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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 6
1. 신유물론으로서의 브뤼노 라투르 사상_김환석 2. 절대적 우연성으로서의 실재: 퀑탱 메이야수의 사변적 실재론_정지은 3. 그레이엄 하먼의 객체지향 존재론과 비유물론_서윤호 4. 제인 베넷의 『생동하는 물질』_임지연 5. 비키 커비의 ‘읽고 쓰고 말하는 몸’_임소연 6. 캐런 버라드의 『우주와 중간에서 만나기』: 관계와 얽힘으로 만들어지는 몸_박신현 7. 신유물론, 해러웨이, 퇴비주의_주기화 8. 수행적 신유물론이란 무엇인가?_박준영 9. 신유물론의 물질과 몸_김종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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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투르에게서는 신유물론의 핵심 개념인 ‘물질Matter’이란 용어보다는 ‘비인간Nonhuman’이란 용어가 많이 쓰이지만, 중요한 점은 이 때 ‘물질’을 보는 관점은 기존의 유물론에서처럼 행위성이 없는 ‘객체Object’-즉 ‘주체’의 대립항-로 보는 것이 아니라 행위성이 있는 ‘사물Thing’로 보는 것이 신유물론의 핵심이다. 바로 이 점에서 라투르는 비인간이란 물질을 행위성이 있는 ‘사물’로 보아야 한다고 가장 앞서서 주장한 학자이기 때문에 그를 신유물론의 선구자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 p.47 새롭게 등장한 신유물론은 메이야수의 사변적 실재론을 비롯해서 그레이엄 하먼의 객체지향 존재론, 제인 베넷의 생기론적 유물론 등 다양한 이론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통의 지향점이 있는데, 인간중심적 혹은 인간관계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메이야수는 그러한 신유물론 사상의 첫 주자라고 할 수 있다. --- p.56 객체를 세계의 근본구조로 파악하려는 객체지향 존재론은 객체에 대한 환원주의적 접근과 과도한 구성주의적 접근 모두를 배격한다. 우리는 어떤 기술적 대상이나 사회적 현상, 예술 작품을 이해하고자 이를 더 간단한 객체로 환원해 분석할 수 있다. --- p.97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적 이념은 인간의 평등에 한정되었고, 자유 역시 인간의 자유를 중심으로 이해되었으며, 사랑은 인간적 가치를 확장하는 최고의 능력으로 구사되었다. 물론 인간세계는 아직 평등, 자유, 사랑이라는 가치를 완전하게 구현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인간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 가령 동물을 학대하면서 동시에 완전한 여성 평등을 실현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을 동물과 같은 비문명 자연으로 비유하고 평등을 인간의 영역으로 제한할 때 역설적으로 인간의 평등은 구현되기 어렵다. --- p.116~117 커비가 제안하는 것은 단연코 과거의 과학이나 과거의 앎의 방식으로의 회귀가 아니다. 그는 자연이 쓰는 텍스트를 읽고 소통하기 위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앎의 방식, 다른 과학, 다른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몸과 물질, 자연, 비인간의 말과 글을 이해할 수 있는 ‘다른 언어’가 필요하다. --- p.156 ‘우주와 중간에서 만나는 것’은 행위역능을 지닌 모든 것들이 내부-작용을 통해 우주의 생성에 기여하므로 인간은 독선적인 태도를 버리고 ‘우주와 타협하고 우주와 의견을 조율하면서’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해 책임지는 겸손한 자세를 지녀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인간은 얽혀 있는 관계성들과 가능성들을 고려하면서 민감하게 응답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져야 하므로 책임을 독점할 때보다 오히려 더욱 큰 책임을 진다고 할 수 있다. --- p.186 해러웨이는 회의주의와 패배주의에 맞서, 세상은 “여전히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가이아가 어떻게 작동할지 제어할 순 없겠지만, 우리가 퇴비임을 자각하여 반려종들의 긴급한 호소에 응답하면서 두터운 현재를 가차 없이 살다보면 몇 가지는 고칠 수 있다고 본다. 그가 “계속 시작만 있고 결말은 나지 않는” 우로보로스식 퇴비 만들기 이야기를 하고 또 하면서 “야단법석을 떠는” 이유는, 강력한 찰나의 순간에 아무런 조건 없이, 가차 없이 서로 협력하면서 대안적인 길을 개척하는 ‘다종 퇴비 공동체’들이 세계를 만들어왔으며, 지금도 조용히 간신히 세계를 만들고 있음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그의 퇴비주의는 냉소·절망·공포에 맞서 역사가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고 촉구한다. --- p.225 결론적으로 신유물론의 물질은 잠재적 차원에서 서로 간에 평등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현행적 차원에서 그 관계 맺음의 능력은 달라진다. 더 많은 관계, 더 많은 네트워크 안에서 물질은 더 큰 능력을 발휘하며, 또한 그에 기반하여 관계 확장에 나선다. 관계의 능력이 줄어들수록, 교란은 심해지고, 이에 따라 관계는 더 줄어들게 된다. --- p.255 신유물론은 과거에 수동적이며 관성적이고 비활성적이었던 것으로 취급되었던 물질에 행위능력을 부여하는 이론이다. 물질은 움직임을 당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도 능동적으로 반응하고 움직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도 이러한 신유물론의 입장에 전폭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필자가 지적하고자 하는 문제는, 신유물론이 등장하기 이전에 그러한 물질의 행위능력은 몸의 고유한 속성으로 간주되었다는 사실이다. --- p.2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