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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비로소 ‘들뢰즈의 세기’가 왔다
ㆍ첫 번째 강의 들뢰즈 철학의 전반적인 개요와 특징 ㆍ두 번째 강의 들뢰즈 철학의 시기별 특징 ㆍ세 번째 강의 들뢰즈 철학과 실천의 문제 ㆍ네 번째 강의 질문과 답변으로 알아보는 들뢰즈 철학 나가는 글: 들뢰즈의 실천 존재론 들뢰즈 주요 서지 및 약자 기타 참고문헌 주요 개념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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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들뢰즈는 ‘욕망의 철학자’라고 소개되는데, 이는 아주 부적절한 요약입니다. 물론 들뢰즈가 욕망을 말하기는 하지만, 욕망의 철학과 들뢰즈는 필연적 관계가 아닙니다. 들뢰즈를 이해할 때 더 중요한 건 무의식입니다. 들뢰즈는 무의식의 철학자이고, 무의식 개념을 새로 쓰려고 했습니다. 특히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을 대신하려고 했던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게 맞습니다.
--- p.29 이에 반해 들뢰즈와 과타리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 무의식은 철저하게 의식의 여집합 전체를 가리킵니다. 정신이라는 바깥 경계를 특별하게 설정하지 않습니다. 이러면 무의식이 정신 영역을 넘어서서 몸과 우주 전체로까지 확장됩니다. 의식이란 우주 전체의 결과물입니다. 우주 전체가 빚어내는 어떤 효과에 해당합니다. 물론 정신이 없다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무의식은 정신적(psychic)이기보다도 더 나아가 물질적(material)이라는 겁니다. --- p.33~34 홈 파인 공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공간이에요. 우리는 파인 홈을 따라 살아간다는 게 14번째 편의 핵심 진단입니다. 따라서 『천 개의 고원』은 홈 파인 공간을 다시 매끈한 공간으로, 즉 어디로든 흘러갈 수 있고 빠져나갈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는 일을 중요한 실천적 과제로 제기합니다. 들뢰즈와 과타리의 정치 철학의 핵심은 공간의 문제입니다. 그럼 왜 굳이 홈 파인 공간이 아니라 매끈한 공간이어야 하느냐는 질문이 제기됩니다. 홈은 자기가 판 게 아니니까, 남들이 파 놓은 홈에 편입되는 방식입니다. 그 방식이 마음에 든다면 상관없어요. 그냥 살아가면 돼요. 기존 체제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면 아무 문제도 없는 거예요. 하지만 그게 만족스럽지 않으면 자기 식의 삶의 방식을 건설해야 하는데, 그때는 남들이 파 놓은 공간의 틀을 비켜 갈 수밖에 없습니다. --- p.37~38 들뢰즈는 역사와 생성을 구분하면서 역사를 비판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말하곤 합니다. “해봐야 결국 실패하게 되어 있어, 프랑스 혁명, 68혁명을 봐. 역사를 통틀어 볼 때 궁극적으로 성공한 실험은 없었어.” 역사를 말하면서 이런 맥락들을 강조하는 것은 사실 지금의 실천을 가로막고 좌절시키려는, 그래서 아무것도 실험하지 못하게 하려는 시도나 다름없습니다. 역사를 사용하는 아주 재수 없는 방식이죠. 들뢰즈는 차라리 생성을 강조합니다. 생성은 항상 지금의 실험과 실천, 도모를 살리는 방식으로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결과가 어떨지, 누가 미리 알겠습니까. --- p.71 ‘남성의 여성-생성’, ‘남성의 아이-생성’, ‘인간의 동물-생성’ 같은 것들은 많은데 ‘여성의 남성-생성’, ‘아이의 남성-생성’, ‘동물의 인간-생성’ 같은 건 왜 없느냐는 거죠. 이 물음에 대한 답으로 등장하는 것이 ‘소수자’ 또는 ‘소수’입니다. 아무 생성이나 다 가능한 게 아닙니다. 오직 소수-생성만이 있을 뿐입니다. ‘다수’와 ‘소수’의 대립은 뿌리부터 정치적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 p.78 미래는 항상 열려 있습니다. 어떤 일이 어떤 형태로 확정될지 모르기 때문에, 한편으로 완전히 닫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완전히 열려 있는 것입니다. 우주의 존재 방식이 생성입니다. 생성은 끊임없이 차이가 생겨나는 과정입니다. 쩨쩨하게 생성을 인간 수준에서 보려 해서는 안 됩니다. 우주 전체가 어떤 원리에 따라서 작동하는지를 알고, 인간이 바라는 것과 그 작동이 부합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부합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더 부합할 수 있을지를 찾는 식으로 가야 합니다. --- p.1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