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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왕부지의 시학과 『당시평선』
왕부지에 대하여 『당시평선』의 기본 내용 시의 문체적 특징을 옹호하다 현량(現量), 시의 본질에 대한 창의적인 인식 정경교융(情景交融)에 대한 변증법적 인식 작품의 통합성 구성의 통합성 도식적인 시작법에 대한 비판 혼성(渾成)과 평미(平美)의 미학 두보에 대한 가혹한 비판 ‘두보 배우기’ 비판 문명사의 시각에서 정감의 질서를 재구축하다 악부가행 왕적(王績) 1수 북산(北山) 왕발(王勃) 1수 등왕각(滕王閣) 노조린(盧照隣) 1수 장안 고의(長安古意) 최융(崔融) 1수 종군의 노래(從軍行) 유정지(劉庭芝) 2수 공자의 노래(公子行) ‘백발노인을 슬퍼하며’를 본떠 지음(代悲白頭翁) 채부(蔡孚) 1수 타구편(打毬篇) 송지문(宋之問) 1수 단주역에 이르러 두심언, 심전기, 염조은, 왕무경이 벽에 적은 시를 보고 감개가 일어나 읊다(至端州驛見杜五審言沈三佺期閻五朝隱王二無競題壁慨然成詠) 진자앙(陳子昻) 1수 유주대에 올라(登幽州臺歌) 장악(張諤) 1수 백자지(百子池) 현종황제(玄宗皇帝) 1수 진천에 막 들어선 길 위에서 한식을 만나(初入秦川路逢寒食) 장약허(張若虛) 1수 춘강화월야(春江花月夜) 저광희(儲光羲) 1수 장미편(薔薇篇) 왕유(王維) 2수 장오 동생에게 답하다(答張五弟) 유림군 노래(楡林郡歌) 왕창령(王昌齡) 2수 오서곡(烏棲曲) 행로난(行路難) 맹호연(孟浩然) 1수 앵무주에서 강좌로 가는 왕구를 보내며(鸚鵡洲送王九之江左) 고적(高適) 2수 연가행(燕歌行) 인일 두이에게 부침(人日寄杜二) 최호(崔顥) 2수 맹문의 노래(孟門行) 칠석 (七夕) 잠삼(岑參) 7수 옛 업성에 올라(登古鄴城) 호가의 노래-하롱으로 부임하는 안진경을 보내며(胡笳歌送顔眞卿使赴河隴) 한단 객사의 노래(邯鄲客舍歌) 백설의 노래-장안으로 돌아가는 무 판관을 보내며(白雪歌送武判官歸京) 청문의 노래-동대 장 판관을 보내며(靑門歌送東臺張判官) 양주 객관에서 밤에 판관들과 모여(州館中與諸判官夜集凉) 윤대의 노래-서쪽으로 출정하는 봉 대부를 삼가 보내며(輪臺歌奉送封大夫出師西征) 이기(李頎) 1수 진장보를 보내며(送陳章甫) 이백(李白) 16수 오야제(烏夜啼) 오서곡(烏棲曲) 원별리(遠別離) 장상사(長相思) 북풍의 노래(北風行) 채련곡(采蓮曲) 이칙의 격식으로 올린 ‘백구’ 불무사(夷則格上白鳩拂舞辭) 벽사 놀이에 쓰이는 고취곡 ‘치자반’ 가사 (設辟邪伎鼓吹雉子班曲辭) 중산왕 유자첩 노래(中山孺子妾歌) 높은 언덕에 올라 먼 바다를 바라보며(登高丘而望遠海) 양보음(梁甫吟) 선주 사조루에서 사촌인 교서랑 이운을 전별하며(宣州謝朓樓餞別校書叔雲) 파릉의 노래-송별 (灞陵行送別) 의춘원에 시종하며, 어명을 받들어 지은 ‘용지에 버들 빛 새로울 때 듣는 꾀꼬리 노래’(侍從宜春苑奉詔賦龍池柳色初靑聽新鶯百囀歌) 금릉 술집에서 두고 떠나며(金陵酒肆留別) 술잔을 들고 달에게 묻다(把酒問月) 두보(杜甫) 12수 단가행-왕랑 사직에게(短歌行贈王郎司直) 왕손을 슬퍼함(哀王孫) 건원 연간에 동곡현에서 살며 짓다 7수(乾元中寓居同谷縣作七首) 제1수 제2수 제3수 제4수 제5수 제6수 제7수 여인행(麗人行) 낭수의 노래(閬水歌) 비바람 속 쪽배 앞에 떨어지는 꽃을 보며, 장난삼아 새 시를 짓다(風雨看舟前落花, 戲爲新句) 이가우(李嘉祐) 1수 잡흥(雜興) 이익(李益) 2수 들밭의 노래(野田行) 경박편(輕薄篇) 왕건(王建) 3수 멀리 있는 사람에게 부치는 노래(寄遠曲) 단가행(短歌行) 창 앞에서 베를 짜며(當窓織) 유종원(柳宗元) 1수 양백화(楊白花) 장적(張籍) 4수 목동사(牧童詞) 단가행(短歌行) 사수의 노래(泗水行) 참새가 높이 날다(雀飛多) 이하(李賀) 5수 옛 업성 동요-왕찬을 본떠 조조를 비판하다(古鄴城童子謠, 效王粲刺曹操) 청동 신선이 한궁을 떠나는 노래(金銅仙人辭漢歌) 후원에 판 우물(後園鑿井) 진궁시(秦宮詩) 곤륜산으로 간 사신(崑崙使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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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부지는 집단적 지향인 지(志)와 개인적 지향의 뜻[意]을 구분하고, 집단적 욕구인 대욕(大欲)과 개인적 욕구인 욕(欲)을 구분하였다. 그는 “‘시는 지(志)를 말한다’고 했지 ‘뜻[意]을 말한다’고 하지 않았다. 시는 정(情)을 나타내는 것이지 욕(欲)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 집단적 욕구인 대욕(大欲)은 지(志)와 통하고, 집단적 지향인 공의(公意)는 정(情)에 준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일상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맹자』 「고자(告子)」의 말을 빌려 ‘본성을 잃은 것’이고, 이를 시로 표현하는 것은 『시경』에는 거의 없으며, 양한위진남북조와 초당까지도 설령 있다고 해도 삼갈 줄 알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두보는 부족한 재물과 누추한 거처와 아쉬운 처첩의 시중을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으며 자신의 욕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문제는 이후의 시인들이 두보의 영향을 받아 이러한 경향이 더욱 심해졌고 대세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나아가 글자를 조탁하고 운율을 맞추고 기승전결의 틀에 넣으면서 시는 더욱 지리멸렬하게 변하였다.
왕부지가 문명사의 시각에서 역대의 시를 바라보고 당대 이래의 시의 내용과 풍격을 비판한 것은 시를 통해 본 정감의 변천이 점점 하락하고 그 결과 명의 멸망까지 이르렀다는 인식에서 나왔다. 그가 세 권의 평선(評選)을 편찬한 것도 공자의 산시(刪詩)를 본받아 정감을 바로 세우려는 뜻에서 나온 점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이 책에는 문명사의 시각에서 타락해가는 인간의 정감을 재구축하려는 이상이 투영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평선』 해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