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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옮긴이의 글 1 김용수
옮긴이의 글 2 조남호
해제
일러두기

주자문집 26권 편지

26-1 사[조]승상에게 보내는 차자(1179년 2월)
26-2 왕추밀에게 보내는 차자(1179년 2월)
26-3 원시승에게 보내는 편지(1179년 5월)
26-4 조진숙에게 보내는 편지(1179년 가을)
26-5 양교수에게 보내는 편지(1179년 4월-1180년)
26-6 대단에게 보내는 편지(1180년 여름)
26-7 황보수에게 보내는 편지(1180년)
26-8 조사 왕사유에게 보내는 차자(1180년 6월)
26-9 제거 안도에게 보내는 차자(1179년 가을)
26-10 제거 안도에게 보내는 차자(1179년 가을)
26-11 제거 안도에게 보내는 차자(1179년 가을)
26-12 제거 안도에게 보내는 차자(1179년 겨울)
26-13 집정에게 보내는 차자(기해년 겨울, 1179년)
26-14 승상에게 보내는 차자(1180년 정월)
26-15 승상에게 보내는 별지(1180년 정월)
26-16 왕추밀사에게 보내는 차자(1180년 정월)
26-17 승상에게 보내는 차자(1180년 봄)
26-18 조진숙에게 보내는 편지(1180년 정월)
26-19 황교수에게 답하는 편지(1180년 여름)
26-20 강동의 진안무사에게 보내는 편지(1180년 6월)
26-21 진안무사에게 보내는 조목별 계획안 차자(1180년 가을)
26-22 진안무사에게 보내는 편지(1180년 10월)
26-23 강동 왕조운사에게 보내는 차자(1180년 가을)
26-24 조운사에게 보내는 조목별 차자(1180년 9월)
26-25 왕조운사에게 보내는 차자(1180년)
26-26 강서 장안무사에게 보내는 차자1(1180년, 겨울)
26-27 강서 장안무사에게 보내는 차자2(1180년 겨울)
26-28 강서 전전운사에게 보내는 차자(1180년 겨울)
26-29 강서 조사 장견에게 보내는 차자(1180년 겨울)
26-30 강서 장안무사에게 보내는 차자3(1180년 겨울)
26-31 성자 등 모든 현에 보내는 구황정사를 논하는 글(1180년 가을)
26-32 집정에게 보내는 차자(1180년 8월)
26-33 주참정에게 보내는 차자(1180년 8월)
26-34 주참정에게 주는 차자(1180년 가을)
26-35 주참정에게 보내는 차자(1180년 겨울)
26-36 주참정에게 보내는 별지(1180년 겨울)
26-37 진사중에게 보내는 편지(1181년 5월)
26-38 진승상에게 보내는 별지(1181년 5월)
26-39 복건 안조운사에게 보내는 차자(1181년 9월)
26-40 안조운사에게 보내는 차자(1182년 여름)
26-41 재상에게 올리는 편지(1182년 6월 8일)
26-42 진승상에게 보내는 별지(1184년)

주자문집 27권 편지

27-1 조안무사에게 보내는 편지(자직[子直; 조여우], 1183년)
27-2 조안무사에게 보내는 편지(1183년 여름)
27-3 조안무사에게 보내는 편지(1184년)
27-4 임택지에게 보내는 편지(1184년 가을)
27-5 임택지에게 보내는 편지(1184년 9월)
27-6 조안무사에게 보내는 편지(1184년 가을)
27-7 조안무사에게 보내는 편지(1184년 겨울)
27-8 양승상에게 답하는 편지(1185년)
27-9 진복공에게 주는 편지(1185년 여름 가을 사이)
27-10 진승상에게 보내는 편지(1185년 가을 겨울 사이)
27-11 진복공에게 주는 별지(1185년)
27-12 사태보에게 주는 편지(1185년 겨울)
27-13 사태보에게 답하는 별지(1185년 겨울)
27-14 첨안무사에게 답하는 편지(1186년 가을)
27-15 첨안무사에게 답하는 편지(1186년)
27-16 첨안무사에게 답하는 편지(1186년)
27-17 첨안무사에게 보내는 편지(1186년)
27-18 장정수에게 주는 편지(1187년 9월)
27-19 왕조운사에게 보내는 편지(원주: 제현齊賢, 1187년 가을)
27-20 주승상께 보내는 편지(1187년 9월경)
27-21 조진숙에게 보내는 편지(1187년 7월)
27-22 우연지에게 답하는 편지(무신 사월, 1188년)
27-23 강동 우제거에게 보내는 차자(1180년 가을겨울사이)
27-24 주승상에게 보내는 차자(원주: 6월, 1188년)
27-25 유참정에게 보내는 차자(1188년 6월)
27-26 주승상에게 보내는 편지(원주: 7월 12일, 1188년)
27-27 유조운사에게 답하는 편지(1188년 겨울)
27-28 어떤 사람에게 답하는 편지(1182년 겨울)

부록 1 경원당금(慶元黨禁)
부록 2 송나라의 지방장관제도
부록 3 주희 철학의 보편적 인간성과 차별적 민족성 | 조남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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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晦庵先生朱文公文集 卷二十六書
晦庵先生朱文公文集 卷二十七書

저자 소개 4

朱熹

중국 남송시대 학자로 유학을 집대성하였다. 자는 원회(元晦), 중회(仲晦), 호는 회암(晦庵), 회옹(晦翁), 운곡노인(雲谷老人), 창주병수(滄洲病?), 둔옹(遯翁) 등으로 불렸으며, 시호는 문공(文公)이다. 복건성 우계에서 태어나 5세 때부터 문장 공부를 시작해 19세에 진사가 되었다. 21세부터 50대까지 여러 관직을 거쳤으나 현직에 있던 시기는 얼마 되지 않으며, 대부분 명예직이었다. 공자, 맹자의 학문을 공부했으며 주돈이, 정이, 정호의 사상을 이어받은 도학파의 일원이었다. 불교와 도교에 대항해 이(理)와 기(氣) 개념으로 합리적인 유학의 형이상학을 완성하였다. 그가
중국 남송시대 학자로 유학을 집대성하였다. 자는 원회(元晦), 중회(仲晦), 호는 회암(晦庵), 회옹(晦翁), 운곡노인(雲谷老人), 창주병수(滄洲病?), 둔옹(遯翁) 등으로 불렸으며, 시호는 문공(文公)이다. 복건성 우계에서 태어나 5세 때부터 문장 공부를 시작해 19세에 진사가 되었다. 21세부터 50대까지 여러 관직을 거쳤으나 현직에 있던 시기는 얼마 되지 않으며, 대부분 명예직이었다.
공자, 맹자의 학문을 공부했으며 주돈이, 정이, 정호의 사상을 이어받은 도학파의 일원이었다. 불교와 도교에 대항해 이(理)와 기(氣) 개념으로 합리적인 유학의 형이상학을 완성하였다. 그가 창시한 주자학(성리학)은 사대부 계층과 한족 중심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음에도 원, 명, 청대에 관학으로서 관원을 양성하는 기초 학문이 되었으며, 동아시아의 정치, 사상,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주희는 이기론 인간 내면의 본질을 철학적으로 규명한 심성론,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사물의 이치를 구하는 학문 수양법인 거경궁리론을 주장하였으며, 향약과 사창법 등을 주창하여 민생 안정 등 현실적인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경세론을 펼쳤다.
『사서집주』를 저술하여 오경(『시경』·『서경』·『역경』·『예기』·『춘추』) 중심의 경학을 사서(『논어』·『맹자』·『대학』·『중용』) 중심으로 바꾸었으며, 『소학』을 집필하여 아동교육의 철학적 토대를 마련하고, 『주자가례』를 만들어 관혼상제의 일상생활 규범을 정초하였다. 이 외에도 여조겸과 함께 지은 『근사록』 등 80여 종의 책을 편찬하였다.
사후에는 문인들과 주고받은 문답을 모은 『주자어류』와 직접 쓴 글들을 모은 『주자문집』이 편찬되었다. 『주자대전』으로도 불리는 『주자문집』은 정집 100권, 속집 11권, 별집 10권, 부록 1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정집 24권부터 64권까지의 편지글[書]은 현실 정치에 대한 주희의 구체적인 활동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이다. 『주자 서한집: 첫째 권』은 『주자문집』 24, 25권에 실린 주희의 편지글을 번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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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만대학교 고등연구원을 방문학자로 갔다 왔으며, 현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에 재직 중이다. 박사학위 논문은 「나흠순과 조선학자들의 논변」으로, 나흠순이 주자학과 양명학 모두에 관계하는 까닭에 두 분야를 모두 공부하고 있다. 주자학과 양명학은 같으면서도 다른 학문이다. 주자학은 주로 『주자어류』를 중심으로 공부하고 있고, 양명학은 최근에 관심을 갖고 양명후학과 조선의 하곡학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아울러 동학, 대종교를 비롯한 조선후기 민족종교 또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다. 조선철학사의 어떻게 맥락이 연결되는가에 흥미를 가지고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만대학교 고등연구원을 방문학자로 갔다 왔으며, 현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에 재직 중이다. 박사학위 논문은 「나흠순과 조선학자들의 논변」으로, 나흠순이 주자학과 양명학 모두에 관계하는 까닭에 두 분야를 모두 공부하고 있다. 주자학과 양명학은 같으면서도 다른 학문이다. 주자학은 주로 『주자어류』를 중심으로 공부하고 있고, 양명학은 최근에 관심을 갖고 양명후학과 조선의 하곡학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아울러 동학, 대종교를 비롯한 조선후기 민족종교 또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다. 조선철학사의 어떻게 맥락이 연결되는가에 흥미를 가지고 있으며 동양철학이 현실에 적용되는 한의학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저서로 『주희 중국철학의 중심』(태학사, 2004)과 『이황의 성학십도』(삼성출판사, 2006)가 있으며, 역서로 『강설 황제내경1, 2』(청홍, 2009, 201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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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함평 출생. 자는 무경(無竟), 호는 덕헌(德軒).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백석예술대학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삼진회계세무사무소 대표를 맡고 있다. 한송(寒松) 성백효(成百曉) 선생님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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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백준영

관심작가 알림신청
 
인천 출생. 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과를 졸업했으며, 강동구청 사회복지과에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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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5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572쪽 | 152*225*35mm
ISBN13
9791167072382

책 속으로

주희 학술에 관한 기존의 많은 연구는 대체로 철학사상에 치우쳤다. 따라서 주희 학술의 전면적인 연구에는 『문집』이 더욱 중요하다. 다시 말해 심성론이나 공부론 같은 철학사상도 중요하지만, 주희가 정치, 경제, 사회 등 전통적 사회과학에서는 과연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를 입체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연구는 오늘날 일반 독자들이 주희 학술의 전체적인 모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주희가 형이상학적 이기론과 심성론에 치우친 도학자 또는 성리학자로서의 면모뿐 아니라 전 생애에 걸쳐 개혁을 추구한 전통적 사회과학자로서의 모습 또한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해제」 중에서

저는 이전에 분에 넘치게 추천을 받은 이래로 간절히 사면을 요청했으나 간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감히 누차 조정의 정사를 욕되게 할 수 없기에 이미 병을 무릅쓰고 길을 나서서 여기에 부임해서 아전들과 백성들을 살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저의 초심에 어긋나 이미 부끄러움과 울분이 쌓였고, 오랫동안 벼슬하지 않은 채 한가로이 지내다가 갑자기 행정업무를 맡게 되니 맞닥뜨리는 일마다 막막하고 막히고 또 손가락에 피멍이 들고 얼굴에 식은땀이 나는 수모를 겪고 있습니다.
--- 「26-1 사[조]승상에게 보내는 차자(1179년 2월) 」 중에서

제가 서생으로서 갑자기 군대의 일을 언급함은 참람하고 경솔함에 가까워 가소로울 듯합니다. 그러나 제가 마음속으로 간절히 당신을 잊지 못하여, 개인적으로는 염려하는 점은 태위께서 충의로써 분발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해서 곧바로 날쌘 병사를 가지고 신속히 진군하여 적의 소굴에 깊이 침투해서 그들을 깡그리 없애고 짐승 사냥하듯 하고자 하시는 일이니 이는 올바른 계책이 아닌 것 같습니다. 대체로 동남쪽 지방의 형세는 서북쪽 지방과는 같지 않으니 부디 다시 널리 물어보시고 깊이 헤아리셔서 완전한 공적이 이루어지기를 도모하시라는 것이 구구한 제 바람입니다.
--- 「26-7 황보수에게 보내는 편지(1180년) 」 중에서

저는 근래에 백록동의 옛 터를 찾아서 발견한 일을 계기로 약간 수리를 하고서 이미 자세한 내용을 갖추어서 상서성에 올렸습니다. (…) 바라건대 승상께서 특별히 상주해주시되 선조의 고사를 거론하여 백록동주(白鹿洞主)라는 폐지된 관직을 다시 설치하여 저를 충원해 경서를 가르치도록 주시고 그 녹봉은 대략 사록관과 비슷하게 내려주신다면 제 영광과 다행함이 매우 클 듯합니다. 이교인 도교에 대한 배향을 받들어 모심을 명분으로 삼아 하는 일 없이 녹봉을 받기보다는 선왕들의 훌륭한 전범을 다시 설치하여 제가 문학과 예의를 가지고 관직으로 삼아 그 녹봉을 받음이 더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 「승상에게 보내는 차자(1180년 봄)」 중에서

하나. 빈민 조사는 부디 우리 군의 규정양식에 따라 모든 지방의 책임자와 보정(保正)에게 자세히 차자초록를 작성하여 착 실히 안배하라고 공문을 내리십시오. 재삼 반복해서 당부하시되 사정을 봐서 폐단을 저질러 식량이 풍족한 집안을 허위로 기재하거나 기댈 곳이 없는 사람들이 누락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장래에 조사문서가 도착하면 다시 우리 군청에서 어르신들과 민들을 소환하여 일일이 이름을 부르며 확인시켜서 공공연하게 사실을 살피겠습니다.
--- 「226-31 성자 등 모든 현에 보내는 구황정사를 논하는 글 (1180년 가을)」 중에서

『대학』과 『중용』은 이전에 올린 책에서 잘못된 내용은 근래에 대부분 개정하였고 조만간 별도로 베껴서 올리겠습니다. 최근에 또 『소학』 한 책을 편찬하였는데 옛사람들이 부모나 연장자를 섬김과 물 뿌리거나 쓸거나 응대하는 법을 모두 기재하여 역시 배우는 자에게 도움이 됩니다. 아울러 베껴지길 기다려 귀하에게 올려서 정정해주실 것과 이를 손자에게 이어받으라고 내려주시길 간청하겠습니다.
--- 「26-42 진승상에게 보내는 별지(1184년) 」 중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듣기로 구황정사에 마음을 쏟으셔서 내년에 대한 대비가 매우 갖춰졌다고 하니 매우 훌륭합니다. 다만 상류에서 사들이는 알곡수량이 또한 너무 많은 듯하니 비록 바로 운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관청에서 거둬들이면 민간에선 곧 그만큼 부족하게 됩니다. 게다가 장차 곳곳에 시장을 개설해 양곡을 사들이면 겨울에 알곡가격이 반드시 앙등하여 틀림없이 내년 봄에 매입할 양곡이 부족하게 됩니다. 지금 이 사업이 이미 시행되었으니 감히 곧바로 멈추고 그만두기를 간청할 수는 없지만 만약 단지 그 수량을 조금 줄여주신다면 역시 백성들에게 보탬이 될 듯합니다.
--- 「27-6 조안무사에게 보내는 편지(1184년 가을)」 중에서

오늘날의 어수선한 논란은 정자(程子)로 인해서 유발된 일이 아니고 단지 집정자의 사주(使嗾)를 받들어 제가 중점을 두는 곳을 대상으로 공격할 뿐입니다. 만약 제가 도교의 청허(淸虛)를 높여 이야기했다면 저와 함께 노자를 공격했을 터이고 만약 불교의 재계를 닦았다면 저와 석가(釋迦)를 싸잡아 비방했을 터이고 왕안석의 『삼경(三經)』이나 『자설(字說)』을 읽기라도 한다면 왕씨를 공격하고 소순의 『권서(權書)』나 『형론(衡論)』을 읽기라도 한다면 소순과 소식과 소철의 세 소씨를 배척하였을 터입니다.
--- 「27-15 첨안무사에게 답하는 편지(1186년)」 중에서

고교수(高敎授; 고상로)가 학교에 대해 유의할 수 있어서 매우 좋습니다. 그는 육자정(陸子靜; 육구연)에게 배운 적이 있고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뜻을 두고 있으니 필시 그 생도들을 개도(開道)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근래에 모든 곳의 교관들 가운데 역시 교도(敎導)에 유념하고자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만 그들이 익힌 것이 과거를 보는 학업에 불과한지라 교관들의 기교가 정밀할수록 생도들의 마음가짐은 더욱 망가질 터이니 아마도 교육하지 않아서 오히려 충분히 그 생도들의 순수하고 우둔을 온전히 하느니만 못할 듯합니다.

--- 「27-16 첨안무사에게 답하는 편지(1186년))」 중에서

출판사 리뷰

이황, 송시열 등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주목한 ‘주자의 편지’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 즉 주희(朱熹, 1130~1200)는 동아시아의 정치, 사상, 문화를 논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사상가로, 그는 이기론뿐 아니라 인간 내면의 본질을 철학적으로 규명한 심성론,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사물의 이치를 구하는 학문 수양법인 거경궁리론을 주장한 철학자이자, 향약과 사창법 등을 주창하여 민생 안정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세론을 펼친 정치인이었다. 그의 영향력은 대단해서, 성리학은 이후 중국의 관학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그가 집필한 『소학』은 아동교육의 철학적 토대가 되었으며, 『주자가례』는 관혼상제의 일상생활 규범의 기초가 되었다.

사후에는 문인들과 주고받은 문답을 모은 『주자어류(朱子語類)』와 직접 쓴 글들을 모은 『주자문집(朱子文集)』이 편찬되었는데, 『주자어류』는 주희가 40대 이후에 했던 강의 내용을 제자들이 저마다 기록하여 편집한 것이기 때문에 신뢰도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지만, 『주자문집』은 주희가 직접 쓴 글을 모았기 때문에 『주자어류』보다 신뢰할 만하다.

『주자대전(朱子大全)』으로도 불리는 『주자문집』은 정집 100권, 속집 11권, 별집 10권, 부록 1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집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이 주자의 편지글로, 24권부터 64권까지 총 41권에 이른다. 주자의 편지글은 동시대 지식인들에게 띄운 편지와 이들에게 받은 서간문에 대한 답신으로 이루어져 있어, 남송의 시대상을 비롯해 현실적인 정치와 사회문제에 대한 주희의 생각과 당대 지식인들의 고민, 그리고 송대의 사상적 지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사료의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일찍이 퇴계 이황은 주희의 학술사상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1543년 중종의 명으로 간행된 『주자전서(朱子全書)』의 서간문에 주목해 이를 연구하였으며, 이 가운데 특히 사상적으로 중요한 부분을 간추려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를 간행해 조선의 주자학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조선 후기 학자 우암 송시열 역시 평생에 걸쳐 주자 서간문을 연구했으며, 그의 연구는 제자 권상하와 김창협 등 후대 학자들에게 이어졌다.

조선시대 학자들이 주자의 편지글에 주목한 까닭은 당대 지식인들과 주고받은 주자의 편지에 송대의 정치와 경제, 사회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분석과 통찰뿐 아니라 당대 지식인들의 생각의 지도가 함께 담겨 있어, 이를 통해 주자의 학술사상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희가 쓴 70편의 편지글을 통해
“백성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지식인의 책임감”을 읽는다

『주자 서한집: 첫째 권』에 이은 『주자 서한집: 둘째 권』은 『주자문집』 중에서 26, 27권에 실린 주자의 편지글을 번역한 것이다. 1179년부터 1188년까지 주자의 나이 50세부터 60세에 이르는 동안 동시대 지식인들에게 띄운 70편의 편지글이 실려 있다.
『주자 서한집: 둘째 권』의 첫 편지는 1179년 2월, 그의 나이 50세에 오랫동안 관직에서 물러나 있다 남강군 지사에 임명되자 승상에게 사직을 청하는 글이다.

하지만 주희는 결국 부임해 백성들을 살피는 일에 매진하게 된다. 『주자문집』 26권은 1179년부터 1181년까지 주희가 지방관과 중앙 고위관료들에게 보낸 차자(箚子)와 편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근과 재정난, 곡물 운송, 지방행정 개혁 등 당시 남송 사회가 직면한 현실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구황정사를 논하는 글’과 강동·강서 지역 관리들에게 보낸 차자들에서는 백성 구휼과 세금 조정, 곡물 배급, 행정 감독 방안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어, 주희가 단순한 철학자가 아니라 현실 정치와 행정에 깊이 관여한 정책가였음을 보여준다.

반면 27권은 승상과 안무사, 학자·문인들과 주고받은 서간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도덕 정치와 인재 등용, 학문과 정치의 관계 등을 폭넓게 논한다. 또한 다양한 인물들과의 교류를 통해 당시 성리학 학맥과 학문 공동체가 형성되는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이번 『주자 서한집: 둘째 권』은 흔히 형이상학 중심으로 이해되어온 성리학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재난 대응과 민생 안정, 인재 등용과 지방행정 개선 등 구체적인 현실 문제 속에서 성리학이 어떻게 정책과 행정의 원리로 작동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주자문집』 26·27권은 주희의 철학뿐 아니라 남송 시대의 정치·사회 현실과 지식인의 역할을 함께 조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조선시대 주자학 연구의 결정판 『주자대전차의집보』의
상세한 주석을 원문과 번역문으로 만나다!

『주자 서한집: 둘째 권』에는 『주자문집』 26, 27권의 번역문뿐 아니라 원문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더불어 번역문과 원문에는 상세한 주석이 곁들여 있는데, 이는 바로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서간문 연구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주자대전차의집보(朱子大全箚疑輯補)』(이하 『집보』)의 주석이다. 『집보』는 조선 말기인 1850년에 이항로와 그의 아들 이준이 정리해 출간한 것으로, 총 121권 70책에 이른다. 『집보』는 그동안 이어져 온 퇴계학파와 율곡학파의 『주자문집』 연구 작업뿐 아니라 정조대왕의 주희 연구 성과를 모두 집대성한 주희 학술사상에 관한 종합 연구서로서, 학파끼리 또는 학자마다 앞서서 단 주석을 철저하고 상세하게 비판하며 의견을 개진한 내용을 자세히 수록하고 있다.

『집보』의 주석에 언급된 책명으로는 이황의 『주자서절요』, 정경세의 『주문작해(朱文酌海)』, 송시열의 『주자대전차의(朱子大全箚疑)』, 정조의 『주시아송주(朱詩雅誦註)』, 서유구의 『두릉서씨설(斗陵徐氏說)』 등 20권이 넘는다. 조선 성리학자들의 치열한 학술 태도를 확인할 수 있는 『집보』의 주석 내용은 곧 조선 시기 350년간 이어온 주자학 연구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주자 서한집: 둘째 권』은 여기에 더해 이 책을 번역한 김용수, 조남호 두 옮긴이의 주를 부분적으로 추가함으로써 『집보』의 주자학 연구의 맥을 잇고 있다. 옮긴이들은 주자와 『주자문집』, 『집보』에 대한 ‘해제’와 함께 ‘부록’으로 경원당금(慶元黨禁), 즉 경원시대의 거대한 학술 탄압 사건을 통해 말년의 주자와 주자학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또한 송나라 지방장관제도와 주요 지방장관에 대한 소개글과 소논문 「주희 철학의 보편적 인간성과 차별적 민족성」을 실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참고문헌’ 또한 주자 관련 도서들을 자세히 설명해놓고 있어 필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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