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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
유한성의 발견
최은주
은행나무 2021.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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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며
나이 듦과 늙어감
결정적 순간
시간의 유한성

1장 우리와 그들
30세
끝나지 않는 시작
어른 아이

2장 존재론적이거나 생물학적이거나
얼굴
젊음-늙음의 사이
사물의 나이
악어 뱃속의 시계

3장 선택과 결정
햄릿과 오이디푸스
놀이와 삶
가지 않은 길
기다림

4장 앎을 앎
타자화되는 나이
늙음의 이름
앎을 안다는 것

5장 현재의 그리고
아무 일 없음에 대한 칭송
삶을 잇기

인명 설명

참고문헌

저자 소개 1

건국대학교에서 영미문학비평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몸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난민을 둘러싼 언어·이동·공간의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관련 논문으로 「경계 횡단의 언어와 환대 (불)가능한 장소」, 「정치적으로 전유되는 이주·국경에 대한 고찰」 등이 있다. 그동안 제인 오스틴, 샬럿 브론테, 에드거 앨런 포,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고, 이를 바탕으로 『책들의 그림자』, 『런던 유령-버지니아 울프의 거리 산책과 픽션들』을 펴냈다. 또한 질병과 죽음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죽음, 지속의 사라짐』, 『질병, 영원한 추상성』을 썼다. 이외에도 『내 몸
건국대학교에서 영미문학비평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몸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난민을 둘러싼 언어·이동·공간의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관련 논문으로 「경계 횡단의 언어와 환대 (불)가능한 장소」, 「정치적으로 전유되는 이주·국경에 대한 고찰」 등이 있다. 그동안 제인 오스틴, 샬럿 브론테, 에드거 앨런 포,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고, 이를 바탕으로 『책들의 그림자』, 『런던 유령-버지니아 울프의 거리 산책과 픽션들』을 펴냈다. 또한 질병과 죽음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죽음, 지속의 사라짐』, 『질병, 영원한 추상성』을 썼다. 이외에도 『내 몸을 찾습니다』, 『인류세와 에코바디-지구는 어떻게 내 몸이 되는가?』 등 몇 권의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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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5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164쪽 | 206g | 120*190*20mm
ISBN13
9791167370259

책 속으로

나이는 시간과 절대적인 관계를 맺으며 모든 순간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나이 듦은 특별한 사건이 아닐 수 있다. 나이 드는 것과 늙어가는 것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구분이 어려운 어디쯤에 포개져 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늙기 시작한다거나 삶은 자궁에서 시작되는 내리막길이라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시간과 육체 사용의 정도에서 경험되는 변화에 나이 듦과 늙어감이 있다. ‘세월’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좋을 것이다. 세월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세대가, 모든 사람이 나이를 먹고 나이 들어가는 경험을 한다. 생애 주기에서 보면 모든 사람이 경험하는 것이지만 절대적으로 개인의 실존적인 문제인 것이다.
---「결정적 순간」중에서

아이러니?는 노인과 청년이 마주하는 늙음에 대한 것이다. 늙음을 재현하는 병든 노인과 그 노인을 통해 늙음을 관찰하는 청년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결코 동일시할 수 없고, 공감이 어려운 이질적인 층위에 놓인다. 노인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와 삶에의 집착,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태도는 늙기 전의 우리를 두렵게 만든다. 노인에게 연민을 가졌던 젊은이는 노인이 풍기는 끔찍함을 보자마자 저주하기 시작한다. 회피하고 싶은 것은 추한 외모에만 있지 않다. 노인은 지긋지긋한 고독, 시간이 흘러도 도무지 오지 않는 잠, 허무하기만 한 신과의 대좌를 떠올리고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인간 세계 안에서밖에 안식을 얻을 수 없어, 자기에게 관심을 표현해준 유일한 사람에게 매달려 그의 손을 놓지 않으려고 꼭 그러쥔다. 그러나 저주할 만한 늙음의 요소가 완전히 나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없듯이 집을 뛰쳐나와 해방감을 느끼기도 전에 청년의 시선은 노인의 형체가 어른거리는 어두운 방의 창문을 향한 다. 떼어놓은 노인과 달리 늙음의 모습은 긴 그림자처럼 자신에게도 드리우기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청년과 노인은 관계 맺음에 실패하고 만다.
---「끝나지 않는 시각」중에서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인간이 80세로 태어나 18세를 향해 늙어간다면 인생은 무한히 행복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것이 스콧 피츠제럴드 소설의 모티프가 되었다. 늙기 전에는 젊음의 빛나는 순간이 소중한 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므로 늙음을 겪은 후에 젊음의 시기를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가 들고 노년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회한에 잠긴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따라서 늙음으로부터 시작된 인생이 젊음에 도달하는 순간 최선의, 최고의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악어 뱃속의 시계와 악어 뱃속에서 이미 멈추었는데도 시계가 째깍거린다고 생각하는 후크 선장도, 벤자민 버튼의 거꾸로 가는 시간도 인간이 죽음에 대해 원초적 두려움을 품고 있다는 사실과 또 살고 싶다는 욕망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모순적으로 그리고 있다.
---「악어 뱃속의 시계」중에서

따라서 소년이 ‘앎’을 아는 것에서 영구한 의미의 닻을 내린다면, 그의 인생에는 어떤 우연이나 사건이 발생할 수 없다. 우연이나 사건은 작가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소소한 삶에서 근본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사건이 사랑이다. 그 순간을 스쳐 지나지 않고, 그 우연과 사건을 자신의 것으로 맞이하고 새로운 세계를 탐험할 때 사랑이 외적으로 확장되며, 의미가 생산된다.
---「햄릿과 오이디푸스」중에서

그러나 퇴직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장년층의 고민은 반드시 생업 때문만은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로 재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재취업을 하는 다른 이유가 있다. 무엇을 하지 않는다면 ‘늙는다’거나 좌절감과 무력증이 생길 것이라는 추측이다. 벌써부터 가족과의 불화를 염려하는 경고성 메시지에 둘러싸여야 하는 것이다. “퇴직 이후에 뭐 할 거예요?”라는 질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부정적 어조를 담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며, 무엇보다 자기 스스로 용납하지 못한다. 그것은 자신을 무용지물로 취급할 것에 대한,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기인한다.
---「놀이와 삶」중에서

다른 세대를 바라보면서, 그 삶을 이렇게 저렇게 자로 재듯이 평가할 사이가 없다. 모두가 제각각의 모습으로 나이를 먹으며, 그 과정에서 분노하고 싸우며 살아간다. 늙느라 바쁜 것이다. 순응하고 타협하기도 하다가 결국에는 전면적인 상실을 겪고, 자신의 육체에 귀 기울이고 궁극에는 화해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늙음의 이름」중에서

급속도로 증가하는 노령 인구에 관한 문제는 국가와 사회 차원에서도 해결하기 어렵다. 기본적인 경제적·의료적 문제 외에도 일상을 살아가는 개인의 문제가 발생한다. 배우자나 친구들을 떠나보내고 혼자 남아 매일의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개인의 존재론적 문제가 남는다. 매일 맞이하는 아침이지만 매번 같지 않은 아침이며, 다르지 않지만 다른 방식으로 24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노년은 그저 지루하고 무의미할 것이다.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전면에서 생각해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여느 때처럼 수동적으로 하루를 보내야 한다면, 수명연장을 의학 기술이 가져온 축복이라고 단정할 수 없을 것이다.
---「앎을 안다는 것」중에서

고독, 가난, 1인 가구로만 노년을 이해하는 방식 때문에 노인 세대는 더욱 고립될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은 개인이 경험적으로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이해될 뿐이다. 개인을 넘어 사회 전반적으로 고령화와 노화가 공포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이러한 맥락이다. ‘독거노인 말벗 되어주기’나 ‘도시락 전달하기’는 노인 세대를 사회적 약자로만 바라보게 만든다. 일방적으로 주면 받는 대상인 것이다. 이것이 노인을 낮춰 보게 만들고 소통하기 힘든 약자로만 취급하도록 만든다.

---「아무 일 없음에 대한 칭송」중에서

출판사 리뷰

우리는 모두 ‘나이 듦’의 과정 속을 살아가고 있다.
-성장과 성숙, 쇠락과 죽음, ‘나이 듦’의 풍경에서 만나는 것들에 대한 사유


갓난아이도 죽음을 앞둔 노인도 공평하게 한 살씩 나이 들어가지만, 그들이 놓인 ‘나이 듦’의 과정은 다르다. ‘나이 듦’은 성장과 성숙으로 시작해 점차 쇠락과 죽음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배움의 시간을 지나 사회에 자리를 잡고 경력과 성취를 쌓아 삶에 자신감을 얻는다. 삶의 경험이 무르익어 성숙과 안정을 찾을 즈음, 문득 몸과 정신이 둔해졌음을 느낀다. 피부, 뼈, 관절, 몸 구석구석이 시간의 대가를 치르듯 쇠퇴하며 삶의 유한성을 체감하게 된다. 그 순간부터 ‘나이 듦’은 ‘성장’이 아닌 ‘늙어감’과 ‘노화’에 가까워진다. 이루었던 성취들로부터 멀어지고 쇠약해진 육체를 돌이켜보려 애쓰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곁에 있던 사람들이 떠나가고 경제적 능력을 잃으면서 고독과 가난을 경험한다. 죽음이 다가옴을 서서히 느낀다.
그러나 현대 의학의 발달로 ‘나이 듦’에서 ‘늙어감’과 ‘노화’의 시기는 길어졌다. 나이 든 몸과 정신을 안고 오랜 시간을 살아가야 한다. 그만큼 ‘나이 듦’의 과정이 중요해졌고, 나이 든 존재들은 더욱 많아지고 있다. 자신의 ‘나이 듦’을 마주하고 나이 든 존재와 관계하는 방법을 새롭게 배워 나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올바르게’ 나이 들 수 있는가
-‘나이 듦’과 나이 든 존재를 향한 혐오와 낙인


나이는 차곡차곡 쌓이기만 하므로 나이 드는 과정은 복습할 수 없다. 나이 든 육체를 갖고 살아가는 방법도, 나이 든 나와 타인의 육체를 바라보는 관점도 배울 기회는 좀처럼 찾을 수 없다. 흘러간 시간은 ‘나이’가 되어 우리에게 ‘나잇값’을 요구한다. 올바른 ‘나이 듦’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들이밀어지는 것이다. 지혜롭고 현명하게 나이 들어야 하고 노후를 책임질 수 있는 경제적 조건을 갖추어야 하며 아래 세대에게 쓸데없이 간섭해서는 안 된다. 이상적인 ‘나이 듦’의 덕목은 아직 쇠락의 과정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지 못한 세대에 의해 만들어지고, 노인 세대로부터도 공감을 얻는다. 그러나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갖춘 소수를 제외하고는 올바른 ‘나이 듦’의 방식을 수행하기는 어렵다. 그때 개인은 ‘꼰대’라는 언어로 포착되거나 연령주의적 혐오에 노출된다.
노인의 몸은 ‘늙고 추한’ 것으로 타자화되며, 그들의 느린 행동과 어눌한 모습은 ‘나이 듦’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나이 듦’을 드러내는 신체적 변화는 모두 관리 대상이 되어, 필연적인 쇠퇴에 저항할 것을 요구받는다. 운동으로 살을 빼고 근육을 만들며, 주름을 감추기 위해 화장품과 의학 기술을 동원하고, 머리를 염색하고 풍성하게 유지하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래야 한다는 강요 속에 놓인다. 경제력과 대인 관계를 유지하는 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모든 개인이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나이 들 수 없음에도, 그렇지 못한 노년의 삶과 ‘나이 듦’의 방식은 지워진다.

현명하게, 또는 편협하게 나이 들기
-‘나이 듦’에서 얻는 앎이 주는 가능성


‘나이 듦’이 모든 부분에서 쇠퇴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 듦’은 앎의 과정이며, 개인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회의 법칙, 삶의 즐거움, 진리 등을 깨닫는다. 노련함과 현명함을 가져다주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알게 한다. 어설픔, 혼란, 실패, 불쾌와 같은 부정적인 요소를 삶에서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한편 자신이 ‘삶의 진리’라고 여기는 무언가를 깨닫기도 하는데, 그 내용이나 깨달음에 대처하는 자세는 모두 다르다. ‘햄릿’은 숙부의 배신을 깨닫고 삶의 목표를 얻은 듯 단호히 복수를 결심하며, ‘오이디푸스’는 무지에서 나온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되자 자신의 눈을 찔러 참회한다.
깨달음에 대한 모습은 이처럼 각성과 실천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아는 ‘꼰대’의 방식으로 변질될 우려도 있다.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 〈애러비〉 속 소년은 사랑에 좌절하며 환멸을 느끼는데, 이 고통스러운 깨달음은 소년에게 ‘사랑’을 고정적인 것으로 만들 우려가 있다. 사랑에 대한 나의 환멸을 모든 사랑에 적용하고 마는 것이다. 이렇듯 깨달음을 고정시키며 나이 들어갈 때, 우리는 차츰 완결되어 변화와 소통의 가능성을 잃어버린다.

‘올바른 나이 듦’을 제시하기보다
나이 든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어야 한다


고독, 가난, 추함, 느림 등 나이 든 사람을 지칭하는 말은 부정적 시선으로 점철되어 있다. ‘올바른 나이 듦’의 방식을 시간이 가져오는 육체적 쇠퇴와 경제적 몰락에 저항하는 것으로만 한정 짓는 사회에서, 개인은 자신의 현실에 맞는 ‘나이 듦’의 방식을 발견할 수 없다. 닥쳐올 불행에 공포감을 느끼며 나이 든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되새길 뿐이다. 그러나 반드시 찾아오는 쇠락과 고통을 이겨내며 현명하게 나이 드는 방법을 뚜렷하게 제시하기는 어렵다. 다만 ‘나이 듦’의 과정이 오로지 부정적인 것이 아니며, 나이 든 존재 역시 다양한 삶의 방식과 욕망을 지녔음을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나이 듦’의 풍경을 나누고 존중할 때, 비로소 자신에게 맞는 ‘나이 듦’의 방식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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