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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합치
예술과 실존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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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문

1. 탈-봉인(封印)
2. 우발적인 것과 조정된 것
3. 산다는 것은 탈-합치하는 것이다
4. 태초에 탈합치가 있었다
5. 탈합치에서 의식이 비롯한다
6. 어떻게 부정적인 것이 실존을 활성화하는가
7. 탈합치의 윤리를 위하여
8. 합치의 무덤
9. 근대성

역자 해제: 탈합치의 정치
역자 후기

저자 소개2

프랑수아 줄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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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sois Jullien

1951년생. 프랑스 철학자로, 파리7대학 교수다. 프랑스 파리국제철학대학원 원장, 프랑스 중국학협회 회장, 파리7대학 현대사상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중국 사유와 서양 사유를 맞대면시키는 작업을 수십 년째 진행 중이고 40여 권의 비교철학 저작을 내놓았다. 들뢰즈, 푸코, 데리다 등 현대 프랑스 철학의 거장들에 이어 서양중심주의에서 벗어나려는 흐름에 있다. 그는 철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중국 사유와의 맞대면에서 찾는다. 중국 사유는 역사, 언어, 개념 등 모든 면에서 서양과 관계없이 정립되었기 때문에 서양 사유의 편견을 읽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도구다. 서양의 대다
1951년생. 프랑스 철학자로, 파리7대학 교수다. 프랑스 파리국제철학대학원 원장, 프랑스 중국학협회 회장, 파리7대학 현대사상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중국 사유와 서양 사유를 맞대면시키는 작업을 수십 년째 진행 중이고 40여 권의 비교철학 저작을 내놓았다. 들뢰즈, 푸코, 데리다 등 현대 프랑스 철학의 거장들에 이어 서양중심주의에서 벗어나려는 흐름에 있다. 그는 철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중국 사유와의 맞대면에서 찾는다.

중국 사유는 역사, 언어, 개념 등 모든 면에서 서양과 관계없이 정립되었기 때문에 서양 사유의 편견을 읽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도구다. 서양의 대다수 이론가들이 동양사상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많은 동양철학자들이 서양사상을 정확히 다루지 못하여 줄리앙의 관점은 아직 엄밀한 연구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그의 철학은 동서양 양쪽 이론가들에게 무궁무진한 영감을 제공할 것이다. 이미 그의 많은 저작이 20여 개 나라에서 번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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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벨기에 루뱅대학교 철학고등연구소(ISP)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브뤼셀 통·번역대학교(ISTI) 강사를 역임하고 귀국했다. 현재 국민대학교 교양대학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서양근대철학, 프랑스철학이다. 점차 연구의 초점을 동서 비교철학으로 옮기고 있다. 주요 저서로 『스피노자, 욕망의 기하학』『효율성 - 문명의 편견』 등이 있고, 역서로 『고요한 변화』 『탈합치』 『문화적 정체성은 없다』『스피노자 서간집』 『데카르트 이성과 의심의 계보』『스피노자와 도덕의 문제』 『변신론』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스피노자의 존재론 기초
경희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벨기에 루뱅대학교 철학고등연구소(ISP)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브뤼셀 통·번역대학교(ISTI) 강사를 역임하고 귀국했다. 현재 국민대학교 교양대학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서양근대철학, 프랑스철학이다. 점차 연구의 초점을 동서 비교철학으로 옮기고 있다.

주요 저서로 『스피노자, 욕망의 기하학』『효율성 - 문명의 편견』 등이 있고, 역서로 『고요한 변화』 『탈합치』 『문화적 정체성은 없다』『스피노자 서간집』 『데카르트 이성과 의심의 계보』『스피노자와 도덕의 문제』 『변신론』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스피노자의 존재론 기초」 「스피노자의 철학에 있어서 시간성과 윤리」 「블롱델의 행동철학과 라이프니츠의 실체적 연결고리 가설」 「프랑수아 줄리앙의 비교철학에서 중국과 서양의 효율성 개념 비교」 「야코비의 사유구조와 스피노자의 영향」 「이념의 문제와 글쓰기 전략」 「동아시아적 이념의 가능성」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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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1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216쪽 | 316g | 135*215*20mm
ISBN13
9791191278064

책 속으로

탈합치의 개념은 안착된 합치를 해체할 때 새로운 가능성들이 출현할 수 있는 방식을 사유하는 사명을 지닙니다. 이는 단절, 창조, 나아가 혁명의 거대한 신화에 대립되는 개념입니다. 한 예술가는 예술로 인정된 예술로부터, 더욱이 자기 스스로 이미 작품으로서 창출한 것으로부터 탈합치할 때 비로소 예술가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 사상가는 이미 사유된 것으로부터, 그리고 자기 스스로 이미 사유한 것으로부터 탈합치할 때 비로소 사상가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은 매우 많은 실천 영역에 적용됩니다. 역사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를 다시 여는 것은 사회에 부과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그 확정성에 매몰되는 적합성과 조정의 형태를 해체할 때 가능합니다.
---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그러나 삶에서 합치가 불가능하다면 ‘산다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는 이에 대해 절망해야 하는가? 혹은 산다는 것이야말로 도리어 항상 탈합치하려는 역량이 아니겠는가?
--- p.39

능동적인 방식으로, 따라서 결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합치하려면 우선 탈합치해야 한다는 점이 「요한복음」의 논리적 핵심이며 이로부터 그 역설이 이해된다. 그리고 이는 우선 요한의 유일한 성찰 대상은 아닐지라도 그 핵심 대상인 ‘삶’의 현상 자체에 해당된다. 왜냐하면 잘 알려져 있듯이 삶을 실질적으로 전개할 수 있으려면 삶에서 탈합치해야 하며, 바로 이것이 ‘삶’의 고유성을 이루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자기의 삶을 사랑하는 자는 삶을 잃을 것이며” 자기 삶에 집착하고 그에 함몰되어 그로부터 이탈할 줄 모르는 자는 살아 있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다. 요한이 간파했듯 삶은 그 원리에 있어서 탈합치이며, 결과적으로 그는 이를 주체의 삶의 규칙으로 삼는다. 오히려 “이 세상에서 자기의 삶을 미워하는 자”, 즉 그런 삶과 탈합치하기로 선택하는 자는 “자기 삶을 영원한 삶으로 보존할 것이고”, 달리 말하면 삶을 단지 생명 유지에 필요한 숨을 의미하는 혼(pusche)이 아니라 생생한 삶(zoe)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런 말도 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삶을 다시 얻도록 삶을 내려놓게 하기 위함이다.” 자아와의, 그리고 자기 삶과의 탈합치는 자기 삶을 전개한다는 목적의 수단으로서 명시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의 제자들과 함께할 때도 그들에 대한 열린 탈합치, 그들과의 간극(떠남)은 관계를 강도 있게 하며 관계를 미래로 열어놓는다.
--- p.59-60

탈합치는 기원적 구도를 요구하지도 않고 그 정합성을 특권화된 시각에 고정시키지도 않은 채 기원적 가능성의 조건을 묘사한다. 따라서 탈합치는 이념적 틀에서 면제되고 그리하여 실효적인 과정에 가장 가까이 머물면서 기원적 가능성의 조건을 묘사한다.
--- p.62

예를 들어 내가 오늘 오후에 샹젤리제 극장에서 〈파이드라〉를 연기하는 베르마(Berma)의 재능을 자각하려 시도한다고 해보자. 이 공연은 내가 아주 오랫동안 기대해온 것이다. 게다가 현전하는 이 현재를 분리시키고 부각하기 위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 어둠에 잠긴 관객석, 조명이 밝혀진 무대, 모두의 기다림, 마침내 울리는 세 번의 신호, 그리고 시작을 알리는 침묵……. 그러나 매우 잘 세팅되고 선택된 지금 이곳에도 ‘대상’으로서 내가 실질적으로 합치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없다. 그토록 찬양받는 여배우의 연기의 매력을 바로 그 자리에서 자각하도록 해줄 나의 기쁨조차도, 이 기쁨이 퇴색될지 모른다는 염려가 없지 않은 가운데 내가 기다리던 때와 같은 이전의 것이다. 또는 열렬한 첫번째 박수가 대중의 인정을 입증함으로써 이 기쁨을 소급하여 정당화할 때와 같은 나중의 것이다. (···) 현전은 우리가 것을 고정시키려 할 때 숙명적으로 분열되고 풀어헤쳐지며 붕괴된다. 이는 주의력 결여 때문도 아니고 지각의 결함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극장에서 현전이 재현될 때조차도 현전은 현재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전이 실질적으로 느껴지고 체험되기 시작하는 것은 오직 회고적으로 매개를 통해서일 뿐이다. 예를들어 다음과 같은 모순을 통해서다. 상연된 공연에 대해 나는 어느 정도 실망하는 동시에 그것이 이미 끝난 것을 아쉬워한다. 나아가 이 ‘즉각적’ 현전은 역설적으로 거리를 두고 모호하게만 마주칠 수 있거나 프루스트가 결론 내리듯이 오직 아우라를 통해서처럼 마주칠 수 있다. 동시에 여기에는 주체로부터의 자기암시가 일정 부분 섞일 위험이 상존한다. “내가 박수를 칠수록 내게는 베르마가 연기를 더 잘하는 것 같아 보였다.”
--- p.70-72

탈합치는 탐험이다. 탈합치는 우발적인 것, 창조적인 것, 미리 예견되거나 내포되지 않은 것, 개시될 수도 있고 불발될 수도 있는 것을 향해 열려 있다.
--- p.91

우리는 삶에 필수적인 우리의 조건에 부응하고 우리의 힘에 대한 우리의 의지를 만족시키는 것을 진실로 간주한다. 우리가 인식의 객관성이라고 ‘믿는’ 것은 종(種)의 유기체적 필요에 적응하는 것에 불과하다. 심지어 진리가 더이상 진리가 아니라 ‘가치’이며 어쩌면 오류이기까지 하지만 우리의 생존을 위해 유용하다는 점에서 정당화되는 오류라고 할 정도다.
--- p.130

근대 회화가 그 정도로 창조적일 수 있었고 위험을 무릅쓰며 모험적일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선행 회화와 탈결속하고 (‘자연’과의) 적합성을 해체하는 데 엄격한 노력을 기울일 줄 알았기 때문이다. 자연과의 적합성은 선행 회화를 지원하고 강화했던 적합성이다. 창조성은 그것이 어떤 기적에서 비롯되는지 확인되지 않는 선언된 자유로부터 온다기보다, 확립된 정합성에 대한 간극이 곧이어 그 자체로 활성적이라고 할 때 이런 정합성에 도입된 분란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실제로 ‘근대 회화’라고 불리는 회화의 출현은 사유에서 중대한 사건이다. 적어도 근대 회화를 인상주의 이후에 나타난 것으로 이해한다면 말이다. 인상주의는 순간의 또는 ‘인상’의 합치를 감지하기 힘들게 정점에 이르게 하며, 동시에 모든 ‘정점’의 고유한 점이 그렇듯이 이미 다른 것을 향하게 된다. 왜냐하면 만일 근대 회화가 그림과 ‘실재’ 사이의 합치에 저항하고 사람들이 숨기고자 한 그것의 우발적이며 따라서 자의적인 특성에 의혹을 품는다면, 이는 근대 회화 또한 나름의 방식대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실행함으로써 이 ‘실재’가 회화 예술을 따르게 된다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 회화는 의도적으로 탈규범화하고 “매우 잘못” 그린다.
--- p.139-140

모순이 막혀버릴 때 유일하게 가동하는 것은 힘의 관계뿐이다.
--- p.156

예술가가 계속해서 예술가로 남는 것은 자신이 이미 이룬 것으로부터 탈합치할 줄 알고, 자신의 성공을 부정적으로 느끼기 시작하며, 이미 이룬 자기 작품과 간극을 벌림으로써 거기서 자기 작품을 다시 가동할 긴장을 발견할 때뿐이다.

--- p.169

출판사 리뷰

탈합치 개념을 통해 이해하는
인류 역사와 근대성의 의미


줄리앙은 종교, 과학, 문학, 미술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탈합치의 사례와 정당성을 설파한다. 십자가 위에서 죽은 예수는 인간으로서의 자신과 탈합치함으로써 영원한 삶을 활성화했다. 진화론에 따르면 생명체는 선행 단계에 갇혀 있는 대신 그 단계로부터 탈합치하면서 미지를 향해 도약했다. 세잔과 피카소는 원근법이라는 작위적인 시각 장치를 거부하고 “매우 잘못” 그리기를 택했으며, 말라르메는 시의 ‘순수성’과 의미 대신 무작위와 모순을 택했다. 줄리앙은 이처럼 19세기에서 20세기로의 전환점에 여러 분야에서 동시에 전개되었던 정신을 ‘근대성’이라고 일컫는다. 서구에서 이상적인 삶과 예술은 부정적인 것을 극복하고 합치에 이르러야 했지만 근대성이 이런 가치관을 깨뜨렸던 것이다.

하지만 탈합치는 단지 근대적 사상에 한정된 것만은 아니다. 줄리앙이 최초의 탈합치 사례로 드는 아담과 이브를 보자. 낙원에서 아담과 이브는 합치 상태였지만 실존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신의 질서에 의문을 갖지 않았고 완벽한 적응의 세계 바깥을 조망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사과를 먹음으로써 그 충족성에서 빠져나왔고, 서로가 발가벗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주체로 활성화되었다. 그들이 낙원에서 추방된 것은 달리 말하자면 실존에 진입한 것이다. 주체의 가능성은 합치 상태에 간극을 벌림으로써 생겨난다.

실존(ex-ister)이란 ‘바깥에 서는(ex-sistere)’ 것이다
우리는 안정된 것에서 벗어남으로써 자유로워진다


간극은 줄리앙의 사유에서 핵심이 되는 개념이다. 줄리앙 본인이 그리스 철학을 연구하다가 돌연 중국으로 간 것도 유럽 사상의 익숙함으로부터 간극을 벌려 사유를 새롭게 가동하기 위해서였다. 인류 역사에서 새로운 가능성은 언제나 익숙한 것의 바깥에 서려는 시도를 통해 나타났다. 이는 비단 예술이나 철학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과 정체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살아가면서 편안한 상태를 거부하고 굳어진 습관을 버리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탈합치 개념을 통해 그런 적합성에 간극을 벌리고 자아의 마비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탈합치는 과거의 삶과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활용할 것을 선별해내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탈합치는 지성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자유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이번 한국어 번역판에는 줄리앙의 최신작이자 ‘탈합치 연합’ 창립 선언문인 「탈합치의 정치」를 정리한 내용이 특별히 추가되었다. ??탈합치??에 대한 저자 스스로의 밀도 있는 해설이자 나아가 탈합치 개념의 정치적 확장을 다룬 이 글은 본서의 해제이자 유용한 보충 자료가 되어줄 것이다.

리뷰/한줄평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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