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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을 발간하며
凡 例 解 說 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31권 상 梁 武帝 普通 7년(526)~梁 武帝 中大通 원년(529) / 11 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31권 하 梁 武帝 中大通 원년(529)~梁 武帝 中大通 4년(532) / 81 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32권 상 梁 武帝 中大通 5년(533)~梁 武帝 大同 4년(538) / 146 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32권 하 梁 武帝 大同 5년(539)~梁 武帝 太淸 원년(547) / 220 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33권 상 梁 武帝 太淸 2년(548)~梁 簡文帝 大寶 원년(550) / 294 [附 錄] 1. ≪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20≫ 年表 / 391 2. ≪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20≫ 地圖 / 404 3. 梁 世系表 / 411 4. 北魏 世系表 / 412 5. 西魏?東魏 世系表 / 413 6. ≪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20≫ 參考書目 / 414 7. ≪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20≫ 圖版目錄 / 419 8. ≪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總目次(QR) / 420 9. ≪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解題(QR) / 420 |
朱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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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侯景은 오른쪽 다리 한쪽이 짧아서 말타기와 활쏘기는 잘하지 못했지만, 계책은 잘 내었다. 諸將인 高敖曹와 彭樂 등이 모두 용맹으로는 당시에 으뜸이었는데, 후경이 항상 그들을 경시하였다. 한번은 高歡에게 말하기를 ‘병력 3만을 얻어 천하를 횡행하기를 바라니, 반드시 강을 건너 蕭衍(梁 武帝) 노인을 사로잡아서 太平寺의 주지로 삼을 것입니다.’라고 하니, 고환이 병력 10만을 거느리게 하여 河南을 전적으로 다스리게 하였다. 후경이 평소에 高澄을 경시하였는데, 한번은 말하기를 ‘高王(高歡)이 살아 있을 때에는 내가 감히 다른 뜻을 품을 수 없지만, 왕이 죽으면 나는 선비족의 작은 아이(高澄)와 함께 일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 「제32권 하 梁 武帝 太淸 원년(547)」 중에서 “梁主(梁 武帝)가 同泰寺에 행차하여 大會를 설행할 적에 御服을 벗고 法衣를 입고 淸淨大捨의 의식을 행하여 밥을 먹을 때 소박한 상과 질그릇을 사용하며 小車를 타고 私人에게 일을 시키고 친히 四衆을 위하여 ≪涅槃經≫을 강의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1억만 錢을 바쳐 代贖하고 표문을 올려 환궁할 것을 청하였는데, 세 번 청한 뒤에야 허락하였다.” --- 「제31권 하 梁 武帝 中大通 원년(529)」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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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최초 완역
본서는 ≪자치통감강목≫과 그 주석을 국내 최초로 번역하였다. 한중일韓中日에서 나온 ≪자치통감≫ 연구서 등을 참조하여 고사故事와 인물人物, 역사적 사실과 제도까지 역주譯註로 밝혀 독자들의 내용 이해를 도왔다. 역사 사건과 관련된 역사 연표와 지도뿐만 아니라 해당 국가들의 세계표世系表까지 부록하였다. ≪자치통감≫은 현재 중국, 일본, 한국에서 번역되었으나 주석까지는 완역完譯되지 못하였다. 그뿐 아니라 ≪자치통감강목≫은 본문만 대만에서 번역된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주석서인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의 완역을 통해 세종 시기의 연구 성과를 알리는 동시에 동양학과 한국학 연구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역주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는 원본의 편집 체제의 특징을 그대로 구현하고자 하였다. 번역문은 현대적으로 표현하여 일반 독자들이 번역문만 읽어도 그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번역문 아래 원문을 함께 실어놓았으며 원문에는 우리나라 전통적 방식의 현토懸吐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교감을 하여 학술적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 남조南朝 귀족문화를 몰락시킨 후경侯景의 난 ≪역주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 20≫은 남북조시대 양梁나라 무제武帝 보통普通 7년(526)부터 양나라 간문제簡文帝 대보大寶 원년(550)까지를 다루고 있다. 이때 중국은 남북으로 분열되어 북쪽은 북위北魏와 남쪽은 양나라가 통치하였다. 523년 발생한 육진六鎭의 난으로 북위는 혼란에 빠지게 되고 결국 고환高歡과 우문태宇文泰가 각기 황제를 옹립하면서 동위東魏와 서위西魏로 나누어지게 된다. 고환이 죽고 그의 아들 고징高澄이 동위의 정권을 계승하자 동위의 장수인 후경이 하남河南 지역을 가지고 양나라에 귀부하게 된다. 후경은 동위와 전쟁을 벌였지만 패하여 양梁나라로 도망가게 된다. 이후 양나라가 동위와 화평 조약을 맺자 후경은 동위에 압송될까 두려워하다가 자신의 군대를 가지고 반란을 일으켜 양나라의 수도 건강建康으로 진격하게 된다. 양 무제梁武帝는 조카인 소정덕蕭正德에게 방위를 맡겼으나, 소정덕은 이미 후경과 내통하고 있었다. 소정덕의 도움으로 건강으로 진격한 후경은 마침내 건강성을 포위하게 된다. 양나라 각지에서 근왕병이 일어났으나 서로 협력하지 못하고 후경과 대치만 하다가 건강성은 후경에게 함락되고 만다. 사로잡힌 양 무제는 음식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였는데, 입이 써서 꿀을 달라고 하였다가 얻지 못하자 원망하며 죽게 된다. 후경의 난은 진압되지만 양나라의 몰락을 가지고 왔을 뿐만 아니라 강남 지역을 황폐화시켰고 남조의 귀족문화는 몰락시킨 역사상 큰 사건이었다. 이후 역사의 무게 추는 북쪽으로 옮겨가고 서위를 계승한 북주北周가 새로운 시대의 주역으로 떠오르게 된다. |