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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Byung, Park,朴熙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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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이 책에서 말하는 공부는 실용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무용을 위한 공부다. 무용은 실용의 ‘근원’이며 실용의 ‘피안(彼岸)’이다. 이 책이 나온 지 3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여전히 실용에 관한 책은 넘치고 무용에 관한 책은 드문 듯하다. 실용의 공부와 달리 무용의 공부는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공부다. 그러므로 이 공부는 ‘나의 삶 전체’와 연관을 맺고 있다. 그래서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 것만이 공부가 아니요, 밥 먹고 잠자고 생각하고 말하고 사람들과 관계 맺고 만나고 헤어지고 길을 가고 하릴없이 누워 있고 고민하고 한탄하고 절망하고 화내고 슬퍼하고 아파하고 기뻐하고 늙고 죽어가는 것, 이 모두가 공부와 무관하지 않다. 이렇듯 이 공부는 나의 삶과 조금도 분리되지 않는다.
--- 「머리말」 중에서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뜻을 같이하는 벗이 멀리서 나를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곧 아는 것이다. 학문을 하는 것은 산을 만드는 것과 같다. 마지막 흙 한삼태기를 붓지 않아 산을 못 이루더라도 그 중지하는 것은 내가 중지하는 것이며, 평지에 흙 한삼태기를 붓더라도 그 나아감은 내가 나아가는 것이다. --- 「공자」 중에서 사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고, 일에는 처음과 끝이 있으니, 무엇을 먼저하고 무엇을 나중에 해야 할지를 안다면 도에 가깝다. 뜻을 참되게 한다는 것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 「『대학』」 중에서 알면 반드시 좋아하게 되고, 좋아하면 반드시 찾게 되며, 찾으면 반드시 얻게 되리니, 죽는 날까지 공부를 그만두어선 안 된다. --- 「정자」 중에서 모름지기 마음을 활달하고 너그럽고 상쾌하고 공평하게 가져야만 비로소 도를 볼 수 있다. --- 「장자」 중에서 사람 마음이 양지(良知)를 갖고 있음은 성인(聖人)이나 바보나 매한가지고 천하고금에 차이가 없다. 세상의 군자가 자신의 양지를 회복하는 데 힘쓴다면 시비에 공변될 수 있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똑같이 대할 수 있으며 남 보기를 자기처럼 하고 나라 생각하기를 제집 생각하듯 하게 되므로 천지만물을 자기와 한몸으로 여기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설사 천하가 다스려지지 않기를 바라더라도 천하는 절로 다스려진다. 학문은 깨우쳐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깨우쳐주는 것은 스스로 깨닫는 것보다는 못하다. 스스로 깨닫는 것은 일당백(一當百)의 공부가 된다. --- 「왕양명」 중에서 무릇 일상생활에서 말을 적게 하고 욕심을 절제하며, 한가하고 고요하고 평온하게 지내야 한다. 그림 감상, 화초 구경, 산수유람, 물고기와 산새를 완상(玩賞)하는 것 등등의 일도 진실로 뜻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다면 항상 접하는 것을 싫어하지 말 일이다. 책을 볼 적에도 마음을 괴롭히는 데까지 이르러서는 안 되며, 많이 보는 것을 절대 경계해야 한다. --- 「이황」 중에서 도(道)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아니하나니, 공부하면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 --- 「서경덕」 중에서 학문이란 모름지기 스스로 깨침을 귀하게 여긴다. 한갓 책에 의존하여 알게 된 이치일 뿐이고 자기 마음속에서 참되이 깨달은 게 아니라면, 결국 아무 소용이 없다. 마음속에서 참되이 깨달은 것은 입으로 말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학자는 말 잘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 「조식」 중에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공부를 하지 않으면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없다. 이른바 공부한다는 것은 특별하거나 별다른 것이 아니다. 다만 어버이가 되어서는 자식에게 인자하고, 자식이 되어서는 어버이에게 효도하며, 신하가 되어서는 임금에게 충성하고, 부부간에 서로 분별이 있고, 형제간에 서로 우애가 있으며, 젊은이는 어른을 공경하고, 친구간에 서로 믿음이 있게 하는 것이다. 사람의 얼굴 모습은 추한 것을 곱게 고칠 수 없고, 완력은 약한 것을 강하게 할 수 없으며, 키는 작은 것을 크게 고칠 수 없다. 이는 이미 정해진 분수가 있으므로 바꿀 수 없지만, 오직 마음만큼은 어리석은 것을 지혜롭게 만들고 어질지 못한 것을 어질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니, 이는 마음의 본성이 신령스러워서 타고난 기질에 구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입으로만 읽어서 마음으로 체득하지 못하고 몸으로 실행하지 못한다면, 책은 책이고 나는 나니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 --- 「이이」 중에서 무릇 천지 사이에 있는 날짐승과 들짐승, 풀과 나무가 모두 물(物) 아닌 것이 없는데, 인(仁)이란 이 모두를 나 자신과 한몸으로 간주하는 태도이다. 안다는 것은 곧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다. --- 「이익」 중에서 그림자가 바르지 않은데 형체가 단정한 법은 없으며, 겉이 어지러운데 속이 다스려지는 법은 없다. 고요히 앉는 것은 공부를 진전시키는 데에 가장 큰 힘이 된다. --- 「홍대용」 중에서 옛것을 본받으려는 자는 옛날의 자취에 구애되는 병폐가 있고, 새것을 만들어내는 자는 법도가 없는 것이 폐단이다. 진실로 옛것을 본받되 변통할 줄 알고 새것을 만들어내되 법도가 있다면, 오늘날의 글이 옛날의 글과 같을 수 있으리라. --- 「박지원」 중에서 오직 독서 이 한가지 일이, 인간으로 하여금 짐슴과 벌레의 부류를 벗어나 저 광대한 우주를 지탱하게 만드니, 독서야말로 우리들의 본분이라 하겠다. --- 「정약용」 중에서 지금 글쓰기에 마음을 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명제가 있으니, 그것은 곧 글쓰기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을 속이지 않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서법(書法)은 사람마다 전수받을 수 있지만, 정신과 흥취는 사람마다 자신이 스스로 이룩하는 것이다. 정신이 없는 글은 그 서법이 아무리 볼 만해도 오래 두고 감상하지 못하며, 흥취가 없는 글은 그 글자체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고작 글씨 잘 쓰는 기술자라는 말밖에 듣지 못한다. --- 「김정희」 중에서 학문이란 본래 평화로운 것이다. 인간사의 분쟁을 학문을 통해 화해시키고, 정치가 도리를 잃은 것을 학문을 밝혀 바로잡으니, 혼란을 막고 위기를 구해주며 어리석은 것을 깨우치고 악을 감화시키는 것이 바로 학문의 본의이다. --- 「최한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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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공부는 둘이 아니다
‘진정한 나’를 찾는 무용(無用)의 공부 ‘공부’라고 하면 흔히 시험공부나 입시, 자격증 같은 것을 따기 위한 실용적인 것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어렵고 하기 싫은 무엇이거나, 특정 직군의 사람들이 전문 분야에서 지식을 쌓는 행위를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동아시아 전통에서 공부(工夫)는 즐거움 속에서 평생 해나가야 하는 것으로서, 나의 ‘인간다운 삶’을 고민하는 과정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것으로 나의 삶 전체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 바로 공부의 참뜻이다. 저자가 삶의 모든 것이 공부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라는 제목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난 치는 데 손을 대자면 마땅히 자신을 속이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추사 김정희의 말에서 가져온 제목은 남의 기준이나 잣대에 맞추기보다는 자신의 원칙에 철저하게 임할 때 비로소 남들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뜻까지 내포하고 있다. 남을 속이지 않는 것보다 나를 속이지 않는 것은 때에 따라 더욱 어렵기도 할 테지만, 이와 같은 자세를 견지해야만 학문뿐 아니라 삶 자체를 대하는 태도, 진실한 인간관계 등 모든 면에서 나다운 삶을 살 수 있고, 인간다운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밖에도 이 책에는 “군자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데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공자), “출세할 생각으로 공부한다면 공부에 해가 된다. 그런 생각을 가지면 반드시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면서 견강부회하게 되므로 문제를 일으킨다”(장자), “자만하면 남의 말을 듣지 않게 되고, 빨리 이루고자 하면 뭇 이치를 궁구하지 않게 된다”(이황), “말이 많고 잡념이 많은 것이 마음 공부에 가장 해롭다”(이이), “안다는 것은 곧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다”(이익), “설사 의견이 서로 다르더라도 살피고 정정하기에 힘써 마침내 올바른 데로 귀결되게 함이 옳다”(정약용) 등 지금 우리에게 귀감이 될 만한 말들로 가득 차 있다. 하나하나 어떻게 하면 삶의 올바른 길[道]을 갈 수 있을지에 대한 한마디다. 최고의 권위자가 전하는 선인들의 공부법 동양 고전을 읽으며 발견하는 ‘내 삶의 존엄성’ 국내 고전문학의 최고 권위자라 할 수 있는 저자는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에게 인생의 지침이 되는 조언을 해주며 두루 존경을 받아왔다. 동시에 그의 수업은 정년퇴임 직전까지 최고 인기 강좌 중 하나였다. 그 비결은 공부란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는 그의 지론이 강의에 녹아 있기 때문이며 그것이 많은 학생들의 마음에 진심으로 가닿은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정수를 모은 책이 바로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다. 저자는 이번에 개정판을 펴내며 “밥 먹고 잠자고 생각하고 말하고 사람들과 관계 맺고 만나고 헤어지고 길을 가고 하릴없이 누워 있고 고민하고 한탄하고 절망하고 화내고 슬퍼하고 아파하고 기뻐하고 늙고 죽어가는 것, 이 모두가 공부와 무관하지 않다. 이렇듯 이 공부는 나의 삶과 조금도 분리되지 않는다”라고 썼다. 이는 공부라고 하면 ‘입시지옥’을 떠올리는 우리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며,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알고 조금 더 성적이 좋다고 귀한 대접을 받는 풍토에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도 상당하다. 그래서 이 책이 말하는 궁극적인 메시지, 즉 공부를 통해 추구해야 하는 바는 바로 ‘내 삶의 존엄성’이다. 살아가기 막막한 세상에 ‘실용적인’ 조언을 건네는 책은 넘쳐나지만, 이토록 마음을 다독이며 무게감 있는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책은 드물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가 역설적으로 모두에게 실용적인 책인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