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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서문 초기불교 심리적 세계의 이해 (임승택) 초기불교 심리학 마음에 대한 일인칭적 접근 (김재성) 상키야-요가 마음과 물질의 이중주 (정승석) 세친 체화된 마음 (박창환) 용수 마음은 실재하지 않는다 (김성철) 유식학 심층적인 마음의 발견 (안성두) 디그나가 궁극적 실재의 이해 (마크 시더리츠) 중국 불교 마음, 인도에서 중국으로 (조은수) 천태지의 한순간의 마음과 원돈지관 (김정희) 이통현 속성 없는 마음, 의지하지 않는 마음 (고승학) 대혜 알려는 마음을 해체하다 (변희욱) 원효 일심의 철학과 화쟁 (최유진) 지눌 반야에서 절대지로 (길희성) 기화 마음의 본질로서의 반야 (박해당) 경허 깨달음에 이르는 역정 (한형조) 만해 선의 마음 성찰과 자발성 (박재현) 성철 선불교의 일대사, 마음의 문제와 돈오돈수 (윤원철)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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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연료’, ‘삶과 죽음’ 역시 원래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의존하여 발생한 개념들이다. ‘연료可燃’가 없으면 ‘불燃’이 없고 ‘불’이 없으면 ‘연료’도 없다. 장작이나 성냥개비, 액화가스와 같은 연료가 없으면 불이 존재할 수 없다. 바람에 날려서 허공을 떠가는 불꽃이라고 하더라도, 순수하게 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숯과 같이 붉게 달궈진 ‘탄소 알갱이’들이 연료 역할을 한다. 그것이 더 산화되면 무색투명한 일산화탄소나 이산화탄소가 되어 불꽃의 주변으로 밀려난다. 아무리 세밀하게 분석해보아도 ‘연료가 없으면 불이 없다.’ 이와 반대로 ‘불이 없으면 연료가 없다.’ 헛간에 쌓아놓은 장작이라고 하더라도 불이 붙기 전에는 연료가 아니다. 장작은 나중에 울타리용 말뚝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한옥의 서까래가 될 수도 있고, 목침으로 변신할 수도 있다. 원인 때문에 결과가 발생하지만, 거꾸로 결과가 발생해야 원인의 정체가 확정되는 법이다. 그것이 헛간의 장작이든 라이터 속의 액화가스든 그 무엇이든, 불이 붙지 않으면 연료라고 이름 붙일 수 없다. 또, 삶이 없으면 죽음이 없고 죽음이 없으면 삶이 없다. 죽음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살아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기에 ‘죽음이 없으면 삶이 없고’, 삶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죽음을 떠올릴 수 없기에 ‘삶이 없으면 죽음이 없다.’ 따라서 우리의 삶도 원래는 삶이랄 것도 없고, 죽음 그 자체도 원래 있는 것이 아니다. 선객禪客들이 “삶도 없고 죽음도 없다”고 포효하는 이유가 이에 있다. ---pp.129-130
우리가 체험하는 모든 것, 지금 이 순간에 우리에게 확인되는 모든 것 가운데 ‘물질’과 무관하게 ‘마음’으로만 이루어진 것도 없고 ‘마음’과 무관하게 ‘물질’로만 존재하는 것도 없다. 다시 말해 순수하게 객관적인 사건이나 순수하게 주관적인 현상은 결코 체험한 적도 없고 체험할 수도 없다. 내 앞에 놓인 꽃은 그에 대한 인식을 남과 공유할 수 있는 ‘객관 대상’이지만, 그것을 보고서 나에게 떠오른 느낌과 생각 등은 ‘주관적 체험’이며, 그런 주관적 체험에 수반하여 일어나는 뇌신경의 물리화학적 변화는 객관적 사건이다. 또 내가 백일몽을 꾸면서 어제 감상했던 베토벤의 음악을 회상할 때, 그런 생각과 느낌은 남에게 포착되지 않는 ‘주관적 체험’이지만, 그에 수반하여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화학적 변화는 ‘객관적인 사건’이다. 순수하게 객관적 물질인 줄 알았던 ‘꽃’을 볼 때에도 주관적 체험이 일어나고, 순수하게 주관적 체험인 줄 알았던 ‘꽃에 대한 느낌’이나 ‘백일몽’에서도 뇌신경의 객관적 변화가 수반된다. 최근에 는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 장치로 뇌에서 일어나는 이런 변화를 역동적인 영상으로 기록하기도 한다. ---p.132 마음이 실재하는가? 일상 어법으로나 선문답에서나 “마음”이라고 묘사하지만, 마음이라는 단어가 지칭하는 대상은 실제로 있다고 확언할 수 없다. 혜가는 마음이라는 말로 존재의 불안을 표현했고, 달마는 마음이라는 말이 나타내는 대상의 비실체성을 자각하게 했다. 마음이 부처라고 하지만, 부처로 복원하는 핵심은 무엇인가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 없애기다. 있는 그대로 도이고 부처이기 때문이다. 조사선문에서는 부처나 중생이 따로 있지 않다. ---p.297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괴로움에서 벗어나서 행복과 자유를실현하는 것이다. 특히 그러한 자유와 행복을 나 혼자가 아니라 모두 함께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대승불교에서 추구하는 바이다. 불교의 근본적인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연기의 이론에 따르면 이 세상 모든 것은 상호의존적으로 이루어져 있고 원인과 조건에 의해 서 생겨난다. 우리의 괴로움도 원인과 조건이 있다.1괴로움을 없애서 행복과 자유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괴로움의 원인을 제거하면 된다. 그렇다면 괴로움의 원인은 무엇인가? 불교에서는 가장 큰 원인을 탐욕과 어리석음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어떻게 탐욕과 어리석음을 없앨 것인가가 가장 큰 문제이다. 그런데 이 탐욕과 어리석음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것은 결국 마음의 문제라는 것이 대승불교의 많은 학파의 주장이다. 그리하여 마음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되는 것이다. 원효도 마음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생각하였다. 마음의 깨달음을 얻어 일심一心의 근원에 돌아가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p.311 불교는 마음에 집중한다. 마음은 늘 다른 것에 점유되어 있고, 그리고 무상하게 이동한다. 자체의 내용을 갖지 않고, 걱정과 상념에 휘둘리며, 어디인지 모르게 흘러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닐까. 그 상념들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자기 것’이 아니다. 즉 자기에 의해 추동되지 않고, 늘 타자와 영향, 그로 인한 염려와 조바심으로 물들어 있기에 한순간도 ‘자기로부터自由’인 적이 없었다. 자신 속에서 일어나되 자기 것이 아닌, 이 기이하고 낯선 부조리, 이방의 느낌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인간은 자신의 감정과 의지, 상념과 충동으로부터 이를테면 ‘소외’되어 있다. 소외는 근대의 관념이 아니라, 인간 보편의 정황을 가리키고 있다. ---p.401 솔바람 사방에서 불어오고, 청산에 가을 달 밝다. 하늘은 물처럼 ‘하나’로 걸려 있다. 노란 꽃 푸른 대, 꾀꼬리 소리, 제비 지저귐. [자연은] 늘 위대한 작용大用을 모든 곳에서 드러낸다. 시정의 천자가 무어 대단하겠는가. 평지에 이는 파도, 구천[저승]에 새긴 옥도장일 뿐. 기이하다! 해골 안에 빛나는 눈이 있어, 수많은 불조佛祖가 늘 현전하고 있다. 초목과 와석瓦石이 이것이다. 화엄과 법화를 나는 늘 설하고 있는데, 행주좌와, 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일이 이것이다. 여기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다. ---p.409 만해가 생각한 자아의 완성은 외적 원리나 이념에 지배되거나 규율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원과 마음에 대한 통찰에 집중된다. 그는 자아의 완성이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을 계발하는 것이며, 이렇게 계발된 자아는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이러한 자아를 추구하는 것이 선의 본령이라고 봤다. 이렇게 종속되지 않는 자발성은 강렬한 주체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종교라는 외형적 규제조차 끝내 뿌리쳐야만 하는 강렬한 자의식이다. ---p.4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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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에서 성철까지-마음의 본성을 탐구하는 철학의 모험
『마음과 철학-불교편』은 붓다에서 현대의 성철 스님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불교사상가들의 ‘마음의 본성’에 대해 철학적·종교적 성찰을 다루고 있다. 초기불교에서부터 인도와 중국, 한국 불교까지 중요한 사상사적 역할을 수행했던 인물들과 우리의 실존적 상황에서 관심이 가는 사상가들을 선정하였으며, 특히 인도 불교에 관해서는 특정 사상가보다는 대표적인 학파에서 말하는 마음의 본성이 무엇인가를 아우르는 관점에서 접근하였다. 불교사상의 깊고 다채로운 전개 과정에서 대표적인 사상가들을 선정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여기서 다룬 학파와 인물들은 불교의 대표적인 사상사적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 『마음과 철학-불교편』은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에서 기획한 『마음과 철학』 총서 중 한 권이다. 이 총서는 3년여의 기획기간을 거친 것으로 작년의 서양편(상, 하)의 발간에 이어 올해 불교편과 유학편을 발간하면서 총 4권으로 완간되었다. 이 책에서는 ‘마음’을 주제로 대표적 철학자들의 사유를 우리 철학계의 최전선에 선 한국 철학자들의 시선으로 읽어내고 있다. 불교에서 마음의 문제는 가장 중요한 주제의 하나라고 보이며, 어떤 점에서는 거의 불교 전체를 포괄한다고 말해도 지장이 없을 정도로 핵심적인 문제이다. 도대체 ‘마음’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감각 능력으로 인식되는 세계는 과연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은 철학의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러한 마음의 문제를 파헤치는 불교의 관점을 다룬다. 알다가도 모를 ‘마음’은 내 몸 안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도무지 알 수 없는 형체 없는 것 그 무엇 같기도 하다. ‘불교’라는 인류의 심원에 뿌리내린 거대한 종교를 통해 ‘마음’을 알아보려 한 책이다. 과연 불교에서 바라본 마음은 어떤 세계일까? 그 번뇌의 장막을 불교에서는 어떻게 걷어내고 있을까? 이 책에 수록된 17편의 글은 불교에서 바라보는 마음이 가진 다양한 측면과 마음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임승택·김재성·박창환·김성철·안성두·시더리츠 교수의 글은 인도 불교에서의 마음을 주제로 다룬 것이며, 상키야 요가 철학에 관한 정승석 교수의 글은 힌두 철학학파의 기원이 붓다 이전으로 소급되며, 불교의 마음에 대한 이론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불교의 심성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포함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불교가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 전파되었을 때, 마음에 대한 이해도 인도 불교와는 다르게 전개된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는 동아시아와 우리나라에서의 불교 수용의 차이를 보여준다. 조은수·김정희·고승학·변희욱 교수의 글은 중국 불교에서 보는 마음의 문제를 다룬 것이고, 최유진·길희성·박해당·한형조·박재현·윤원철 교수의 글은 우리나라 불교사상에 나타난 마음의 문제를 다룬 것이다. 또한 동아시아 불교가 인도 불교의 사상사적 전개와 갈라서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특히 조은수 교수의 글을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 ‘불교’라는 거대하고 심원한 종교를 통해서 ‘마음’을 읽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인도 불교의 난해한 이론을 가능한 쉽게 풀어 설명하였지만 만약 어렵게 느껴진다면 중국과 한국 불교 부분을 먼저 읽는 것도 좋겠고, 인도와 중국을 이어주는 조은수 교수의 「마음, 인도에서 중국으로」에서 시작하는 방법도 좋겠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불교에서 바라보는 마음을 조망할 수 있도록 해주며, 책의 각 장들은 개별적인 사조와 관점을 서술하는 하나의 완결된 학술적인 글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불교신자나 관련 연구자가 아닌 이들이 읽기엔 다소 어려운 용어가 많다. 이 책에서는 가능한 용어설명을 많이 실으려 노력하였다. 또한 본문에 실은 용어설명 외에 주요 불교 용어의 좀더 자세한 의미와 연원은 본문 뒤에 따로 수록하였다. 각 장 끝에 「더 읽을거리」에는 해당 사상가에 관한 참고도서를 수록하였다. 마음이 모든 존재를 만든다 모든 존재는 마음에 의해 인식된 세계이다 마음은 항상 대상과 함께 일어난다. 즉, 순간에 생겨났다가 순간에 사라지며, 조건에 의존된 인식현상이다. 전 순간과 다음 순간은 틈이 없이 조건화되어 흘러가기 때문에 변화가 잘 감지되지 않을 뿐, 실제로 마음은 매우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즉 어떤 인식이 생겨날 때 그 인식은 반드시 대상에 의존해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인식이 어떻게 생겨나는가 하는 문제는 붓다의 교설 이후 불교철학의 중요한 주제가 되었지만 불교는 인식의 조건으로서 대상의 존재뿐 아니라 우리의 인식 능력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인식이란 기본적으로 대상에 의존해 있으며 동시에 그 대상의 인식도 생명체의 감각 능력에 의존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서양철학과 구분되는 불교적 사유방식의 강력한 특징일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만날 수 있을까? 불교는 외부 세계와 사물이 실재한다는 믿음을 비판한다. 마음은 끊임없는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찰나적으로 생겨났다가 소멸하는 것이다. 즉 무상하고 변화하는 세계의 모습을 항구적이고 지속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사실 우리의 욕망과 무지에 의해 투사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불교의 관점에서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란 실은 보이는 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과 무지의 베일에 가려 보는 대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있는 그대로의 세계, 즉 진여眞如의 세계를 어떻게 볼 수 있는가? 불교의 여러 학파에서는 한결같이 우리를 베일에 감싸는 ‘욕망’과 무지라는 ‘번뇌’가 여실지견을 장애하는 주범이라고 간주한다. 이러한 심리적 힘으로서의 번뇌를 제거했을 때 비로소 세계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고 본다. 모든 존재의 행복을 바라며, 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마음의 괴로움, 불편함, 불만족을 해결하는 것이 불교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짐승의 발자국이 코끼리 발자국 안에 포섭되듯이, 붓다의 가르침은 모두 네 가지 고귀한 진리인 서성제 안에 포섭된다고 한 것이 바로 불교의 견해다. 괴로움에는 몸의 병에 의한 것과 마음의 병에 의한 것이 있는데, 불교는 마음의 병에 의한 괴로움을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생로병사의 괴로움에 대해서 불교는 별다른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육체가 있는 존재들이라면 누구나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괴로움이기 때문이다. 육체의 죽음이 더는 괴로움이 되지 않는 상태에 도달한 것이며, 괴로움의 새로운 생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욕망, 분노, 무지와 관련된 네 가지 괴로움인데, 이 괴로움이 바로 ‘마음의 괴로움’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불교가 극복하려는 괴로움은 이 네 가지 괴로움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가운데 육체와 마음에 대한 집착이 바로 ‘괴로움’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괴로움을 치유하는 불교의 접근법은 자신의 마음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관찰해서 그 본질을 이해하고, 원인을 규명해서 해결해가는 자기 치유의 1인칭적인 접근법이다. 물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발견하기 어렵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붓다를 위시한 스승들에게서 지도받기 때문에 스승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그 점에서 열린 마음으로 공감적인 관계를 맺는 것도 중요한 자기 치유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스승, 지도자를 가까이하여 배우는 것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의 거의 전부라고 할 정도로 중요하다. 또한 불교에서 분노를 다루는 실천법은 인내와 자애심을 기르는 것이다. 분노는 자신과 남을 동시에 파괴한다. 또한 자기를 보호할 때, 남을 보호하는 것이며, 남을 보호할 때, 자기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자신을 보호하면서 남을 보호하는 것인가? 많은 마음챙김 수행을 통해서이다. 그러면 어떻게 남을 보호하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인가? 인내와 해치려는 마음이 없음과 ‘모든 존재의 행복을 바라는’ 자애와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연민의 마음을 통해서이다. 불교에서는 이 세상을 ‘고통의 바다’라고도 한다. 우리는 그 바다에 떠있는 일엽편주처럼 정처없이 흘러가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그 배에 가득 담긴 분노와 욕망과 미혹과 괴로움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다스리는 단단한 ‘노’ 하나를 마음에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