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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우리는 모두 질병 보유자? 시빌과 스트럴드브러그 추상에서 구체로 잠정적 환자 상태 1장 질병의 역사 야누스의 얼굴 죄와 벌 의도된 해석 2장 질병의 사회문화사 그녀에게 생긴 일 새로운 세계 윙 비들봄의 손 법의 개입과 개인의 선택 3장 개인적인 몸 직소퍼즐 같은 몸 어머니, 한 여자 침묵의 세계 4장 사회적인 몸 도시를 폐쇄하라 말, 말, 말 맹인을 이끄는 맹인 5장 질병의 아이러니 콜레라와 상사병 노년의 법칙 6장 인식적 차원 아브라카다브라 날건 말건?! 7장 정상과 비정상 뫼비우스의 띠 불신과 맹신 인명 설명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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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도 영원히 사는 스트럴드브러그가 나온다. 그런데 영원히 죽지 않는 스트럴드브러그를 언제든지 만나 볼 수 있는 럭낵의 사람들은 정작 삶에 대한 집착이 그렇게 강하지 않다. 스트럴드브러그는 젊지 않았고 건강하지 않았던 것이다. 늙음과 쇠약함이 가져오는 불편과 영원한 생명을 모두 가지는 그들은 죽지 않음으로 인하여 생기게 되는 절망 속에 놓일 뿐이다. 과거에는 근력 감소가 정상적인 노화 현상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이를 질병의 일종으로 보고 병명을 붙여 치료 대상으로 간주한다. 질병은 시대마다 탄생하고 유행하는 것이다.
---「들어가며_시빌과 스트럴드브러그」중에서 프리다는 평생 여러 번의 수술과 유산을 경험했고 거의 언제나 고통 속에 있었다. 고통이 삶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의지가 되었다 해서 그녀가 고통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마도 몸을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만성적인 고통이 오히려 몸을 끊임없이 자각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니 아픈 몸으로 살아가기 위해 지속적으로 자기 자신과 그리고 외부 세계와도 투쟁해야 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몸과 의식, 자아 간의 관계와 거리를 조절하고 재설정하면서 닥쳤을 좌절감은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3장 개인적인 몸, 직소퍼즐 같은 몸」중에서 《페스트》는 페스트라는 병 자체보다 병이 어떤 식으로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변화시키는지에 관한 것이다. 카뮈가 그리는 20세기의 페스트는 병의 추상성만큼이나 신앙심을 부추긴다. 종교는 이 불행을 겪어 마땅할 위치에 올려놓고, 오만한 자들과 눈먼 자들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는 신의 재앙이라고 웅변한다. 종교는 페스트를 더 이상 추상이 아니라 “여러분을 향상시키고, 여러분에게 길을 제시하는” 진리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도시의 후면에서는 박하 정제가 전염병의 예방에 좋다는 말 때문에 동이 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박하 정제를 열심히 빨아 먹는 것이 기도보다 더 효과가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4장 사회적인 몸, 말, 말, 말」중에서 이처럼 병원 치료로도 아프기 이전의 몸으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완치’의 개념은 일상으로 복귀가 가능해지는 것이지 아프기 이전과 똑같은 상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릴 때 폐결핵을 앓고 완치가 되었어도 폐는 상당한 손상을 입는다. 나이가 들어 폐에 이상이 생기는 것은 그러한 상흔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몸은 나의 의식을 건드리면서 어떤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하지만, 증상을 불가피하게 내 몸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가 따르는 것이다. “날건 말건!”의 ‘느낌표’로 우리 몸을 다독이면서 삶을 지속시켜가야 하는 것이다. ---「6장 인식적 차원, 날건 말건?!」중에서 속 쓰림 대신 ‘위 식도 역류’로, 수줍음 대신에 ‘사회불안장애’로 병명이 재정립되는 순간, 증상은 의학 분야로 넘겨지면서 치료를 요하는 질병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병으로 의식하지 못했던 과거를 의학기술의 수준이 낮았던 탓으로 돌린다. 이제 광고는 당당하게 “생리 전 증후군은 질병입니다”라고 말한다. 내려앉아 있던 침묵이 걷히면서 불투명했던 증상은 속 시원한 질병으로 규정된다. 물론 특정 병명이 있다는 것은 치료 가능한 약이 있다거나 적어도 시도해볼 만한 의료처치방법이 있다는 말이다. 이제 이름을 얻은 질병은 더 이상 예전의 불 특정한 증상으로 퇴화할 수 없고, 그 자체가 진리가 된다. 그리고 전복되지 않는 한 진리는 지속되는 권위와 명성을 걸치면서 신화로 남는다. ---「7장 정상과 비정상, 뫼비우스의 띠」중에서 |
시대마다 탄생하고 유행해온 질병의 역사
병증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치부 ‘건강’의 기준이 시대에 따라 계속 달라지는 것처럼, ‘질병’의 기준 또한 달라진다. “난시와 근시의 결점이 농경사회나 목축사회에서는 정상일지라도 항해사나 조종사에게는 비정상이다”라는 캉길렘의 말처럼 같은 증상이라도 시대의 필요에 따라 질병으로 분류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질병은 그 자체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인간이 이름을 부여하고 특질을 규명한 역사만을 갖는다. 이에 이 책은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로부터 우리나라 현대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학작품들을 들어 인간이 질병에 부여한 역사를 좇는다. 소포클레스의 서사시 《오이디푸스 왕》에 등장하는 질병은 윤리적인 과오에 대한 징벌이었다. 샬럿 브론테의 소설 《빌레트》에 등장하는 독신녀들은 처녀도 가부장제의 현모양처도 아니라는 이유로 질병을 부여받아 ‘불능’한 상태로 묘사된다. 《댈러웨이 부인》의 셉티머스는 신경쇠약으로 인해 낙오자로 분류되어 사회적으로 숨겨지는 ‘요양원행’을 지시받는다. 저자는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 셔우드 앤더슨의 《와인즈버그, 오하이오》에서 질병이 저주, 비정상적인 상태, 사회적으로 배척받아야 할 존재로 그려지는 것을 차례로 보여준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와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에 등장하는 전염병은 결코 개인의 문제로 국한할 수 없는, 개인의 비정상성을 넘어선 모두의 삶이 된다. 병의 이름이 문제가 아닌 그로 인해 삶이 파괴되는 양상 자체가 질병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병증은 인간의 치부 또한 여실히 드러낸다.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는 콜레라와도 같은 병증의 상사병을 앓는 청년이 주인공이다. 청년은 노화의 온 과정에도 굴하지 않고 일생에 걸쳐 자신의 사랑, 어쩌면 사랑에 대한 집념을 고수하며, 결국 콜레라를 빌미로 해서라도 일생의 집념을 굽히지 않는다. 이처럼 집념과도 같은 그의 사랑은 콜레라와 다름없이 위태롭고 무모하다. 이외에도 이 책은 치명적인 교통사고로 인해 평생 죽음을 생각할 만큼의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던 불운의 작가 프리다 칼로와 그의 예술세계를 조명한다. 평생 벗어날 수 없으므로 익숙해지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는 일상의 고통, 그 고통을 고도의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프리다 칼로에게 있어 질병은 곧 삶 그 자체였다. 의학기술과 대중매체의 선동에 휘둘려 타인이 강요하는 건강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질병은 인간에 대한 신의 징벌이기도 했고, 사회에 불필요한 인간을 추방하는 구실이기도 했다. 원인 모를 떼죽음도, 속 쓰림도, 수줍음 많이 타는 사람도, 노화의 증상들도, 모두 의사들이 ‘진단’하기 전까지 인간의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 마치 그 유명한 김춘수의 ‘꽃’에서처럼 페스트로, 위 식도 역류로, 사회 불안장애로, 류머티즘, 알츠하이머, 동맥경화와 같은 각각의 병명으로 이름 붙여지는 그 순간 질병이 탄생하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의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병명이 정해졌기 때문에 질병이 삶에서 제거되어야 할 것으로 배척되는 것이다. 질병의 명명은 일상을 의학기술의 기준에 맞추어 비정상으로 만든다. 그때부터 우리의 삶은 더 악화될지 모른다는 공포에 빠지는 것이다. 이 위험에 대한 공포는 대중매체에 의해 확산되고 보험, 영양제, 헬스클럽, 건강식품 같은 자본주의의 굴레를 키워나간다. 이에 저자는 내 몸과 내 병증에 대한 진단이 의학기술과 대중매체의 신화가 아닌 오로지 나의 결정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의학기술의 틀이나 의사의 진단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내 고통에 관여하여 질병으로 나타나는 내 고유의 삶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의학기술과 대중매체가 강요하는 건강에 집착하다 보면 우리는 모두 질병 보유자가 된다. ‘내’가 느끼는 고통, ‘내’가 골라내는 비일상성을 생각할 줄 알아야만, 질병이라는 추상성의 세계가 조성하는 위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한번 읽으면 결코 배신하지 않는 반려인문학 은행나무출판사 〈배반인문학〉 시리즈 출간! 인문학의 효용은 궁극적으로 나에 대한 관심, 나다움에 대한 발견에 존재한다. 또한 인문학은 스스로 성숙한 삶을 살아나가는 데 있어 근본의 힘을 제공한다. 〈배반인문학〉 시리즈는 이처럼 ‘나’를 향한 탐구, 지금 나에게 필요한 질문과 그것을 둘러싼 사유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지금 나는 무엇을 보고, 어디에 서 있으며,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현대철학과 사회의 화두인 ‘몸’을 매개로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하는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필진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키워드를 선정해, 일상 속 인문학적 사유를 쉽고 명료하게 펼쳐낸다.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배반인문학〉의 다채로운 사유의 항해에 몸을 실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