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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1장 비대면 시대 비대면과 팬데믹 과잉 대면과 콜포비아 느슨한 비대면 공동체와 밀도 있는 대면 2장 디지털 세계로 떠나자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이유 디지털 대항해시대 3장 디지털 휴먼의 딜레마 사라지는 사람들, 외로워지는 사람들 디지털의 원죄, 몸의 소외 접촉과 공감 디지털 친밀성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 적응을 위장한 비대면 기술 4장 극단적인 비대면 사회 접촉포비아 무색무취한 비대면 삶 5장 친밀성을 강화하는 비대면 근접성 없는 친밀성 대면의 고통과 안전한 접촉지대 6장 피지털 컨택트 현실과 가상의 얽힘: 멀티 라이프 몸과 마음의 얽힘: 사이버 몸 피지털 컨택트, 디지털 휴먼 나가며 개와 늑대의 시간 인명설명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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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이란 접촉을 뜻하는 ‘컨택트contact’에 부정의 의미를 더하는 접두사 ‘언un’이 붙어 사람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거나 접촉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비대면 사회는 접촉하지 않는, 면대면하지 않는 고립된 사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접촉하지 않고도 온라인으로 대면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뜻한다. 그래서 언택트 대신 영어 단어 ‘contact’와 ‘on’을 결합하여 ‘온택트ontact’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이러한 비대면 사회를 실현해주는 수단을 통틀어 비대면 기술이라고 부른다. 비대면 기술(주로 디지털 기술)은 팬데믹 시대에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는 생존 기술이자, 인류세에 방에 앉아 온라인으로 소통하면서 지구를 지키는 기술이기도 하다.
---「비대면과 팬데믹」중에서 철학자 미셸 세르Michel Serres는 인지과학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그는 뇌와 몸이 달라진 이 새로운 종류의 인간을 ‘엄지세대thumbelina’라고 부른다. 엄지세대란 두 개의 엄지손가락만을 사용하여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는 광경에 감탄한 세르가 Z세대에게붙인 이름이다. 그는 가상세계에 사는 이 신인류가 웹상에서 서핑할 때, 엄지손가락을 사용하여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위키피디아나 페이스북을 훑어볼 때 자극받는 뉴런과 뇌의 부위가, 책, 칠판, 공책 등을 사용할 때 자극받는 뉴런과 뇌의 부위와 매우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이들의 머리는 우리와 다르다고 단언한다. 다른 머리를 가진 이들은 이전 세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한다. 글도 다른 방식으로 쓰고, 구사하는 언어도 다르다. 디지털 시대 신인류의 뇌, 몸, 인식, 언어, 행동은 더 이상 호모 사피엔스와 같지 않다. 반면 역사학자 브루스 매즐리시Bruce Mazlish는 인간의 진화는 물질적이기보다 문화적이며, ‘물질적 존재’는 3만 년 동안 거의 변화하지 않았지만 문화는 엄청나게 변화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타당하지 않을 것 같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인간의 물질적 몸, 특히 뇌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뇌뿐만 아니라 컴퓨터 앞에서 한 자세로 오랜 시간 지내니 거북목증후군·척추측만증·손목터널증후군 등 근골격계와 신경계도 변화를 겪고 있는 듯하다. 스마트폰, 컴퓨터, VR기기 등 디지털 전자기기를 아우르는 디지털 현실에 최적화된(혹은 그로 인해 변용된) 몸과 뇌를 갖게 된 새로운 인류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다. ---「비대면과 팬데믹」중에서 던바의 연구는 사회적 털 고르기, 현존하는 몸들끼리의 접촉 유무 및 빈도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이것을 철학자 휴버트 드레이퍼스Hubert Dreyfus의 관점으로 더 깊게 살펴보자. 드레이퍼스는 인터넷의 철학≫에서 우리 삶이 지닌 최대의 의미는 신체가 현전presence하는 현실세계에서 위험을 감내하는 진정한 헌신 속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인터넷상에서 아바타(가상 신체)의 익명성과 안전성은 필연적으로 그러한 진지한 의미를 결여시킨다고 말한다. 따라서 탈신체화된 원격 현전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삶의 의미와 보람을 잃고 우울증과 허무주의에 빠지기 쉽다. 익명성과 안정성이 매력인 사이버공간에서는 현실세계에서 찾을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쓴 우정과 헌신은 기대할 수 없다. 사이버공간에서는 친밀감과 신뢰가 희미해지므로 그 세계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불안과 외로움, 우울증과 허무주의는 클 수밖에 없다. ---「사라지는 사람들, 외로워지는 사람들」중에서 갈수록 냉랭해지는 디지털 세상의 확장 속에서, 즉 가속화된 비대면 삶형태 속에서 이해와 공감, 우정과 환대, 애정은 희미해진다. 연결과 이해와 공감을 위해 발전해온 비대면 기술들이 역설적으로 친밀성을 줄이고 있다. 디지털 만남은 사람들과의 연결을 희미하게 만들고 관계의 밀도와 열감을 낮추고 있다. 직접 대면이 감소할수록 현대사회는 점점 더 삭막해지고 황량해진다. 이해, 공감, 친밀성의 결핍은 외로움, 자살, 살인과 같은 각종 정신적 문제나 극악한 범죄의 원인이 된다. 비대면 접촉의 기능과 효율을 쫓다가 이러한 공백과 결핍이 점점 커지는 것을 방치해 사회적 문제를 키울 수 있다. 사회가 냉랭해지고 삭막해지고 사람들이 외로워지는 것에는 물론 돈의 영향이 크지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우정, 연대, 사랑, 공감, 이해의 원천인 신체적 접촉이 희소해지는 비대면 사회의 심화와도 관련이 깊다. ---「디지털 친밀성」중에서 영준은 한국인들이 맺는 가족·친구·친척 관계는 백인들이 맺는 관계에 비해 흉허물이 없고 끈끈하다고 생각한다. 이 끈끈함은 불행과 행복의 근원이다. 가부장사회인 한국에서는 가족의 근접성과 끈끈한 대면이 굴레가 되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여성에게 더 그렇다. 여성에게는 가족의 근접성과 대면이 오히려 가족과의 친밀성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폭력적인 상황을 처하게 될 때도 많다.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면서 집콕이 늘고 타인과 만나는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집에서 지내는 만큼 가족이 직접 대면하는 시간은 늘어났다. 가족의 사이가 좋아진 가정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직접 대면의 증가가 야기한 부정적 파장이 너무도 크고 깊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비대면 삶형태로 인해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인 여성, 아동, 반려동물이 집 안에서 가해자인 남성과 지내야 하는 시간이 늘면서 세계적으로 가정폭력이 급증했다. 비대면 삶형태가 초래한 코로나 블루로 가족 구성원의 우울과 스트레스가 배가되어 그 잔혹성도 심각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각국 정부에서는 심각해지는 가정폭력에 대응 방안을 내놓고 있으나 역부족으로 보인다. 급기야 안토니우 구테흐스Anto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은 팬데믹 선언 이후 각국 정부가 여성에 대한 폭력 예방을 코로나 대책의 핵심 과제로 다룰 것을 촉구했다. ---「대면의 고통과 안전한 접촉지대」중에서 |
인간은 정말 사회적 동물인가?
-아날로그적 대면과 비대면이라는 뉴노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는 고전적인 명제는 비대면 사회에서 재구성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엄격했던 시기, 비대면의 전면화로 행복감을 느꼈던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불합리한 명령을 내리고 감정 노동을 요구하는 직장 상사나 희생을 강요하는 가족처럼, 위계서열이 뚜렷하고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직접 대면은 불편하고 위협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비대면의 전면화는 불필요한 직접 대면을 줄이고 인간관계를 최소화하는, 과잉된 사회적 관계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했다. 그들에게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표현은 직접 대면 중심의 사회가 강요하는 이데올로기적 메시지로 들려온다. 그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완화되어도 비대면 중심의 생활을 유지하고자 하며, 아날로그적 세계에 대한 저항감을 보인다. 한편 타인과 만나지 못하면서 직접 대면과 신체적 접촉으로 만들어지는 친밀함과 유대를 경험하지 못하게 된 이들은 우울에 시달린다. 화상·음성통화나 메신저 같은 비대면 접촉은 직접 대면이 주는 감각을 전해주지 못해 이를 대신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심지어 디지털 기술이 익숙지 않은 사람은 갑작스럽게 고립되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타인과의 만남을 갈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불필요한 직접 대면은 비대면 사회의 뉴노멀에 역행하는 것으로 배척된다. 그러나 모든 아날로그적 관계가 비대면 사회의 뉴노멀의 방식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며, 뉴노멀의 방식으로만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뉴노멀이 만들어낸 관계와 친밀성은 아날로그적 관계와 뒤얽히며 새로운 사회적 관계와 친밀성을 만들어낸다. 비대면 사회는 우리의 세계를 확장하는 동시에 기존의 세계를 재구성한다. 가능성의 신대륙, 혹은 현실의 도피처 -메타버스, 가상세계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한편 비대면 사회를 대표하는 기술인 가상세계는 비대면 사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공간이다. 직접 대면을 대체할 가장 좋은 방법이자, 환경오염과 기후위기에 시달리는 인류세의 지구에 얽매이지 않고 비대면 사회를 촉발한 코로나바이러스19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모습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어 인종·성·계급 등의 굴레를 벗어던져 차별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는, 안전하고 이상적인 공간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인간의 여러 감각을 가상세계로 온전하게 옮기는 기술을 개발하거나 NFT와 같이 가상세계에서는 확보하기 어려웠던 소유권과 고유성을 구현하기 위해 여러 기업이 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가상세계에 대한 기대와 가상세계가 주는 원초적 즐거움은 현실세계와 몸의 소외를 낳는다. 가상세계가 구현하는 것들이 다양해질수록 현실세계의 입지는 좁아지며, 현실세계를 지탱하는 우리 몸도 소외된다. 풍요로운 비대면 사회의 몸은 소외 아래서 점점 비대해지고, 세계를 감각하는 주체였던 몸은 감각하는 방법을 잃어버린다. 이는 다시 가상세계에 대한 의존성을 높이는 악순환으로 작용하고, 그러한 굴레에 잘못 발을 디디면 ‘메타폐인’으로 전락할 수 있다. 가상세계는 기업의 이익을 위해 창조된 공간이므로, 유튜브의 알고리즘처럼 우리를 멈추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대면과 비대면, 현실과 가상의 조화를 상상하다 전염병이라는 위기로 급격하게 전면화된 비대면 문화가 가져온 변화는 자칫 과거와 충돌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저자는 대면과 비대면,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이분법적으로 파악하여 무게 중심을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둘의 얽힘을 상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한 이분법은 형이상학적 사고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며, 현실에서 그 둘은 분리되지 않는다. 가상세계의 나와 현실세계의 나는 분리될 수 없으며, 대면과 비대면은 이미 우리의 사회적 관계를 재구성했다. 우리는 그 사이가 아니라 얽힘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