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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글
서문(피터 아이젠만) 머리말 1부 체현된 공간들 1장 _ 체현하는 공간: 인터뷰 2장 _ 체험된 공간성: 신체적 욕망의 공간 체험된 신체의 시공간 / 정신병적 공간 혹은 곤충 공간 / 가상공간과 인간 신체 3장 _ 미래, 도시, 건축 2부 전환적 공간들 4장 _ 건축, 그 바깥에서 사유하기 / 바깥 / 건물 5장 _ 사이버공간, 잠재성, 그리고 실재에 대한 건축적 성찰 6장 _ 사이: 건축과 문화에서의 자연 사이 / 자연: 건축과 문화의 되기 / 권력과 사이 3부 미래 공간들 7장 _ 공간의 미래: 발명의 건축을 위하여 철학 150 / 지각하기 8장 _ 체현된 유토피아: 건축의 시간 유토피아적인 것 / 미래 / 신체들 9장 _ 과잉 건축 공간적 과잉 / 공간화된 여성성 / 기괴한 건축 10장 _ 사물 사물들 / 공간과 시간 / 테크놀로지와 실험적인 것 / 건축과 만들기 옮긴이의 말 : 바깥을 엿보기, 바깥에서 엿보기 참고문헌 찾아보기 |
Elizabeth Gros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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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근본적으로 서로의 바깥에 존재하는 두 개의 학문 분야 '건축과 철학'이 그 안에서 서로 위계감 없이 상호작용하는 제3의 공간, 즉 서로를 바깥에 두는 공간, 그러나 아직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요구하는 방식들을 설명하고 있다. 건축을 철학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건축 디자인과 구성 및 이론들을 철학적 담론의 요구와 급박성, 철학적 논쟁의 엄격성, 그리고 철학적 성찰의 추상성에 맞출 것을 요구하는 것일지 모른다. 또한 철학을 건축학적으로 고찰한다는 것은 건축적 목적을 위해 그 자체의 이론적 문맥으로부터 벗어나거나 변형되거나 혹은 훼손된 철학적 개념들이나 명제들을 사용할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한쪽의 원리가 나머지 한쪽의 원리를 그 내적인 필요와 구속에 굴복시켜 결국은 그것의 종속된 타자로 만들지도 모른다. 그것들이 서로서로 나란히 동등하고도 상호연관된 담론과 실행으로 탐구될 수 있는 것은 바로 두 원리 모두를 제3의 원리, 즉 두 원리의 바깥에 존재하는 입장 혹은 위치에 종속시킴으로써 가능해진다. --- p.16
사유는 하나의 원인과 그의 습관적 결과 사이, 한 존재와 다른 존재 사이에 오는 무엇이다. 사유는 지층들로부터 어떤 것이 도망가고 분기하게 하는 지층 사이의 틈이다. 사유는 그들을 무질서와 무조직이 아니라 재조직으로 대체하기 위해 기대,질서,조직을 흔들어 놓고, 아마도 어지럽힌다. 순수한 긍정성을 취하기보다는, 방해하는 효과를 갖는 사유는 (새로운 사유, 새로운 사물이나 배치를) 단지 능동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방해하여 예상되는 것 안에 주저 또는 휴지, 말 더듬기를 끼워 넣기 위해 개입하는 것이다. 사유는 계열들, 주체 또는 객체 안에 이미 있는 무언가를 있게 허용함으로써 습관과 예상을 소극적으로 방해하도록 적극적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 --- p.107 디지털 기술은 모든 종류의 정보를 이진법의 형태로 바꾸고, 물질을 실리콘과 액정의 흔적(칩과 스크린)으로 환원시키면서 정보의 축적, 순환, 검색을 변형시켜 왔다. 아마도 이러한 기술들에 의해 영향을 받은 가장 놀라운 변화는 물질성, 공간, 정보에 대한 우리들의 지각의 변화이며, 이 변화는 건축, 거주 및 주거 환경에 대한 우리의 이해 방식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침이 틀림없다. 이러한 변화들은 오늘날 사이버공간이나 가상현실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는 재현과 정보의 시뮬레이션, 축적, 순환의 복잡한 시스템의 발전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사이버공간은 우리 자신의 세계와 ‘나란히 존재하는’ 세계로 간주되는데, 이 세계는 공유된 가상공간을 통해 전혀 다른 물질 공간들이나 개인들을 연결시키는 전 지구적 소통망과 컴퓨터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가상공간과 그것의 다양한 내용들의 윤곽은 내가 살아가는, 일상공간이라고 묘사할, 우리가 평소 당연하게 생각하는 공간(들)에서 들어 보지 못한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조작되며, 그리고 어느 정도 조절되고 있다. --- p.118 철학과 건축이 서로 생산적인 방식으로 상대방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관은 무엇일까? 그리고 어떻게 자신을 확인받고 외부의 승인을 얻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대방에 비해 자신의 우월성이나 우선성을 가정하지 않고, 또 서로 간의 관계가 직접적인 효용이나 번역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가정하지 않으면서도 다르게 되기를 통해 서로 상대방에 이용될 수 있을까? 단 하나의 매우 가는 가닥이 이 두 전문 분야를 묶어 준다. 그것은 새로움 또는 잠재성, 잠복성(latency) 또는 되기라는 생각이다. 이는 서로 간의 도움과 겹침과 차이로부터 두 전문 분야 모두 안에서 주목을 받고 생산적으로 발전한 생각이다. 이 잠재적인 것이란 생각은 건축과 철학 둘 다에 대해 (결과는 다르지만) 그 둘이 공간과 시간과 운동과 미래성과 되기에 관해 세웠던 매우 근본적인 가정들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될 일련의 질문들을 불러일으킨다. --- pp.150~151 --- pp.150~1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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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성’에 갇힌 ‘공간’을 해방시켜라!
철학과 건축의 만남, 공간을 새로운 방식으로 사유하다!! 프랑스 왕정의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베르사유 궁전부터 21세기 부와 호화로움의 표상이 된 두바이의 7성급 호텔 버즈 알 아랍까지, 건축이 구성해 낸 공간들은 특정한 정체성을 드러내거나 주어진 목적을 이루기 위해 복무하는 하나의 ‘대상’ 혹은 ‘고정된 실체’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게이들의 보호구역 역할을 했던 뒷골목의 게토들이 이성애자들에게 성적 자극을 제공하는 매혹의 공간이 되고 전 세계 금융자본의 중심지인 월스트리트가 항의와 점거의 아이콘이 된 것처럼, 건축 혹은 공간은 항상 처음의 목적에서 벗어나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운동해 간다. 『건축, 그 바깥에서』는 이러한 ‘공간의 잠재성’을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책이다. 몸에 관한 페미니즘의 입장 중에서도 ‘성차’에 주목하여 육체 페미니즘(Corporeal Feminism)이라는 이론적 영역을 개척한 엘리자베스 그로스(Elizabeth Grosz)는 이 책에서 (철학에서의 ‘몸’과 짝을 이룬다고 할 수 있는) 건축에서의 ‘공간’ 개념을 다각도로 탐구함으로써 공간 이해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스스로 “건축 분야에는 문외한”이라고 말하는 이 철학자는 앙리 베르그송, 질 들뢰즈, 뤼스 이리가레 등의 철학적 개념들을 빌려와 공간의 잠재성을 자유롭게 탐사한다. 이는 건축이라는 고정된 실체에 철학이라는 ‘바깥’을 도입함으로써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그리고 그 공간에 대한 사유를 확장하고자 하는 독특하고도 의미 있는 기획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건축에 대한 글 모음인 만큼 바깥을 사유하는 것에 대한 글 모음이다”(옮긴이의 말 중에서). 그로스는 시간, 변화, 발생과 같이 전통적으로 공간과는 다른 축에 위치한다고 여겨지던 철학적 관념들을 건축에 결합함으로써 공간 자체가 지닌 생명력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건축은 ‘가능성’(possibility)과는 구별되는 ‘잠재성’(virtuality)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되기’(becoming)를 할 수 있는 존재,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스스로 호흡을 바꿀 수 있는 유기체인 것이다! 철학과 건축 사이의 이분법을 해체하고 그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각각의 의미를 더욱 풍요롭게 하는 이 책은 그 자체로 ‘탈경계 인문학’의 완벽한 표본이다. 이는 ‘사이 시리즈’(그린비출판사, 2012년 3월 1차분 3권 발간) 등을 통해 탈경계 인문학의 길을 모색해 온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공간팀’이 이 책을 번역한 이유, 그리고 독자들이 이 책에 주목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아닐까. 건축, 그 경계의 ‘바깥’에서 발견한 특별한 시선! 기술과학인 건축과 인문학인 철학은 얼핏 어울리지 않는 분야처럼 보인다. 하지만 유구한 전통을 가진 학문으로서의 건축 역시 스스로의 철학적 관점을 끊임없이 계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위대한 건축가들 혹은 도시계획가들은 어김없이 위대한 사상가였고, 자신만의 철학을 바탕으로 건축물 혹은 도시를 구축해 냈다. 그렇지만 그러한 ‘건축의 철학’은 어디까지나 건축의 ‘내부’에서만 합리성을 갖고 통용되는, ‘내재적인’ 성격의 것이었다. 반면 이 책 『건축, 그 바깥에서』는 건축과 그것이 만들어 내는 공간을 건축이라는 학문의 ‘바깥’에서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독특한 차별점을 갖는다. 단순한 물리적 외부가 아닌 “안쪽의 자기 일관성에 속박되거나 구속되는 것을 거부하는”, “우리가 완전히 혹은 완벽하게 차지할 수 없는 장소”(15쪽)로서의 바깥을 도입함으로써 공간에 생생한 숨결을 불어넣고자 하는 것이다. 건축의 ‘외부자’로서 엘리자베스 그로스는 시간성과 젠더라는, 건축의 바깥에 있는 개념(이자 철학의 안쪽에 있는 개념)이 건축과 공간에 생산적으로 개입하는 모습을 읽어 내며 베르그송, 들뢰즈, 이리가레 등의 철학자들이 공간을 사유한 방식에 대해 분석한다. 베르그송이 자신의 철학을 이끌며 주요하게 사용했던 잠재성과 시간성은 그로스의 사유에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가능성’이 현실의 범위 안에서 예측 가능한 기대를 표시하는 용어인 데 반해, ‘잠재성’은 내재되어 있되 발현의 양상과 시기를 예측할 수 없는 완벽한 개방성을 의미한다. 그로스는 이러한 베르그송의 개념을 도입하여, 단순히 미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발현되지 않은 과거의 잠재성에 온전히 열려 있는 건축/공간에 주목한다. 한편 들뢰즈는 건축과 건축 내부에 유동성이 존재한다는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그로스는 들뢰즈의 생각이 단순히 건축의 고정된 목적을 재고하기 위해서만 유용한 것이 아니며,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구조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물음을 던지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건축은 고정되는 독립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리가레가 주장한 ‘차이’의 문제도 건축의 성차를 설명하는 데 영감을 제공한다. 이리가레는 그동안 여성이 일종의 용기 혹은 덮개로서, 자신의 공간을 갖지 못하고 남성의 정체성을 담는 공간으로서만 기능해 왔다는 것을, 그럼으로써 여성성이 공간화되어 왔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로스는 건축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해 왔음을 비판하며, 건축을 일종의 ‘그릇’으로 여기는 인식에 반기를 든다. 건축은 도시계획자나 건축가의 필요와 욕망에 의해 구성되고 조직되는 단계까지만 수동적인 존재여야 한다. 그 이후의 건축은 “다양한 신체들이 살아가는 터이자 실천에 의해 뒤틀리고 변형되는 살아있는 실체”여야만 하며, 무엇인가로부터 부여되는 가능성을 뛰어넘어 잠재성에 기초하여 평가 혹은 개발되어야 하는 것이다. 도래하지 않은 공간, 그러나 곧 도래할 공간 『건축, 그 바깥에서』는 물리적으로 우리가 발을 디딜 수 있는 건축물만을 공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상상력이 닿는 곳, 현실에는 없지만 있고자 하는 곳까지 공간으로 생각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사이버공간이다. ‘가상’의 공간이면서도 현대인의 삶에 강력하고도 ‘실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사이버공간은 (역설적이게도) 현실 세계의 빼놓을 수 없는 일부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이버공간을 육체성의 한계에 제약을 받지 않으며 자유로운 공상의 실현이 가능한 공간, 욕망이 통제되는 현실 세계를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사람들은 성별과 외모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만든 아바타를 자아와 동일시하여 대리만족을 느끼는 한편, 자신의 숨겨진 욕망을 웹상에서의 새로운 정체성에 투영시키기도 한다. 물론 사이버공간이 물질과 육체, 사회와 공동체의 관계를 변형시킨다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컴퓨터 기술 애호가들은 사이버공간이 궁극적으로 건축에 있어 비물질적인 관념을 실현하고 감각과 물질을 강화하거나 증대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가능성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시뮬레이션의 장이자 정보 교환의 네트워크가 되는 사이버공간은 예정된 결과를 학습해 온 관습적인 건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또한 이 책은 막연히 공간 혹은 장소로 생각해 왔지만, 실질적으로는 공간이 아닌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유토피아의 경우가 그러하다. 유토피아는 환상적인 ‘곳’,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이상이 실현되는 ‘곳’, 즉 그러한 ‘공간’ 혹은 ‘장소’로 이해된다. 그러나 『건축, 그 바깥에서』는 유토피아가 공간이나 장소만으로는 충분히 이야기할 수 없는, 그것을 넘어서는 개념이라고 말한다. 토머스 모어 등 ‘고전적인’ 유토피아의 논의들을 검토한 후, 그로스는 “이상적이라는 것은 전혀 위상학적으로 고려될 수 없는 문제이며, 유토피아는 공간성의 논리를 확정할 수 없다”고 결론 내린다. 대신에 그녀는 유토피아를 ‘잠재성을 가진 현재’, ‘미래를 가지지 않은 미래’로 평가한다. 즉 유토피아란 현재의 이상이 포함된, 맞이하고자 하는 미래라고 이야기하며, 공간적 차원이 아닌 시간적 차원으로 다르게 해석한 것이다. 도래할 새로운 공간에 대한 의미를 강조하며 그로스는 궁핍한 자, 노숙인, 동성애자, 여성 등의 소수자들도 건축적 관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동체는 내부를 공고화하기 위해 소수자들을 일부러 더 타인에게 노출시킨다. 하지만 건축은 섞이지 못하고 남아 있는 존재들을 부각시키며 내부를 공고히 하는 공동체보다, 공동체 안으로 흡수될 수 없는 타자성으로만 기능하는 소수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해야만 한다고 그로스는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공간은 하나의 정체성과 하나의 구조로 이루어지지 않은 진정으로 열려 있는 공간, 부여된 목적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공간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자본의 논리, 강자의 논리로 공간이 가진 모든 잠재성을 질식시켜 가는 한국사회의 빈약한 공간 담론 속에서 이 책을 읽는 우리가 끊임없이 곱씹어야 할 메시지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