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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아름답고도 기쁜 몸
1장 나는 왜 아름답지 않은가 외모 실험 외모 불만족 사회 외모 강박증에 시달리는 한국인 외모 스키마 벗어나기 2장 주인공은 아름답다 날 때부터 아름다운 주인공들 못생긴 사람도 아름다워 보이게 하는 힘 나는 내 세상의 주인공이다 3장 외모지상주의 들여다보기 외모지상주의의 출현 외모와 정체성의 상관관계 근대의 대도시 속 변화하는 정체성 아름다움의 과학 외모지상주의 비판이 불러온 역효과 4장 내면 들여다보기 표면과 내면 미녀란 무엇인가: 중국의 사대미인 아름다우면 성공하는가? 5장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아름답다고 ‘카더라’ 보이는 몸 과거의 아름다움과 현재의 아름다움 외모와 타자 나가며 자신의 몸을 사랑하라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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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는 아름다움과 추함의 기준이 없다. 자연의 모든 동식물은 생긴 대로 살다가 생긴 대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이 아니라 문화 속에서 산다. 문화는 구별과 차별의 공간이다. 바둑판처럼 사회가 좌와 우, 상과 하, 우와 열, 백과 흑, 선과 악 등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는 필요한 구별도 있다. 그러나 미와 추처럼 불필요하고 해로운 구별도 있다. 최악의 경우에 이러한 구별은 차별이 된다. 사람과 사람의 차이가 미와 추로 차별화되는 것이다.
---「아름답고도 기쁜 몸」중에서 우리가 아름다워지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자신감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취업이나 승진, 결혼, 성공 등에서 유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름다우면 더욱 기쁘고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그런데 아름다워지면 과연 자신감과 자존감이 더 높아질까? 아름다우면 더욱 행복해질까. 이것은 인과관계에 대한 질문이다.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아름다움과 행복의 관계는 요즘 많은 학자들이 연구하는 주제 중 하나이다. 앞으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미리 결론을 말하면, 아름다움의 비밀은 외모가 아니라 행복에 있다. 사람들은 아름답기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행복하기 때문에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아름답다고 해서 자신감과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자존감이 높아지면 아름답게 보인다. ---「외모 불만족 사회」중에서 ‘S라인’이라는 말이 없으면 우리는 몸매를 S라인으로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가서 가슴과 허리, 엉덩이의 S라인이 아름답다는 말을 했다면 당시 사람들은 우리를 정신병자 취급했을 것이다. 가슴과 엉덩이라는 말 자체를 발칙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신장에 알맞은 체중이 있다는 말에도 고개를 흔들었을 것이다. 굳이 조선시대를 예로 들 필요도 없다. S라인이라는 용어는 2000년 이후에야 등장했다. 최근 외모 관련된 신조어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우리는 외모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너무나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엉덩이를 그냥 엉덩이로 보지 않는다. 처지지 않고 올라간 복숭아 엉덩이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면서 엉덩이를 본다. 자신의 엉덩이가 내려갔다고 여겨지면서 엉덩이를 올리는 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그러한 운동법의 종류는 두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외모 실험」중에서 신분제 사회인 경우, 외모는 그가 양반인지 평민인지 말해주는 명함이나 마찬가지였다. 양반은 양반다운 외양을 보여주어야 한다. 양반답게 의관정제하고 양반답게 근엄한 얼굴을 하고 양반답게 팔자걸음으로 걸어야 한다. 외모는 개성이 아니라 신분이었던 것이다. 외모는 개성이 아니라 신분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외모는 일차적으로 정체성이며 신분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움은 부차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외모의 아름다움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진지함과 성실성의 미덕이었다. 외모 꾸미기에 너무 치중하는 사람은 언행이 일치하지 않거나 겉과 속이 다른 사람으로 오해받기 쉬웠다. ---「외모와 정체성의 상관관계」중에서 아름다움은 스토리텔링이다. 이것을 단순노출효과mere-exposure effect라는 심리학적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람들은 낯선 것보다는 친근한 것, 익숙한 것, 많이 보고 들은 것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친근함 원리familiarity principle로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효과를 잘 이용하는 것이 광고이다. 소비자는 광고에서 많이 보았던 상품을 선택하게 된다. 외모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과거에 본 적이 없는 낯선 사람들보다 많이 보았던 사람들을 더 아름답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당연한 말이 되겠지만 타민족보다는 자민족을 더욱 좋아하는 것이다. ---「미녀란 무엇인가: 중국의 사대미인」중에서 아름다움은 기쁨이기 때문에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주관적 감정과 분리될 수가 없다. 아름다움은 주관적이다. 그럼에도 창이나 방패처럼 내가 아름답게 보는 대상은 다른 사람들도 아름답게 보기 때문에 아름다움은 주관적이지만 개인적이지는 않다. ‘나’의 아름다움은 동시에 ‘우리’의 아름다움인 것이다. 나에게 좋은 것은 동시에 우리에게 좋은 것이고,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우리에게도 도움이 된다. 즉, 아름다움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것이다. ---「과거의 아름다움과 현재의 아름다움」중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외모에 대한 열등감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거울을 보면서 자기 얼굴에서 흠을 찾아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절대로 아름다워질 수 없다. 아름다움의 비결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워지기 위해 노력하기 전에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자신의 몸을 사랑하라」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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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자본 사회가 끝없이 쏟아내는 외모 스키마
타인의 시선에 갇혀버린 불편한 몸 통계에 따르면 한국 10대 여성의 77%는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지 못한다. 이 불만은 외모를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져 10대 여성의 50%는 17세 이전에 다이어트를 시작하며, 57%는 성형 의사를 갖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이러한 불만족은 외모 강박증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신체에 결함이 있다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해 외모 가꾸기를 반복하거나 자신에게 존재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 외모에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보인다. 한국 사회가 이처럼 과도하게 외모에 집착하고 있다는 증거는 각종 외모 관련 용어가 넘쳐나는 것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S라인’, ‘복숭아엉덩이’, ‘피부미인’, ‘자연미인’ 등 우리의 머릿속에 외모와 관련된 수없이 많은 관념과 기준을 만들어내는 ‘외모 스키마’가 결국 우리를 옥죄고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동화 속 주인공들은 왜 모두 아름다울까? 아름다운 외모를 만드는 내면의 비결 영화나 드라마, 동화 속 주인공들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남다른 외모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고대 서사시나 구전 설화, 동화 속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콩쥐와 팥쥐》에서 주인공 콩쥐는 아름답고 착하며, 팥쥐는 추하고 악하다. 왜 그럴까? 저자는 아름다움에는 두 가지 종류가 존재한다고 말하며, 우리와 이해관계가 있는 아름다움 그리고 그와 전혀 무관한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친구나 동료, 가족 등 나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는 그 사람의 행동과 우리의 마음이 기쁨을 줄 때 그 사람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거꾸로 말해 그 사람이 겉으로 볼 때 아무리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있더라도 그 사람의 관계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면, 더 나아가 모욕과 아픔을 느낀다면, 전혀 아름답게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 ‘아름다움=선’의 공식이 적용된다. 착하고, 용감하며, 정의롭고, 지혜로운 우리의 동화 속 주인공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TV나 잡지에서 보는 연예인들의 외모에 대해서 우리는 그저 구경꾼과 같은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우리와 아무런 실제적인 이해관계를 맺지 않는 대상에 대한 외모이므로 그들의 내면이 우리의 미적 판단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Love Yourself!’ 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의 몸은 아름답다 자연적으로 알 수 있는 직관적 아름다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전깃줄에 앉은 서너 마리의 참새 중 어떤 참새가 더 아름다울까? 길가에 핀 코스모스 중 어떤 코스모스가 더 아름다운지 판단할 수 있을까? 자연물에는 아름다움의 기준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기준이 없기에 분별할 수도 없다. 결국 보는 것은 배우는 것이며, 아름다움 또한 이러한 시각적 배움을 통해 훈련되는 것이다. 또한 조선시대와 같이 양반과 상민 등 계급이 구분된 사회에서는 외모가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이었다. 멀리서 보아도 지체 높은 계급의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구분되었다. 대대로 대장장이로 살아온 집안의 자식은 외모와 관계없이 대장장이의 외모를 지닌 것으로 판단되었다. 하지만 도시화가 가속화되고, 서로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익명성이 강조되는 현대사회에서, 외모는 최소한의 정보가 된다. 이제 우리는 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의 직업과 출신배경을 전혀 알 수 없다. 이처럼 상대방에 대한 아무런 정보를 알지 못할 때, 우리는 외모를 통해 최소한의 분별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는 것이다. 이처럼 현대인들은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할 수밖에 없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외모지상주의의 환상과 욕망에 나 자신을 맞추려 애쓸 필요는 없다. 또한 이를 부추겨 사람들의 불만과 콤플렉스를 발판으로 번성하는 산업의 희생 제물이 되지도 더더욱 말아야 할 것이다. 기쁨이 없는 아름다움은 공허하다. 진정한 기쁨은 나 자신이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낄 때 찾아온다. 행복한 사람은 아름답다. 하지만 무작정 아름답다고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아름다움의 비밀은 사랑과 기쁨에 존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