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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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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품의 시리즈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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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동양고전역주총서를 발간하면서
범 례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 제36권 중
수 문제隋文帝 개황開皇 11년(591)~수 문제 개황 20년(600) / 11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 제36권 하
수 문제 인수仁壽 원년(601)~수 양제隋煬帝 대업大業 3년(607) / 87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 제37권 상
수 양제 대업 4년(608)~ 수 양제 대업 10년(613) / 175

[부 록]
1.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23』 연표 / 255
2.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23』 지도 / 272
3. 수나라 세계표 / 280
4.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23』 참고서목 / 281
5.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23』 도판목록 / 286
6.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 총목차(QR) / 288
7.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 해제(QR) / 288

저자 소개5

朱熹

중국 남송시대 학자로 유학을 집대성하였다. 자는 원회(元晦), 중회(仲晦), 호는 회암(晦庵), 회옹(晦翁), 운곡노인(雲谷老人), 창주병수(滄洲病?), 둔옹(遯翁) 등으로 불렸으며, 시호는 문공(文公)이다. 복건성 우계에서 태어나 5세 때부터 문장 공부를 시작해 19세에 진사가 되었다. 21세부터 50대까지 여러 관직을 거쳤으나 현직에 있던 시기는 얼마 되지 않으며, 대부분 명예직이었다. 공자, 맹자의 학문을 공부했으며 주돈이, 정이, 정호의 사상을 이어받은 도학파의 일원이었다. 불교와 도교에 대항해 이(理)와 기(氣) 개념으로 합리적인 유학의 형이상학을 완성하였다. 그가
중국 남송시대 학자로 유학을 집대성하였다. 자는 원회(元晦), 중회(仲晦), 호는 회암(晦庵), 회옹(晦翁), 운곡노인(雲谷老人), 창주병수(滄洲病?), 둔옹(遯翁) 등으로 불렸으며, 시호는 문공(文公)이다. 복건성 우계에서 태어나 5세 때부터 문장 공부를 시작해 19세에 진사가 되었다. 21세부터 50대까지 여러 관직을 거쳤으나 현직에 있던 시기는 얼마 되지 않으며, 대부분 명예직이었다.
공자, 맹자의 학문을 공부했으며 주돈이, 정이, 정호의 사상을 이어받은 도학파의 일원이었다. 불교와 도교에 대항해 이(理)와 기(氣) 개념으로 합리적인 유학의 형이상학을 완성하였다. 그가 창시한 주자학(성리학)은 사대부 계층과 한족 중심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음에도 원, 명, 청대에 관학으로서 관원을 양성하는 기초 학문이 되었으며, 동아시아의 정치, 사상,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주희는 이기론 인간 내면의 본질을 철학적으로 규명한 심성론,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사물의 이치를 구하는 학문 수양법인 거경궁리론을 주장하였으며, 향약과 사창법 등을 주창하여 민생 안정 등 현실적인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경세론을 펼쳤다.
『사서집주』를 저술하여 오경(『시경』·『서경』·『역경』·『예기』·『춘추』) 중심의 경학을 사서(『논어』·『맹자』·『대학』·『중용』) 중심으로 바꾸었으며, 『소학』을 집필하여 아동교육의 철학적 토대를 마련하고, 『주자가례』를 만들어 관혼상제의 일상생활 규범을 정초하였다. 이 외에도 여조겸과 함께 지은 『근사록』 등 80여 종의 책을 편찬하였다.
사후에는 문인들과 주고받은 문답을 모은 『주자어류』와 직접 쓴 글들을 모은 『주자문집』이 편찬되었다. 『주자대전』으로도 불리는 『주자문집』은 정집 100권, 속집 11권, 별집 10권, 부록 1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정집 24권부터 64권까지의 편지글[書]은 현실 정치에 대한 주희의 구체적인 활동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이다. 『주자 서한집: 첫째 권』은 『주자문집』 24, 25권에 실린 주희의 편지글을 번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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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2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92쪽 | 614g | 188*257*13mm
ISBN13
9791157945672

책 속으로

양광楊廣의 두 얼굴
황후가 세상을 떠나자 태자(양광)가 황제(수 문제)와 궁인들을 대면할 적에는 숨이 끊어질 듯이 애통해하여 마치 상사喪事의 슬픔을 견디지 못하는 것처럼 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방에 있을 때에는 마시고 먹고 말하고 웃는 것이 평소와 같았다. 또 아침마다 두 줌의 쌀을 올리게 하고 몰래 살진 고기와 포, 식해를 취하여 대통 속에 넣고 밀랍으로 입구를 막고 보자기로 싸서 들여오게 하였다.
---「『사정전훈의思政殿訓義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제36권 상 인수仁壽 2년(602)」중에서

을지문덕의 활약
을지문덕乙支文德은 우문술의 군사들에게 굶주린 기색이 있음을 보고 일부러 그들을 지치게 하려고 싸울 때마다 번번이 달아나니 우문술이 하루 동안 일곱 번을 싸워 모두 이겼다. 마침내 살수薩水를 건너 평양성平壤城과 30리 거리를 두고서 산을 끼고 진영을 만들었는데, 을지문덕이 다시 사자를 파견하여 우문술에게 거짓으로 항복하며 “만약 군대를 철수한다면 응당 고원高元(영양왕?陽王)을 모시고 행재소에 가서 황제를 조현하겠소.” 하였다. 우문술이 사졸을 보았더니 지쳐서 다시 싸울 수 없겠는 데다가 평양은 지세가 험하고 수비가 견고하여 대번에 함락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마침내 군대를 돌려 살수에 이르러 군사들이 반쯤 강을 건넜을 즈음 고구려 군대가 뒤에서 공격하니, 신세웅이 전사하고 여러 군대가 모두 궤멸되어 장수와 사졸이 도망쳐 돌아갈 적에 하루 밤낮으로 450리를 행군하여 압록수에 이르렀다.

---「『사정전훈의思政殿訓義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제37권 상 대업大業 8년(612)」중에서

출판사 리뷰

- 국내 최초 완역

본서는 『자치통감강목』과 그 주석을 국내 최초로 번역하였다. 한중일韓中日에서 나온 『자치통감』 연구서 등을 참조하여 고사故事와 인물人物, 역사적 사실과 제도까지 역주譯註로 밝혀 독자들의 내용 이해를 도왔다. 역사 사건과 관련된 역사 연표와 지도뿐만 아니라 해당 국가들의 세계표世系表까지 부록 처리하였다.

『자치통감』은 현재 중국, 일본, 한국에서 번역되었으나 주석까지 완역完譯되지는 못하였다. 이번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주석서인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의 완역을 통해 세종 시기의 동양학 연구 성과를 알리는 동시에 한국학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23』의 구성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22』은 원본의 제36권 중·하와 제37권 상에 해당하며, 시기적으로 수隋나라 문제文帝 개황開皇 11년(591)에서 수나라 양제煬帝 대업大業 9년(613)까지를 다루고 있다.

수 문제隋文帝의 치세로 수나라의 국력이 크게 신장된다. 그렇지만 문제는 아들들과 신하들을 의심하여 태자太子 양용楊勇을 폐하고 양광楊廣을 세우니, 이가 바로 수 양제隋煬帝이다. 왕위를 계승한 수 양제는 대외 팽창 정책을 시행하여 돌궐突厥과 토욕혼吐谷渾 등을 복속시키고 실크로드를 열어 수나라의 전성기를 열었으며, 이때 반포된 대업율령大業律令은 후대 율령제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대운하大運河와 장성長城을 건설로 백성들이 고통 받고 있는 중에 고구려高句麗 원정을 감행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자 백성들이 각 지역에서 봉기하여 전국이 혼란에 빠지게 된다. 특히 양현감楊玄感의 반란이 일어나면서 수나라는 붕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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