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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7 [선공宣公(재위 기원전 608∼기원전 591)]
선공 원년 / 선공 2년 / 선공 3년 / 선공 4년 / 선공 5년 / 선공 6년 / 선공 7년 / 선공 8년 / 선공 9년 / 선공 10년 / 선공 11년 / 선공 12년 / 선공 13년 / 선공 14년 / 선공 15년 / 선공 16년 / 선공 17년 / 선공 18년 / 선공 원문 권8 [성공成公(재위 기원전 590∼기원전 573)] 성공 원년 / 성공 2년 / 성공 3년 / 성공 4년 / 성공 5년 / 성공 6년 / 성공 7년 / 성공 8년 / 성공 9년 / 성공 10년 / 성공 11년 / 성공 12년 / 성공 13년 / 성공 14년 / 성공 15년 / 성공 16년 / 성공 17년 / 성공 18년 / 성공 원문 권9 [양공襄公(재위 기원전 572∼기원전 542)] 양공 원년 / 양공 2년 / 양공 3년 / 양공 4년 / 양공 5년 / 양공 6년 / 양공 7년 / 양공 8년 / 양공 9년 / 양공 10년 / 양공 11년 / 양공 12년 / 양공 13년 / 양공 14년 / 양공 15년 / 양공 16년 / 양공 17년 / 양공 18년 / 양공 19년 / 양공 20년 / 양공 21년 / 양공 22년 / 양공 23년 / 양공 24년 / 양공 25년 / 양공 26년 / 양공 27년 / 양공 28년 / 양공 29년 / 양공 30년 / 양공 31년 / 양공 원문 |
何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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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를 왜 ‘공자 수’라고 말하지 않았나? 동일 사안에서 두 번째 언급할 때는 간략히 이름만 부른다. 부인을 왜 ‘강씨’라고 하지 않았는가? 깎아내렸다. 왜 그리했는가? 상중에 부인을 얻은 사실을 책망한 것이다. 상중에 부인을 얻은 사람은 선공인데, 왜 부인을 깎아내렸는가? 노나라에 대해서는 임금을 깎아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선공을 깎아내릴 수 없다면, 왜 부인을 깎아내리는가? 부인과 임금은 한 몸이기 때문이다. ‘부婦’라고 쓴 이유는 무엇인가? 시어머니가 살아 있다는 의미다.
--- p.15 사실은 초나라 임금인데, 《전》에서는 왜 ‘사람’이라고 했는가? 깎아내린 것이다. 왜 깎아내리는가? 제후가 다른 나라의 죄인을 처벌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후가 다른 나라의 죄인을 처벌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라 밖에서 처벌했기 때문이다. 설령 나라 안이라도 허락하지 않는다. 왜 제후의 처벌에 허락하지 않는가? 실제로는 허락하지만 글로써는 허락할 수 없는 것이다. 글로써는 왜 허락하지 않는가? 제후는 도의상 마음대로 죄인을 처단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제후가 마음대로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허락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위로는 밝은 천자가 없고 아래로는 제후를 다스릴 우두머리가 없었다.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고 자식이 어버이를 시해하는 무도한 짓이 벌어진다면, 역량 있는 누구라도 이런 짓을 한 자를 처벌할 수 있으며 옳은 일이다. --- p.76 제후들이 모두 있었는데 왜 대부들이 맹약했다고 했는가? 국가 간의 신의가 대부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 간의 신의가 대부들에게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천하 각국의 대부들을 두루 꾸짖은 것이다. 왜 천하의 대부들을 두루 꾸짖었는가? 제후들이 깃대 끝에 달린 술 같은 장식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 p.364 위나라 헌공 간은 상공을 속이고 시해했는데, 《경》에서 왜 ‘복귀復歸’라고 했는가? 위나라 상공 표를 미워한 것이다. 왜 표를 미워하는가? 표가 임금이 된 후 아무도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표가 어떻게 임금이 되었는지는 왜 기록하지 않았는가? 표가 임금이 된 사정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헌공을 미워한 것이다. --- p.4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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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공양경전해고》는 《공양전》에 대한 漢代의 古注를 집대성한 유일한 서적이다. 하휴는 訓?, 章句, 禮樂제도 등의 제방면에 관한 해설을 포함하여 《춘추》와 《공양전》의 의리를 발굴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所傳聞世’ ‘所聞世’ ‘所見世’의 三世이론은 ‘亂世’ ‘升平世’ ‘太平世’의 改制사상으로 발전하였다. 이외에도 ‘三科九旨’ ‘五始’ ‘六 ’ ‘二類’ ‘七等’ ‘七缺’ 공양철학의 주요개념이 모두 이 책에서 배태되었다. 물론 ‘大一統’ ‘尊王攘夷’를 위시한 중화사상과 만물을 철저히 존비관계에 기반 하여 자리매김 하는 등급적 세계관 또한 《춘추공양경전해고》가 후세 중국인의 사유에 끼친 결과물이다. 이밖에 구체적 역사 사건에 어떤 포폄의 잣대를 적용해야 하는가라는 당위의 근거를 제시하면서 원시 중국인의 가치관을 잘 드러내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교류는 확장일로에 있다. 호불호와 관계없이 중국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는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다. 따라서 중국학 종사자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중요한 원전을 성실히 번역하여 시민사회에 제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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