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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기억 강박 시대의 풍경 1장 기억과의 전쟁 기억과의 사투 신비로운 기억 능력? 기억의 역습 과거와의 사투가 벌어지는 현장들 2장 기억의 누수와 복원 기억의 가치 과거의 경험, 꼭 그대로 ‘리콜’돼야 할까? 트라우마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외상으로 인해 초래된 기억장애와 마주할 때,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들 트라우마적 기억을 다루는 어려움 3장 누수된 기억을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 트라우마적 기억과 간접적 트라우마 기억해야 비로소 잊을 수 있는 기억 내 과거, 내 손으로 ‘포샵’하자 4장 망각의 가치, 그 필요성 무엇을 잊어야 하는가? 기억하는 능력만 진화한다면? 디지털 기억 감시 시대의 위험 나를 잊어주세요: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회 기억과 망각의 시장 망각의 시장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 나가며 망각해도 괜찮아, 다시 기억하면 되니까 기억의 날실과 망각의 씨줄 인명 설명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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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소 기억의 중요성을 자각하지 못한다. 공기가 부족할 때 새삼 공기의 소중함을 느끼듯, 기억에 장애가 발생할 때에야 그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공기처럼 기억은 늘 우리와 함께 있기 때문에 기억의 중요한 역할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런데 기억은 단순하고 일상적인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에서부터 자기를 인식하고 세계와 관계를 맺게 하는 것까지 나와 나의 삶, 그리고 세계를 직조하고 구성하는 데 중추 역할을 한다. 기억은 삶의 연속성을 유지해주고 매 순간이 과거로 구성되는 현재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므로 현재의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수단으로 기억은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기억의 가치」중에서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군인들을 상담 치료한 조너선 셰이Jonathan Shay는 환자들이 ‘나는 베트남에서 죽었다’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성폭력을 경험한 작가 미게일 쉐러Migael Scherer는 저서 『Still Loved by the Sun태양의 사랑은 아직 남아 있다』에서 “나는 언제나 이전의 나 자신을 그리워할 것이다”라고 쓰면서 강간 생존자들이공통적으로 느낀 상실감을 표현하고 있다. 트라우마적 사건은 생명을 위협하는 것으로 감지되는 폭력에 맞닥뜨려 한 인간이 자신이 완전히 무기력하다고 느끼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위험에 처했을 때 그것과 맞서 싸울 준비를 하거나 그 상황으로부터 빨리 도망치는 등의 일반적인 적응 반응들은, 성폭력이나 고문 혹은 대재앙적인 사건과 같은 트라우마적 사건에 직면해서는 거의 발휘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자아의 극복 능력을 넘어서는 사건 앞에서 자아는 심한 손상을 입게 되는 것이다. 주디스 허먼은 저서 『트라우마』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트라우마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중에서 서사적 기억은 문제의 과거(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위험천만한 행위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네는 이 기억의 형식은 모방과 반복(재경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확신한다. 트라우마적 기억의 경우, 피해자가 원래의 사건과 다시 조우할 때 그 사건을 그대로 모방하고 반복한다. 이때 피해자는 사건 당시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상황을 객관화해서 성찰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원래의 트라우마적 사건과 다시 조우할 때 피해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사건과 경험 사이의 거리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사건을 독립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에서 자기-인식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사건이 피해자에게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 자신이 그 사건을 경험해야 한다. 자네에게 있어 피해자가 능동적으로 트라우마적 사건을 재경험하는 것이 바로 서사적 기억 행위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체험한 일을 인식하고 그것을 그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형태인 것이다. ---「기억해야 비로소 잊을 수 있는 기억」중에서 말하자면 『암 일기』는 물리적 통증과 심적 고통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적은 일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그 속에는 고통 경험의 현실을 그대로 기록한 과거의 일기가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에세이를 쓸 때 로드는 그때의 일기를 있는 그대로 읽지 않는다. 에세이의 이야기와 구별되도록 과거의 일기는 필기체로 표기하고, 또 필요한 대목만 선별해서 지금 현재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삽입하는 식으로 과거 경험을 재구성한다. 그럼으로써 생고통의 감정이 누그러지지 않아 그녀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혼란스러워 보였던 일기의 내용은 그녀와 비슷한 고통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배움을 줄 수 있는 이야기로 탈바꿈한다. ---「내 과거, 내 손으로 ‘포샵’하자」중에서 건망증은 바로 이 커다란 망각 시장의 틈새시장으로 발굴되었다. 사실 건망증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데, 최근 다양한 언론 매체들은 망각을 기억력 감퇴, 특히 치매의 문제와 연계해 다루고 있다. 그렇다 보니 건망증에 대한 조치는, 드라이스마의 표현에 따르면 “성공적인 노년을 위한 커다란 프로젝트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런 시각에서 기억력 감퇴는 주름살로 비유되고, 그 주름살은 기억의 성형술에 비견되는 다양한 기억력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없앨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그래서 기억력 훈련과 관련된 게임, 서적, 그리고 프로그램 등은 거의 산업적 차원으로까지 올라섰다. 하지만 기억력 향상을 위한 대부분의 훈련과 기술들은 건망증을 줄이거나 없애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망각의 시장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중에서 망각은 기억을 상실해버린다는 점에서 기억의 타자, 즉 기억의 최대 위협이며 적으로 간주되어왔다. 기억의 신뢰성에 타격을 주는 오인이나 착각, 왜곡된 기억 역시 기억의 큰 적으로 여겨지기는 마찬가지다. 기억이 지속성이라면 망각은 소멸이다. 만약 지속성이 생존에 직접적으로 위협이 되는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 발생한다면, 그 경험을 지속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동물이나 사람이 확실히 자연에서 선택될 확률은 높아지게 된다. ---「망각해도 괜찮아, 다시 기억하면 되니까」중에서 정확하게 많이 기억하는 것이 언제나 우리에게 유리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경우에 따라선 망각이나 과거 경험의 변형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오히려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는 사태를 막아주거나 늦추어주기도 하지 않았는가. 정확하게 많이 기억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기억에 구멍이 생기고 균열이 발생했을 때, 그 해결책을 여전히 우리가 믿고 있는 고전적인 기억의 개념으로 접근하게 되면 적절한 답을 찾지 못하거나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우리의 생존과 정체에 필수적인 기억의 날실과 그것을 가로지르는 망각의 씨줄이 적절하게 교차되어야 비로소 우리의 정체와 세계의 옷감이 알맞게 짜일 수 있을 것이다. ---「기억의 날실과 망각의 씨줄」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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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탈리콜’이라는 환상과 기억 강박의 시대,
망각에 대한 오해를 풀다 저자는 망각과 기억이 지닌 각각의 중요한 역할을 제시한다. 먼저 불필요하거나 아픈 상처를 잊음으로써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망각의 역할과 반대로 잊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충격적인 기억을 마치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새롭게 기억하여 지금의 자아를 단단하게 만드는 ‘서사적 기억’으로서의 기억의 역할이다. 두 관점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선보이는 것은 바로 ‘아픈 상처’이자 ‘충격적인 기억’인 트라우마적 기억이다. 기억 강박의 시대는 무엇이든 더 잘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발자크의 중편 「아듀」는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자아를 해치는 기억이 존재함을 알려준다. 본디 귀부인이었던 스테파니는 전쟁통에 남편이 사고사하는 장면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고 본인은 적군에 나포되어 2년간 성적 유린을 당했다. 이 심대한 고통을 마주한 그녀의 자아가 택한 것은 그 끔찍한 기억과 함께 모든 것을 잊는 것이었다. 스테파니의 옛 연인 필리프가 ‘아듀’(영원한 안녕)만을 외치고 다니는 광인이 된 스테파니를 되돌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여 그녀에게 모든 기억을 되찾게 했을 때, 스테파니는 진정으로 안녕을 고하고 심장이 굳어 죽어버리고 만다. 이렇듯 자아를 위협할 정도로 끔찍한 기억도, 생존을 위한 망각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사람들은 트라우마적 기억들을 그저 기억 속에 묻어놓을 수만은 없다. 여기서 저자는 임상 심리학자 피에르 자네의 유명한 치료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심지어 신경증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하는 트라우마적 기억들에 올바르게 대면하는 것이 그 극복에 중요함을 시사한다. 이때 기억에 대면하는 방법으로 ‘서사적 글쓰기’를 제시한다. 자신의 성폭력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를 쓴 사회학자 수잔 브라이슨과, 유방암에 걸려 유방 절제술을 받은 이후 사람들의 반응으로 입었던 깊은 상처를 극복해나가는 《암 일기》를 쓴 시인 오드리 로드의 사례를 든다. 두 사람은 모두 과거의 충격으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적 기억을 글쓰기를 통해 서사적 기억으로 전환하여 극복한 대표적인 사례다. 내 기억을 다른 사람에게도 보일 수 있는 사연으로 구체화하는 서사적 글쓰기는 수잔 브라이슨에게처럼 닥쳤던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깨달을 수 있게 하고, 오드리 로드에게처럼 사건을 재구성하고 그에 대해 지금의 관점에서 평함으로써 트라우마를 유발한 상대에게 사후적인 복수를 가한다. 저자는 트라우마를 유발한 과거와 대면함으로써 과거의 고통을 잊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디지털 파놉티콘의 시대에는 완벽한 기억이 망각보다 큰 위협이 된다 익명으로 이슈가 된 인물에 대해서 금세 ‘신상’이 털려 대중들에게 공공연하게, 혹은 은밀하게 공개되는 현실에서 알 수 있듯 지금의 가상공간에는 개개인에 대한 정보가, 그것도 SNS처럼 스스로의 손에 의해 소상히 노출되고 있다. 자신이 쓴 논문에 수십 년 전 마약류 환각제 흡입 경험을 기록한 것이 적발되어 미국 국경에서 입국을 금지당한 캐나다인이나 SNS에 음주 사진을 올렸던 것 때문에 교원 자격시험에서 탈락한 사례를 보자면 자연스러운 망각이 이루어지지 않는 디지털 공간의 기억이 개개인이 현재를 살아가는 데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근래 우리 사회에서 불법 촬영으로 인해 여성들이 기나긴 고통을 받는 현실 또한 하나의 참담한 사례가 된다. 바야흐로 디지털 파놉티콘의 시대인 것이다. 트라우마와 같은 특수한 상황이나 디지털 시대의 외부 기억과 같은 은유적인 것이 아니라도, 실제로 모든 것을 완벽히 기억하는 것은 일상생활에 크나큰 지장을 안긴다. 알렉산드르 루리야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서 기록한 연구 대상 S를 비롯해 완벽한 기억력을 선보인 사람들은 외부의 자극에 연관된 기억들이 과다하게 머릿속으로 흘러드는 탓에 현재를 온전히 살아가지 못한다. 망각 능력이 인위적으로 제거된 실험쥐가 실재하지 않는 기억 속 생존의 위협에 고통받다 죽어간 것처럼, 무조건 많이 기억하는 것과 삶의 풍요는 오히려 완전히 상충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망각 시장의 상술에 넘어가 젊은 시절의 기억력을 되찾기 위해 두뇌 트레이닝을 하고 기억 능력을 증진한다는 미신을 믿고 보조제를 산다. 온전하지 못할 때에 더욱 빛을 발하는 기억과 기억해야 할 것을 돋보이게 하는 망각에 관한 고찰 망각은 이성의 부족이 아니라 삶에 필요한 것이며 삶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한 니체의 말에서처럼 더 많은 기억이 아니라 적절한 망각이 삶의 풍요를 가져다준다. 또 다른 기억의 오작동 사례인 착각이 기억에 무의식이 원하는 바를 덧입힌 것임을 생각한다면,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 기록이 아니라 망각과 착각이 작용하여 적절히 취사선택된 기억이 진정한 나의 기억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망각이나 착각이 잘못이라기보다 자아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한 트릭이 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트로포니오스 신탁소에서는 신탁을 잘 기억하기 위해 이전의 기억을 잊는다는 의식으로서 망각의 여신의 이름을 딴 ‘레테’의 강물을 마신 뒤 기억의 여신의 이름을 딴 ‘므네모시네’의 강물을 마셨다고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유명한 마들렌 일화를 통해 망각의 심연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며 ‘비자발적 기억’을 제시한 바 있다. 기억은 무조건 더 많이 하는 것에 그 미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망각의 체에 걸러져서 더욱 가치 있는 것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기억의 날줄’과 ‘망각의 씨줄’이 적절히 교차되어야 우리의 정체성과 그것을 둘러싼 세계라는 옷감이 알맞게 짜일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망각을 막연히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잊어도 되는 것을 잘 잊음으로써 더 풍요로운 기억을 일궈낼 수 있을 것이다. 한번 읽으면 결코 배신하지 않는 반려인문학 은행나무출판사 〈배반인문학〉 시리즈 출간! 인문학의 효용은 궁극적으로 나에 대한 관심, 나다움에 대한 발견에 존재한다. 또한 인문학은 스스로 성숙한 삶을 살아나가는 데 있어 근본의 힘을 제공한다. 〈배반인문학〉 시리즈는 이처럼 ‘나’를 향한 탐구, 지금 나에게 필요한 질문과 그것을 둘러싼 사유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지금 나는 무엇을 보고, 어디에 서 있으며,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현대철학과 사회의 화두인 ‘몸’을 매개로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하는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필진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키워드를 선정해, 일상 속 인문학적 사유를 쉽고 명료하게 펼쳐낸다.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배반인문학〉의 다채로운 사유의 항해에 몸을 실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