 철학을 대표하는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사·철에 두루 달통하였던 그는 『주역내전』·『주역외전』을 비롯한 『주역』 관련 5부작 외에도, 『시광전(詩廣傳)』, 『상서인의(尙書引義)』, 『속춘추좌씨전박의(續春秋左氏傳博議)』, 『사서
왕부지는 1619년 중국 호남성(湖南省) 형양(衡陽)에서 태어나 가학(家學)으로 공부하였으며, 20살에 잠시 장사(長沙)의 악록서원(嶽麓書院)에서 공부하였다. 그의 나이 20대 중반에 명나라가 멸망함으로써 선비로서 의로움[義]을 피워 낼 국가가 없어져 버려, 평생을 명나라의 유로(遺老)로 살면서 학문에 매진한 결과 주희와 함께 중국 전통 철학을 대표하는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사·철에 두루 달통하였던 그는 『주역내전』·『주역외전』을 비롯한 『주역』 관련 5부작 외에도, 『시광전(詩廣傳)』, 『상서인의(尙書引義)』, 『속춘추좌씨전박의(續春秋左氏傳博議)』, 『사서훈의(四書訓義)』, 『독사서대전설(讀四書大全說)』, 『독통감론(讀通鑑論)』, 『영력실록(永曆實錄)』, 『장자정몽주(張子正蒙注)』, 『노자연(老子衍)』, 『장자해(莊子解)』, 『상종락색(相宗絡索)』, 『초사통석(楚辭通釋)』, 『강재문집(薑齋文集)』, 『강재시고(薑齋詩稿)』, 『고시평선(古詩評選)』, 『당시평선(唐詩評選)』, 『명시평선(明詩評選)』 등 불후의 거작들을 남겼다. 1692년 74세를 일기로 서거함으로써 가난과 굴곡으로 점철한 평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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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 Sung,徐盛, 이백시문연구회

배재대 교수. 홍익대 산업도안과 및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한 후 베이징대 중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저역서로 『양한(兩漢) 시집』, 『한시, 역사가 된 노래』, 『삼국지 그림으로 만나다』, 『대력십재자 시선』, 『당시별재집』, 『중화문명사』 등이 있다. 그밖에 명청 삽화에 대한 논문이 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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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4월 1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59쪽 | 152*223*17mm
ISBN13
9791175490536

책 속으로

왕부지는 집단적 지향인 지(志)와 개인적 지향의 뜻[意]을 구분하고, 집단적 욕구인 대욕(大欲)과 개인적 욕구인 욕(欲)을 구분하였다. 그는 “‘시는 지(志)를 말한다’고 했지 ‘뜻[意]을 말한다’고 하지 않았다. 시는 정(情)을 나타내는 것이지 욕(欲)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 집단적 욕구인 대욕(大欲)은 지(志)와 통하고, 집단적 지향인 공의(公意)는 정(情)에 준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일상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맹자』 「고자(告子)」의 말을 빌려 ‘본성을 잃은 것’이고, 이를 시로 표현하는 것은 『시경』에는 거의 없으며, 양한위진남북조와 초당까지도 설령 있다고 해도 삼갈 줄 알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두보는 부족한 재물과 누추한 거처와 아쉬운 처첩의 시중을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으며 자신의 욕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문제는 이후의 시인들이 두보의 영향을 받아 이러한 경향이 더욱 심해졌고 대세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나아가 글자를 조탁하고 운율을 맞추고 기승전결의 틀에 넣으면서 시는 더욱 지리멸렬하게 변하였다.

왕부지가 문명사의 시각에서 역대의 시를 바라보고 당대 이래의 시의 내용과 풍격을 비판한 것은 시를 통해 본 정감의 변천이 점점 하락하고 그 결과 명의 멸망까지 이르렀다는 인식에서 나왔다. 그가 세 권의 평선(評選)을 편찬한 것도 공자의 산시(刪詩)를 본받아 정감을 바로 세우려는 뜻에서 나온 점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이 책에는 문명사의 시각에서 타락해가는 인간의 정감을 재구축하려는 이상이 투영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평선』 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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