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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오늘의 한국 사회, 공동체 논의의 재구성을 위하여
1부 공동체의 계보학 1장 우리 사회에 ‘사회’가 있는가? ·김재인 ? 서구 ‘사회’ 관념의 국내 수용 과정 분석 2장 동아시아 전통에서의 공동체론 ·문석윤 ? 맹자(孟子)의 양묵(楊墨) 비판과 인륜공동체론(人倫共同體論) 2부 갈등에서 분열로, 분노에서 혐오로 3장 젠더 갈등과 반페미니즘의 문법 ·김보명 4장 세대 갈등에서 세대 게임으로 ·김종수 ? 21세기 한국 세대 논쟁의 특징 5장 도시쇠퇴 이데올로기와 도시재생 ·김동완 ?재생을 넘어 전환으로 3부 지구화 시대, 환대사회의 딜레마 6장 이주사회에서의 환대의 권리 ·서윤호 7장 우리 안의 인종주의: 혼혈, 잡종, 튀기, 다문화 ·정혜실 8장 해외여행의 시대, 세계시민 되기의 딜레마 ·박정원 ?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를 중심으로 참고문헌 필자 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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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보이는 갈등의 양상은 유례없을 정도이다. 갈등이 없는 사회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사안별로 심각한 대립과 분열의 양상을 보이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갈등을 들여다보면, 진영마다 서로 생각하는 ‘사회’의 모습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서구인이 생각하는 society, 즉 사회의 상과 비교했을 때 그 차이가 더 두드러진다. 요컨대 서구에는 어느 정도 합의된 ‘사회’의 상이 있는 반면 우리에겐 그런 게 없어 보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핵심 원인은 우리가 ‘사회’라는 말을 서구에서 수입했지만 그 내용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 이 글은 일본을 통해 수입된 개념이 어떻게 우리에게 수용되었는지를 역사적 과정을 따라가며 검토함으로써, 이런 의문에 답해 보려 했다. 나아가 이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논의의 출발선을 마련해 보려 했다.
--- p.22 성평등 (채용) 정책의 (불)공정성에 대한 문제제기, 남성 피해자 서사와 역차별 주장, 그리고 유사-페미니즘으로 등장한 ‘젠더 이퀄리즘’ 주장 등은 반페미니즘(antifeminism)의 문법을 보여준다. 반페미니즘 담론은 탈맥락화된 공정성 주장과 만나거나 (양)성에 대한 본질주의적 접근을 재활용한다. 우리 시대의 ‘젠더 갈등’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삶의 불안과 경쟁을 배경으로 하여 등장하지만 단순히 ‘헬조선’과 ‘삼포세대’의 부산물로만 취급될 수는 없다. ‘젠더 갈등’은 변화하는 젠더 질서가 한국 사회의 계층적·세대적 불평등의 중층적 구조와 맞물리면서 일어나는 현상이자 이러한 중층적 불평등 구조 속에서 나타나는 사회 재생산의 위기에 대한 반응과 대응으로 독해될 수 있다. --- p.94 자신이 본래 속해 있던 사회가 아닌 새로운 낯선 사회에 들어서는 자는 환대와 관련하여 어떤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 남의 집에 들어서는 자는 그냥 단순한 객 또는 손님으로서 집주인이 대접하는 대로 그저 아무 말 없이 주인의 대접을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환대’의 문제와 관련하여 윤리적 의무의 관점에서만 타자에 대한 환대를 다루어왔다. 법적 권리의 관점에서 환대의 문제를 바라볼 가능성은 없는가? 급속하게 ‘이주사회’로 변한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이들 이주자들을 우리 사회의 새로운 구성원으로서 인정하고 흔쾌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환대의 문제는 ‘성원권’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 속에 놓여 있다. 한 사회에서 구성원으로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권리를 가질 권리’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권’의 기초를 박탈당하는 것과 다름없다. 인정받아야 할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되는 것은 인정투쟁을 불러일으킨다. 이 글에서는 이주사회 속에서 환대의 문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볼 것이다. 타자의 윤리를 넘어선 타자의 권리를 우리는 어디까지 논의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이주사회로 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민주적 주권의 결정에서 처음부터 배제당한 자들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 p.194 |
―왜 다시 공동체 담론인가?
‘공동체’라는 친숙하면서도 막상 정의하기 힘든 이 용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사고해야 할까? 근본적인 문제는 공동체에 대한 이론적 성찰과 실천적 고민이 멈춰 선 데에 있다. 이제 더 이상 공동체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공동체는 우리에게 일종의 ‘비어 있는 기표(記標)’이자 공허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비판과 회의적 태도를 넘어 불가능한 공동체, 즉, 공동체의 불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시점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동체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인가? 이 책의 저자들은 이와 같은 질문에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 장-뤽 낭시(Jean-Luc Nancy)는 현재 우리가 당면한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논의에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그는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진행된 공동체론(論)의 몰락을 목도하는 가운데 이를 폐기하는 것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이론적 고찰을 시도한다. 낭시는 공동체 안에는 구성원들 사이의 내밀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동질성이 존재한다는 오래된 전제는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친밀성과 우애에 기반하여 무언가를 함께한다는 선행 조건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동체에 ‘공동(共同)’을 가정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그것을 과연 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낭시는 전통적 틀에서는 공동체라 부를 수 없는 상황에서 공동체에 관한 논의를 출발해야 한다고 밝힌다. 공동체의 불가능성이 바로 가능성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공동체는 동일성을 전제로 한 주체들이 공통된 목표를 위해 결합한 집단이 아니다. 오히려 낭시는 “자아들의 연합이 아니라 타인들의 공동체”라고 말하면서 공동체가 지닌 타자성을 강조한다. 낭시가 말하는 공동체는 지금까지의 공동체론에서는 실패한 공동체의 전형이다. 하지만 그는 이 ‘실패’를 공동체의 새로운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균일한 구성원들에 의해 통일된 목소리를 가진 집단에 대한 가정은 환상에 불과하며, 공동체는 타자들로 구성되고 타자로 열려 있는 공간이다. 차이가 인정되는 실패한 공동체가 바로 공동체의 모습이라 할 수 있고, 낭시는 이런 측면을 부각하기 위해 공동체에 ‘무위(無爲)’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타자들의 만남과 교섭을 통해 실패를 경험하는 공동체. 결국, 이러한 조건은 내부의 갈등과 대립에 대해 역동적 성찰이 펼쳐지는 공간으로의 가능성을 내포하게 된다. ―한국 사회의 공동체 담론, 무엇이고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현재 우리가 목도하는 한국 사회의 갈등과 분열의 양상은 우리가 상상하던 공동체의 개념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 그리고 그것에 가까이 다가갈 새로운 해결책이나 대안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은 역설적으로 다시 공동체를 논의해야 할 담론의 공간을 제공한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재의 공동체 없는 공동체적 상황을 응시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즉, 혐오와 분노, 갈등과 분열, 소외와 무관심의 구체적인 정체를 파악하고 그 원인을 탐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1부는 공동체의 개념과 역사를 탐구하기 위해 동서양의 중심에서 진행된 논의와 우리 사회로의 수용 과정 및 의의를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우리 사회에 ‘사회’가 있는가??서구 ‘사회’ 관념의 국내 수용 과정 분석」에서 김재인은 한국 사회의 갈등과 분열 양상을 파악하기 위한 첫 단계로 서구의 ‘사회’와 ‘개인’ 관념의 수용 과정을 역사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의미를 재탐구한다. 현재 한국 사회를 둘러싼 중요한 문제들은 ‘사회’라는 개념에 대한 상이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이에 대해 김재인은 서구 ‘사회’에 대한 동아시아 국가의 수용 과정을 고찰함으로써 현대 사회의 다양한 ‘사회’의 의미를 드러내고자 하며, 이를 통해 사람 간 관계 속에서 현대 사회의 의미를 파악하고 대안 공동체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문석윤의 「동아시아 전통에서의 공동체론?맹자(孟子)의 양묵(楊墨) 비판과 인륜공동체론(人倫共同體論)」은 맹자가 제시한 인간의 공동체적 성격, 각 인간이 가진 생명의 성장과 공동체의 상호 관계, 그리고 거기에서 제시된 규범적 내용을 오늘날의 맥락에서 새롭게 재고하고 해석한다. 이 작업을 통해 대안 공동체의 한 모델로서의 ‘새로운 인륜공동체’의 이념적 기초를 제안하고 있다. 맹자는 양주가 중국 고대의 개인주의적 입장을, 그리고 묵자의 경우 국가주의적 태도를 대변하고 있다고 이해한다. 즉, 가족과 국가 공동체를 인간 존재에 본질적인 것으로 보는 유가 사상의 입장에서 두 사상가의 문제점을 비판하였다. 맹자는 두 극단의 사상에 대해 인간 존재 혹은 개인 생명의 인륜적 특성이 그 사회적 지향성과 다양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완성되어 간다는 점에서 인륜공동체적 성격을 포착해 낸다. 이렇게 문석윤의 글은 맹자가 개인의 육체, 정서, 정신의 성장이 가족 및 사회적 관계에 이르기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관계와 성장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어 2부에서는 갈등과 분열의 드라마가 가로지르는 젠더, 세대 그리고 도시 개발의 이슈를 짚어본다. 김보명의 「젠더 갈등과 반페미니즘의 문법」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의 젠더 갈등과 반페미니즘 담론의 사례들을 살펴본다. 정치적 민주화, 경제적 위기와 더불어 시작된 젠더 질서의 변화는 전통적인 가부장제의 위기와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의 변화를 가져오면서 남성들의 불안과 분노를 낳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재편의 과정이 초래하는 사회 재생산의 위기는 여성들과 남성들 모두에게 새로운 젠더 역할과 생애 기획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김보명의 글은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젠더 갈등’을 청년 세대 여성들과 남성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시적이거나 과잉된 현상으로 취급하기보다, 역사적으로 누적되고 작동하는 다양한 차별과 불평등의 기제들이 가시화되고 도전받으며 수정되는 실천의 현장이자 과정으로 독해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김종수의 「세대 갈등에서 세대 게임으로?21세기 한국 세대 논쟁의 특징」은 ‘88만원 세대’ 담론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청년 세대의 일방적 착취 구조로 이해되는 88만원 세대론이 제기한 문제가 12년이 지난 현재에는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검토하고 있다. 또한, 21세기 세대 갈등의 정점을 알리는 ‘헬조선’ 담론의 등장 배경을 따지고, 기성 세대에 대한 적대감이 노년 세대에 대한 혐오로 진행된 과정을 추적하여 청년 세대가 봉착한 세대적 불안 의식을 파악한다. 그리고 2016년 대통령 탄핵 사건을 계기로 정치 세대화를 형성한 노년 세대의 사회적 조건을 들여다본다. 이와 함께 정치적 효용에 조종되는 세대 갈등의 메카니즘을 ‘세대 게임’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하는 논의를 통해 사회 분열과 혐오의 악순환을 끊을 가능성을 묻고 있다. 「도시쇠퇴 이데올로기와 도시재생: 재생을 넘어 전환으로」에서 김동완은 쇠퇴와 재생이라는 언어로 국가가 생산한 공간의 특성에 대한 징후적 독해를 시도한다. 산업 혹은 경제지리의 구조는 권력에 의해 전 국가적, 국가적, 지역적, 국지적으로 늘 변화한다. 이 과정에서 쇠퇴 진단이라는 이데올로기 특징을 공간 차원에서 해석하면서 도시재생 사업의 현재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 글은 쇠퇴 도시의 이데올로기적 효과가 만들어내는 도시재생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재생을 대체할 대안적 언어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이는 이제 도시재생을 넘어 도시전환이라는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시점에 도달하였음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가 고안해 온 도시의 여러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통해 재생이 아닌 전환이라는 틀에서 미래의 도시를 고민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3부에서는 세계화의 물결이 심화되는 가운데 다양한 주체의 만남과 교섭이 만들어내는 역동성의 빛과 그림자를 이론과 현실의 양쪽 측면에서 다룬다. 서윤호는 「이주사회에서의 환대의 권리」를 통해 이주사회 속에서 환대의 문제를 이론적으로 접근한다. 이 글은 탈경계 이주사회의 관점에서 다른 방식의 물음을 제기한다. ‘타자의 권리’로서 이주자의 관점에서 당당하게 주장하는 ‘환대의 권리’는 불가능한가? 상대방의 호의와 윤리에 기초를 둔 불완전한 권리가 아니라, 강한 주장이자 온전히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완전한 권리로서 환대를 다룰 수 있는가? 이 물음을 바탕으로 환대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된 ‘성원권’ 문제를 다룬다. 이어 칸트의 조건적 환대와 데리다의 무조건적 환대에 대한 논의를 통해 권리로서의 ‘환대’의 문제를 탐색하며, 인정 이론과의 관계 속에서 환대권의 재구성 가능성을 전망한다. 정혜실은 「우리 안의 인종주의: 혼혈, 잡종, 튀기, 다문화」에서 2019년 6월 25일 전북 익산시장에서 벌어졌던 다문화가정 자녀들에 대한 혐오 발언을 규탄하기 위해 모인 기자회견에 주목한다. 현장에서 이주여성들은 ‘혼혈, 잡종, 튀기, 다문화’라는 호명과 그 호명에 달라붙은 인식의 프레임이 어떻게 인종주의적으로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들을 규정해 왔고 차별해 왔는가에 대해 분노했다.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내린 순혈주의에 대한 고집은 순혈주의에 소속되지 못한 아이들과 여성들을 타자로 삼는 방식으로 재생산되어 차별로 이어지고 있다. 즉, 오늘날 ‘혼혈’은 비록 사회적 배제나 추방의 직접적인 원인은 되지 않지만, 민족이라는 테두리에 포섭되지 못한 채 또 다른 배제의 구조를 만들어낸다. 마지막으로 「해외여행의 시대, 세계시민 되기의 딜레마: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를 중심으로」에서 박정원은 미디어와 대중문화 속에 드러난 세계시민의 이상과 딜레마를 보여준다. 2017년에 시작된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전 세계인들과의 교류를 장려하고, 세계화 시대에 필요한 환대의 정신을 강조한다. 이 글은 그중에서도 유럽이나 미국 등 중심부 국가가 아닌 멕시코 방문객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멕시코 친구들은 지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리에게는 결핍된 여유 있는 삶의 태도로 영감을 주는 친근한 이웃으로 재현된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주로 서구 혹은 아시아 지역에 편중되었던 문화적 교류를 한국과 라틴아메리카, ‘남(南)-남(南)’으로 확대하며 인식과 경험의 폭을 확장시키고 있다. 반면, 이 프로그램에서는 과거와 달라진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민족적 긍지를 확인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민족적 측면이 강조된다. 이 과정에서 비록 주변부 사이의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서구라는 잣대가 무의식적으로 작동한다. 그 결과로 서구화, 근대화, 산업화의 정도에 따라 한국과 멕시코 사이에는 위계가 재설정된다. 즉, 이 프로그램은 한국과 멕시코가 서로에 대해 갖고 있었던 선입견을 깨기도 하지만 편견을 재생산하고 강화하기도 한다. 이렇게 이 글은 세계시민의 이상에 균열 지점을 드러내면서, 세계화 시대의 민족과 세계시민의 복잡한 관계와 갈등 양상을 드러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