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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편견
이근세
은행나무 2021.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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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상 top100 5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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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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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며 기회주의와 영웅주의 6

1장 서양적 효율성

모델화 18
유대교와 기독교 26
근대성과 모델화 32
모델화의 한계 38

2장 중국적 효율성

전략 47
외교술 63
도덕 69

3장 국제 정세

동서 문화철학과 인문학의 미래 78

보론 동양과 서양의 만남
중국과 유럽의 선교 활동 89
타 문명을 보는 서구의 시선 92
과학과 제국주의 106

나가며 철학의 가능성 126

인명과 개념 설명 132
참고문헌 145

저자 소개1

경희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벨기에 루뱅대학교 철학고등연구소(ISP)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브뤼셀 통·번역대학교(ISTI) 강사를 역임하고 귀국했다. 현재 국민대학교 교양대학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서양근대철학, 프랑스철학이다. 점차 연구의 초점을 동서 비교철학으로 옮기고 있다. 주요 저서로 『스피노자, 욕망의 기하학』『효율성 - 문명의 편견』 등이 있고, 역서로 『고요한 변화』 『탈합치』 『문화적 정체성은 없다』『스피노자 서간집』 『데카르트 이성과 의심의 계보』『스피노자와 도덕의 문제』 『변신론』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스피노자의 존재론 기초
경희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벨기에 루뱅대학교 철학고등연구소(ISP)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브뤼셀 통·번역대학교(ISTI) 강사를 역임하고 귀국했다. 현재 국민대학교 교양대학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서양근대철학, 프랑스철학이다. 점차 연구의 초점을 동서 비교철학으로 옮기고 있다.

주요 저서로 『스피노자, 욕망의 기하학』『효율성 - 문명의 편견』 등이 있고, 역서로 『고요한 변화』 『탈합치』 『문화적 정체성은 없다』『스피노자 서간집』 『데카르트 이성과 의심의 계보』『스피노자와 도덕의 문제』 『변신론』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스피노자의 존재론 기초」 「스피노자의 철학에 있어서 시간성과 윤리」 「블롱델의 행동철학과 라이프니츠의 실체적 연결고리 가설」 「프랑수아 줄리앙의 비교철학에서 중국과 서양의 효율성 개념 비교」 「야코비의 사유구조와 스피노자의 영향」 「이념의 문제와 글쓰기 전략」 「동아시아적 이념의 가능성」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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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9월 13일
쪽수, 무게, 크기
148쪽 | 194g | 120*190*8mm
ISBN13
9791167370822

책 속으로

중국적 관점에 따르면 인간의 행위나 사회 제도는 세계의 운행 질서를 모방해야 한다. 자연의 거대한 흐름에 역행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효율적일 수 없기 때문에 전략, 도덕, 제도 등 모든 것은 계절이 변화하듯 자연스럽게 전개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은 모든 중국 사상이 논의의 필요도 느끼지 않은 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전제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이 전제를 통하여 나머지를 이해해야 한다. 반면 서양적 관점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가변적이고 불완전하다. 그래서 고정불변의 더 완전한 세계가 있다고 상정한다. 그러한 세계를 부정하거나 모른다고 가정한다고 해도 역시 논리나 수학과 같은 고정불변의 법칙이 기준이 된다는 점은 항상 인정된다. 플라톤의 이데아,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 기독교의 신, 데카르트의 수학, 라이프니츠의 지성, 칸트의 자유 등은 모두 자연의 상위에 있는 개념들이다. 그래서 서구적 효율성은 계획과 목적을 치밀하게 세우고 강력한 의지로 실천에 옮기는 구도다.
--- p.11~12

언제나 최선의 규칙을 추구했던 라이프니츠 역시 완전성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완전성은 최종적 등급의 설정이 가능한 것이다. 불완전한 것들은 그 끝이 없지만 완전한 것은 최선이 있다. 예를 들어 각 변이 4인 정사각형과 한 변이 2이고 다른 변이 6인 직사각형이 있다고 해보자. 두 사각형의 변의 합은 각각 동일하게 16이지만 면적은 각각 16과 12이다. 또는 한 변이 1이고 다른 변이 7인 직사각형은 변의 합은 역시 16이지만 면적은 7에 불과하다. 이런 식으로 무한히 진행될 수 있다. 즉 최대의 면적은 존재하지만 최소의 면적은 끝없이 내려갈 뿐이다. 따라서 최선만이 좋은 것의 기준이 된다. 어떤 것이 덜 완전한 것에 비해 좋다고 말하는 것은 칭찬할 만한 것이 아니다. 시험을 볼 때 100점 만점이면 100점을 기준으로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90점의 점수를 맞고서 80점보다 좋은 점수이기 때문에 잘했다고 하는 것은 그리 칭찬할 일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라이프니츠의 생각에는 당연히 완전성의 모델에 대한 전제가 깔려 있다.
--- p.21

제로 서양은 수학을 자연에 적용하면서 고전물리학, 공학 물리학을 탄생시켰으며 여러 기술적 발견과 함께 짧은 기간 안에 세계의 모습을 바꾸어놓았다. 중국에도 수학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중국인들은 수학이 언어라는 이념을 가진 적이 없다. 그들은 언어로서의 수학이 자연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나아가 그들은 신이 세계를 창조하거나 방정식으로서 “썼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라이프니츠는 신이 계산하는 동안 이 세계가 창조되었다고 주장했다. 즉 최적의 방정식이 신의 지성속에 세워진 순간 이 세계가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반면 중국은 자연이 음양陰陽의 교대에 의해 순환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방법서설≫에서 데카르트가 선언한 것처럼, “자연의 지배자와 소유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수학에 근거한 과학과 기술은 서양을 경제적·정치적 강자로 만들어 주었다.
--- p.37~38

손무가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이라서 적군을 파괴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또한 아무런 역설도 말장난도 없다. 오로지 효율성을 위한 방안일 뿐이다. 적을 온전히 둠으로써 동시에 아군도 온전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에서 그토록 중요한 전쟁 방식인 공성전攻城戰은 손무에게는 최악의 방식이다. 실제로 공성전은 매우 어려운 전쟁이다. 성을 넘어 들어가서 공격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게다가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은그곳이 삶의 터전이기 때문에 목숨을 다해 방어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성이 함락되고 나면 공격하던 측은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성을 지키던 사람들을 몰살하곤 한다. 손무에게 이러한 싸움은 손해를 동반하기 때문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적을 온전히 두고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
--- p.62~63

중국에 부재한 것이 바로 공론화다. ≪손자병법≫에 따르면 위대한 장수는 적군뿐 아니라 아군까지도 양떼를 다루듯이 조종한다. 형세의 파악과 그 변형에서 전략가는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 결국 “공적인 논의와 자발적 참여의 모든 가능성”*은 차단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줄리앙은 비록 마찰이 생긴다 하더라도 이상적 형태가 목적으로서 제시될 때 비로소 협의나 타협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즉 모델화와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중국은 오늘날까지도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
--- p.80~81

데카르트가 정초한 물리학 혹은 수학적 물리학은 이제 실천의 영역에 적용되고, 이를 통해 자연을 삶에 유용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수학은 서양 사상의 상징이며 서구적 효율성의 진정한 원형이다. 수학은 가장 엄밀한 학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학은 확실한 지식의 모델이다. 수학을 기초로 발전된 과학혁명을 생각해보자. 1+1은 몇일까? 2가 분명한가? 이상한 질문일 수 있겠지만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1+1=2이기 위한 정확한 조건을 찾아보자. 당연히 1이라는 것이 두 개가 있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2라는 기호를 쓴 것이다. 어떤 물건을 “하나”라고 부르고 또 다른 물건을 “다른 하나”라고 부를 때 과연 그 두 물건이 완전히 같은 것인가? 사과 하나와 배 하나가 있다고 말할 때 “하나”가 지칭하는 내용은 다르다. 달리 말해서 1+1=2이려면 먼저 1=1이 확립되어야 한다. 그리고 숫자를 통해 실제 물체를 지칭하려면 완전히 똑같은 물체가 최소한 두 개는 있어야 한다. 그런데 완전히 똑같은 두개의 물체가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라이프니츠는 궁중의 정원에서 귀부인들에게 철학을 설명하다가 완전히 똑같은 두 개의 나뭇잎을 찾아오라고 했다. 여러 귀부인들이 정원을 뛰어다니며 찾아보았으나 결국 모든 나뭇잎이 조금씩은 다르다면서 찾지 못하겠다고 인정했다.
--- p.108~109

산 안에서는 산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산을 떠나면서 산이 보이듯이, 서양의 바깥에서 서양을 볼 때 서양이 보이고, 중국의 바깥에서 중국을 볼 때 중국이 보인다. 중국 사상과 서양 사상에 명확한 설명 없이 전제되어 있는 고유한 습벽을 선명하게 드러낼 때 비로소 진정한 대화가 가능해질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우리의 사유에 분란을 일으킨다.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을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다시 깨어난다. 철학이 다시 가능해진다. 서로의 간극을 직시할 때 아마도 서로를 인정하는 진정한 만남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 p.130

출판사 리뷰

새로운 시대의 철학,
‘효율성’으로 세상을 읽는다


“운 좋은 사람은 아무도 못 당한다.” 맞는 말이다. 아무리 노력하고 고군분투를 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별로 애쓰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데 일이 잘 풀리는 사람이 있다. 인생이 생각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그 조건을 온전히 받아들인 후에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다시 한 번 살필 필요가 있다. 《효율성, 문명의 편견》은 우리가 처한 환경을 어떻게 삶의 문제로 가져와 활용할지를 통해 효율성의 문제를 논한다. 저자는 동서양 철학에 녹아든 ‘효율성’에 대한 관점과 사유를 논하고, 조금은 낯선 영역인 병법(兵法)을 통해 효율성을 깊이 탐구한다. 나아가 동서양의 철학에서 나타나는 ‘효율성’ 담론의 차이에서 상호 이해를 위한 단서를 발견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교류할 수 있는 ‘철학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는 책이다.

효율적인 삶의 전략

방학이 되면 책상 앞에 고이 붙여두던 생활 계획표, 새해가 되면 늘 야심차게 첫장을 써내려가는 다이어리. ‘효율’이라는 말은 공장 라인에 해당할 법할 말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도 밀접하게 붙어 있는 말이다. 우리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효율적인 삶을 원한다. 그러나 세계 경제가 불안한데 금융에 올인한다거나 집값 거품이 꺼지지 않았는데 내집 마련을 한답시고 집을 산다거나 취업 시장이 경직될 대로 경직되었는데 무작정 구직 활동에 뛰어든다거나…… 이렇게 환경과 흐름에 역행하는 것은 ‘효율’과 멀어지는 일이고, 우리는 매 순간 달라지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세(勢)를 살펴야 한다. 저자가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형세(形勢)’는 바로 상황잠재력을 말하고, 우리가 지금 그 옛날 손무의 이야기를 읽는 이유가 있다면 바로 그 잠재력과 가능성을 살핌으로써 살아 움직이고 반응하는 실제 우리 삶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중국에서는 상황의 흐름을 감지하고 읽어내는 능력이 전략의 중심축이었다. 이것은 전국시대의 중국뿐만이 아니라 현대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로 요청되는 삶의 전략이다.?“전략가들은 말한다. 적을 파괴하는 것은 무용하니, 적을 온전하게 두어라. 그러나 너의 쪽으로 그가 기울도록 하라.”(프랑수아 줄리앙Francois Jullien)

새로운 철학의 가능성

프랑스의 동서비교철학의 대가 프랑수아 줄리앙에게서 영감을 받은 저자는 이 책에서 동서양의 문명을 적극적으로 비교하며 ‘효율’이라는 개념을 낯설게 사유한다. 중국적 관점에 따르면 인간이나 사회는 세계의 운행질서(곧 자연)를 모방하고 여기에 맞춰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이 곧 효율이다. 반면, 이데아의 세계를 상정하고 변하지 않는 법칙을 추구하며 계획과 목적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곧 효율인 서구는 불가능의 상황에 혜성처럼 등장하는 영웅을 필요로 하면서 스스로 결함을 드러낸다. 기회주의 혹은 영웅주의라고 치부되기 쉬운 동서양의 문명에 대해서 저자는 지금이야말로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고 문턱을 넘어야 할 때라고 말한다. 동서양의 간극을 다시 살피는 이 시도에서 ‘효율성’이란 개념은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현실주의적 사상가들이 추구했던 것이며 이것은 가장 내밀한 개인의 일상 차원에서부터 거대한 국제정치까지 다룰 수 있는 개념이다.

우리는 사유의 분란을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휘어진 쇠막대기를 다시 펴기가 어렵듯이 타성을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문화적 타성은 데카르트가 의심을 접고 기존의 확실성에 안주하려고 했던 것보다 더 강고할지 모른다. 그러나 철학의 가능성은 타성의 파괴에 있을 것이다. 본문, 131쪽

생각할 수 없었던 것들을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다시 깨어날 수 있을 거라고, 철학이 다시 가능해질 거라고, 서로의 간극을 직시할 때 진정한 만남이 가능해질 거라 말하는 저자는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에 대한 시도를,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일상에서 시작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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