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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생각! 생각! 생각!
1장 생각의 독 복수는 나의 힘?! 2장 생각의 피와 땀 불행은 행복의 조건 3장 생각의 왕과 현실의 거지 민주주의의 딜레마? 깨면 안 되는 꿈 어떤 일화, 끝나지 않는 재상연 왕과 소시민 사이 4장 생각의 계보학, 생각의 노동과 질병 생각을 생각한다 니체의 ‘생각’ 우리는 왜 생각하는가 5장 소시민적 생각 김수영, 소시민적 정서 삶을 당하는 삶, 소인배 상황의 노예, 생각의 노예 6장 생각하기가 아니라 지각하기 지각을 생각으로 대체하는 경향성에 대하여 생각의 옷, 생각의 무게 7장 생각 중독에서 벗어나기 생각은 몸의 하녀 물질적 기억 생각이 나를 한다 나가며 삶을 사랑하는 자, 단순하라! 인명과 개념 설명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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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의식의 소음이다. 이것을 잡념이라고 말해도 좋다. 미당 서정주는 ?자화상?에서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바람”이라고 말했지만, 생각의 8할, 아니 99%가 삶의 소음이다. 의학이 눈부시게 발달한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생각의 소음을 스트레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소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봄에 황사를 뒤집어쓰듯이, 만물이 잠든 조용한 시간에도 생각의 소음을 뒤집어쓰고 있다.
---「들어가며 - 생각! 생각! 생각!」중에서 누군가에게 앙심을 품은 적이 있는 사람은 마음속에서 이러한 갑론을박의 독백을 주거니 받거니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음의 무대에서 내가 나에게 끊임없이 속삭이는 것이다. 원수는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 제3자이다. 소문처럼 끊임없이 이야기는 되지만 정작 당사자는 보이지 않는다. 두 명의 등장인물은 두 개로 분열되고 복제된 존이다. 거울에 비친 자신에게 속삭이는 사람처럼 그는 대화의 주체이면서 객체이고, ‘나’이면서 동시에 ‘너’이다. ‘화가 나다’의 불어 ‘s’emporter’, ‘s’irriter’가 재귀대명사 ‘se’를 사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분노를 터뜨릴 원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화가 나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1장 생각의 독」중에서 혐오 식품과 혐오 범죄는 소수의 희생(타자화)을 통한 다수의 자기 치유의 메커니즘이다. 혐오식품과 혐오 범죄는 개인적이 아니라 집단적인 현상이다. ‘내’가 “혐오한다”는 단수가 아니라 ‘우리’가 “혐오한다”라는 복수다. 개인적 취향이 아니라 사회적 취향이다. 그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본질은 주체화와 타자화의 변증법에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다. 내가 이상적인 자아가 되기 위해서 그렇지 못한 나를 타자화하는 형태가 자주화의 덕분에 더 이상 가동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정치화되었던 혐오의 탈정치화가 시작된 것이다. 혐오의 탈정치화는 집단적 현상으로서 혐오의 종언을 의미한다. ---「2장 생각의 피와 땀」중에서 우리는 세상의 가장자리에 살면서도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생각이 뼈까지 사무쳤던 ≪왕이 되려던 사나이≫의 주인공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왕이 되는 행운을 누렸다. 파스칼의 거지는 구차하게 빌어먹지만, 그래도 왕이 되는 단꿈을 12시간 꿀 수가 있었다. 현대인인 우리는 자신을 왕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소시민처럼 살고 있다. 그러면서 왕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24시간 들볶이고 있다. 현실과 생각을 착각하는 광인들은 행복하게도 생각의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는다. 그러나 광인이 아닌 우리들은 절대로 생각을 현실과 착각하지는 않는다. 그와 같이 착각하지 않는 대가가 불행이다. 일찍이 한 번도 왕이었던 적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이 폐위당한 왕이라고 생각하면서 끊임없이 괴로워한다. 생각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3장 생각의 왕과 현실의 거지」중에서 우리는 왜 생각하는가? 니체에 따르면 생각은 행동의 알리바이이다. 사건이 발생한 자리에 자기가 없었다는 사실이 생각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때 한번 자극된 생각은 일회적으로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서 더 많은 생각을 유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생각의 시제는 현재형이 아니라 과거형이거나 미래형이다. 이런 식이다. ‘그놈이 나를 모욕했겠다? 그때 화를 냈어야 했어. 그런데 왜 내가 가만히 있었지? 그놈이 너무 거칠고 짐승같은 놈이라서 그랬어. 상대할 가치도 없는 놈이야. 앞으로 이런 놈을 또 만나면 어떻게 하지? 그때는 아예 상대도 하지 말아야지.’ 이와 같이 당시의 사건의 현장을 끊임없이 되새김질을 하면서 자신을 변명하고 정당화한다. 분이 풀릴 때까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가 두 발을 내리고 살아야 하는 현재의 시간은 과거를 회상하고 후회하며 생각하는 것으로 소모되어버린다. 피와 근육질의 삶이 회색질의 생각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삶은, 아예 생각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자신을 변명하거나 정당화하지 않는 사람들, 자신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그 자리에서 자신을 표현하며 과거와 미래에게 시간을 내주지 않고 현실을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사는 삶일 것이다. ---「4장 생각의 계보학, 생각의 노동과 질병」중에서 소인배란 무엇인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을 당하는 사람,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당하는 사람이다. 생각과 삶에 구타를 당하는 것이다. 존재하기 때문에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생각으로 변명하는 것이다. 만약에 김수영의 화자처럼 계몽된 지성의 소유자라면 그러한 생각의 변명은 냉소주의의 가면을 쓰고서 등장한다. 이웃집 남자처럼 행동하면 쉽게 풀릴 생각의 불협화음을 우주의 혼란으로 확대해석한다. ---「5장 소시민적 생각」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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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못하는 것은 쓰레기통에
저자는 묻는다. ‘우리는 왜 의식을 하고 생각을 할까?’ 궁극적으로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 그냥 먹고사는 것이 아니라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생각을 한다. 생각보다 삶이, 진리보다 행복이 더욱 중요하다는 말. 생각의 목적은 당연하게도 생각 그 자체가 아니라 행복과 웰빙이므로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라는 명제가 행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아깝더라도 과감하게 쓰레기통에 던져야 한다. 우리 모두 생각 같은 건 전연 하지 말고 살자는 말이 아니다. 한번 올라타면 웬만해선 내려오기 어려운 생각의 굴레에서 한시라도 빨리 궤도이탈을 하자는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행복해지기 위하여. 후회는 월권행위다 누구나 좋은 사람이고 싶고, 멋있어 보이고 싶다. 찌질한 건 딱 질색이다. 우리는 그러나 종종 넘어지고 실수하고 엉망이 된다. 그때 눈을 들어 주변을 보고 시선을 감지하곤 ‘생각’이 시작된다. 나의 실수 장면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되돌아가 그 망친 공연을 재상연한다. 그 무대의 주인공은 당연히 나. 사람들은 모두 나만 보고, 내 실수를 비웃고, 나를 조롱한다. 그 재상연이 반복될수록 나는 괴로워진다. 나의 실수는 점점 커지고, 사람들의 비난도 점점 강도가 세어진다. 물론 내 ‘생각’ 속에서 말이다. 우리는 모두 이런 경험을 해보았다. 학교에서 발표를 망쳤을 때, 버스에서 넘어졌을 때, 뭔가를 잘못 알고 잘못 말했을 때 우리는 몇 번이고 그때로 되돌아가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머리를 쥐어뜯는다. 그리고 후회한다. ‘내가 왜 그랬지!?’ 나는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사건을 생각의 무대에서 재상연하지 않는다. 과거의 유령들이 현재 나의 공간을 가득 채우도록 방치하지 않는 것이다. 잘못한 일이 없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던가. 게가 옆으로 걷듯이 당시에 나는 반듯하게 걸을 수가 없지 않았던가. 후회한다는 것은 월권행위이다. 당시에 내가 게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러지 않았던 듯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문, 148~149쪽 당시에 반듯하게 걸을 수 없었던 ‘게’였음에도, 사태 이후에 내가 ‘게’였음을 후회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래서 저자는 후회하는 건 월권이라 말한다. 생각을 생각으로 치료하는 건 불가능하고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리는 것도 불가능하다. 다만 가능한 건 그만 생각하는 것, 내 속의 독버섯처럼 자라는 원한감정을 잘라내는 것, 실수하지 않았더라면 이별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더라도 그냥 받아들이고 다음에 할 일을 하는 것, 그리하여 스스로의 평안을 찾는 것. 이 책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피노자와 니체를 공부하며 얻게 된 처세술”이라 말하는 저자의 맥락은 바로 이러한 자기배려의 기술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한번 읽으면 결코 배신하지 않는 반려인문학 은행나무출판사 〈배반인문학〉 시리즈 출간! 인문학의 효용은 궁극적으로 나에 대한 관심, 나다움에 대한 발견에 존재한다. 또한 인문학은 스스로 성숙한 삶을 살아나가는 데 있어 근본의 힘을 제공한다. 〈배반인문학〉 시리즈는 이처럼 ‘나’를 향한 탐구, 지금 나에게 필요한 질문과 그것을 둘러싼 사유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지금 나는 무엇을 보고, 어디에 서 있으며,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현대철학과 사회의 화두인 ‘몸’을 매개로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하는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필진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키워드를 선정해, 일상 속 인문학적 사유를 쉽고 명료하게 펼쳐낸다.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배반인문학〉의 다채로운 사유의 항해에 몸을 실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