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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서문 공자 흰 마음과 검은 마음 (신정근) 맹자 선한 뜻을 이끄는 나의 큰몸 (장원태) 순자 마음은 임금 (성태용) 양웅 선악이 뒤섞인 마음 바탕 (오이환) 장재 하나하나의 의식과 하나된 의식 (이현선) 주희 본성과 감성의 주재자 (손영식) 왕수인 주체성의 철학 (김수중) 나흠순 지각, 사유, 욕망 (조남호) 황종희 마음의 자연화와 자연의 주재화 (이규성) 양수명 직각과 정감에서 나오는 즐거움 (강중기) 이황 체용적 전일성으로서의 마음 (이광호) 이이 마음은 기 (정원재) 김창협 본마음을 향한 순례 (문석윤) 정약용 기호, 저울, 그리고 덕의 실천 (김영우) 최한기 신기의 마음과 추측의 인식 (금장태)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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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는 부동심을 설명하면서 무사의 용기를 예로 든다. 맹자는 적이 많든 적든 개의치 않고 맞서며 반드시 이기지 못할지라도 두려움을 없앨 수 있었던 사람의 용기를 제시하고 이에 대해 기를 지켰다守氣고 평가한다. 뒤이어 이를 증자曾子가 말한 용기와 다시 비교한다. 증자의 용기는 두려움이 없다는 점에서 무사의 용기와 유사하지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 증자 역시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말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단서를 붙인다. 스스로 돌아보았을 때 자신이 올바른 경우에만 두려움이 없을 수 있다. 만일 스스로 돌아보아 자신이 올바르지 않다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므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맹자는 호연지기를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규정한다. 호연지기는 올바름直으로 길러나가는 것이며, 도道 그리고 의義와 짝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천을 하는 과정에서 흡족하지 않다면, 즉 스스로 돌아보아 부끄러움이 있다면 호연지기는 자라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호연지기란 용기에 가까운 것이지만 이 용기는 의로움 혹은 올바름과 결합한 용기다. 따라서 맹목적인 용기나 방향성 없는 내적 평형이 아니라 오히려 오늘날 말하는 기개氣槪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호연지기를 논하면서 맹자가 강조한 바는 기 자체라고 하기는 어렵다. 맹자에게 기란 몸을 채우고 있으면서 뜻/지향을 따르는 것이므로 호연지기는 의로움 혹은 올바름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의 뜻/지향을 따르면서 성장해나가는 기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p.38
수치심이란 분명 의로움에 해당하는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 즉 수오지심羞惡之心의 일종이므로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수치심이 거의 없다면 사실 인간 중에서도 거의 바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맹자』 「진심장구상」 7). 맹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이를 수치로 여길 수 있다면 오히려 수치스러울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즉 이에 대해 부끄러워한다면 이를 도덕적 성장의 계기로 삼아 부끄러워할 일이 없을 정도로 자신을 성장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맹자는 「공손추장구」 7과 「고자장구하」 16에서도 이와 유사한 내용을 말한 바 있다. 「공손추장구」 7에서는부끄러움을 매개로 인仁을 실천하는 곳으로 나아가는 일에 대해 언급하고 있고, 「고자장구하」 16에서는 자신은 상대방을 좋게 여기지 않는 것을 통해서도 가르친다고 말하여 상대방을 내치는 행위를 통해 상대방이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줄 수 있다고 말한다. 스스로 느끼는 수치심과 타인의 거절에서 오는 수치심 모두 행위자가 더 나은 쪽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p.49 장재의 철학은 세계의 모든 존재뿐만 아니라 인간의 의식적 활동도 모두 기에 의거하고 있다는 기氣일원론이다. 그에게서 기는 세계를 구성하는 유일한 본질이면서 동시에 수많은 사물의 현상적 양상을 산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상태의 차이에 따라 ‘태허太虛’와 ‘객형客形’의 두 차원으로 나타나며, 이는 다시 본체와 현상으로 논의된다. 인간의 의식 영역을 나타내는 ‘마음心’ 역시 ‘기’ 개념을 통해 설명된다. 일반적으로 ‘마음’은 객관 대상을 감각하고 인식함으로써 감정과 행위를 일으키는 인간의 주관적 의식 영역을 가리킨다. ---p.110 장재는 이렇게 외부 대상을 원천으로 삼아 형성되는 ‘지각’의 의식이 ‘마음’의 본래적 의식일 수 없다고 본다. 이는 무엇보다 외부 대상이 기의 일시적·우연적 결합인 객형이므로, 그로 인해 형성된 의식 역시 일시적·우연적 의식客感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식은 모이고 흩어짐을 반복하는 대상(객형)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결같은 의식이라고 할 수 없다. 또 외부 대상에 의해 형성된 의식이라는 점은 주관과 객관이 분리된 마음, 즉 ‘외부가 있는 마음有外之心’이다. 그것은 ‘나我’와 외물을 구별하는 개체의식 혹은 자의식에 머무는 것이며, 기 본체 즉 세계 전체와 합일되지 못한 유한한 의식일 뿐이다. ---p.123 우리가 마땅히 따라야 할 윤리, 혹은 도덕 법칙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치를 중시하는 주자학에서는 객관적인 도덕의 이치가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다고 본다. 이를 설명하기 위한 근거를 주희는 『대학』의 8조목에서 끌어왔다. 즉 수신제가와 치국평천하修齊治平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뜻을 진실되게 하여 마음을 바로 정하는 성의정심誠意正心이 먼저 성립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성의정심이 성립하려면 먼저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격물치지格物致知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효도의 이치를 제대로 알면, 효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절실해지며 이에 우리 마음 자세가 바로 된다는 것이다. 결국 주자학적 태도에서는 지식을 중시하는 주지주의적 입장을 택하게 된다. ---p.176 그러나 양명학이나 불교가 지적한 대로 나흠순의 주자학은 이성적인 판단에 머물러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하는 것도 그 시대적 가치 판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것은 곧 그 시대적 한계를 넘어설 수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시대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할 때, 일상적인 속된 철학에 빠지게 된다. 나흠순은 지각의 기능을 본성이나 본체를 알 수 있는 인식적인 능력에만 한정한다. 지각이 가지는 가치적인 기능을 인정하지 않는 다. 왜냐하면 지각은 주관이라는 자신의 자리를 망각하고 자기가 객관적 진리임을 주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각은 감각적인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다. 이러한 지각에 대한 불신은 뒤에 조선에서 지智와 지각知覺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p.213 “본성이 가깝다는 것은 사람의 심리가 원래 비슷하며, 이 비슷한 심리가 바로 선善이고, 맹자가 말하는 인간의 ‘마음의 동질성心之所同然者’이다. 본래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다른 사람과 같으나, 단지 후래의 습관으로 인해 점차 한 쪽으로 치우침으로써 비로소 어긋나고 혼란스러워져서 그 바름을 얻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가장 좋은 것은 시종 그 본래 모습을 잃지 않는 것이고, 가장 염려스런 일은 습관이 되는 것이다.” ---p.273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기질의 제약에 놓이며, 맑고 흐리고 순수하고 잡된 기질의 차이가 인간의 차이를 결정한다. 이는 본연의 리가, 기를 탄 리가 됨으로써 리 본래의 완전성이 왜곡되듯이, 본연지성은 기질이라는 그릇에 담김으로써 본래의 성선을 상실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기질이 완전히 맑고 순수한 사람은 오직 성인聖人밖에 없으므로, 대부분의 인간은 자기 안에 본연지성으로서 리가 깃들어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리를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게 된다. 이는 이이가 애초부터 인간의 현실을 극히 비관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거꾸로 이 점에서 기질은 인간이 안고 가야 할 현실로서 주어진다고 할 수 있다. 주희와 이황이 리인 본성에서 출발한다면, 이이는 기질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p.317 사람의 마음과 의지는 언제나 두 가지로 나뉘어 다투고 있다. 선의 실천이란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두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의지와 마음을 맹렬하게 성찰하고 불선으로 향하려는 마음을 극복해야만 얻을 수 있다. 선의 실천은 자기가 선택한 것이며 힘겨운 노력의 산물이다. 반면 악행은 자신의 선택이기는 하지만 어떤 어려움이나 그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인심에 비하 여 미약한 상태로 있는 도심을 마음의 권형, 즉 자주지권이 선택하고 굳은 의지로 그에 따른 실천을 하는 것에 선악이 달려 있는 것이다. ---p.385 최한기에게서 기는 스스로 활동하고 무한한 작용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가 신기다. 따라서 우주와 만물과 인간이 동일한 기의 현상이라면 신기도 근원에서는 동일하다. 그는 “하늘과 사람의 신기는 이미 내가 태어나는 처음부터 서로 통하고 서로 이어져 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어긋나지 않는다. 오직 사람의 ‘지각’은 이미 스스로 얻은 것이라, 그 보는 바에 따라 주장함이 같지 않고, 그 주장하는 바에 따라 소통하는 것이 또한 다르다”(『신기통』「체통: 通有得失」)고 하여, ‘천지의 신기’와 ‘형체의 신기’가 근원에서는 동일하지만, 그 작용의 양상과 결과에서는 차이를 드러내는 것임을 주목하였다. 특히 하늘과 사람의 신기는 형질이나 형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선천적 근원에서는 하나의 기로 서로 소통하고 연결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와 대조적으로 인간의 신기는 ‘지각’이라는 후천적 성취에서 각각 서로 달라짐을 제시하였다. 곧 인간의 신기에서 형질이나 형체는 그 드러난 차이에도 불구하고 근원이 같은 것이라면, 지각은 같은 신기가 작용한 것이지만 획득된 결과로서의 내용은 서로 다른 것임을 밝히고 있다. ---p.4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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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에서 최한기까지, 마음의 본성을 탐구하는 철학의 모험
『마음과 철학-유학편』은 공자에서 최한기까지 중국과 한국의 유학자들이 인간의 마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설명한 책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15명의 동양철학 연구자들이 각 장의 집필을 맡았다. 이 책은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에서 기획한 『마음과 철학』 총서 중 한 권이다. 이 총서는 3년여의 기획기간을 거친 것으로 작년의 서양편(상하)의 발간에 이어 올해 유학편과 불교편을 발간하면서 총 4권을 완간하였다. ‘마음’을 주제로 동서양 대표적 철학자들의 사유를 우리 철학계의 최전선에 선 한국 철학자들의 시선으로 읽어내고 있다.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한 때 이 책 아무 곳이나 펼쳐 읽어도 좋겠다. 그 시간은 철학을 하는 시간이고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 총서의 무게만큼 흔들리는 마음을 든든하게 잡아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어려운 유학 용어를 옆에 실어서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각 장 끝에 수록된 「더 읽을거리」에는 해당 사상가에 관한 참고도서를 수록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쉽고도 어려운 일 ‘마음 알기’ “더 좋은 삶을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고민이 철학의 중요한 문제라면, 이것은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고 어떠한 삶이 방식을 택할 것인가란 우리의 일상생활과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철학의 문제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삶 자체에 내재되어 있듯이, 내 안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바로 ‘나’의 삶을 이해하는 것과 연결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마음’이란 무엇인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의 해답을 찾는 유학자들의 철학적 사유를 담아내고 있다. 사실 마음에 관한 유학의 사유는 어떻게 ‘나’는 정말로 선하게 행동할 수 있는지, ‘나’들이 모여 사는 좋은 세상에 가 닿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도덕을 지향하는 학문인 유학에서의 마음이론은 심리적 상태에 대한 단순한 설명이라기보다는, 도덕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으로서의 ‘나’의 성격과 영역, 역할에 대한 규정의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모두 ‘착하게 살자’ 유학자들의 목표는 한 마디로 ‘착하게 살자’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칠 수 없어 행하는 것’은 외부 대상 때문이 아니라 다만 자신의 본성이자 세계 전체의 본성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일 뿐이다. 이처럼 어떠한 대상 지향 작용도 없는 성인의 행위 방식을 장재는 ‘부득이不得已’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세계의 운행, 만물 생성 과정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감응 과정을 나타낸다. 예컨대 계절의 변화는 세계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부득이’한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이다. 따라서 성인의 ‘부득이’ 한 행위는, 도덕적 선악으로 판단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즉 아무리 선한 일일지라도 의도를 가진 것이라면 본성에 근거한 성인의 행위일 수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림없이 우리는 끊임없이 외부와 영향을 주고받는다. 외부의 힘은 개인의 힘을 넘어서는 것처럼 보인다. 현실 권력의 힘, 주변의 상황 등은 언제나 각 개인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맹자는 여러 곳에서 어떤 사람들은 외부의 힘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현명한 선비는 자신의 도를 즐기며 다른 사람의 권세를 잊으며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의로움을 잃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처럼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외부의 조건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간다는 사실 때문에 이들은 마치 강한 용기를 가지고 적과 맞서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맹자는 이러한 태도를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것, 즉 부동심不動心이라는 말로 요약한다. 텅 비어 있어 꽉찬 마음은 강력한 통제력을 본래적으로 지니고 있다. 이상적인 상태인 ‘텅 비고 전일하며 고요함’에 도달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이미 마음이 지닌 힘이다. 텅 비고 전일하며 고요한 상태에 도달한 마음이 지니는 진정한 특성은, 그 통제력 자체는 아닌 셈이다. 단지 그 상태에 있음으로써, 욕망의 지배, 또는 편견의 가리움을 뿌리칠 수 있는 힘이 온전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상태에 있으면 욕망과 지적인 작용은 공정하게 다루어지고, 제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텅 비고 전일하며 고요함에 도달한 마음의 진정한 특성은 그것에 의해 보장되는 ‘앎’, 완전한 앎과 완전한 통제력이다. 마음을 안다는 것은 세상살이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계에 대응하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결국 마음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변주되는 유동적인 존재일 수도 있다. 이 책은 이렇게 가깝고도 먼,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고, 인정하고, 닦아내고, 쓰다듬었던 유학자들의 마음이론을 오롯이 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