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감사의 말 5
서문 9 들어가며─신유물론, 이론의 새로운 전장 19 1부 신유물론의 철학 37 1장 신유물론의 배경과 의미 39 1. 신유물론의 철학사적 배경 39 (1) 고대 유물론과 신유물론 39 (2) 근대 유물론과 신유물론적 시간성 44 (3) 현대유물론과 신유물론 59 2. 과학과 신유물론 79 (1) 현대물리학과의 만남 79 (2) 생명에 대한 새로운 이해 90 (3) 단순함에서 복잡함으로 100 3. 신유물론의 ‘새로움’이란 무엇인가? 101 (1) 이분법의 종언과 긍정의 유물론 101 (2) 비근대의 포스트 휴머니즘 114 (3) 인류세와 자본세에서 새로운 정치적 주체 129 2장 신유물론의 주요 주제들 145 1. 물질에 대한 규정들 145 (1) 능동성과 횡단성 145 (2) 관계성과 우발성 159 (3) 물질은 비재현적 사건으로 존재한다 167 2. 이분법을 횡단하기 176 (1) 오래된 이야기-데카르트식 우화들의 재독해 176 (2) 사이보그 207 (3) n/n-1 214 3. 수행성-실천철학의 정초 놓기 222 (1) 수행성의 전사(前史)와 실험 222 (2) 신유물론의 페미니즘 231 (3) 극단으로 밀어 붙이기 248 2부 신유물론의 이론가들 255 3장 신유물론자들의 등장 257 1. 들뢰즈와 가타리 257 (1) 신자연주의 257 (2) 존재론의 갱신과 주체의 일신 266 (3) 물질적 전회 278 2. 로지 브라이도티 282 (1) 포스트휴먼과 괴물성 282 (2) 유목적 주체 288 (3) 페미니즘과 긍정의 윤리-정치 296 3. 마누엘 데란다 303 (1) 신유물론의 최초 장면 303 (2) 잠재성의 유물론 307 (3) 사회적 배치 315 4장 신유물론의 전개 321 1. 브뤼노 라투르 321 (1) 진리 대응설에서 진리 이동설로 321 (2) 다이어그램 331 (3) 비환원과 혼종의 정치 340 2. 퀑탱 메이야수 351 (1) 상관주의, 원-화석과 선조성 351 (2) 본사실성의 원리와 거대한 바깥 368 (3) 자기-폐절의 정치학 387 3. 카렌 바라드 395 (1) 얽힘과 간-행 395 (2) 행위적 실재론 407 (3) 윤리-존재-인식론과 정치학 416 5장 새로운 세대들의 분투 429 1. 레비 브라이언트 429 (1) 유물론으로서의 존재자론 429 (2) 열역학 정치를 향해 442 (3) 존재지도학-위상학적 시공간 448 2. 수행적 신유물론자들 456 (1) 여타 유물론과의 구별 456 (2) 들뢰즈·가타리의 유산 458 (3) 테제들 462 3. 토머스 네일 470 (1) 초월론적 실재론과 과정 유물론 470 (2) 루크레티우스 재독해 484 (3) 운동적 맑스주의 499 6장 논쟁 555 1. 사변적 실재론인가, 신유물론인가? 555 (1) 하먼의 사변적 실재론에 대한 비판적 접근 555 (2) 들뢰즈의 사변적 실재론? 606 (3) 실재론은 신유물론을 포괄하지 못한다 635 2. 퀑탱 메이야수의 유물론은 실재론인가? 638 (1) 사변적 유물론과 사변적 실재론 638 (2) 하먼의 비판 645 (3) 하먼에 대한 재비판 649 3. 평평한가, 평평하지 않은가? 656 (1) 하먼의 평평한 존재론 656 (2) 한계-관계의 경시 661 (3) 잠재적 아나키즘과 실재의 잔혹함 665 나가며―신유물론의 윤리-정치학을 위해 667 보론 1 육후이의 기술철학과 신유물론 687 보론 2 신유물론과 가속주의 정치철학의 결연 가능성 705 용어 해설 737 참고문헌 771 찾아보기 786 |
박준영의 다른 상품
|
이와 같이 실패의 유물론은 그 자신의 실패 앞에서 물질을 잡아 쥘 수 없다는 의미에서 ‘실패’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이 ‘실패’가 아주 오래된 칸트적 초월주의와 연관된다는 것 그리고 애석하게도 알튀세르가 말한 ‘최종심급’의 영원한 미-래(未-來, 아직 오지 않음) 안에서도 얼핏 내비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만약 우리가 이 실패의 연원에 ‘문화적 전회’(cultural turn)라는 명칭을 부여할 수 있다면, 이 전회가 단선적이지 않은 두 가지 극단적인 물질성으로의 분기라는 점을 깨닫는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문화를 물질성 자체로 보면서, 그것의 이데올로기적 면모를 신체들 안에서 발견하려고 했다면, 다른 한편으로 그 문화의 근저에 놓인 물질에 대한 인식론적 무능력을 자백하고, 존재론적 불가지성을 격상시키는 자기 파괴적인 방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이 두 방향으로의 균열은 물질성을 일종의 사물-자체나 인식의 궁극적인 원자적 요소처럼 보게 한다.
--- pp.74~75 그래서 포스트휴먼의 형상은 어떤 비위계적이고, 비경계적인 “초정상”(supernormal)으로서, “자연적 경계의 가소성”이며 따라서 표준화된 “좋은 형태/형식에 대한 어떤 자연스러운 경멸”을 동반한다. 초정상은 표준화된 형식을 거스르면서 형태왜곡을 달성하며, 그러는 중에 정상성을 초과하는 운동을 한다. 이것은 위반이면서, 준법이고, 해체이면서 구성이다. 긍정의 유물론의 행위소로서 포스트휴먼은 단순한 부정의 지위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상황 안에서 그것을 긍정하고, 올라타며, 그로부터 괴물을 분비한다. 때문에 포스트휴먼의 초정상성은 이런 의미에서 ‘초월론적’(transcendental)이다. 즉 이들은 초월론적 경험론의 수행자로서 상황 안에서 공통된 척도 없이 정상성을 초월하고 기형적인 활력을 긍정하면서 극단을 향해 나아간다. 이들이 도달하는 곳은 어떤 분자적 생성의 지대이며, 들뢰 즈·가타리의 언어를 빌리자면 ‘식별 불가능성의 지대’다. 양식을 위반하는 감응의 역능을 발휘하는 것은 포스트휴먼 투사의 미덕이기도 하다. --- p.124 결론적으로 횡단성은 이분법을 비껴가면서 그것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무능력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 이분법을 죽이지 않고, 그것을 표면에서 확장시키면서 이분법을 n분하되, 거기서 이분법을 빼는 것이다(n-1). 이렇게 되면 언제나 거기에는 총체성을 초과하는 잔여적인 것(n/n-1)이 남게 된다. 이것에 극한을 적용하면 잔여적인 것은 늘 미분적인 것, 즉 미분적인 차이화 과정이 된다. 이분법을 극단으로 밀어붙인다는 것은 이와 같이 이분법 자신의 결정론적인 범주적 권력을 매번 빼서 더 멀리 던져두고, 그 빈자리에 늘 미분적 차이를 새겨넣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것은 들뢰즈의 용어법에 따르면 ‘미분화하는 차이생성’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이때 n과 n-1은 선후관계가 아니라 갈마들고 얽히는 관계다. 즉 수행적인 것이다. n이 계속해서 이어지기 위해서는 n-1이 요구되고, 그 역도 타당하다. 횡단성은 이렇게 함으로써 어떤 것을 ‘죽이거나’ 소멸시킨다기보다, 그것의 역능을 자기화하면서, 거기서 새로운 것을 생성시킨다. 그러므로 신유물론과 관련하여 이 개념은 그 실천적 역량을 확장하기 위한 조건을 교육하고, 정치적으로 고무하는 기능을 가지게 된다. --- p.221 그렇다면 수행적 신유물론에서 ‘신’(new)이란 존재론과 인식론에서의 상호교차를 통해 비인간중심주의적인 실재론을 포용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다시 말해 내 앞에 있는 저 사물들이 그저 얌전히 놓여 있는 수동적 객체가 아니라 나와 상호작용하면서 얽혀 있는 능동적 실재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끝까지 견지해야 하는 입장은 이 얽힘 가운데 물질의 능동성을 강조하면서도 그리고 인간의 물질성을 긍정하면서도, 이와 동시에 인간을 물질적 실재에 관한 예외적이고 객관적인 관찰자로 위치 지우는 오래된 습성을 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인간중심주의보다 더 끈질긴 사유 구도는 사실상 이런 인간예외주의이다. 따라서 수행적 신유물론은 이전 유물론들이 간과하거나 암묵적으로 인정했던 인간예외주의를 철저히 거부하면서, 생기적 유물론과 칸트식의 실패의 유물론도 거부한다. 이를 통해 수행적 신유물론은 물질과 의식, 자연과 인간, 객체와 주체 간의 이분법을 횡단하면서 물질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확립하고자 한다. --- p.457 신유물론이 겨냥하는 것은 이러한 인간예외주의적인 프로그램이 인류-자본세(anthro-capitalocene) 안에서 누구를 위해, 또 어떻게 실행되는가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 행위적 절단에 따른 물질의 물질화 또는 현상들이 출현하는지를 인지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 간극 안에 새로운 물질적이고 담론적인 진지를 구축하고자 한다. 한편으로 이것은 물질-담론적 개입의 형태를 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참여와 연대의 형태를 띤다. 전자의 경우 이러한 개입에서 질문은 ‘누구’와 ‘어떻게’이다. 이로써 인류-자본세의 진정한 수혜자가 한 줌도 안 되는 후기자본주의의 고리대금업자들, 월가의 투자자들, 각국의 작전세력들 그리고 다국적 기업들이라는 것을 폭로하며, 거기에 맞서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라투르가 말한 그 진정한 ‘녹색계급’이 구성될 것이다. 첫 번째 허무주의의 긍정의 긍정이 야기하는 것이 이것이다. --- p.679 |
|
인간과 비인간이라는 이분법이 휩쓸고 간
폐허 위에 무엇을 다시 번성시킬 것인가? ‘물질도 행동한다’는 인식의 전환으로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새로운 현대 사상으로 대두되어 여러 학문 분야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신유물론. 『신유물론, 물질의 존재론과 정치학』은 21세기 첨단의 철학인 신유물론에 대한 포괄적인 입문서이자 연구서다. 이 책은 신유물론이 다루는 문제의식을 제시하고, 신유물론자들의 이론적 성과를 종합할 뿐만 아니라, 주요 철학자들의 이론을 요약하고 이로 인한 논쟁점들을 설명한다. 즉 신유물론의 내용을 종합하면서 이론적·실천적·역사적 지도를 그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푸코, 데리다, 들뢰즈 이후 서양철학의 방향은 신유물론으로 수렴된다. 저 세 거장들은 모두 권력, 역사, 담론과 텍스트에서 괄목할 만한 사유의 혁신을 단행했으며, 그것은 모두 인간중심주의와 이성중심주의, 그리고 이성애중심주의를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했다. 이른바 ‘해체’란 이 파괴된 폐허에 붙여진 이름이다. 신유물론은 이 광활한 폐허 위에 지금껏 본 적 없는 기묘한 이론의 혼종복합체를 탄생시킨다. 이 복합체는 인간-기계-동물-미생물-무생물의 아나키즘을 실현한다. 거대담론의 스카이라인이 사라진 대지에 번성하는 것은 오로지 이러한 아나키한 평등성, 또는 존재의 무한한 변신과 변종들이다. 신유물론이라는 드라마의 다채로운 시나리오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실체적이지도 않고 항상 생성하고 흐르고 또한 변화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신유물론 역시 끊임없이 진행 중인 이론이다. 또한 신유물론은 과거의 이론은 물론이고 당대의 이론들과도 논쟁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이렇게 막 전개되기 시작한 신유물론이라는 드라마의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보류되거나 숨어 있던 질문들과 그에 대한 신유물론의 탐색이 그러한 경험을 이끈다. ‘물질이란 어떤 것인가?’ ‘주체는 실제적인가?’ ‘실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새로운 주체성의 이름은 무엇인가?’ 등등. 우리는 이 질문들을 책 곳곳에서 발견할 것이며 이론적 드라마의 매 회차마다 이론과 그것의 존재론적이고 정치적인 면모들을 알 수 있게 된다. 책의 1부 ‘신유물론의 철학’에서 우리는 결코 완결되지 않는 철학으로서의 신유물론의 배경과 의미, 물질의 능동성, 횡단성, 수행성 등 주요 주제들을 살핀다. 그리고 2부 ‘신유물론의 이론가들’에서는 신유물론의 개시한 이들이라 할 수 있는 들뢰즈와 가타리, 로지 브라이도티, 마누엘 데란다 등에서부터 퀑탱 메이야수, 카렌 바라드 그리고 새로운 세대인 토머스 네일에 이르는 다양한 철학자들의 계보를 따라가게 된다. 또한 저자는 두 개의 보론을 통해 기술철학자 육후이(Yuk Hui)를 신유물론 그룹에 넣으려 시도하기도 한다. 무수한 ‘교차’로 자신만의 길을 내는 신유물론 경계를 날카롭게 횡단하는 개념들, 이분법의 성채를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문장들, 거기에 물질의 흐름이 새롭게 탄생한다. 이 책은 그 길의 여러 교차로를 ‘능동성’, ‘횡단성’, ‘관계성’, ‘우발성’, ‘사건성’, ‘수행성’이라 이름 붙인다. 그리고 그 길잡이 유령들의 이름들을 각각 호명한다. 그들은 모두 철학자이자 과학자이며 또한 문화이론가이자 페미니스트들이다. 그들은 우선 자연-문화 이분법을 새로운 자연주의 안으로 이식하고, 그 가운데 무수한 사이보그들을 탄생시킨다. 마찬가지로 이들은 남성-여성 이분법을 내던지고 그 자리에 LGBTQ+를 채워 넣는다. 섹스-젠더 이분법을 걷어내고 거기 사회적 신체, 정치적 신체, 철학적 신체 등등을 불러 세운다. 이러한 새로운 자연주의의 신체들은 결코 고립되지 않으며 필연적으로 네트워킹한다. 그리고 교차한다. 그러나 네트워크와 교차는 수월하지 않다. 거기에는 단순한 조화와 연합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수한 불일치, 교전, 어긋남, 전쟁상태, 불화, 이 모든 길항의 계기들이 행위자들을 강화시키거나 소멸시킨다. 유물론은 반드시 실천철학이어야 한다 현대유물론은 현재 제기되고 있는 지구 행성의 오염과 그 회복 가능성, 인간이 그간 누려 온 보편적 특권에 대한 성찰, 더 나아가 행위주체와 과학적 인과성 자체에 대한 질문들을 제기한다. 실천적으로 이것은 당대를 ‘인류세’(anthropocene) 또는 ‘자본세’(capitalocene)로 규정하고 이를 ‘살게 하는’ 방향으로 이끌 윤리-정치적 모색을 한다. 우리는 이 문제 제기와 실천적 탐색 모두를 ‘신유물론’이라고 부를 것이다. 따라서 신유물론의 출현은 “하나의 방법, 개념적 틀, 정치적 입장”이라는 총체적인 요청에 힘입은 것이다. 이 요청은 그간 인문사회과학의 헤게모니를 구축하던 언어학적 패러다임 대신에 권력과 신체, 물질적인 것의 잠재성(virtuality)과 현행성(actuality), 도래하는 민중(유목적 주체-사이보그)에 대해 사유하도록 만든다. _본문 31~32쪽 중에서 신유물론의 극복 대상은 ‘인간중심주의에서의 물질’이다. 인간중심주의에서 물질은 자연스레 수동성을 가진 것으로 정의되고, 이는 인간이 물질을 지배할 수 있다는 관념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물질은 항상 생성 중이고 운동 중이며 따라서 구유물론이든 신유물론이든 결코 인간적인 것, 물질, 실체화된 것을 중심에 놓고 그것으로 환원하는 이론이 아니다. “(신)유물론은 물질 안에서 생명을 사유하며 실체적인 본질이 아니라, 생성의 본질(작동 방식)에 집중”한다. 그러므로 유물론은 필연적으로 “당대의 물질적 조건에 대한 급진적 성찰과 비판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위기의 시대이자 인간과 비인간이 상호작용하는 지금, 이 책은 물질에 대한 사유를 통해 현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우리에게 길을 제시한다. 바야흐로 인간을 넘어 그 이상의 세계를 이해하는 눈을 가져야 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